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하나즈가 4번 출입구 근처에 도착하자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기 직전이었다.


다른 불멸자의 2배 정도 되는 크기의 불멸자의 근처에는 이미 2대 정도의 수호자의 잔해가 널브러져 있었다.


채찍과 같은 왼팔을 바닥에 끄는 불멸자는 날카로운 오른손만으로 자신을 가로막은 수호자를 계속해서 몰아 붙였다.


방패와 철퇴를 든 수호자의 뒤에는 정자세로 굳은 3대의 수호자가 기관포를 퍼부으며 간신히 불멸자의 움직임을 붙잡고 있었다.


철퇴와 방패를 든 수호자의 어깨 장갑에 새겨진 숫자 8을 발견한 샤하나즈는 곧바로 불멸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로크! 넌 어쩌다가 여기까지 온 거야? 너희 담당 구역은 저 반대잖아!》


《그건 샤하나즈에게 따져! 에버니저 때문에 여기 왔다고 하는데 어쩌겠어?》


샤하나즈의 수호자를 발견한 불멸자는 바닥에 끌던 채찍과 같은 팔을 휘둘렀지만, 순식간에 몸이 달아오른 샤하나즈의 수호자는 이를 가뿐히 뛰어넘었다.


샤하나즈는 이 속도를 그대로 유지한 상태로 불멸자의 오른팔을 노리고 사슬 톱을 휘둘렀지만, 날카로운 금속이 부딪히는 소음과 함께 사슬 톱의 사슬이 부서졌다.


샤하나즈가 사슬 톱을 팔뚝에 다시 수납하자 로크는 어처구나가 없는 듯 소리를 질렀다.


《대체 이런 놈한테 왜 기관포만 쓰는 거야? 흠집도 안 나잖아! 성형작약탄이나 90mm 철갑탄은 어디에 팔아먹은 거야?》


《도움도 안 되는 놈이 입만 살아서! 너 같은 더러운 핏줄의 도움은 필요 없다고!》


로크의 투정에 기관포를 쏘던 수호자 중 하나가 기관포를 팔뚝에 집어넣고, 팔 전체를 포신으로 교체해 불멸자를 조준했다.


굉음과 함께 포탄이 발사되자마자 뒤로 물러나 에버니저의 수호자와 거리를 벌린 불멸자는 그 크기라고는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몸을 비틀었다.


꺾여서는 안 되는 부분마저 꺾여 절대로 빗나갈 것 같지 않은 부위를 노렸던 철갑탄은 허무하게 빗나갔고, 뒤 이어 발사된 철갑탄마저도 스치는 것이 전부였다.


《너라면 저런 걸 맞출 수 있겠냐! 저기 있는 놈들도 가까이서 쏘려다가 저 꼴이 난 거라고!》


《맞는 말이야. 나하고 에버니저 정도니까 버티는 거지, 가까이 갔다가 조금만 실수하면 순식간에 찢길 거라고. 특히 저 왼팔은....》


에이다의 목소리에는 이전의 장난기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마저도 불멸자가 뒤로 물러나 여유가 생겨 말을 꺼낸 것인지 불멸자가 다시 달려들자 에이다의 말은 그대로 끊겼다.


샤하나즈와 로크는 서로 어떠한 말도 나누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서로 모든 것을 알고 있는지 불멸자를 향해 달려드는 샤하나즈의 수호자의 움직임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에버니저와는 비교도 안 되는 속도로 샤하나즈가 달려들자 불멸자는 곧바로 목표를 샤하나즈에게 돌렸다.


《왼팔은 내가 보고 있어! 오른팔에 집중해!》


조금의 감속도 없이 상체를 뒤로 젖혀 불멸자가 휘두른 왼팔을 피한 로크는 앞으로 미끄러지는 자세에서 하체의 힘만으로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공중에서도 오른팔에 집중하던 샤하나즈는 수호자의 가슴을 노리고 뻗은 오른팔을 잡아 한쪽으로 흘려보냈다.


동시에 이를 지지대로 삼아 몸을 돌린 샤하나즈는 로크가 포신으로 교체한 왼팔을 그대로 불멸자의 입에 처박았고, 조금의 지체도 없이 포신이 불을 뿜었다.


영거리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발사된 철갑탄은 간단히 불멸자의 몸을 완전히 관통했다.


그것으로 난폭하게 날뛰던 불멸자는 한순간에 제압되었고, 불이나기 직전까지 달아오른 샤하나즈의 수호자도 천천히 식었다.


