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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렇지 않다는 듯 흘러간다. 행동도, 움직임도. 

시선은 아주 잠시였다.

"여기 젊은 사장님이 3대째인데 오히려 더 좋다니까. 이것저것 관리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달까" 라는 소개에 삶은 소바를 데우며 끄덕인 고개. 

미소 하나와 어설픈 미소 하나가 고개를 숙인다. 


면채에 고개를 돌린 건 요리에 집중하려 한 게 아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스친다.

털어버리고 싶었던 건 고개가 아니라, 면에 남은 물기겠지.


불의의 습격.

마치 미스터 시비의 변화무쌍한 전법 중 하나를 얻어 맞은 것 같다.

그녀의 레이스 같다.


정신은 알딸딸한데.


웃기게도, 손은 이토록 정갈하게 잘만 움직이고 있다.


기뻐해야하나. 그렇게까지 장인은 아닌데.

슬퍼해야하나. 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미 음식은 완성 되었다.

이렇게까지 빠른가. 아니지, 내가 잡념이 너무 많은 탓이다.


고개를 든다.


바 좌석에 앉아줬으면 그저 손만 뻗으면 되는데.

하지만, 그러면 얼굴을 계속해서 마주해야 한다.

두 그릇의 소바. 난방이 틀어진 점내에서도 김이 올라오는 소바.

그 위로 지금 막 올라간 에비텐(새우튀김)이 아슬아슬, 마치 강가에 띄운 연등처럼

혹은 종이배처럼 떨리고 있다.


앞치마를 벗고, 조리실에서 걸음을 옮긴다.





"주문하신 에비텐 소바와 카케소바입니다."



"어머어머, 나왔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얼른 먹어 봐. 아 참. 크릭양 나이대면 사진이 먼전가? 아니지 저번에 먹어봤다고 했지?"


"아이 참. 원장님도~ 요새는 그러시면 안 돼요~"



어딘가 어수선한 사람이다. 호들갑이 많다고 해야하나. 나이는 이제 꺾이기 시작한 나이로 보인다.

정갈하게 정돈 된 숏컷. 상처 하나 없이, 말끔한 무테 안경이 다소 차가운 인상을 주지만.

그 안의 따스한 눈매, 인자함을 누그러뜨리지는 못하는 느낌이다.


나는 가볍게 목례 한 뒤에 물러선다.



"아뇨, 그래도 모처럼이니까..."


"그쵸? 저도 찍을래요."



찰칵, 하고 핸드폰 셔터음.

그리고서 아주 잠시.

착각일 거라고 생각이 드는 눈짓.



"..."








무겁다.

조리실 안으로 돌아가는 길이 무겁다.

돌아와서도 무겁다.

분위기가, 공기가 무겁다.


별 거 아닌 말이 흐르는데, 테이블에는 별 거 아닌듯이 식사와 대화가 흐르는데.

나만 무겁다.


주사바늘이 피부 위에서 살랑살랑 춤을 추는 것 같은 느낌이다.

언제까지고 알코올이 남아서, 그 싸함이 계속 되는 것 같다.


무릎 위 살을 꼬집으려고 대기하던 손이 기다리다가 지쳐서 타이밍을 놓칠 것 같다.



모르는 척 했어.

왜?

저번에는, 처음에는 단박에 알아차렸으면서.

왜?

지금은?

그리고 그 때 그 가게에서는?


도대체 뭐지.


슈퍼 크릭.


그녀는 도대체 뭐야.





---"이거보게. 소바집 사장."


---"..."


---"당신은 기자나 가십 매거진의 취재자라도 되는감?"


---"네...?"

---"은퇴한 우마무스메가 무얼하든, 당신이랑은 상관 없잖나?"




기분 나쁜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온다. 짜증난다. 목 아래에 가래가 낀 것처럼 텁텁하고, 동시에 뜨겁다.

하필이면 이 시간대인가. 오후 3시를 겨우 넘은 시점. 배달도, 내점하는 손님도 없는 시간.

평일, 느지막한 오후. 쓸데없이 점 내가 커다랗게 보인다. 난방은 잘만 돌아가는데, 저 4명이 있는 곳만 따스해 보인다.



