잘난 소꿉친구 상상함 쓰는 놈임

이번 라오챈에 쓴 2차창작임


----------------------------------------------------------------


사령관에게 반지를 받던 그날 밤, 

티타니아는 밤새도록 그의 부름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티타니아를 결코 부르지 않았다.

티타니아가 혼자 침대에 누워있을 무렵, 

사령관은 레아와 다프네를 품에 안고 있었다.


사령관은 티타니아에게 반지를 끼워주면서, 목이 아픈 자 여러 번 기침을 했다.

그저, 수복 중이던 레아를 확인하기 위해 방문했던 때, 나와 마주친 김에 반지를 끼워준 것일 뿐이었다.

사령관은 반지를 끼워주는 것 이외에는 별 말을 하지 않았고, 따라서 그녀도 말을 아꼈다.

한 때 너, 라고 부르던 그였고, 증오하던 그였으니까.

아마도, 자신의 능력 때문에 온도가 낮아진 것이기 때문이리라.

사령관은 식당도, 그의 방도 아닌 수복실에서 서약했다. 

그 날의 수복실은, 유난히도 쌀쌀했다.


******


새로운 바이오로이드들의 합류가 늘어날 수록, 출격횟수가 줄어갔다.

동시에 사령관과 마주치는 횟수가 점점 줄어갔다.

수복실에 들어가도 되지 않아도 되는 바이오로이드들의 몸과 마음이 풀려 느슨해지고 있었다. 

사령관이 자신의 방과 연구실에 나오기 전까지, 그녀들은 훈련 대신 삼삼오오 모여 느슨한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탄생 자체가 의문인 민트파이를 만든 하치코를 혼내는 리리스,
그녀를 말리는 페로와 스노우 페더.

사령관의 알몸을 촬영한 탈론페더의 영상들을 풀HD로 감상하는 바이오로이드들,

주변에서 뭐라 하든 말든 밴드 연습을 하는 스카이 나이츠,

서로의 수영복을 보고 싸우고 있는 앨리스와 샬럿 등.

그 느슨한 분위기 속에, 자신만 섞이지 못한 채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그녀는 자신의 자매인 페어리 자매들을 바라보았다.

사령관이 서약을 맺은, 다른 자매들을.

가위를 들고 폭주한 상태에 리제를 말리는 다프네와 드리아드, 

그리고 슬슬 화를 내어 한 대 쥐어 박으려고 하는 자신의 쌍둥이 자매, 오베로니아 레아.


티타니아는 다프네와 오베로니아 레아가 어젯밤 사령관실에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둘은 오늘 아침이 되어서야 숙소로 돌아왔다. 

그녀들의 몸에서는 바이오로이드들에게서는 생산될 수 없는 비릿한 냄새가 났고, 신체에서는 한밤 중의 열기를 뿜었다. 입에서는 지쳤지만 행복감에 젖은 호흡을 내뱉고 있었다. 

밤을 지새운 티타니아의 감각은 이 연구시설들을 모조리 얼려버릴 수 있을 것 같을 정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뇌에 있는 칩에서 무수한 이미지들을 연산해내고 있었다.

한낮에 휴식을 하여 이미지를 정리하기 위해 눈을 감았지만, 사령관과 레아, 다프네 셋 이 서로 몸을 섞는 이미지들은 선명해져만 갔다. 

그리고, 티타니아 자신은 겪은 적이 없는 경험에 대해서 의문이 생겨 갔다.

사령관의 품에 안겼을 때 그 둘은 어떤 감정을 느꼈을 지, 남녀 단 둘이 아닌 자매들을 품에 안는 사령관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비록 자매이지만, 레아와 다프네는 서로를 질투하지 않는 건지, 사령관의 방을 스스로 찾아갔을 때 어떤 감정으로 찾아간 건지. 

그리고.

사령관은 어째서 자신에게 반지를 내밀어, 서약을 한 것인지.


******


그는 항상 바빴다. 지휘든, 연구든, 바이오로이드와의 밤일이든.