“그래서......이거로 된 건가?”


《아마? 아직 사라지지 않는 거 보면 살아있는 것 같은데, 똥꼬가 하나 더 생겼는데 쉽게 움직이지는 못하겠지.》


로크는 실없는 농담을 던지며 작게 웃었지만, 여전히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전신에서 증기를 뿜는 샤하나즈의 수호자가 아직도 꿈틀거리는 불멸자를 끌고 천천히 걸어오니, 에버니저의 수호자가 달려와 그를 끌어안았다.


《샤하나즈 모토르. 너를 우리 가문으로 받아들인 건 내 삶에 있어 가장 최고의 선택이었어.....라고 에버니저가 전해 달라고 하네. 물론 이어지는 말은 많지만 그 정도만 해 둘게. 나도 네가 자랑스러울 정도인데, 에버니저는 오죽하겠어?》


다시 장난기가 돌아온 에이다의 말에 실소한 샤하나즈는 고개를 저으며 눈을 감았다.


“이 정도도 못 하면 전대장님을 볼 낯이 없지. 나를 기사로 만든 것 때문에 8전대로 좌천당하신 건데......”


“쾅!”


그런 와중 갑자기 포성이 울려 퍼지며 샤하나즈의 혼잣말을 끊었다.


방금까지 뒤에서 기관포만 쏘던 수호자 중 하나의 포신에서 연기가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고, 샤하나즈가 끌고 온 불멸자는 머리가 완전히 박살나 천천히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지금 뭐하자는 거야?》


《너야 말로 뭐하는 거야? 이건 나하고 루시안이 처리한 불멸자인데, 네가 손을 댄 거잖아?》


철면피를 넘어선 발언에 어처구니를 잃은 로크는 실소마저 못했다.


《지금 장난쳐? 도움도 필요 없다면서 뒤에서 아무것도 못하던 놈이 뭐? 네가 처리해? 개소리도 적당히 해야지. 네 안에 탄 기사는 머리가 뭐 이상하게 됐냐?》


《세상 누가 실적이라고는 뭣도 없는 8번 전대의 수호자가, 그것도 더러운 핏줄 출신의 가짜 기사가 탄 수호자가 혼자서 처리했다고 하면 믿을 것 같아?》


《나도 네가 뭘 한건 못 봤는데. 전부 루시안의 수호자가 처리했지.》


《거짓보고로 처벌받기 싫다면 그냥 닥치지 그래?》


3명이서 입을 맞추기 시작하자 더 이상 참지 못한 로크가 움직이려하니 에버니저의 수호자가 그를 붙잡았다.


《그만, 어차피 싸워봤자 좋을 것 하나 없어. 이기지 못할 싸움이라는 건 알잖아.》


《너라면 참겠어? 지금까지 실적 뺏긴 건 알게 모르게 당한 거라고 쳐도 이딴 식으로 노골적으로 하는데도 보고 넘길 거냐고!》


“에이다 말 들어. 어차피 싸워봤자 우리만 손해야.”


하지만 로크는 에이다의 말이나 샤하나즈의 지시는 들리지 않는지, 에버니저가 붙잡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루시안의 수호자를 공격할 것 같이 움직였다.


그런 모습을 보며 루시안은 대놓고 수호자의 해치를 열곤 샤하나즈를 향해 꺼지라는 듯 손을 까딱였다.


“들었지! 이미 끝났으니까 가짜는 가짜답게 꺼지라고! 도움도 안 되는 더러운 잡종아! 저 멍청이도 지금쯤 너를 받아들인 걸 후회하고 있을걸! 아예 에버니저도 가문에서 잘라버려야 했는데 말이야!”


수호자와는 다른 목소리였지만, 루시안의 조롱은 수호자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러나 자신이 아닌 에버니저를 향한 조롱에 이번에는 로크만이 아닌 샤하나즈까지 함께 움직였다.


《그만해! 너까지 그러면 어쩌자는 거야!》


샤하나즈가 자신을 뿌리치자 에이다는 다급하게 샤하나즈를 불렀다.


그러나 역린을 자극당한 샤하나즈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해치를 닫은 루시안은 더 이상 접근하면 쏴버리겠다는 듯, 기관포를 겨눴지만 샤하나즈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오히려 뻣뻣한 움직임의 루시안이 조준하는 속도보다 샤하나즈가 파고드는 속도가 한층 더 빨랐다.


