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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사장님? 우리 크릭양한테 무슨 일이라도?"




숨이 가쁘다.

겨우 이 정도 달렸는데 가쁘다. 콧김이 거칠어서, 기분 나쁘다.

이 거센 소리가 그녀와 다른 나머지들에게 들릴까봐 부끄럽다.

하지만 그래도 쿵쾅대는 가슴이, 여기서 끝내야한다고. 아니, 흥분했더라도 여기서 끝내야 해.



"이야기 좀 하려는 거에요. 별거 아닙니다."


"저, 저기... 크릭씨는 약혼자가..."


"그런 게 아니라, 이야기 좀 하려고...!"


"이야기요...?"



물끄러미, 내려간 시선.

거기에는 언제나 살짝 쳐진 눈매에 따스로이 나를 바라보던 소녀는 없다.

올라온 시선에는 그저 냉랭함만이 서려있을 뿐인다.




"갑자기 사장님이 왜 이러시는지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 넌...!"


"잠깐만요, 사장님? 무슨 할 말이 있으시면 일단 그 손부터 놓고 이야기하시죠?"


"아니, 그러니까 그게 아니라 제가..."




놓고 이야기라니.

그녀는 우마무스메다. 끼어들지 마.

그녀가 놓고 싶으면 진작에 뿌려쳤을테니까.


하지만, 그 말에 나도 서서히 이성을 되찾고.

크릭은 팔을 들어 올린다. 팔목이 내 손에서 빠져나간다.


가슴에 가져다 댄 왼손.

거기에는 4번째 가락에서 빛나는 무언가.


그런건 아무래도 좋아. 난...!







"...저를 아세요?"











아,








말문이 턱 하고 막힌다.

몇 초 있다가, 그건 떨리는 용암으로 바뀐다.

목 안쪽에서 부글부글 가래가 되어서 얼굴이 새빨개졌다는 건 안 만져봐도 알 것 같다.




니가...! 니가 먼저...!









"너잖아!!!"






너잖아.

내 일상에 발을 들인 건 너잖아.

너한테서 도망친 나한테, 먼저 들어 온 건 너잖아.



날 알아본 건 너잖아. 니가 먼저잖아.



그런 주제에, 그런 주제에.

그런 가게까지...!



마치 나를 놀리려는 것처럼.





"저기, 사장님? 일단 진정하시고..."


"..."


"뭐야? 왜? 내가 그렇게 미워서? 미워도 되는데, 이건 한 참...!"



아니, 이런 말 할 자격 없다.

몰아 붙일 자격 없다.

그런데, 감정이 격해진다.

그녀의 몇 마디에 요동친다.



지금은 또 왜 말을 안 하는데?

왜 또 모르는 것처럼 나를 노려보는데?


노려봐도 돼.

노려 보라고.


네 인생을 망친 쓰레기다.

하지만, 이렇게 휘둘리는 건...





"..."


"모르는 척 해달라고... 안간힘 쓰시길래... 그렇게 해드린건데요."


"...트레이너씨."


"읏...!"





"뭐야? 둘이 아는 사이야?"



"그럼 왜...!"








"이제와서, 더 말이 필요해요? 트레이너씨는... 정말 양심도 없네요."


"...아, 아니... 어... 어..."



그 말에 물러선다.

아, 아니야.


그런게 아니라.

그런 걸 말하려던 게 아니라.

그냥 난...





"잠깐만요! 무슨 일이에요?! 사장님!"


"어머, 얜 또 누구래?"





왜, 나타나서 왜 이제 나타나서... 왜 하필이면 가는 곳 마다 밟혀서...

나는 그저... 가능하면 사과를...




주저 앉는다.




"...사장님?!"




케르나양인가.




"저기, 뭐에요? 그쪽? 왜 사장님한테..."



말해야 하는데.

주저앉는 나를 부축하려다가, 크릭에게 소리치는 케르나양을 막아야 하는데.

잘못한 건 나라고.


한 때의 감정으로 그녀를 망쳤고, 한 때의 감정으로 도망치고서

지금 또 한 때의 감정으로 그녀를 곤란하게 한 건 나라고.


하지만 동시에 통쾌하게 느끼는 내가 있다.



케르나양이 와 줘서 이 엉망인 상황에 나는 빠져나갈 수 있다.

그 때처럼 피해자인양.



후후후후후, 후후후후후후.... 후후후....




아...




"그게 아니라 그쪽 사장님이 먼저 크릭양한테..."


"그런데 사람이 이렇게 주저앉아서 이런데요? 사장님 정신 좀 차려 봐요!"


"아냐, 아니야. 케르나양. 내, 내가... 잘 못 한 거야..."

"무슨 소리에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에요?"

"죄송... 합니다... 손님... 제가 착각했나보네요."




"사장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착각을 해서 괜한 손님에게 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정신이 든다.

아니, 안 들었다.

하지만, 들었다.


나는 어른이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쯤은 안다.



잘 먹고 나가려는 손님을 붙잡고 정신 나간 소리를 했다.

정신이상자가 하는 가게라고 소문나면 상점가에 일하는 이 가게는 금방...


나는 어른이구나.


아니구나.



아무것도 아니구나.




"정말 죄송합니다..."



무릎을 꿂은 상태로 주저앉아서 다행이다.

고개를 숙인다. 허리를 숙인다.



"사장님?! 갑자기 왜 그러세요?!"



"...아니에요. 착각 하실 수도 있죠..."


"크릭양? 괜찮아?"





"네, 괜찮아요 원장님..."






"왜요?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손님분들에게 불쾌한 경험을 해드리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그럴 수도 있죠. 괜찮으니까..."





하고, 사라진다.





망했다.

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