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 어느 나라도 달성하기 힘든 '고도의 도덕적 수준'을 유독 일본에게만 실수와 흠결없는 완벽함을 요구하고, 이를 달성하지 못하면 반일을 선동해 일본을 악마국가로 매도하고 비난하는 경향이 오늘날 한국에는 너무 심하다.

예를 들어, 전시(태평양전쟁)에 일본인들은 징병되어 전쟁터에 끌려가 죽든말든, 아울러 일본인들은 징용되어 탄광에서 고생을 하든말든, 당시 식민지배 받던 한국인들은 무조건 후방에서 안전하고 편하게 지냈어야 하는데도,
당시 일본이 만행을 저질러 '강제징용 했다'며 오늘날 한국인들은 분노한다.
세상 어느 나라도 실현할 수 없는 비현실적 잣대를 일본에게만 들이대는 것이다.

평소 자칭 '일제만행 발굴'에 열심인 한국 언론 가운데, 24일에는 朝鮮日報가 한件 했다. <태평양서 英포로 800여명 수장·살륙한 日 '리스본마루' 만행 再
조명>이라는 기사가 그것인데, 당시 침몰하는 화물선에 타고있던 영국군 포로를 일본군이 살육했다는 내용의 기사다. 당시 일본군의 행동은 부적절했다. 하지만, 전쟁 중이었다는 당시 현실을 고려하면 이야기는 약간 달라진다.


기사에 따르면, 당시 일본 화물선에는 영국군 포로가 1834명 타고 있었고, 일본군은 이들 포로 규모의 절반도 안되는 800여명이 타고 있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서로 죽고죽이는 관계였다. 그러던 중, 미군 잠수함의 어뢰 공격으로 화물선은 서서히 침몰하게 되었다. 여기서, 1800명이 넘는 영국군 포로 입장에서 본다면, 근처에 아군(연합군)이 존재하는 상황이고 일본군은 숫적으로 열세인 상황이니 혼란의 와중에서 탈출은 물론 경우에 따라, 근처의 아군과 힘을 합해 일본군을 제압하는 일까지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



반면, 어뢰 공격을 받아 혼란에 빠진 상대적 소수의 일본군 입장에서는, 영국군 포로들이 숫적 우위를 바탕으로 근처의 연합군과 합세해 금방이라도
역공(반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불안감 내지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상황이 된다. 때문에, 포로들이 수용된 선실을 잠그는 등, 전시가 아닌 오늘날의 도덕적 기준으로만 보면, 용납하기 힘든 행동들을 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제한된 구명보트에 타고 있는 일본군이, 똑같이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아군(일본군)과 적군 포로(영국군) 중 과연 어느 쪽을 선택할까?
전쟁터라는 현실은, 도덕적 기준으로만 따지기 힘든 상황에 직면하게 만드는 법이다.


이렇게 순간순간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긴박한 상황을 고려하면, 만약에 당시 일본군이 아니라 반대로 미군이나 영국군이었다면 과연 그들은 얼마나 한국인의 도덕적 기준에 부합하게 제대로 행동했을지,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일이다. 여담이지만, 당시 민간화물선을 어뢰 공격한 것이 미군 잠수함('그루퍼號')이 아니라, 만약 일본군 잠수함이었다면 아마도 오늘날 한국 언론은 또 이런 제목으로 보도했을 것이다.

<민간화물선 공격한 일본군 만행 再조명 절실>.

'수장·살육 만행'이라는 식의 '살벌한' 조선일보 기사 제목과, 당시 1000명 이상의 영국군 포로가 생환했다는 사실 간에는 다소 괴리감이 느껴진다. 이런 기사 제목(일본 만행 강조)은, 1800명의 영국군 포로 중 생환자는 없고, 거의 몰살했어야 비로소 어울리는 표현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울러, 당시 일본군은 800명 전원이 살아난 것인가, 아니면 얼마나 사망한 것인가 등에 대한 정보를 기사는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혹시 일제만행 강조하는 데 방해가 되는 정보라서 그런 것인가? 한국 내 일본관련 기사에는 이런 식으로 일본 비난과 부정적 이미지를 강조하며 균형감이 상실된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