그리고 샤하나즈가 루시안의 수호자에 닿으려는 순간.


“쾅! 쾅! 쾅!”


3번의 포성과 함께 루시안의 수호자를 포함한 다른 7전대 수호자의 가슴에 거대한 구멍이 뚫렸다.


무엇이라 전해지는 말도 없이 세 수호자는 무력하게 쓰러졌고, 샤하나즈는 곧바로 뒤로 돌아 에버니저의 수호자에게 달려들어 몸으로 이를 감쌌다.


“로크! 대체 무슨 일이야!”


《수호자! 수호자가 있어! 어둠 속에 수호자가 있었다고! 검은색 수호자가!》


《그래, 내가 쐈어. 3명이서 내 실험작을 망쳤다고 해서 싹을 잘라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나름 공들여서 만든 건데.》


로크의 말 대로 어둠 속에서 검은색의 수호자가 걸어 나왔다.


방금 전의 포성은 그 수호자가 쏜 것이었는지, 오른손의 포신을 팔뚝으로 집어넣은 수호자는 가볍게 손가락을 움직이며 바닥에 엎드린 샤하나즈를 내려다보았다.


누가 그 수호자에 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이라는 것을 확신한 샤하나즈는 에버니저의 철퇴를 들고 자리에서 튀어 올랐다.


순간적인 일격을 노렸지만,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철퇴를 피한 검은 수호자는 샤하나즈의 팔을 붙잡았다.


《어라? 여기에도 이런 엔진이 있었네? 영원히 못 볼 줄 알았는데.》


《대체 넌 뭐야! 정체가 뭐냐고!》


샤하나즈는 검은 수호자의 손을 쳐내고 다시 철퇴를 휘둘렀지만, 검은 수호자는 샤하나즈와 다를 것 없는 움직임으로 철퇴를 가볍게 피했다.


《나는 너와 다를 것 없는 존재야. 아카이브의 의지지.》


샤하나즈의 수호자는 또 다시 달아올랐지만, 검은 수호자는 이러한 가속을 비웃기라도 하듯 모든 공격을 간단히 피했다.


“대체 뭐야! 하나도 모르겠어! 로크, 너는 알아듣겠어?”


《몰라! 아카이브고 자시고, 뭔 저딴 움직임이 되는 건데! 대체 뭘 하면 저게 되는 거냐고!》


지금껏 상대해 본적이 없는 속도에 두 명 모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한계까지 가속했지만 검은 수호자는 이들의 속도를 한참 상회하고 있었다.


샤하나즈가 필사적으로 휘두르는 철퇴를 휘두르는 동안 다른 수호자들이 그들의 뒤로 강하했고, 이를 본 검은 수호자는 사하나즈의 철퇴를 붙잡았다.


《우린 다시 만날 거야. 다음에는 어떻게 만날까? 적? 아니면 아군? 아니면 네가 내가 될까? 궁금해지네.》


철퇴를 놓아준 검은 수호자는 불멸자와 같이 천천히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놓치지 마 로크! 저게 뭔지는 몰라도 절대 그냥 두면 안 돼!”


샤하나즈는 곧바로 검은 수호자를 쫓으려 했지만, 로크가 막은 탓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냥 사라졌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게다가 이제 기동 한계야! 더 움직이면 나도 더 못 움직일 거라고!》


로크의 만류에 결국 추격을 멈춘 샤하나즈는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의 뒤로는 4전대의 수호자들이 와서 현장을 파악하고 있었고, 뿌리칠 수 없는 찝찝함에 샤하나즈는 혀를 차며 돌아섰다.


“일단 이 검은 수호자에 대해서 보고해야겠어,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위험한 게 분명해.”

그러나 이들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정비를 담당하는 일라르 가문의 사람들이 아닌, 긴급 상황에 파견되는 0번 전대의 수호자들이었다.


이들은 본 샤하나즈는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어둠을 가리키며 자신이 본 것을 보고 했다.


“지금 당장 파견팀을 마련해 주시죠. 지금 의문의 수호자가.....”


그러나 샤하나즈의 말을 듣지도 않았는지 돌아온 대답은 샤하나즈가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샤하나즈 모토르. 너를 수호자의 파괴와 기사의 살인 혐의로 체포한다》



조금이라도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면 곧바로 철갑탄으로 콕핏트를 꿰뚫을 것 같은 분위기 속에 샤하나즈의 수호자가 격납고에 도착했다.