하루에 4명 정도 상대하는 것이 겨우 가능한 그의 비해, 그와의 동침을 원하는 바이오로이드들은 무수히 많았다.  

그가 그녀를 그날 밤 부르지 않은 논리적인 이유는 납득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사령관실 안에서부터 울리는 레아의 신음소리를 들었을 때,

티타니아는 뇌의 이식되어 있는 칩이 불타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자기혐오, 열등감, 증오가 아닌 처음 계산된 이 감정이었다. 

왼손에 끼워진 반지가 무겁고 서늘하게 느껴졌다. 


- 티타니아. 또 혼자 있는 거야?

레아와 다프네가 다가온다.

내 쌍둥이 자매, 레아의 대해서는 열등감이 많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랬는데.

아니.

열등감이 아니다.


- 주인님과 서약하셨는데... 주인님에 대해서 이야기 같이 해요, 티타니아.

- 됐어. 그런 거. 

자매들의 눈빛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의 대해서는, 너희들이 더 할 말이 많지 않아?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뇌에서는 말하지 말 것을 명령했다.

가슴이 타버릴 것 같아, 스스로에게 서리 폭풍을 사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어느날 밤.

티타니아는 샤워를 마치고 곧바로 사령관에게 향했다. 

그는 오늘도 바빴다.

라비아타와 닥터에게 받은 보고서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 사령관을 보며, 티타니아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 용건은?

- 아, 그게...

- 상태 보고인 거지?

- 응...


티타니아는 그에게 다가가 자신의 신체 수치 상태가 담긴 자료를 왼손으로 내밀었다. 반지가 조명을 받아 창백하게 변해 갔다.

사령관은 다시 보고서의 시선을 돌렸다. 


- 또 용건이?

- 아, 사령관. 어제는 무슨 일, 있었어?

- ....피곤해서 그냥 잤는데. 무슨 용건이 또 있나?

- 아니, 없어. 저....

- 바쁘니까, 용건이 없다면 돌아가서 쉬지 그래?


사령관의 차가운 대답을 애써 무시하며, 어떻게든 끊기는 대화를 이어나기 위해 발버둥쳤다.

어째서일까.

어째서 그에게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한 말들이 연산되지 않는 걸까. 


- ...그렇구나. 그럼, 일이 끝나면 호출해줄 수 있어?오늘 밤, 같이...

- 선약이 있어.

- 오늘, 새벽에라도 잠시 비워줄 수 없어?”

- 아깐 용건 없다며?

- 응...


결국, 대화는 끊겨 버렸다. 사령관은 다시 보고서에 얼굴을 파묻었고, 티타니아는 서서히 사령관실을 빠져 나왔다. 

사령관실에서 숙소까지의 거리는, 유난히 길었다.


사령관, 이럴 거면, 이렇게 지낼 거라면 대체 왜 내게 반지를 준 거야?

내게 준 반지의 의미는 어떤 거야. 

이럴 거라면, 왜 나와 왜 서약을 한 거야?

네가 건넨 이 반지는 어떤 의미에서였던 거야?

나를 위해 시간을 내 줘.

날 봐 줘. 

왜 나는 안 되고 레아, 그 년은 되는 거야.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에게는 다정히 말하면서 왜 나와 대화할 때는 입을 닫는 거야.

사령관에게 내뱉지 못한 목소리들이 금속 골격으로 퍼져 나갔다.


*****


- 주인님? 

드리아드는 자신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사령관에게 말을 걸었다. 


- 저는 아직 서약하지 않았는데...어째서...

- 버리지 말아달라며?

- 그렇습니다만...아앗, 거기는! 

- 그럼 왜?


드리아드는 거칠게 한 차례 교성을 내지른 후, 사령관의 상반신에게 몸을 기대어 말을 이었다.


- 저번에 서약한 자매가 있는데 그녀를 좀 신경 써주시는 것이...

- 아, 티타니아 말하는 거야? 걘 됐어.

 

****


밤의 사령관실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문 앞에 서 있으면 새어 나오는 소리 정도는 들을 수 있었다.

