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을 나서자 현관문 앞에 소포가 있었다. 어디 보자 받는 사람 김틋붕.

보낸 사람이 없네? 딱 봐도 수상해 보이는 소포는 주소도 발송인도 없었다.

문득 우편물로 마약이 배달됐다는 뉴스를 떠올렸다. 불안한 마음에 그냥 버려야 할지 고민 하던 찰나, 뒤집은 소포에 적힌 글이 눈에 들어왔다. 내용이 황당해 눈을 비비고 다시 읽었다.



TS하고 싶으면 열어볼 것.



어떤 마약사범이 이런 문구를 적어 놓겠어? 내가 소포를 탁자에 두고 손을 씻고 있자 거울 속 남자가 히죽였다.

뭐야? 왜 웃고 있는 거야? 웃지 마. 모든 남자는 TS하고 싶지 않은 게 당연해. 그러니까 나는 여자가 되고 싶지 않아. 거울 속 남자를 지나치며 속으로 말했다. 거짓말.

젖은 손을 말리고 내용물이 다칠세라 테이프를 손톱으로 살살 긁어서 뜯었다. 안을 봤더니 쪽지와 너클이 있었다. 좋아, 마약은 아니네.

너클을 집어 손에 끼웠더니 딱 맞아서 폼 좀 잡으려고 주먹을 휘둘렀다.



쨍그랑.



그렇게 나는 여자가 되었다.

너무 생략했다고? 빨리 설명할 테니 잘 들어라.

주먹에 맞은 꽃병이 깨졌다.

유리 조각을 집다 피가 났다.

피가 너클에 닿았다.

그렇게 나는 여자가 되었다.



뒤늦게 쪽지를 보자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너클로 인한 직간접적 출혈은 남자를 여자로 바꾼다’라고.

그게 가능해? 같은 의문은 필요 없었다. 내가 여자가 됐는데? 증명할 필요가 있어?

TS펀치! TS펀치!

하지만 정말 죽빵 한 방에 TS가 되는지 검증할 필요가 있었다.

그도 그럴게 한 번이면 우연, 두 번이면 필연, 세 번이면 인연이라 하지 않던가.

주먹질도 세 번 해봐야지. 안 그래?

일단 제일 꼴 보기 싫은 옆방 알파메일에게 실험해 봐야겠다.

시발놈이 맨날 여자를 끼고 다니면서 밤이고 낮이고 소음을 유발하는데 개빡쳐서 벽쾅하면 들으라는 듯이 여자랑 낄낄거리면서 더 시끄럽게 굴었다.

퐁퐁 양산기, 아다 폭격기, 어, 또 뭐가 있더라? 아무튼 시발놈. 꼴 안 받으면 사람이 아니지. 알파메일 죽어!

후, 여자가 되고 흥분을 너무 잘하게 된 것 같다. 분풀이가 필요하다. 분풀이가. 내 벽쾅은 이제 얼굴쾅이 될 것이다. 기다려라 알파메일.


범행을 위해 인터넷으로 대충 산 옷을 껴입었다. 머리보다 큰 가슴이 꽉 껴서 갑갑하지만 뭐 어떤가. 이제 TS펀치로 알파메일을 계집애로 만들 수 있는데.

문을 열고 바로 옆집 초인종을 누르자 안에서 부산 맞은 소리가 들렸다.



“누구야 오빠?”

“배달 왔나 본데? 누구세요?”



준비한 말을 꺼냈다.



“시우 오빠 나야, 할 말 있어 문 좀 열어봐.”



정적이 흘렀다.


투닥거리기 시작한 연놈들을 기다렸다. 내가 알파메일의 이름을 어떻게 아냐면, 저놈은 신상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소음제조기라서 이 새끼랑 떡 치는 여자들은 맨날 아아 시우 오빠, 오빠~ 시우야 나 죽어~ 으 시발 생각도 하기 싫다.

아무튼 시우다.

빨리 문을 열어 줘야지 시우야. 널 여자로 만들어서 NTR 당해 피눈물 흘리는 총각들에게 던져 주마.



“오빠, 저 여자 누구야? 관계 정리했다며.”

“모르는 여자야. 처음 본다고.”



어? 이걸 견뎌? 바로 하영이에게 지원사격을 했다. 참고로 하영이라는 이름은 어제 알았다. 인싸새끼들이란.



“시우 오빠, 어제 집에서 예림이가 나오는 거 봤거든? 빨리 문 열어.”



물론 예림이도 주워 들은 이름이다. 예림아 니 보지 너무 예뻐. 오빠 나 부끄러워. 개인정보를 보호하는데 철저하십시오. 알파휴먼. 인생이 폰헙이야 아주.

잠시 다투는 소리와 언쟁이 들리고 따귀 때리듯 짝- 하는 소리가 났다. 뭔가가 부시럭거리더니 도어락이 열렸다.

여자가 나와서 두리번거리다 나를 발견했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표독스럽게 나를 노려보길래 나도 같이 눈을 부라렸다.

비처녀 주제.

다행스럽게도 주먹을 쓸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여자에겐 TS펀치가 아닌 그냥 죽빵이다보니 때린 년이 범죄자가 될 뿐, 좋을게 하나도 없었다. 휴우-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때리기 좋은 건 TS펀치를 맞자마자 여자를 남기고 실종될 남자와 신원불명의 여자 뿐이다.


떠나가는 여자에게 고개를 돌리자 시우가 바지만 입은 채로 뒤따라 나왔다. 시우는 나를 발견하더니 짜증을 냈다.