《내리지 마, 샤하나즈. 내 안에 타고 시간을 벌다보면 뭔가 방법이 생길 거라고.》


“설명하면 다들 이해 할 거야. 그러니까 해치 열어 로크.”


《이게 그걸로 끝날 것 같아? 지금 당장 도망가도 모자랄 판에 그딴 말이나 하고 있냐고!》


“그래서 0번 전대를 따돌릴 방법은 있고?”


샤하나즈의 일침에 로크는 입을 다물었다.


에버니저 전대장이 샤하나즈에게 늘 하는 말이 있었다.


‘만일 네가 우리 가문에서 태어나기만 했다면 너는 여기가 아니라 0번 전대에 있어야 할 인재다.’


기본적으로 빛의 도시, 로샨의 수호자 전대는 단순히 불멸자들로부터 도시를 지키는 것 말고도 각자 정해진 역할이 있다.


방금과 같은 거대한, 혹은 이질적인 불멸자를 처리하는 1번 전대.


보급을 담당하는 위성 도시를 세울 곳을 찾고, 전초기지를 만드는 2번 전대.


새로운 장비나 개조를 실험하는 3번 전대.


파괴된 수호자를 현장에서 회수하는 4번 전대.


로샨의 보급을 담당하는 위성 도시를 관리하는 5번 전대.


도시 내부의 치안을 담당하는 6번 전대.


로샨의 보수와 건설을 담당하는 7번 전대.


공식적인 역할은 없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좌천하는 자들을 수용하는 8번 전대까지.


그리고 0번 전대의 역할은 각 전대에서 가장 뛰어난 수호자와 기사를 뽑아 1번 전대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긴급 상황이나 범죄를 저지르는 다른 수호자를 제압하는 역할이었다.


아무리 샤하나즈가 뛰어나다 한들, 그와 동등하거나 더 뛰어난 실력을 가진 0번 전대의 수호자들을 상대로는 거의 승산이 없었다.


결국 로크는 샤하나즈의 말에 따라 해치를 열었다.


해치에서 내린 그가 수호자의 손에 서서 땅으로 천천히 내려오니, 0번 전대의 전대장인 머큐리 루모르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변에는 총기를 든 위병들이 함께 했지만, 조금도 걸릴 것이 없는 샤하나즈는 정해진 의례를 따라 그에게 경례를 했다.


“8번 전대 소속 기사, 샤하나즈 모토르. 보고드립니다. 방금 전......”


허나 자신의 결백한만을 믿고 아무런 경계를 하지 않던 샤하나즈의 복부에 머큐리의 잔혹한 발길질이 깊숙이 꽂혔다.


“컥.....!”


“살인자가 입을 열지 마라. 이미 확고한 증거가 있는데 무슨 변명을 하려는 거지?”


“오......해입니다...... 방금 전 7번 전대의 수호자는.....”


“입을 열지 말라고 했을 텐데?”


이미 속을 뒤집어놓은 발길질에 샤하나즈는 간신히 입을 열었지만, 머큐리의 발길질이 그의 턱에 직격하자 사하나즈는 그대로 자리에 쓰러졌다.


샤하나즈가 일방적으로 구타를 당하자 로크가 자체적으로 움직이려 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예상이라도 하듯, 0번 전대의 수호자들이 샤하나즈의 수호자를 총구로 누르며 위협했다.


“너 같은 놈이 이곳에 있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지. 드디어 그 더러운 핏줄의 본색을 드러내는군.”


“......!”


무언가 반론을 하곤 싶었지만 울렁이는 뱃속과 쇠 비린 맛이 가득한 입으로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헛구역질을 하며 겨우 호흡을 이어가는 그를 다른 위병 두 명이 옆에서 붙들어 강제로 일으켰다.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좋을 것이 하나도 없을 테니 내가 즉결 처분하도록 하지.”


다른 위병에게 총을 건네받은 머큐리는 양쪽으로 붙들려 간신히 선 샤하나즈의 머리에 총을 겨눴다. 그러자 그 사이를 에버니저의 수호자의 손이 가로막았다.


《머큐리 전대장님. 그건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걸요?》


아직도 수호자의 밖으로 나오지 않은 에버니저 대신 에이다가 머큐리에게 따졌다.


“이의는 받아들이지 않겠다. 에버니저. 지금 네 전대원이 행한 범죄는 도시에 대한 위협이다.”


