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오후, 간식을 먹던 하치코는 아쿠아의 말에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잎클로버를 살 수 있다고요?"

"응. 멸망 전의 인간님들은 꽃집에서 네잎클로버를 사다 키웠대. 화분으로."

행운의 상징이라 찾기 힘들다는 네잎클로버를 아예 만들다니. 하치코는 멸망 전 인간님들의 기술력이 놀라웠다.

"신기하네요. 하치코도 갖고 싶어요."

"그러고보니 우리 화단에도 네잎클로버 있으면 좋을텐데."

아쿠아가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네잎클로버는 행운의 상징이라잖아요." 하치코가 웃으며 말하자 아쿠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응. 정말이야. 우리 주인님도 네잎클로버 덕분에 겨우 살아나셨다고 했어."

"주인님이요? 아, 맞다."

하치코는 예전에 사령관이 네잎클로버를 줍느라 저격을 피한 사건을 떠올렸다.

비록 허벅지에 총탄을 맞았기는 했지만, 클로버를 줍지 않았더라면 저격 한 발에 그대로 세상을 떠났을 터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하치코는 무언가 생각에 잠겼다.

"왜 그래, 하치코?"

"그, 인간님들이 만든 네잎 클로버 화분은 찾기 어려운 건가요?"

"글쎄. 그렇게 비싸진 않아. 살려면 누구든 살 수 있다고 했으니까. 아. 그러고보니 이번 정박지 근처에도 꽃집이 있다고 본 것 같은데."

정원사답게 꽃과 꽃집에 대해서는 언니들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박식한 아쿠아였다.

하치코는 아쿠아의 말을 듣고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다음날은 하치코와 펜리르를 따라 스노우페더까지 모여 탐사를 나왔다.

탐사 지역은 오르카호 정박지에서 멀지 않은 시가지였다. 하치코나 펜리르 둘다 꿍꿍이가 있어서 자원한 것이기는 하지만, 페더는 잠수함에만 있다가 모처럼 상가에 나와서 즐거운 모습이었다.

인류가 멸망한 바람에 영업 중인 가게는 한 곳도 없었지만, 상가란 역시 실내와는 다른 느낌이 드는 법이다.

탐사가 끝날 무렵이었다. 상가 깊숙이 들어온 하치코가 문득 펜리르에게 말했다.

"펜리르 언니. 하치코 잠깐 북쪽 에어리어 갔다 오면 안 될까요."

"응? 무슨 일 있어?"

"그게…… 그쪽에 꽃집이 있다고 들었거든요."

펜리르는 하치코가 꽃을 좋아한단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예전에도 달리아 꽃을 가지러 가는 소동이 있던 것이다.

"응. 갔다 와. 우리도 마침 남쪽에……."

"저기, 언니들. 페로 언니와 리리스 언니가 탐사만 마치고 금방 오라고 하시지 않았나요."

페더가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그러자 펜리르도 아차 싶었다. 안 그래도 최근 적 철충이 탐사 지역에 자주 출몰한다는 건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치코가 다시 졸랐다.

"빨리 갔다 올게요. 필요한 것만 가져올 테니까. 네?"

펜리르는 잠시 생각하다가, 어차피 외딴 시가지인데 설마 철충이 있으랴 하고 순순히 승낙했다. 어차피 자신도 먹을 걸 몰래 가지러 가고팠다.

"그래. 그렇게 해."

"펜리르 언니?" 스노우페더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괜찮아. 하치코가 어디 가서 다칠 애도 아니고. 참, 페더 너도 고기랑 과자 먹고 싶지 않아? 남쪽에 가면 마트들이 잔뜩 있을 거야. 헤헤. 이번에 내가 나눠줄게."

눈치 빠른 하치코가 얼른 못을 박았다.

"그럼 한 삼십분 있다가 여기서 모이는 걸로 해요."

"그래. 조심히 갔다 와."

네잎 클로버 화분을 찾을 생각에 하치코는 싱글벙글하며 자리를 떠났고, 페더도 펜리르의 권유를 이기지 못해 따라 나섰다.