뭐라도 하는 척, 분주하게 집중하려 하지만 대화가 들려 온다.

듣고 싶지 않은데, 듣고 싶다.


나도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음, 맛있어요. 저번에도 그랬지만 다시가 엄청 좋은 것 같네요."


"그치? 크릭양도 마음에 들어서 다행이네."


"그나저나 아세요? 원장님? 크릭씨가 와 줘서 엄청 다행인 거?"


"사이카씨도 참..."


"아무래도 우마무스메는 본격화가 시작 되기 전에도 특징이 있으니까 그 왜..."


"맞아맞아. 같은 아이라도 좀 다르게 대해야할까? 하고 고민하게 된다니까."


"근데 크릭양이 다르지 않다고 말해주니까... 심지어 중앙..."


"...사이카양? 예전 일이잖아."


"아, 아아... 미안해요 크릭씨? 내가 또..."


"괜찮아요. 지난 일이잖아요. 오히려 그 경력이 있으니까, 좀 더 아이들에게 많은 걸 알려줄 수 있는걸요."


"어머어머, 말하는 것 좀 봐. 그나저나 크릭씨 남자친구는 있어?"


"네?"


"이렇게 이쁘고, 마음씨도 얼마나 착해. 아~ 좋겠다. 크릭씨같은 여동생 있으면 좋겠어 진짜."


"과찬이세요..."


"먹는데 체하겠어. 타치바나양은 은근히 우마무스메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네?"


"그럼요. 트윙클 시리즈! 매 번 챙겨보죠. 글쎄 들어보세요? 제가 그 기적의 부활! 아리마 기념 때 미용실에서..."


"어휴, 소바 불겠어요. 선생님들."








밑 준비를 하는 척, 고개를 숙이고서 귀를 세우고 있는 나를 깨닫는다.

동시에 미칠 것 같은 자괴감이 몰려든다.


빨리 지나가줬으면 좋겠다.

적어도 배달 나간 케르나양이라도 빨리 돌아와줬으면 좋겠어.

그러면 적당한 이유를 둘러대고서 부식 정리라도 하러 가서...




도망치고 싶다.


듣고 싶지 않아.

하지만, 귀를 세우고 있는 내가 있다.






"...아, 맞다. 물어보신 거... 남자친구...는 있다고 해야할까요?"


"뭐?! 역시~ 크릭씨 같은 미인이 없다는 게 이상하지~"


"좀... 애매하긴 해요. 약혼자거든요."


"아~ 집안문제? 아니면..."


"타치바나양...?"


"...앗, 네? 원장님?"

"...크릭양도. 프라이베이트는 적당히... 알지? 우리 그런 거 용납 못 해요?"


"...저 그렇게 소문 내고 다니지는 않는데요..."


"괜찮아요. 오히려 숨길수록 숨기는 것 같아서 이상하잖아요. 원장님. 타치바나씨도 괜찮아요."


"와~ 약혼이면 언제 결혼 해?"


"후우, 크릭양이 불 지폈으니 원장님은 더 이상 말 안합니다~"







지나가주라.

아무래도 좋으니까, 전부 지나가주라.


생각 하지 마라.

그냥 손님들의 이야기잖아. 듣지 마.


상상하지 마.


그야 그렇겠지. 6년이나 지났잖아.

고등부 학생이 어른이 되고도 남는 시간이야.


별 대단한 것도 없는 이야기잖아.

내 고등학생 동창 중에 결혼한 사람이 있는 거, 딱 그 정도.

진도 벌써 메메를 낳은지가 몇 년인가.


그만. 그만. 그만 상상 해.

생각이 자꾸 확산한다. 가지를 뻗치는 순간, 새 가지가 돋아난다.


그만 하라고.






"어때? 어떻게 만난거야? 역시 현역 시절 팬?"


"아뇨... 음... 좀 어렵네요. 설명하기가."


"아이~ 숨기지 말고 알려주라. 소문 낼 것도 아닌데."


"크릭씨. 타치바나씨 소문 낼 걸요?"


"사이카씨가 그렇게 말하면 진짜인 것 같잖아!"

"아뇨... 저 같은 우마무스메가 팬이 있겠어요?"