《모든 것은 4번 전대의 분석이 끝나고 난 뒤에 볼 일이죠. 그 이전에 확실한 것은 샤하나즈는 지금 누명을 썼다는 것이죠. 저와 에버니저 모두가 봤으니까요.》


“검은......수호자...... 분명한 적의를 가진..... 검은 수호자가 있었습니다...... 그 수호자가 거대한 불멸자를 만들고..... 7번 전대를.....”


간신히 호흡을 가다듬은 샤하나즈는 한쪽으로 피를 뱉으며 간신히 말을 덧붙였다.


그러나 간신히 꺼낸 샤하나즈의 목소리는 위병이 그의 어깨 관절을 꺾자 비명소리와 함께 묻혔고, 머큐리는 어처구니가 없는 듯 코웃음을 쳤다.


“세상에는 이런 말이 있지. 다른 모든 요소가 동일할 때 가장 단순한 설명이 최선이라고. 무엇보다 그런 헛소리가 통하지 않는 증거도 있지.”


머큐리가 가볍게 손짓하자 4번대 전대의 기사가 누군가를 부축하며 다가왔다.


한쪽이 완전히 피로 물든 7번대 소속의 기사는 바닥에 피를 흘리며 반쯤 끌려왔고, 한껏 피를 토하다가 힘겹게 숨을 들이쉬었다.


“저희가...... 처리한 불멸자를 두고..... 샤하나즈가......자기가 처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거짓 보고는....처벌대상이라고 하니......목격자만..... 없다면 된다며.....저희를 공격했습니다...... 90mm 철갑탄을 이용해서....... 저는 마지막으로 공격당해......간신히 피했지만......”


“거기까지. 무리해서 증거 할 필요는 없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니.”


머큐리의 부탁에 피를 토하던 기사는 말을 멈추고 꺽꺽거리는 소리를 내며 호흡을 이어갔다.


그러나 위병에게 제압당해 제대로 서있지도 못하는 샤하나즈와 눈이 마주치니 그를 조롱하듯 슬쩍 미소를 지어보였다.


마음만 같아서는 수호자를 움직여 그를 그대로 으깨버리고 싶었지만, 그와 같은 심정인 로크가 살짝 움직이니 곧바로 총구가 그의 장갑 사이에 파고들었다.


《그건 저와 에버니저가 본 것과는 많이 다른데요?》


부들거리는 샤하나즈의 마음을 알아 차렸는지 에이다는 곧바로 증언에 반박했다.


“네가 샤하나즈를 방어할 이유는 충분하지. 그러니 신뢰성도 없고. 알겠다면 손을 치워라 에버니저. 그렇지 않다면 너 또한 공범으로 처벌될 거다.”


그러나 에버니저의 수호자는 여전히 손을 치우는 대신 팔뚝에서 기관포를 꺼내 머큐리를 겨누었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에버니저의 수호자로 쏠렸고, 샤하나즈의 수호자에게 겨누었던 총구 또한 함께 돌아갔다.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자 에이다가 짧게 이어진 침묵을 깼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죠. 전대장의 권한으로 선각자 가문 급 재판을 요청하죠. 만약 샤하나즈가 죄가 없다면 당신이 전대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거에요.》


“내가 왜 그래야 하는 것이지?”


《싫다면 이 자리에서 다 같이 죽던가요. 저와 에버니저 모두 샤하나즈의 무죄에 목숨을 걸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 빨리 결정하시죠?》


가만히 에이다의 발언을 곱씹던 머큐리는 결국 총을 내렸고, 이를 확인한 에버니저의 수호자 또한 기관포를 다시 팔뚝에 수납했다.


“좋아. 일단은 샤하나즈를 구치소에 구금하도록. 나는 가주들에게 이를 보고하도록 하지.”


《이제 나머지 0번 전대 수호자들도 다들 돌아가시죠? 아직 밤은 끝나지 않았고, 밖에는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모르니까요.》


에버니저의 수호자는 여전히 자신을 향해 겨눠진 총구를 쳐내며 손짓했다.


아무리 다른 전대의 전대장이라도 전대장의 지시를 무시할 수는 없었는지, 다들 무기를 내리고 해산했다.


그러는 와중 여전히 위병에게 제압당한 샤하나즈를 보곤 에버니저의 수호자는 그 근처에서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물론 수호자의 크기를 고려한다면 가볍게 튕긴 손가락의 충격으로 샤하나즈를 끌고가려던 두 위병은 그대로 귀를 붙잡고 쓰러졌다.


