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방가

SCP 재단 사이트 안내 허브의 창작 안내 탭에는 스무 가지가 넘는 가이드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작가들은 멋진 글을 완성하기 위해 가이드를 찾지요. 저도 SCP를 창작하려는 여러분을 위해 펜 한 번 들게 되었습니다.

이번 글에선 제가 창작한 열한 가지 SCP를 투고 순서대로 소개하며, 창작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그리고 스스로 얻은 교훈과 깨달음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공감대 공략하기      

823ko :  ██ 부대 백 일병 

19년 4월, 823ko는 GOP에서 근무하며 겪었던 몇 가지 일화를 엮어서 작성했습니다. 멘토 멘티 경연 출품작입니다.

독자는 자신이 겪었거나 관련된 어떤 주제에 더 쉽고, 더 깊게 몰입합니다. 가령 SCP-2571(크래글우드 유원지)가 쌍둥이 형제자매를 가진 사람에게 더 특별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것처럼요. 같은 맥락으로 특정 공감대를 타겟 삼는다면 그 층에 한해 몰입감을 증진시킬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건 글쓰기에만 해당하는 부분이 아닙니다. 마케팅 전문가들의 광고 기법부터 새로 만난 친구와 친해지는 대화까지 근본 전략인 만큼 정말 효과적이니까요.

823ko는 군필, 현역 등을 주 타겟으로 삼습니다. 대한민국 건장한 남성이라면 겪게 되는 군 문제는 전역을 하고도 꿈에서 등장할 만큼 충격적인 이슈입니다. 그렇다 보니 고정층을 확보하기도 쉽고, 어딜가나 군머 소재는 한 자리씩 차지하죠. 이 작품 전에도 군 소재 SCPko가 있긴 했지만 병사들의 마음고생을 두 등장인물로 잘 표현한 덕에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습니다. 

노려볼 수 있는 층이라면 군대만 있지 않습니다. 기숙사 생활에서 겪는 이슈, 퇴근 시간의 2호선, 최저를 못 받는 알바 자리 등등... 층과 관련이 없더라도 단순히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것이라면 가능합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달라진 일상, 어릴 적 치과 대기실에서 느꼈던 섬찟함, 부록에서 유명인 언급하기 등 소재는 무수하고 이걸 메인으로 삼을지 부록 정도로 가져갈지는 자유롭습니다. 시도에 비해 얻는 것은 많으니 고려해볼 만 하지 않나요?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직접 겪어보지 못한 일이라면 고증 확인을 철저히 해야 합니다. 사소한 실수나 케바케 수준도 아니고 아주 박살 난 고증은 없느니만 못하기 때문입니다. 쓰기 전 정보 검증은 필수, 쓰고 나서도 어색한 부분은 없는지 점검을 부탁해야 합니다. 아주 판타지로 간다면 오류를 찾아낼 마법사는 없을 테니 괜찮을지도요. 저는 글 쓰다 자문 구하자고 오래간 연락 끊겼던 친구에게 전화 거는 일도 종종 생겼어요. 그러니 간만에 인사도 할 겸 어떤가요?

 메모하기

824ko :  물 6×22×10²³ 방울  

19년 4월, 824ko는 24시간 안에 작성하기 도전과제로 작성했습니다.

메모하는 습관을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들였어요. 한참 자각몽에 빠져있을 때라 꿈일기 좀 써보겠답시고 매일매일 메모했습니다. 겪은 일을 옮겨 적는 일이다 보니 뭔갈 상상하는 것보단야 훨씬 쉬웠죠. 꿈 기억은 다른 기억과는 다르게 한 번 떠나버리면 흔적조차 남지 않아요. 그래서 옮겨 적기 직전까지도 머릿속에서 문장화해야만 했죠. 그렇게 키워드 단위부터 시작해서 길고 긴 문단까지 쉽게 써 내릴 수 있을 때쯤 SCP에 빠지게 됐고 그때부턴 사소한 아이디어 하나조차도 그대로 옮겨 적었습니다. 군대에서는 수첩 하나, 볼펜 하나 항상 건빵주머니에 넣어두면서 살았구요. 할 것 없는 초소에서 글쓰기란 텁텁한 보급빵 위의 딸기잼만큼 달고 즐거웠지요. 

