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2월 17일 11:03 GMT, 독일 본


"이제부터 간단한 성명을 발표하겠습니다. 모스크바에서 언제나 그러셨던 것처럼 질문은 받지 않으실 겁니다."

NATO 정상회담 준비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쁜 독일을 불쑥 방문한 소비에트 연방의 외무장관은 연단 뒤쪽으로부터 모습을 드러내, 60세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활기차게 연설대로 향했다.


"세계는 한 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시대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속 가능한 평화의 시대로 가는 먼 길에 서있죠. 무력을 통한 위협, 불신, 심리적 이념적 투쟁은 모두 과거의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절대로 서방과의 열전을 시작하지 않겠다고 NATO에 약속드립니다. 내일 소비에트 연방은 빈에서 진행중인 군축교섭에서 현존하는 전략 및 전술 핵병기를 50퍼센트 감축할 것을 제안할 것입니다. 미 대통령이 전임자보다는 국제정세에 대해 전임자보다 훨씬 온건하고 현실주의적인 관점으로 접근하는 인물이기를 바랍니다. 내일부터 평화에 대한 미국의 말과 평화에 대한 소련의 행동의 차이를 확실하게 만나고 확인하시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서방 기자들만이 가득 늘어선 브리핑룸에 일제히 플래시가 터졌다.


"이 제안은 SALT II를 대체하며, ICBM과 SLBM, 전략폭격기 등의 핵투사 수단과 핵탄두의 상한선을 각각 1,600기와 6,000기로 감축하는 것은 물론 서로의 핵무기에 대한 정보를 주기적으로 교환하는 방법을 담고 있습니다. 협상 제안에 대한 진정성을 확인하기 위해, 우리는 새로 취역하는 미사일 잠수함인 '양키'를, 아! 물론 우리는 다르게 부릅니다."

그는 가벼운 웃음을 불러일으키면서 천진스런 미소를 띠었다.


"...폐함하기로 했으며, 미해군이 발사관 폐기를 사찰하는 것을 인정합니다. 이외에 협정 이행에 따른 상호검증의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앞으로 영국, 프랑스, 그리고 중국 정부와 조율 중인 것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상당히 공평하고, 진지하고, 너그러운 제안입니다. 여러분이 나가실 때 전문 복사본을 드리는 걸로 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1985년 2월 19일 14:01 GMT, 독일 본 


"도대체 왜 이러는 거요? 그들은 어째서 이런 제안을 하려는 거지?"

미국 대통령이 라인 강변을 바라다보며 물었다.


곁에 있던 CIA 국장이 그 질문을 고통스럽게 느끼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스타워즈 계획에 대해서는 아무 요구도 없는데....... 왜 성명에서 언급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 이런 정치적인 제안이라면 워싱턴에서도 쉽게 썼을 겁니다. 물론 모든 기술적인 점을 압축하는 데 몇 개월은 걸리죠. 그러나 이건 상당히 진지합니다. 상당히 너그러운 제안이에요..."


CIA에서 아프가니스탄 총사령관 재직 중의 소련 국방장관 소콜로프 원수를 분석했던 케네스 브래너 국가안보보좌관이 말했다.

"각하, 모든 징후로 보아 소련은 NATO를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4주 간 소련의 부쩍 늘어난 군사일정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평시의 훈련과는 두드러진 차이를 보입니다. 예를 들면, 병역 연한이 끝난 징집병을 제대시키는 기색이 없으며, 어뢰를 잔뜩 싣고 폴랴르니에 기항해있는 북극 함대의 움직임도 늘어났습니다. 저들이 양키급에 시멘트를 주입하기 시작하는 동안 일어난 일입니다. 왜 그런가의 질문에 대해서는...... 대통령 각하, 저는 알 수 없습니다. 소련이 하고자 하는 일은 말할 수 있지만 그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여보, 케니, 또 그런 소리를 하나? 우리 첩보원들도 소련이 독자적으로 돌파구를 열었다는 데 동의하고 있어요. 이 문제를 영국과 프랑스에도 문의해야겠군. 소련이 일방적으로 SSBN을 취역에서 배제한 것은 이것이 처음입니다."

CIA 국장이 날카롭게 받아쳤다.


"양키급은 구식이야."