그 길로 북쪽 에어리어의 꽃집에 들어온 하치코는 네잎클로버 화분을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보존용 극저온 창고에 들어가도 네잎클로버 화분은 보이지 않았다. 하치코는 잘 몰랐지만, 행운의 상징이라고 해도 직접 구매하는 네잎클로버까지 인기 있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아쿠아가 잘못 알았을까요?"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한번 샅샅이 뒤졌다. 저온 창고가 워낙 추워서 몸이 벌벌 떨렸지만, 주인님에게 네잎클로버 화분을 드리겠다는 일념으로 참아냈다.

결국 그녀는 한참 뒤에야 창고 한 구석에서 네잎클로버 화분을 챙길 수 있었다.

하치코는 이를 딱딱 부딪히면서도 기쁘게 웃으며 창고를 나섰다.

그리고 그 길로 꽃집을 나가려는 찰나였다. 하치코의 강아지 귀와 꼬리가 쫑긋 섰다.

익숙하고 거슬리는 이 기계음…… 철충! 털이 쭈뼛할 정도로 화들짝 놀라서 얼른 창문 바깥을 내다보았다.

한순간 붉은 불빛이 하치코의 눈에 비쳤다. 하치코는 생각할 틈도 없이 머리를 숙였다.

바로 다음에 꽃집 창문이 와장창 깨져나갔다. 하치코의 머리가 있던 위치를 총알이 가르고 지나간 것이다.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전에 계속해서 총알이 날아 오며 꽃집 창문을 모조리 깨뜨려버렸다. 이어서 벽에도 총알이 박히거나 튀는 흉흉한 소음이 들려 왔다.

하치코는 지참한 방패를 등에 걸친 다음 머리를 싸매고 기어갔다. 재빨리 구조 요청을 보내는 동시에 유탄 발사기의 탄약도 확인했다. 구조대가 올 때까지 유탄으로 꽃집에서 농성할 작정이었다.

하치코의 네잎클로버는, 어쩌면 행운과 별로 관계 없을지도 모르게 되었다.

한편, 마트 구역을 돌아다니던 펜리르와 페더도 난데없이 몰려든 적들을 맞아 싸우는 중이었다.

일단 구조요청은 보냈지만, 당장 포위하는 적들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펜리르는 페더에게 냉기 공격으로 지원하도록 시킨 다음, 얼어서 느려진 철충을 하나씩 박살내는 식으로 싸워 나갔다. 그러나 적들의 숫자가 워낙 많아서 금방 포위망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이때, 함교에서 구조 요청을 받은 사령관도 즉시 리리스와 페로를 호출했다.

두 컴패니언 자매는 동생들이 위기에 빠졌다는 소리를 듣고 지체 없이 나섰다.

"애옹아. 네가 하치코를 구하렴. 나는 펜리르와 페더를 구하러 갈 테니. 페더는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펜리르가 있어도 위험할 거야."

"예."

사령관의 승낙을 받으려는 찰나 뒤에서 누군가 뛰어 들어오며 말했다.

"잠깐만요. 한 명씩 양쪽을 맡는 것보단 두 팀이 각각 양쪽을 맡는 게 나을 겁니다."

끼어든 사람은 다름아닌 홍련이었다.

"당신이 왜……."

리리스는 탐탁치 않은 표정이었다. 홍련과 몽구스 팀은 일전에 경호 중, 사령관의 목숨을 위험하게 만든 전적이 있었던 것이다.

"저희 몽구스 팀은 대테러부대일 뿐만 아니라, 요인 경호와 구출도 그 목적입니다. 비록 커다란 실점이 있기는 했지만…… 이번에 한번 더 기회를 주십시오."

사령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

"좋아. 홍련 쪽이 펜리르와 페더를 구하고, 리리스와 페로가 하치코를 구하렴. 하치코가 위기에 빠졌다면 한 명만으로는 부족할지 모르잖아."

리리스는 사령관하고 홍련을 번갈아 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함교를 나섰다.

홍련도 나가기 전에 사령관을 돌아보았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꼭 그애들을 구해 줘."

"물론이죠. 그나저나 경호대장 아가씨가 의외로 반대하지 않는군요."

"동생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거든. 이번에 널 또 믿는다는 뜻도 될 테고."

홍련은 무거운 마음으로 즉시 몽구스 팀원들을 데리고 이동했다.

미호부터 불가사리에 핀토와 드라코까지 모두 전번의 경호 실패를 설욕하기 위해 채비를 갖춘 상태였다.