"아...음... 어... 그, 그래도..."


"자, 다 먹었으면 갈까요? 타치바나양도 적당히라는 걸 알아야지."


"하지만... 저는 사랑이랑 워낙 연이 없어서... 남 이야기라도 듣고 싶어진다구요..."


"하긴 그렇죠. 타치바나씨 저번에 스탠딩 바에서 헌팅 기다리면서 혼자 2시간이나 서 있었대요."


"사이카씨...! 나 운다?"


"오구~ 우리 타치바나씨~ 소바 먹고 체했어요? 트림 할까요? 동동~"


"진짜 울어!"


"자, 계산하고 올게요."









겨우, 겨우 끝난다.

그 말이 전력질주 후의 물처럼 너무나도 상쾌하게 느껴진다.


고개를 든다. 동시에 눈 앞이 까맣게 변해간다. 젠장. 리모델링 이후에는 키오스크로 전환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원장 뒤로 코트를 입고 있는 그녀. 크릭의 모습만이 눈에 들어온다. 학생 때와 다르게, 한껏 어른스러운 베이지색 코트.

그녀의 짙은 브라운 머리칼 아래의 그 다소 상큼한 코트가 너무나 잘 어울려서...



"사장님 잘 먹었어요. 전 대(代)보다 점점 좋아지는 것... 앗차, 그러면 전 대 사장님한테 실례인가?"


"아닙니다. 아버님도 그 정도가 되어야 맘 편히 지내시겠죠."


"어머, 은퇴하시고 아예 본가로 돌아가신 모양이네요?"


그만하자.


"아뇨, 음... 크루즈 여행을 가셨습니다."

스몰토크라고 하지만 그만하고 싶다.

이게 같은 지역구 내에서 주고받는 정이라는 것쯤은 안다. 각자의 근황.

하지만, 견디기 어렵다. 


"크루즈 여행이요? 하긴... 정말 성실하신 사장님이셨어. 쉬는 날 거의 없지 않으셨어요?"


"아무래도 소바집이다보니..."

새해에도, 연말에도, 쉴 틈은 없다.

토시코시소바(새해를 맞아 먹는 소바) 그외에도 각종 계절메뉴. 거기다가 상점가 축제 때마다 노점행사.

내가 이 일을 맡고 나서 느낀 점 중에서 가장 큰 것 하나는, 아버지는 괴물인가 하는 것.


기계의 도움 없이, 혼자서 묵묵히 해냈다니.

경이로움과 동시에 오기가 생겼다.



"...고생이 많아요~ 덕분에 저희도 살죠. 후후. 잘 먹었어요."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영수증 필요하신가요?"


"네. 키리시마 보육원으로 부탁드릴게요."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여기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잘 먹었어요."


"잘 먹었어요 사장님!"


"맛있었어요~"


"..."




끝. 겨우 끝.

이제, 자리를 치우고서 오후를 대비해서 밑 준비를 끝마치고...

또, 리모델링 업자와의 미팅도 있으니까...


동, 동, 동.


케르나양이 돌아오면 잠시 쉬게 한 뒤에 조금 이르지만 마카나이(직원식)을 준비해서...



동, 동, 동.




젠장.





"엇...?!"



놀람. 동시에 돌아보는 고개. 거기에는 당혹감이 서려있다. 동시에 급속도로 식는다.

가게를 나가려는 그녀의 팔을 붙잡은 내 손을 흘겨보고서는 나를 향해 올려다 본다.

천천히, 하지만 차갑게.


마치 처음 만난 사람이 아는 척을 한 것 마냥.




"...무슨 짓이세요 사장님?"


"크릭, 이야기 좀 해."

"절 아시나요?"




가슴이 쿵쾅쿵쾅. 나도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지 모를 정도로 흥분해있다.

왜 이러는거야. 이러면 안 되는 거 알면서. 이럴 이유도, 자격도 없으면서.

그럼에도 할 말이 있을까...


있어.



비록, 그녀에게 내가 죄인이지만.

이런 식으로... 이런 식으로... 들었다 놨다 하는 건 사양이다.

나한테는 나의 삶이 있다.


도대체 왜...



도대체 왜...




"이야기 좀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