정말 많은 작품이 그렇지만 824ko도 메모의 산물 중 하나입니다. 24시간 카운트가 터지고, 저는 종이 쪼가리 하나에 낑겨있던 생각 조각을 찾아 확장했습니다. 분리할 예정인 것도 합치면서 빠르게 양을 부풀릴 수 있었어요. 다행히 반응은 좋았고, 준비가 안 되어있었다면 절대 못 해냈겠죠. 이런 잔재들은 지금도 유용하게 쓰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아이디어 하나로 SCP 하나가 만들어지진 않습니다. 작품 하나를 완성할 아이디어 같은 건 쉽게 나오진 않겠죠. 저는 아이디어뿐만 아니라 어디 면담 기록에 들어갈 법한 짤막한 대화 하나나, 그럴듯하고 감성적인 문장, 기분과 느낌 등 뭐든 쓸만한 게 떠오를 때마다 문장화했습니다. 그렇게 나열된 문장 조각들은 합쳐지고 활용되어 작품 하나로 완성되고요. 사실 어떤 글이 될지도 모르는 채로 마구 썼던 거죠. 하지만 아이디어를 떠올리겠다고 많은 시간을 쏟기보단 어쩌다 번뜩이는 소재들을 버려지지 않도록 평소 신경 쓰는 게 훨 효율적일 겁니다. 둘 다 하면 좋구요.

다시 찾아볼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인 만큼 나중에 찾아봐도 이해하기 쉽게끔 신경 쓰면서 썼습니다. 소화에 비유하면 마치 밥 대신 씹어줄 만큼요. (결국 다시 이해 못 하고 버린 것들도 많았습니다) 그런 경험 덕일까요? 지금은 뭐든 쉽게 막히지 않고 그럴듯하게 써나갈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읽기

842ko :  손실

19년 11월, 842ko는 전역 다음 달에 작성한 작품입니다. 근손실 드립에서 영감을 따서 작성했습니다. 

그냥 읽기(Read)가 아닙니다. 마음 속으로만 읽지 않아요. 등장인물이 대화하는 파트는 항상 소리 내 읽습니다(Speak). 

제 작품은 대화 기록이 자연스럽단 평을 종종 받았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간단해요. 읽어보고, 부자연스러우면 고칩니다. 글 쓸 때도 눈 뜨고 있으니 읽고 있는 게 아닌가 싶겠지만 이 과정은 꼭 필요합니다. 어딘가 어설퍼 보이는 문장도 순식간에 깔끔해지죠. 아무래도 들었을 때 어색한 말투는 쉽게 걸러낼 수 있으니까요. 그러다 습관이 들면 우리 뇌도 메카-니즘이 정립됐는지 자연스럽게 쓰기 시작합니다. 

쓰는 뇌와 읽는 뇌는 다른 부위를 쓴단 사실 알고 계셨나요? 왠지 다를 것 같아서 검색해보니까 진짜 다르네요zz 다 쓰고 나면 맞춤법 검사기를 돌리는 루틴처럼 머리도 식힐 겸 읽는 시간을 가집시다. 평서문이라면 마음속으로만 읽어도 괜찮아요. 하지만 자연스러운 대화 기록을 쓰기 어렵다면 꼭 한 번 speak 해보세요. 읽기 어색한 문장보단 차라리 맞춤법이 틀린 게 낫다고 생각하는만큼 비평 업무를 맡으면서 정말 자주 드렸던 조언 중 하나였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좋은 대화 레퍼런스를 얻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미 검증된 실제 대화에서 따오는 거죠. 친구나 가족 등 대화 나누다 '방금 이 말 기록에 괜찮을 것 같은데.' 싶다면 기억해뒀다 메모하세요. 작성할 때는 그 친구 이름을 넣고 대화를 꾸리다가 투고할 때 다른 이름으로 바꾸는 방법도 좋아요. 작가부터가 몰입하기 쉬우니 대화 기록도 괜찮게 나올 거에요.  

 버리기

822ko :  짬  

20년 4월, 822ko를 투고했습니다.

누구나 무덤을 갖고 있습니다. 저도 그래요. 아니다 싶으면 과감하게 버렸습니다. 재단에서 처음 글 쓰면서 배운 게 바로 그겁니다. 