《그리고 아직 재판도 거치지 않은 샤하나즈는 죄인이 아니니 그 인도는 우리 8번 전대에서 담당하도록 할게요.》


“그건 인정할 수 없어. 모든 건 우리 0번 전대가 처리한다.”


《딴 곳으로 빼 돌릴 생각은 없어요. 어차피 추가적인 인질은 여기 있잖아요? 다들 기사는 기사니 공과 사는 확실히 구분할 거니 쓸데없는 걱정은 마시죠.》


에버니저의 수호자는 에버니저가 탑승한 가슴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아직도 의심을 떨치지 못했는지 머큐리는 여전히 자신과 샤하나즈 사이를 막는 에버니저의 수호자를 노려보았다.


그런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에버니저는 기다렸다는 듯 머큐리의 뒤를 보며 손짓했다.


머큐리가 뒤를 돌아보자 이미 사일러스가 도착해 있었다.


완벽하게 출격 준비를 마치고 숨을 헐떡이는 사일러스와는 달리 평소와 같은 모습의 리암은 그 뒤에서 천천히 걸어오는 중이었다.


“대체 뭐하자는 겁니까, 전대장님? 방금 격납고에 비상 신호가 들어왔는데, 이건 뭔 상황이죠?”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는지 표정이 실시간으로 구겨지는 사일러스와 달리 리암은 고개만 천천히 저었다.


“내가 뭔가 이상하다고 말했잖아. 어쩐지 우리 격납고만 난리더라.......”


사일러스는 무릎을 짚은 것도 모자라서 자리에 주저앉았고, 리암은 그대로 돌아가려 했지만 그 자리에 있는 머큐리를 발견하곤 곧바로 정자세로 경례했다.


“8번 전대 소속 기사, 사일러스 모토르, 보고 드립니다!”


“8번 전대 소속 기사, 리암 일라르, 보고 드립니다!”


그대로 베여버릴 것 같은 머큐리의 시선에 완전히 자세가 굳은 둘의 앞에 에버니저의 수호자가 조심스레 집어든 샤하나즈를 놓아두었다.


《지금 상황이 잘 이해는 안 갈 텐데, 지금 당장 샤하나즈를 구치소로 데려가 줘. 나는 머큐리와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네? 구치소요? 대체 뭔 일이 있던 거 에요?”


《설명할 시간 없어. 그리고 사일러스!》


꿈툴거리는 샤하나즈를 리암과 함께 부축하려던 사일러스는 에이다가 자신을 부르자 자리에 멈춰 섰다.


《샤하나즈를 데려가는 건 리암에게 맡겨두고, 너는 가서 수호자에 탑승해.》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거 에요? 지금 제 수호자는 정비를 기다리는 중이에요. 출격될 때 가해지는 충격도 제대로 못 버틸 거라고요.”


《탑승할 수 없다면 감응만 해도 충분해. 그냥 간단한 심부름 하나 한다고 생각해.》


자신이 아는 평소의 에이다와는 다른 다급한 목소리에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리암이 먼저 샤하나즈를 부축해가니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정비중인 자신의 수호자로 달려갔다.


“지금 뭐하는 거지 에버니저?”


《이건 에버니저가 아니라 제가 개인적으로 부탁하는 거 에요. 조금 처리할 일이 있으니까요.》


에이다는 평소의 능글맞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에버니저. 수호자에서 내려라. 지금 당장.”


《제가 왜 같은 계급의 전대장에게 명령을 들어야하는 건가요? 명령을 하고 싶다면 더 윗 사람을 사람을 불러오던가요. 그런데, 그게 쉬우려나? 돌려 말하면 그건 윗사람에게 명령을 해야 하는 꼴인데. 0번 전대의 전대장이나 되는 분이 그런 기본적인 예의마저 어기겠어요?》


능글맞음과 조롱의 사이에서 선을 타는 에이다의 목소리에 머큐리의 팔에 힘줄이 올라왔다.


“그렇다면 재판에서보지 에버니저. 그 가짜 기사의 운명에 네 목숨이 걸려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머큐리는 분을 삭히며 재판장으로 향했고, 그것을 보고 나서야 에이다 안의 에버니저는 긴장으로 인해 멈추기 직전까지 얕아진 호흡을 심호흡하며 원래대로 되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