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아버지와 어머니는 거금을 들여 컴퓨터라는 것을 사오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학원을 보낼 형편이 되지 않는 우리 가족의 미래를 위한 투자였다.

(본인이 사용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롯이 우리의 공부를 위해서 였다.)


하지만 나는 인터넷이나 공부에는 관심도 없고,

컴퓨터 아저씨가 설치해준 하얀마음백구, 라이덴, 스핀마스터 따위를 하는 데에 관심이 많았다.

반면 누나는 인터넷에 관심이 많았다. 버디버디나 소리바다 같은 것을 가장 먼저 설치한 것도 누나였다.

당연히, 모든 일은 누나에 의해 일어나게 된다. 초등학교 1학년 때의 그 일 처럼.


여름방학 때 였다.


컴퓨터는 누나 방에 있었는데, 누나가 방에 와보라고 하였다.

누나가 보여준 컴퓨터 화면에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 옷을 벗고 있었는데

여자가 아파하는 혹은 슬퍼하는 듯한 소리를 내었고(당시 나는 신음이라는 것을 몰랐다.)
남자가 여자를 때리는 것 처럼 보였다.

뭔지도 모르고 한참을 보다 보니, 그것이 잠지에 고추를 넣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알았다.
(난 아직 성교육을 받지 않았었다.)


누나는 나에게 우리도 저것을 해보자 라고 제안을 하였고, 

나는 별로 재미가 없어 보여서 싫다고 하였다.

(그 때의 나는 아직 그 잠지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 하였었다.)

그러나 누나는 내게 '네가 컴퓨터 하고 싶을 때 마다 비켜줄게' 라고 딜을 하였고,

나는 매우 흡족하여 옷을 벗었다.


뭘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고 발기도 되지 않았던 그 때의 나는

누나가 시키는 대로 서로의 성기를 비벼 보기도 하고

내가 누우면 누나가 내 위에서 허리를 흔들어보기도 하였다.

키스를 해 보자고 해서 해 보았는데, 미지근한 침 맛이 느껴지고 별로 좋지는 않았다.


나는 오히려 잠지나 고추 따위 보다는,

이제 한참 부풀어 오르는 초등학교 5학년 여자아이의 가슴,

누나의 가슴이 더 좋았었다.

그때 쯔음에는 엄마가 더이상 가슴을 빨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에,
(난 어리광이 심하여 초등학교 2학년 때 까지도 엄마에게 가끔 찌찌를 달라 하였다.)

내심 아쉬웠던 부분을 채우는 느낌도 있었다.

(이 때의 기억 때문에 나는 아직도 함몰유두 + 부풀어 오른 유륜을 좋아한다.)


누나도 잠지와 고추가 서로 맞닿거나 하는 것 보다는 이게 더 기분이 좋았는지

그 뒤로는 서로가 가슴을 달라고 하거나 가슴을 빨아달라고 하였다.

가끔씩 누나가 부탁하면 서로의 고추와 잠지를 비비고는 하였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고 성교육을 받은 뒤, 우리가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물론 누나가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마라고 하였기에, 아무도 우리의 관계를 몰랐다.)

하지만 난 아직 정액도 나오지 않고 발기가 되어도 아주 조그마하였기 때문에,

내가 초등학교 6학년 겨울 방학이 될 때 까지 우리는 실제 성행위에 이르지는 못 하였다.


다만 발기가 되기 시작한 뒤 부터, 누나는 내 고추를 장난감처럼 꽤나 재밌게 가지고 놀았다.

만져서 발기를 시켜 보기도 하고, 내가 가슴을 빨 때에 고추를 만지기도 하였다.

대딸을 해주기도 하였지만, 서툰 솜씨 때문에 내가 아파하였기 때문에 그냥 잼잼 하는 수준에 그치고는 하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