일백 시간을 들여 쓴 것보다 하루 이틀짜리 하나가 훨씬 좋은 평을 받은 모습을 보면 누구나 허탈함을 느끼더랍니다. 오히려 무진장 정성 들인 작품이 삭제되기도 하죠. 뭘 의미할까요? 어디까지나 문체는 기본일 뿐이요, 결국 내용이 든든해야 한단 뜻일지. 사실 될 소재와 안 될 소재를 비교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안 될 소재는 본인이 가장 잘 알기 때문이에요. 자기가 자기 작품이 정말 재밌는지 확신이 없다면 그건 계속 잡고 있기보단 생각 좀 해보셔야 합니다. 본인이 재밌어도 비추 박는 사람은 있는걸요. 대대적인 수정이 들어가지 않는 한 예상 결과도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만약 그냥저냥 500개쯤 하나 적당히 낀 채로 그저 살아만 있었음 하는 게 희망이라면 그건... 그건 작품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작품을 위한 작품이 아니란 거죠. 

이렇게 말씀드려도 결국 결정은 스스로 해야 합니다. 비평하는 사람은 남한테 버려라 살려라 함부로 말하지 않으니까요. 간접적으론(예의상으로) 이미 계속 돌려 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들인 시간이 아깝거나 왠지 모를 애착이 생겨 그만두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좀 더 쉽게 미련을 버리는 방법이라면 당장은 손을 떼되 언젠가 문장 단위로 해체해서 다시 써먹으면 됩니다. 잔해들이 메모하기 단계로 돌아가 언젠가 부활하리라 믿는다면 장기적으로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도 생각해보세요. 가망 모를 글을 잡고 버틴 만큼 좋은 소재를 떠올릴 시간을 버리고 있는 거라면? 이 기회비용이란 지혜는 비트코인에서도 ㅅㅂ 얻을 수 있었습니다...

822ko는 제 무덤 속에서 잠자던 시체들이 재탄생한 결과물입니다. 물론 다소 극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형식은 다양하고 방법은 많습니다. 버릴 줄 아는 용기도 중요하단 점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소재 얻기

821ko :  커터니언(Cutternion)

20년 5월, 821ko는 열쇠경연 참가작으로 작성했습니다.

소재를 얻을 곳은 많지만, 일반인은 잘 모르는 나만의 전문 분야가 있다면 노려봄 직합니다. 고증 오류 문제에서 자유로운 데다 좋아하는 분야인 만큼 글쓰기도 즐겁겠죠. 현장에 서 있는 사람만큼이나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는 사람도 없을 테구요.

821ko는 CG 학원에서 그래픽 공부를 하던 중 떠오른 소재로 썼어요. 쿼터니언과 짐벌락 개념 등 상식과는 어긋난듯한 묘한 매력을 느끼고 작성했습니다. 매력 있는 데다 관련 자료는 여기저기 빠방방. 그렇다 보니 변칙으로 옮겨 담기엔 편했어요. 이런 느낌의 이과 SCP가 참 여럿 있습니다. 코딩하는 뱀 3529도 그렇고 피보나치 4949도 그래요. 이과만 그런 게 아닙니다. 요리, 철학, 스포츠 등 어떤 분야든 매력을 뽐낼 기회는 많습니다. 다만 분야에 따라 메인 아이디어로 쓰는 게 유리할 수도 있고 서사의 핵심으로 쓰는 게 좋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언제나 정답 따위 없는 이 판인 만큼 다양한 설정과 전개를 고민해보세요. 결혼 사진도 여럿 찍어 가장 좋은 걸 액자에 걸듯 좋은 소재를 택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겁니다.

다른 창작물에서 소재 얻기

001-EX-KO-J :  나쁜 아이

20년 5월, 001ex-KO-J를 투고했습니다.

크로스오버가 아닌 이상 다른 창작물과 SCP 재단 창작의 관계는 썩 좋아 보이진 않습니다. 잘 써도 호불호가 갈릴 마당에 그렇지도 못한다면... 자캐딸, 메리수, X맨 신드롬 등등 온갖 나쁜 단어가 저절로 떠오르네요. 하지만 그냥 영감을 따오는 정도라면? 아니면 과감하게 겹치면서도 새로운 즐거움과 설득력이 있다면?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멋진 작품에서 가져온 매력에 내 정체성까지 씌운다면 그것만큼 좋은 창조가 없는 것 같습니다. 

001-EX-KO-J가 만들어지는데 정말 많은 작품이 영향을 주었습니다. 초기 아이디어는 kurzgesagt의 시뮬레이션 논쟁 영상에서 시작했습니다. '사실 우리 현실이 그저 시뮬레이션일 뿐이라면?' 이란 물음이 담긴 내용이죠. 덕분에 통 속의 뇌나 데카르트 등, 그걸 소재로 한 SCP들을 읽었습니다. 거기서 얻은 영감은 멸종, AI(작성 포기)의 뼈대(AI와 인간이 서로 숭배하는 세계관)에 기여했지만 이는 재단갤에서 람다 코퍼레이션 떡밥이 돌 때 팔려 갔습니다. 아쉽게도 람다 코퍼레이션은 완성되지 못해 해체했지만... 아무쪼록 시간이 더 지나고 넷플릭스 블랙미러 시리즈가 크게 기여해줬지요. 

