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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 할까.

 

아, 그래. 거기서부터 하면 좋겠다.

 

오르카 호는 이제 정상 궤도로 올라왔다.

 

‘정상’이라는 표현이 어색하게 들릴 수 있겠다만, 생각해봐라.

 

오르카 호 전체가 그 싸움 하나를 위해 몇 개월에 걸쳐 준비했다. AGS를 있는 대로 뽑아내느라 그 많던 부품이 바닥을 보였고, 전례 없던 적과 싸우기 위해 전쟁에 잔뼈가 굵은 대원들이 온갖 시술과 훈련을 견뎌야 했다.

 

심지어 그걸 언제까지, 얼마나 많이 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이었으니. 도중에 쓰러지는 애가 나오지 않아 다행인 수준이었지. 함선 전체가 망가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북아메리카나 유럽 쪽에서 조달한다면 자원 문제는 해결할 수 있었겠지만, 그쪽이라고 상황이 여유로운 건 아니었으니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아니었지.


여하튼 역시 시간이 약이라고, 몇 개월이 지나니 죽은 사람 시체마냥 딱딱하던 함선 시스템도 예전처럼 괜찮아지는 모양새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지내냐고?

 

 

 

“주인님. 오늘 재활 훈련을 시작하겠습니다.”

 

 

 

음... 그리... 좋은 상태는 아니다.

 

하긴, 별의 아이의 힘을 인간 몸으로 사용했는데 대가 없이 넘어가려 했다면 그게 놀부 심보일 거다.

 

언제부터였더라, 수필 작업이 시작되고 일주일쯤 뒤였던가?

 

힘이 빠져나간 얼마간은 평상시와 다를 바 없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머리가 띵해지는 것이다.

 

조막만한 고리가 머리를 움켜 쥐는 듯한 통증에 이따금씩 간헐적으로 두근거리는 맥박. 닥터의 진단에 따르면 뇌졸중이 안 온 것이 다행일 지경이란다.

 

 

 

“이번에는 가볍게 산책을 하고 오시죠. 코스는 정해드렸으니 따로 준비할 건 없으실 거에요.”

 

“... 내 몸 이제 괜찮아진 것 같은데.”

 

“안될 말이지요. 그러다 저번처럼 쓰러지시면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사령관실의 소파 위, 옆자리에서 내 손에 자신의 손을 포갠 채 맥을 짚고 있던 리리스가 읊조리듯 말을 흘렸다.

 

 

 

“지난번에는 제조실에서 갑자기 툭 하고 기절하셔서 저희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세요?”

 

“... 알지.”

 

 

 

페로의 동공이 그렇게 얇아질 수 있는지 난 그때 처음 알았다. 철충도 사라지고 별의 아이도 떠난 마당에 그렇게 놀라는 일이 생길 줄은 몰랐는데.

 

그나마 다행인 점은, 재활만 꾸준히 하면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다는 거다. 웨이트 트레이닝 수준일 필요도 없는 가벼운 산보.

 

내 옆에 있는 리리스가 산책 가고 싶은 하치코마냥 안달난 것도 이 때문이다.

 

“알면 오늘도 열심히 걸어보시죠. 제가 곁에서 경호해드릴게요.”

 

리리스가 겹쳐 놓았던 손아귀에 힘을 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으득-’ 하는 소리와 함께 달려나가는 어깨.

 

나는 무력하게 그녀의 손길을 따라 밖으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어느새 습관이 된 건지, 내 눈은 무의식적으로 바깥의 날씨를 확인했다.

 

구름이 조금 끼어있고, 바람에 흩날리는 풀잎.

 

잠수정의 창문 밖으로 보이는 태양은 하늘에 어중간하게 걸려 있었다.

 

 

 

“4시쯤 됐나...”

 

 

 

사람이 늘어지기 가장 좋은 오후 시간.

 

몸에 힘을 쫙 빼니 전신이 기다란 고무가 된 것처럼 쭈욱 늘어났다.

 

달칵- 달칵-

 

맥없이 끌려나가는 내 몸의 발이 복도 타일에 툭툭 걸린다.