전투에 나서야 하기에 신체 능력이 향상되어 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이라면 더더욱. 

티타니아는 사령관 실 문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안에서 울리는 자신의 자매의 소리를 듣고 있었다.

밤의 열기가 지나가고, 드리아드가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한 티타니아는 사령관실의 문을 두드렸다. 

사령관은 반 바지만 입은 채, 침대에 누워 서류를 읽고 있었다. 


- 사령관, 내일도....바빠?

- 어.

- 모레 새벽은?

- 아마도 바쁠 거 같군.

- ...그래?

- 응


또 다시. 오늘 오후와 마찬가지였다. 

분명 훈훈해야할 방은 자신의 능력이 사용된 것마냥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티타니아는 어떻게 사령관에게 다가갈 수 있을지를 필사적으로 계산하고 있었지만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고, 사령관은 티타니아를 품에 안을 마음 따위는 전혀 없는 듯 했다. 

무슨 말을 해야, 사령관이 내게 관심을 가질 수 있을까. 

티타니아가 계산도 하기 전에, 입이 마음대로 움직였다. 


- 그 시간에, 나는 낄 수 없는 거야?

- 아마도.

- ...사령관은, 어째서 나와 서약을 한 거야.


사령관이 이제야, 자신을 바라본다. 

티타니아는 붉은 눈동자로 사령관을 바라보며, 참았던 말들을 쏟아내었다.


- 난...너에게 항상 심한 말만 해서, 네가 나에게 반지를 줄 것이란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어. 널 죽이려고 했던 적도 있었으니까.

   그런데도 넌 계속 내게 말을 걸고, 수복해주고, 칭찬해주고...레아에 대한 열등감도 극복하게 해주었어.  넌 날 바꿔주었단 말이야.

   그래서 네가 서약하자고 했을 때 이 반지를 내밀었을 때, 이제는 내가 사령관 너에게 사랑을 보답하겠다 다짐하고 있었어. 그래서...

- 서약을 받아들였다는 거지. 그것으로 내 목적은 달성한 건데.

- ...뭐?

- 너에게 잘해주어야, 부정적 마인드의 찌들어있던 네가 내 명령을 따를 테고, 전투에 임할 것이고, 나아가 서약을 받을 테니까.

   서약의 의미를 두지 마라. 닥터와 라비아타의 취향이 반영된 거라 그런 거지, 전투력 향상 능력을 위한 목적이 전부니까.

- 그럼, 내 마음은?


사령관은 날 보며 피식 웃는다.

그 웃음이, 너무나도 차갑다.


- 아니.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하고, 하루하루가 고통이라고 하고, 어픔과 절망 뭐시기 말하고. 

   거기다 핵심 전력 중 한 명인 오베로니아 레아를 툭하면 죽인다고 말하는 너를, 좋아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머리 속이 핑, 하고 울린다.

차가운 사이렌 소리가 귀를 가득 채워갔다.

아니야.

이젠, 아니야.

더 이상, 너, 아니 사령관을 중오할 리 없잖아.


- 자, 잘못, 했어.

-  어쨌든, 서약을 했으니 난 목적을 달성했어. 너흰 인간의 명령이 최우선이니, 반지를 스스로 빼지도 못하잖아. 


******


티타니아는 숙소로 돌아가 몇날 며칠을, 사령관의 명령도 거부한 채 침대에 누워 뜬 눈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사령관의 말을 완벽히 이해했지만, 뇌의 연산은 이해하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모든 것에는 Input과 Output이 존재한다. 

인간을 증오하도록 설계된, 혹은 오류일지 모르는 뇌의 칩이 사령관을 '너' 라고 부르게 했다.

그의 호의를 인식하지 못하게, 그리고 거부하게 만들었다.

내 쌍둥이 자매를 증오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긍정적인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도록, 그리고 말투를 차갑게 하도록 설정되어 있었다.

이것들이 쌓이고 쌓여,  사령관과 자신의 관계를 주인과 무기의 관계로 만들어 놓았다.