하지만 카드뉴스 형식의 'ai가 인간을 지배할 수 없는 이유'라는 게시물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꼭 소개해드리고 싶은데 링크를 찾을 수가 없네요. 바로 이 게시물이 진지한 이야기로 가려던 제 계획을 무너뜨렸습니다. 아무리 봐도 001ex만큼 광기 있는 인공지능을 표현할 수 없으니 차라리 아주 웃긴 놈을 써버려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O5들이 채팅창처럼 노가리까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이 장면은 군 복무 중 고속상황전파체계로 시덥잖은 내용을 군단까지 쏴버리는 실수를 한 선임 덕이었습니다. 마지막은 역시 알파고vs이세돌 컨텐츠. 아마 영감이 되었음에도 기억하지 못한 요소도 정말 많을 겁니다.

메모하기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아이디어 하나로 만들어지는 작품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중요한 건 '이게 소재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끝없이 하는 거죠. 하지만 단순히 '따라 해보고 싶다.'로 끝나기보단 내가 무얼 따라 하고 싶은지 잘 점검하고 계획을 짜야겠습니다. 메타인지도 항상 풀가동. 내가 이 작품에 너무 기대어 가는 건 아닐까? 먹혀버린 건 아닐까? 스스로 질문하며 경계해야겠습니다.

꾸미기

816ko ─  발사체 2020.7.4  

20년 7월, 816ko를 투고했습니다.

멋진 서식 싫어하는 사람 없을 겁니다. 특히 좋은 글에 얹어져 있다면 가슴은 더 웅장해지죠. 무엇보다 독자들은 삽화가 있는 글을 쉽게 읽습니다. 기억에 더 잘 남기도 하고요. 그치만 꾸미기는 언제까지나 꾸미기일 뿐. 훌륭한 글이 받쳐줘야 멋진 서식도 빛날 수 있는 법입니다. 이 챕터가 가장 짧은 이유입니다.

(메타적) 플롯 비틀기

825ko :  속초통큰물회집  

20년 7월, 825ko는 물고기 경연 참가작으로 작성했습니다.

유체역학 박사 W.

끝! 끝! 끝! 막내야. 담배 피우러 가자.

W, 회전의자 뱅그르 돌리며 일어난다.

연구원 w.

잠시만요. 이것만 렌더 걸어두고. 선배는 벌써 끝냈어요?

w, 마우스 몇 번 딸깍이고는 안경 벗는다.

W.

아니? 이제 시작이지 뭘. 네 것도 이제 돌아가는구만 뭘.

W, w의 커브드 모니터 훔쳐본다.

 juliaX17(raytrace)-[9]

                                   - Rendering (0.0%)...

W.

몇 초짜리 영상이야? 좀 걸리겠네.

W, 일어나는 w 앞장세우고 주머니 뒤적거린다.

w.

8K에 7초짜리요. 프레임당 1분씩은 걸릴 것 같은데.

w, 사무실 문 밀어 연다.

W.

오늘 날 지나가기 전엔 끝나겠네. 태평양 사람들 것 아냐?

W, 뒤따라 나가며 닫히는 문 확인한다.

w.

네. 그건 맞는데요. 오늘 안에 끝나진 않을 것 같아요. 선밴 블랙커피?

w, 계단 방향으로 몸 틀다가 복도 자판기 앞으로 향한다.

W.

왜? 옥상에도 있는데.

W, 주머니에서 꺼낸 동전 몇 닢 건넨다.

w.

제가 초당 프레임을 말씀 안 드렸네. 여기 코코아는 백 원 싸거든요.

w, 건네받은 동전 먹인다.

W.

난 달달한 걸로. 뭐... 60프레임쯤 주문 들어왔어?

W, 배출구 문 열고 내려올 종이컵 기다린다. 그러고는 곧장 닫는다.

w.

400으로 해달래요. 주말 내내 부품들 태우는 거죠.

w, 자판기 버튼마저 누르고 컵 꺼낸다.

W.

염병. 눈에 고속 카메라라도 달았다니.

W, 건네받는다.

w.