“아이 씨, 너 뭐야? 뭔데 그러는 거야?”

“남자들의 분노.”

“무슨.....”



상대가 방심한 순간이 기습하기 최고의 순간이다.


너클을 낀 손이 쭉 뻗었다.


짜증 나게 선명한 복근에 한 방.


그 위의 명치에 한 방.


타격을 받은 놈이 몸을 숙인다.



“TS펀치.”



내 주먹 이놈의 얼굴로 빨려 들어갔다. 뭐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피가 튀었다.

마침내 녀석은 TS펀치가 필연이라는 것을 몸으로 증명했다.

그리고 나는 놈을 TS 시킨 것을 후회했다.








“흑흑, 어떡해 아무도 나를 못 알아볼 거 아니야. 끅 흡.”



여자가 된 알파메일은 훌쩍거리면서 나에게 한탄하기 시작했다.

내가 재산이 몇인데~ 만나는 여자가~ 이제 아무것도 없다~ 책임져라~ 시발 괜히 여자로 만든 것 같다. 이 새끼 성격이 많이 바뀐 거 같아?



“남자는 우는 거 아니야. 뚝.”

“지금은 여잔데.....”


왜 이리 칭얼거리는지 모르겠다. 속은 남자면서 계집애 같이 울고 지랄이야.



“야, 그만 쳐울어 나도 여자 됐거든?”

“그건 너가…….”

“하씨 꼴 받게 하네, 이걸 콱 그냥!”



짜증나서 윽박지르자 앵앵거리면서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우는 남자를 달래는 방법은 예로부터 하나 뿐이었다.

정말 비장의 수단이라 아껴두려 했지만 어쩔 수 없다.

써야겠다.










"가슴, 만질래?"

“훌쩍, 웅.”




시우가 내 가슴을 부드럽게 움켜쥐었다. 손이 따뜻해 만져지고 있다는 느낌이 실감 났다. 점차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읏, 얘 엄청 상냥하게 주무르네. 귀여워.



“넌 이제부터 시아야.”

“뭐? 이름 멋대로 바꾸지마.”

“시아야 알았지?”



정색하며 철권을 흔들자 토끼눈을 뜬 시아가 고개를 황급히 끄덕였다. 좋아, 말 잘듣는 착한 아이는 싫지 않아.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자 그제야 시아가 품에 파고들며 조물 조물 가슴을 문질렀다. 사부작거리는 옷소리에 집중했더니 귀에서 쿵쿵- 심장소리가 들릴 정도로 두근거렸다.

배시시- 이를 보이며 웃는 시아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시선이 얽히자 시아의 눈꺼풀이 기대하듯 입을 향해 천천히 내려앉았고 나는 달뜬 숨이 흘러나오는 곳으로 따라들어갔다.


츄, 츄우.


몇 번의 쪼는 듯한 버드키스 후에 살짝 눈물이 맺힌 눈으로 시아가 바라보았다. 가슴에서 온기가 사라졌다. 그것이 신호였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머리를 잡고 얼굴을 향해 당겼다. 서로의 흐트러지는 모습을 하나라도 더 담으려는듯 눈을 뜨고 난폭하게 입을 맞췄다.



츕, 하읍, 흡, 츄릅, 헤읍.



벌려진 입을 따라 혀가 들어온다. 경험이 별로 없는 내 혀는 부드럽게 타고 휘감는 시아의 혀에 의해 피동적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얘 키스 개잘해. 좆같은 년. 섹스도 존나 잘하겠지? 기대감에 피가 빠르게 돌기 시작해 숨이 찼다.


흡, 으븝, 멈추, 흐읍, 츄우


하얗게 머릿속이 일렁여 시아의 어깨를 탁탁치자 빙긋하고 눈이 휘었다. 뭐야? 왜 웃는거야? 시아는 더욱 달라붙어 내 숨을 빨아내듯 입을 맞추었다.



멈춰, 멈춰, 멈추라고!

멈! 츄웁, 잠까! 흡, 흐읍, 헤붑!



빨갛고 말랑한 것이 온몸을 유린하는 느낌이 들었다. 위험해, 빨리 떨어져야해. 시아를 팔로 밀쳤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무슨 여자애가 힘이. 당황할 틈도 주지 않겠다는듯 혀가 속을 헤집었다. 숨 막혀. 눈 앞이 새하얗게 다가왔다. 이상해, 뭔가 이상해.



압, 흡, 으흡, 츄르릅, 허업.



시아가 눈 밑으로 사라지며 하얀 전등이 보였다. 전등이 점점 다가오면서 환하게 번쩍였다. 깜빡, 놔줘, 위험해, 깜빡깜빡, 이상해, 무서워 도와줘. 도와줘어!



츕, 츄르르, 끅! 끄르, 끄르륵!






무언가 나를 백색소음에서 건져올리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어디에 있어? 지글지글한 하얗고 검은 난수에서 천천히 여자의 형상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누구야?

□□□, □□□.

여자는 나를 편하게 뉘여줬다. 둥실둥실 떠 있는 기분에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삐이이-



이명이 들리더니 갑자기 소리가 또렷해졌다. 시아가 나를 걱정스런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괜찮아?”

“나 완전 허접뷰지네.”

“아직 시작도 안했어.”


---


하지만 이야기는 끝이 났습니다.


제가 뭘 쓴 건지도 모르겠네요.


원래 계획대로라면 둘이 보비다가 배달부까지 TS시켜서 3P 보빔할라 했는데 제 실력이 미천해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