그들은 예의 피크닉 사건 후, 홍련이 연이어 실시하는 강도 높은 가상현실 훈련에 지쳤던지라, 실전을 오히려 바라고도 있었다.

물론 홍련 자신도 지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만반의 연구와 연습을 거듭해 왔다.



* * *



펜리르와 페더의 싸움은 불리해져 갔다. 적들이 예상 외로 끝도 없이 몰려들어 겹겹이 포위당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펜리르가 비록 리리스에 버금갈 정도로 강력하다 해도, 오로지 접근전으로 싸우는지라 포위를 당한 상황에선 제대로 된 능력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일단은 페더가 냉기를 뿌려 적들을 느리게 만든 덕분에 한동안은 피해 없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 갈 만한 일은 아니었다.

페더가 공중 지원을 하는 동안 잘못해서 눈먼 총탄에 맞았던 것이다.

"아악!"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추락할 뻔한 페더는 간신히 균형을 잡고 천천히 내려왔다. 하지만 페더의 새하얀 의복은 이미 새빨간 피로 물들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녀의 날개 장치도 배터리가 거의 다 되어 갔다.

펜리르는 동서남북 뛰어다니며 철충을 깨부수느라 정신이 없다가, 그제야 페더를 돌아보며 놀라 달려왔다.

"괜찮아?!"

"예…… 다행히 큰 구경에 맞지는 않았어요."

페더는 애써 웃어 보이려고 했지만, 숨이 거친데다가 식은 땀을 흘리는 게 심상찮아 보였다.

"별로 안 괜찮아 보이는데."

펜리르는 잠시 고민하다가 페더를 등에 업었다.

"꼭 붙잡아. 내가 반드시 지켜줄 테니까."

페더는 거칠게 숨을 쉬면서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근처의 철충 두엇이 펜리르를 향해 기관포를 조준했다. 펜리르는 재빨리 뛰쳐나가 단칼에 두 놈을 쪼개 버렸다. 그러나 연이어 적들이 몰려오는 바람에 쉬지도 못하고 다시 움직여야 했다.

펜리르가 아무리 강해도 사람 하나를 업고 싸우자니 몸이 자유롭지 못했다. 적을 무찌르랴, 업힌 동생을 보호하랴 몸을 날래도록 움직이기 힘들었다.

결국 펜리르의 몸에도 총알에 스친 상처나 철충이 베어 버린 상처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으으."

날뛰던 펜리르도 점점 불안해져 갈 무렵이었다.

펜리르를 향해 커다란 무쇠 주먹을 내지르려던 철충이, 별안간 얼굴이 박살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놀라서 돌아보니, 먼데서 미호가 저격총을 겨누고 있는 게 아닌가.

미호는 매서운 저격 솜씨로 근처의 철충을 하나 하나 쏘아서 정지시켰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핀토가 자유자재로 날면서 철충들의 시선을 끄는 덕분에 펜리르와 페더는 적으로부터 얼마간 해방되었다.

"괜찮습니까?"

홍련이 드라코와 불가사리를 거느리고 펜리르 앞에 왔다. 펜리르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반가워했다. 어찌나 기쁜지 늑대 꼬리까지 세우고 혀를 내밀 정도였다.

"난 괜찮은데, 페더가 총에 맞았어."

"구급 키트를 가져 왔습니다."

홍련은 드라코의 바디 벙커 뒤에서 페더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한편으로 미호와 핀토, 불가사리를 지휘하며 펜리르를 돕도록 했다.

"오랜만에 진짜로 몸 좀 풀어 볼까."

불가사리가 용감하게 달려가서, 파일 벙커를 철충들의 몸체에 꽂고 여럿을 날려 버렸다. 그 바람에 신이 난 펜리르도 어느새 기운을 차리고는 같이 싸웠다.

"친구, 파워가 대단한데? 불가사리라고 했지?"

"그래. 너도 쌍칼 쓰는 거 보니 장난 아니구나. 으랴!"

같은 싸움 방식에서 동질감이 생긴, 펜리르와 불가사리가 의기투합하여 포위망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핀토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비행하며 철충들의 포화를 어지럽히고, 간간히 날아오는 총알들은 불가사리의 외장 아머를 뚫지 못했다.