거기 부대원 중 하나가 무슨 증후군 때문에 시간 지각 장애를 겪는대요. 처음엔 나름 재능이나 능력 아닐까 싶었는데... 딱히 그런 건 없고 이런 예방 접종 인자나 한 박자 늦게 받아야 하는 거죠.

w, 코코아 꺼낸다. 거슬러 나온 돈은 W에게 돌려준다.

W.

말로만 들어선 어떤 느낌일지 감도 안 잡히네. 그런데 거기 나름 저명하잖아. 난 난생처음 들어봤어. 기록도 찾아보고 했는데.

W, 계단 오른다.

w.

딱히 써 놓을 이유는 없어서 그랬을까요? 이쪽 사람들한테나 알려주는 그런 거. 무슨 일로 그리됐는지가 궁금하네요.

w, 계단 오른다.

W.

배 타는데 고생 많겠지 머.

W, 옥상 문 옆 단말기에 키카드 가져다 댄다. 문 열린다.

w.

아휴 쌀쌀해라. 휴게실 테레비 보면서 피우던 때가 좋았는데.

w, 떨며 불붙인다.

W.

흐, 그땐 피우지도 않았으면서? ... 허음, 잠시만.

W, 걷다가 무언갈 번뜩인다.

w.

네?

w, 멈춘다.

W.

티비 이야기하니까 말인데, 영상 프레임 사이에... 그걸 뭐라고 하지?

W, 말하다 말고 음료 한 모금 마신다.

w.

프레임? 

w, 발로 쓰레기통 툭툭 건드린다.

쓰레기통, 톡톡 미끄러진다.

W.

아니, 야. 이걸 코코아로 뽑아줬어? 너 내꺼랑 바뀐 거 아냐?

W, w 째려보며 질겁한다.

w.

아녜요. 똑같은 건데. 달달한 거 뽑아달라면서. 

w, W 눈 피하며 싱글거린다.

W.

200원 아끼려고 참...

W, 찌푸리면서 담배 불붙인다.

w.

그거나 다시 말해줘요. 프레임이 왜요?

w, 걷다가 발에 채이는 얼음 조각 발로 깐다.

W.

왜 넷플릭스 같은 데 보면 옛날 영환데도 부드럽게-

W, 바닥에 버려진 휴지 괜히 밟아 본다.

w.

프레임 보간?

w, 연기 내뿜으며 말한다.

W.

그거지!

W, 그러곤 종이컵에 후후 분다.

w.

안 돼요. 이번 거 불연속 인자라서.

w, 담뱃대 톡톡 턴다.

W.

아니, 너 말고 인마. 내껀 될 거 아냐.

W, 코코아 찰랑찰랑 흔든다.

w.

...

w, 말없이 한 모금 빤다.

W.

되면 대박인 거 아냐? 이걸 반밈학부 놈들도 몰랐다고?

W, 한 입 마신다.

w.

글쎄요. 그게 그렇게 쉽게 되나?

w, 시선 피하며 말한다.

W.

뭘, 막말로 그래 봐야 밑전인 판 아냐! 되면 시간이고 돈이고 얼마나 절약하는 건데 이게.

W, 코코아 마신다.

w.

하기야 말 그대로 절반은 줄이는 거네요. 그런데 이걸 아무도 생각 못 했다니? 그게...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어요?

w, 햇빛 받는 쪽에서 그늘로 들어온다.

W.

어쩌면 지금껏 너무 어렵게 생각해왔는지도 몰라.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 기대할 게 생기지.

W, 꽁초와 종이컵 한 손에 옮겨 들고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 꺼낸다.

w.

음... 

w, 못 미더운 표정이지만 애써 감추려 한다.

W.

어쩌면. 그 부서에선 너 같은 친구가 말이 되냐고 맥 끊어버렸을지도 몰라. 크크, 내가 선임이라 정말 정말 다행이야.

W, 꽁초 버리고 코코아 마신다.

w.

제가 언제 그랬어요. 사려서 나쁠 것 없단 거지. 선배는-

w, 덜 마신 코코아 버리고 담배 한 모금 빤다.

W.

미리 말하지만 난 네 말 반대한 적 없어. 밀어줬으면 밀어줬지.

W, 빈 종이컵 버리고 뒤돌아간다. 

w.

...어쩌시게요. 이제?

w, 담배 끄고 버린다.

W.

W, 옥상 문 연다.

도전. 올려보낼 글 써야지!

이야깃거리 넣기

841ko :  주관: 반밈 전문가 이한석  

20년 8월, 841ko는 사진돌리기 대타로 작성했습니다.