그 날을 기점으로, 티타니아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기로 결심하고, 행동에 옮겼다.

샤워를 한 후, 흰 피부를 타고 향이 전신에 퍼지도록 몸에 향수를 뿌렸다.

오드리에게 고개를 숙여, 승부 속옷을 받아 입고, 바디 오일을 뿌렸다.

가랑이 사이의 난 털들을 정리하고, 머리와 눈썹을 정리한 후, 매일 밤 사령관의 방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는 반응이 없었다.

침대 위에 누워 있는 그의 옆에 누워도,

가슴에 안겨, 그를 올려다보와도, 

무릎을 꿇고 그의 발목을 붙잡으며 사랑해달라고 빌어도.

눈물을 흘리며 그동안 잘못했다고 애원해도.

그저 무기물 덩어리를 보는 듯한 그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밤의 몰래, 억지로 그와 성관계를 가지려 한 날도 있었다.

하지만 사령관의 물건은 반응이 없었다. 


******


소란스러움과 평화로움이 공존하는 아침.

티타니아의 맞은 편으로, 다프네가 사령관에게 보고할 자료들을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가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하며 멀어져 갔다. 

그녀가 사령관의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며, 머리 속 회로가 과열되기 시작했다. 

그녀를 사령관과 같은 방에 놔둬서는 안된다는 결과값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고 멈추라는 논리적인 명령이 나오고 있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사령관실의 들어가려는 다프네의 손을 붙잡았다.


- 응? 티타니아? 무슨 일이에요?

- 사령관에게서 떨어져.

- 무슨 말을 하는 거에요? 저, 사령관에게 보고를...

- 언니인 레아, 그리고 다른 자매들을 데리고 떠나줘. 너희들이 없다면, 그는 여왕을 봐줄 거야.


- 하아, 티타니아. 이해가 되게 말을...

다프네의 한숨이 말이 티타니아를 자극했다. 티타니아가 냉기가 가득한 손으로 다프네의 얼굴을 붙잡았다. 


- 부탁이야. 사령관을, 떠나줘. 그거면 돼.

티타니아의 손에 힘이 들어갈 수록, 다프네의 뺨이 얼어 붙어가기 시작했다. 다프네가 두 팔을 버둥거리며 소리를 지르려고 했지만 입술이 이미 얼어붙고 있었다. 


- 사령관은, 너를 사랑했던 만큼, 나를 사랑해 줄거야. 아니 해줘야 해.

티타니아의 손가락이 다프네의 피부를 부수기 시작했다. 다프네의 간신히 쥐어짜 낸 비명이 복도에 울려 퍼졌다. 

의식을 잃기 전 내지른 그녀의 외침에 이끌린 바이오로이드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 티타니아?! 지금 이게 무슨 짓이에요!!!

그녀의 증오스러운 쌍둥이, 레아가 벼락을 내려 그녀를 날려 버렸고, 뒤이어 달려 온 리제와 드리아드가 티타니아의 목에 가위와 워사이드를 겨누었다. 

레아는 광대뼈가 드러날 정도로 파여 버린  다프네의 얼굴을 감싸 안고는, 금방이라도 티타니아를 불태워 죽여버리려는 것을 다른 바이오로이들이 뜯어말리고 있었다.


그런 소란들을 뒤로 한 채, 티타니아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어째서 자신은 사령관에게 사랑 받을 수 없는가.

어째서 사령관은 자신을 봐주지 않는가.

[날 사랑해 줘.]

그만.

[날 바라봐 줘.]

이제 사령관에 대한 생각을 그만 하고 싶어.  

[나를 안아 줘.]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 


티타니아의 울음 섞인 비명이 복도를 울려 퍼졌다. 금방이라도 그녀를 죽이려 들던 레아조차 얼어붙게 만들 정도로 소름끼치는 울음이었다.

그녀는 왼손 약지를 물어뜯어 바닥에 뱉었다. 잘라진 손가락에서 흐르는 피 사이로, 금속 골격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반지는 낙인처럼 잘려 나간 왼손 약지에 매달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