 

 

 

“나 해야 할 업무 없어? 지금 가면 오늘 밤에 잠 못 잘 것 같은데.”

 

“레모네이드 양들이 다 해주고 있으니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아무리 그래도 사령관인 내가 해야 할 일이...”

 

“이젠 그런 일 없다고 누누이 말씀 드렸잖아요. 괜히 빠져나갈 생각하지 마시고 좀 걸으세요.”

 

 

 

달칵-

 

복도의 타일에 발이 걸릴 때마다 리리스는 팔에 힘을 주어 내 몸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쓸데없이 밝기만 한 조명에 그보다 밝은 늦은 오후의 햇살.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서 벗어날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

 

탈출구를 땡그란 눈으로 살펴보던 나에게 리리스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물었다.

 

 

 

“저희가 뭐 어려운 거 바라는 거 아니잖아요? 하루에 1시간 정도만 걸어주세요.”

 

“그런 운동 같은 거 안 해도 괜찮은 몸이잖아...”

 

 

 

사람이 참 간사한 동물이라고, 평화가 오니 예전 라붕이 시절의 내가 스멀스멀 고개를 들이밀었다.

 

운동하기 싫어하고, 몸에 나쁜 음식만 좋아하던, 어른이 덜 된 시절의 나.

 

나도 그러면 안 된다는 건 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을 생각할 때마다 서글픈 보상 심리가 지독하게 따라오는 것을.

 

 

 

“그럼 뭐, 하루종일 방 안에 계시게요?”

 

“그러면 안 될까?”

 

“당연히 안 되죠!”

 

“리리스랑 같이 있는다 해도?”

 

“.......”

 

 

 

순간 펑 하고 터져버린 리리스의 양 볼.

 

빨개진 뺨을 숨기기 위해 리리스는 잠시 고개를 돌렸다. 잠시 입술을 달싹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녀가 말을 이었다.

 

 

 

“안 돼요! 그러다가 제 주인님이 굴러다니는 꼴을 보게요? 주인님이 배불뚝이 중년 남자가 되는 꼴을 내버려둘 순 없어요.”

 

“보련은 그런 거 좋아하던데.”

 

“보련 양의 취향이 오르카 호의 보편적인 기준은 아니죠.”

 

“...나도 이제 좀 어리광 좀 부려보고 싶은데.”

 

“어리광은 마리 대장에게 많이 부리시잖아요. 그리고 이젠 그러면 안 되죠.”

 

 

 

어린이집 선생님이 유치원생을 다그치는 듯 단호한 어조.

 

예전에 비하면 독기가 많이 빠진 눈이라지만 이상하게 저 목소리만 들으면 어깨가 움츠려든다.

 

내 걱정을 위한다는 이유도 있지만, 그녀에게는 그보다 더 큰 명분이 있었으니까.

 

리리스는 말없이 자신의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주인님도 아들에게 멋진 아빠가 되셔야 하잖아요? 당분간 어리광은 금지에요.”

 

 

 

그리 말하는 리리스의 얼굴은 조금 상기된 듯한 붉은색이었다.

 

속으로 작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젠 명령권도 안 통하는 애들을 상대로 남편이라니.

 

나보다 몇 배는 똑똑한 아내들이 바가지를 긁으면 얼마나 고욕일까, 미약한 상상력으로나마 미래의 내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양손 가득 아들내미, 딸내미들을 데리고 유치원에 데려다 준 뒤, 아내의 잔소리를 들으면서 운동하고 살아야 하는 삶이라...

 

...그리 쉽게 살지는 못할 것 같네.

 

하지만 나도 당하고 살지만은 않을 것이다. 같이 산 짬이 있는데.

 

 

 

“그럼 리리스도 ‘주인님’이란 호칭은 그만둬야지.”

 

 

 

느닷없이 날아든 호칭 지적에 리리스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 그건 저도, 주인님도 익숙하니까 어쩔 수 없잖아요?”

 

“남편에게 주인님이라 부르는 아내라니, 자식 교육이 그리 좋을 것 같지 않은데 고쳐야 하지 않겠어?”