그 사이 페더의 응급치료를 마친 홍련은, 포위망이 얇아진 틈으로 아군을 빠져 나오게 했다. 도중에 빈틈이 생기지 않도록 세세하면서도 정확히 지시한 덕분에 모두가 안전하게 후퇴할 수 있었다.

이날, 사령관은 몽구스 팀이 페더와 펜리르를 무사히 데리고 오자 크게 치하했다. 페더는 수복실에 가서 마저 치료하도록 시켰다.

꽃집에 숨었던 하치코 역시 상처 없이 구조받아 기쁨은 더욱 컸다.

물론 기쁜 것은 기쁜 것이고, 리리스는 동생들이 탐사 도중 개인행동을 한 죄를 묻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치코. 네잎 클로버도 좋지만 개인 행동은 하지 말아야죠. 큰일 날 뻔했잖아요?"

"예……."

"펜리르 너도 동생이 꼬시면 말렸어야지. 페더가 큰 상처를 입었다고. 잘못했어, 안 했어?"

"잘못했어."

"벌로 두 사람은 당분간 주인님 경호 금지."

하치코와 펜리르 모두 울상이 되었다. 주인님과 붙어 있을 기회가 줄어드는 것이다.

"그건 조금……."

"안 돼. 탐사 다 마치면 빨리 돌아오라고 안 했어? 그리고 너희가 붙어 다녔으면 포위를 당해도 금방 구조가 가능했을 거야. 따로 떨어진 바람에 주인님의 다른 경호팀까지 고생했잖아."

할 말이 없어진 둘은 머리를 숙이고 얌전히 혼났다.

둘의 근처에 있던 홍련은, 주인님의 경호팀이라는 리리스의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흐뭇해졌다. 일전의 사건으로 호되게 욕을 먹고 나서 고생한 걸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꾸지람이 일단락되자 사령관이 나서서 타일렀다.

"자, 자. 리리스도 이제 그만 해. 처벌은 처벌대로 할 테니…… 홍련이랑 몽구스 팀도 오늘 정말 수고했어."

미호와 친구들도 뿌듯하게 웃었다.

그러는 동안 홍련은 리리스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전의 일 덕분에 저희는 좀 더 열심히 훈련할 수 있게 됐어요. 오늘 싸움에서는 우리 팀이 예전보다도 전투력이 더 늘었더군요."

"……뭐 어쨌든, 우리 애들을 구해 줘서 고마워요."

리리스도 못 이기는 척 손을 마주 잡고 악수했다.

홍련은 상대한테 드디어 인정받은 것 같아서 가슴이 벅차 올랐다.

"앞으로 조심하는게 좋을 거예요. 저희 팀도 언젠가 컴패니언 못지 않게 강해질 테니. 사령관님의 경호도 전담할 수 있도록요." 홍련이 씩 웃으며 말했다.

"우린 뭐 가만 있을 줄 알고." 리리스도 지지 않고 받아쳤다.

"그래. 그래. 둘 다 열심히 하면 나한테도 도움이 되겠지."

사령관이 나서서 다독였다. 이윽고 악수를 마친 홍련이 부하들을 돌아보았다.

"자. 오늘 전투는 모두 잘 했습니다. 다들 잘 해줬으니까, 앞으로도 긴장 풀지 말고. 전투력 향상을 위해 계속 훈련합니다. 알겠죠?"

미호와 친구들은 대번에 실망스러워했다.

"엑. 오늘 전투했는데 또 훈련이야."

"오늘은 좀 쉬면 안돼?"

홍련이 쓴웃음을 지었다.

"……누가 오늘 한댔나요. 오늘은 단체 휴식이에요. 내일부터 다시 훈련한다는 거죠."

드라코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냥 이번 주 내내 쉬면 안될까. 그거, 가상현실인가? 하면 머리도 아프고 피곤한데."

"안 됩니다. 드라코는 어차피 쉬면 게임만 하지 않습니까? 게임하는 것보단 훈련이 우선이에요. 훈련의 피로가 게임해서 피곤한 것보단 보람있잖아요."

"전혀!" 몽구스 팀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사령관도 웃으면서, 몽구스 팀한테 간단한 파티를 열어주라고 요리사들에게 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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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나는 리리스'의 후속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