841ko는 참 별것 없는 변칙성을 가졌습니다. 이런 볼품 없는 변칙성은 별맛 없는 실험기록으로 이어지다가 급회전하며 이야기를 펼칩니다. 이야기는 제가 오래전부터 생각했었던 재단 내 이념 충돌을 그려내구요. 지금껏 써온 것과는 조금 다른 플롯을 원했습니다. 눈물 콸콸 842ko와는 다르게 감정에 몰입할 틈조차도 주지 않죠.

워낙 독특한 변칙성이라 꾸미는 일이 오히려 방해가 될 상황이라면 이 챕터는 관련 없습니다. 그런 게 아니라면 항상 시간 들여 고민해왔지요. 줄거리, 서사, 썰. 스토리 없는 글은 설정집일 뿐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사실 요즘 설정집은 이야깃거리도 빵빵하더지요zz 아무쪼록 좋은 설정을 짜는 것보단 좋은 이야기를 우선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SCP는 언제까지나 보고서 형식의 소설이지 보고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서사가 있으면 단순한 사실의 나열보다 암기하기도 좋고 글의 매력도 풍부해지고 몸보신에도 좋고 어쩌고저쩌고... 서사 좋은 건 잘 알겠는데 '어떻게 넣느냐'에서 자주 막히는 것 같습니다.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은 등장인물을 만드는 것이죠. 재단 세계관에서 글을 쓰는 이상 우리 뇟 속에 공통적으로 합의된 무명의 엑스트라들이 가득 들어차 있지 않나요? 얼굴 없는 D계급들과 먹칠 된 박사들, 눈가를 검은 박스로 가린 특무부대원 등등... 괜찮은 등장인물을 선정하고 붙여두면 저절로 내용이 풍성해질 겁니다. SCP가 묻혀버릴 정도로 독특한 등장인물은 별로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이유에서 싫어하는 박사들이 많습니다. 머리색이 어떻고 눈 색이 어떻고 그런 걸 따지기 전에 인원과 인원의 상호작용과 부딪히며 생기는 인간관계, 인원과 SCP 사이에서 일어나는 해프닝, 행동 등에 먼저 눈길을 두세요. 무미건조한 보고서 부록이라도 이런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면 독자를 설득할 수 있을 테니까요. 

어떤 글이든 이야기를 쑤셔 넣을 틈은 많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시행착오를 겪다 보면 설득력 있는 플롯을 만들 수 있게 될 겁니다.

세계관 즐기기 

815ko :  푸른틈새  

20년 8월, 815ko는 별칭경연 참가작으로 작성했습니다.

내 SCP의 기원을 맡길 GoI는 많습니다. 언제부턴지 GoI-ko가 활발하게 뜨고 있어요. 준요주의 단체도 함께 부상하고 있습니다. 변칙개체와 시민들, 그리고 재단 - 이 세 조합의 세계도 좋지만, 요즘은 다양한 단체가 얽히면서 보여주는 이야기가 정말 흥미롭습니다. 나만의 조직을 꾸릴 수도 있습니다. 독자를 설득할 수만 있다면, 하고 싶은 건 다 해봐야죠. 요샌 새로운 시도를 걱정하기보단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분위기라 더 그래요. 일회용이든 큰 그림이든, 아니면 언젠가 큰 그림이었던 척하며 회수하든요. 아직 큰 계획이 없더라도 미묘한 공백을 비워보세요. 언제나 여지를 남겨두는 게 좋았던 것 같습니다.

연결 짓기에 성공하면 내 SCP를 매력 있게 만들 수 있습니다. 다른 창작물에서 소재 얻기에서 말했다시피 특정 SCP에 너무 의존적이지만 않는다면 세계관이 더 촘촘해지는 듯한 느낌을 주거든요. 눈여겨보던, 마음에 들었던 SCPko 하나 끌올할 수도 있으니 활발해질 평가층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건강하기!

055-KO-J :  이게 보고서야, 꽁트야?  

20년 9월, 055ko-J를 투고했습니다.

너무너무 상투적이네요. 그래도 건강한 몸에 맑은 정신이 깃듭니다.

지루한 일상이 더 루즈해지고 하루하루가 우울한 지금, 우리는 가슴 한켠의 감성을 향한 불꽃을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친구들과 포옹하고, 애타게 사랑을 찾고, 목 터지라 노래하던 날에 느낄 수 있었던 그 불꽃요. 

모두 건강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