 

“아, 알겠어요. 제가 어떻게든 고쳐보도록 할 테니까 그 얘기는 이제 그만하죠!”

 

 

 

쿡쿡, 작게 헛기침을 내뱉는 리리스.


손으로 입을 가리고 막은 탓인지, 이어지던 기침 소리는 점차 잦아들었다.


장난스럽게 시작한 화두답게 처음에는 약한 부끄러움이 섞여 들어 있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그녀가 내뱉은 헛기침은 차라리 헛웃음에 가까운 것으로 변모했다. 씩씩하게 걸어가던 발걸음도 돌덩이가 얹혀진 것처럼 둔해졌다.

 

이 화제 자체가 가지고 있는 어떤 초월적인 무게감. 


그 마음이 어떤 느낌인지 나도 알고 있다.

 

 

 

“일단은... 저도 진짜 엄마가 된 건 아니니까요.”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마냥 기쁜 것은 아니란 거겠지.

 

며칠 전, 리리스의 패널에서 그녀가 보고 있던 칼럼 몇 개를 흘겨 봤던 적이 있었다.

 

‘임신 초기 유산 가능성’, ‘유산 사례 분석’, ‘바이오로이드 임신 사례’ 등등.

 

멸망 전 기사나 논문이 거의 대부분이었고, 그마저도 전례가 많지 않아서 애매모호한 데이터가 많았다.

 

애초에 바이오로이드와 인간 사이의 자식이라는 것 자체를 근친처럼 여기던 사회였으니 그녀가 원하는 내용은 거의 없었다.

 

-바이오로이드의 임신은 상호 관계의 파탄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요소다.

-도덕, 윤리적으로 허용될 수 없는 극단적인 섹스.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행위, 바이오로이드와의 관계와 수간 중 무엇이 더 극악한가?

 

그나마 쓸만한 데이터가 적혀 있는 칼럼의 제목이 이 모양이었으니까 뭐를 더 바랄 수 있겠나?

 

그럼에도 그녀는 이 기사들을 읽고 또 읽었다.

 

얼굴빛이 변하면서까지 눈으로 탐닉하고, 기억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행여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로 기껏 얻은 자식을 잃을까 두려워서.

 

 

 

“오, 오늘은 제가 직접 짠 산책로에요. 주변 풍경이 예쁜 곳으로만 골랐으니 주인님께서도 마음에 들어 하실 거에요.”

 

 

 

리리스는 나를 보지 않고 말했다.

 

가냘프게 떨리는 목소리.

 

이해는 한다.

 

경호를 위해 만들어진 삶 속에서 자신의 반절을 담은 생명을 만든다는 게 어떤 기분일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하물며 사람이 아니라 바이오로이드에게라면 더더욱.

 

다른 지휘관들도 마찬가지였다.

 

얼마나 험난한 전장에서 살아왔든, 얼마나 위대한 업적을 세웠든, 얼마나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든, 그녀들이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 나에게 말해준 것은 오직 한마디뿐이었다.

 

‘참으로 무겁다.’고.

 

터벅터벅, 복도 위를 말없이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이유 모를 애틋함이 느껴졌다.

 

어쩌면, 동질감일지도 모르겠다.

 

 

 

“...리리스.”

 

“네.”

 

“수고 많았어.”

 

 

 

1회차와 2회차, 수십 년을 함께 해온 배우자로서 느끼는 동변상련. 

 

속이 꽉 틀어막히는 감각에 그 말을 하지 않고서는 배길 수가 없었다.

 

리리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무거워진 몸을 두 발로 지탱해 걸어 나갔다.

 

 

 

“...수고 많으셨어요.”

 

 

 

제 몸이 무거워진 만큼 그 말 한마디가 무거워지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는 나를 데리고 오르카 호 밖으로 걸어 나갔다.

 

복도 안을 채우는 발소리가 유달리 크게 느껴졌다.

 

*

 

소설 표지 같은 거 커미션 넣는 방법 아시는 분?


script by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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