"각하, 그들은 구식이든 무엇이든 아무 것도 버린 적이 없습니다. 독일과의 전쟁에서 썼던 스탈린 전차 같은 것도 다시 필요하게 될 경우에 대비하여 창고에 쌓아 둘 정도입니다."


"소비에트 화전양면전술의 전형이죠. 어쨌든 저들이 NATO를 침공할 가능성은 있습니다. 소련과 직접 대화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적극적으로 응하기까지 우리들이 진지하다는 사실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각하, 해군과 공군을 중심으로 예비역 장교들을 소집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통령 안전보장보좌관이 말했다.


"아무래도 이제까지와는 다른 것 같은데...... 모두의 의견은 잘 알아들었으니 이제 슈미트에게 가보자고."



1985년 2월 20일 09:41 GMT, 아이슬란드 케플라비크 비행장


"다시 없는 좋은 날씨입니다."

에드워드 화이트 대위는 팩시밀리가 보내기 시작한 기상일기도로부터 시선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이제 20시간이나 24시간 안에 캐나다로부터 강력한 한랭전선이 다가옵니다. 상당한 비가 내릴 겁니다. 1인치 정도의 강우량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 하루는 맑은 날씨, 그리고 강우 없음. 지표의 바람은 서풍 내지 남서풍, 풍속은 15 내지 20노트. 햇빛은 충분합니다."


 태양이 마지막으로 솟은 다음 거의 5주일이 되지만 다시 5주일이 지나지 않으면 가라앉지 않는다. 이 아이슬란드는 북극에 가깝기 때문에 여름에는 태양이 푸른 하늘에 완만한 원을 그리며 돌아가고 수평선에 부분적으로 가려지지만 완전히 가라앉는 경우는 없었다. 익숙해지기에는 시간이 걸리는 현상이다.


"F-15 전투기를 위해서는 좋은 날씨로군."


 제57요격비행대장인 윌리엄 게이츠 중령이 장단을 맞추었다. 이곳에는 아이슬란드와 노르웨이 침공에 맞서 Tu-22M 백파이어 폭격기와 미국으로 가는 길에 이곳을 거쳐갈지 모르는 IL-78 미다스 공중급유기를 요격하기 위해 '패스트팩'이라고 불리는 일체형 연료탱크를 단 F-15C/D 이글 전투기가 배치되어 있었다. 


 비행장은 해군 항공대와 공군의 기지에다가 분주한 국제공항이 조합된 곳으로 급유를 위해 들르는 여객기도 많았다. 아이슬란드 서안에 있는 이 가장 고립된 NATO군 전초기지는 북대서양으로 향한 관문이었다. 만약 소련이 바다에서 싸울 작정이라면 아이슬란드를 제압해야 한다.


"MAC 520편, 라저. 덩치 큰 놈이 들어오니 공간이 많이 좁아지겠는데."


 수백 미터 저쪽에서 C-141 수송기가 8번 활주로에 내려서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더없이 중요한 NATO군의 기재와 아이슬란드 방위대의 미 해병들을 가득 태우고 있었다. 그 중 마크 밀리 소위는 애향심에 벅차있는 아이오와주 시골 출신으로 미국 땅에 발을 디디자마자 예비역 사관으로 소집되어 아이슬란드로 돌아오게 되었다.


"젠장, 좋은 날씨로군. 안녕하십니까, 에드!"

밀리는 수송기에서 내리자마자 민간항공관제실로 뛰어올라가 상관인 화이트 대위에게 인사했다.


"예이! 돌아왔군! 잘 잤나, 마크?"


 이제 기지에는 1개 대대의 해병대 전투부대와 공군 헌병들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M16 소총을 들고, 수류탄을 매단 벨트를 차고 거창한 모습들이었다. 무장한 수많은 외국인이 오는 일에 아이슬랜드가 난색을 표명하기는 했지만, 이들은 모두 소련군 특수부대가 곧 쳐들어와도 박살낼 양 거창한 모습들이었다.



1985년 2월 20일 21:57 GMT, 이탈리아 아비아노 공군기지


 이탈리아 북부의 한적한 공군기지에 막 착륙한 제37전술폭격비행단의 록히드 F-117A 나이트호크 전투기는 우주전쟁에서나 볼 수 있는 시커멓게 생긴 기괴한 모습과 기밀 유지를 위한 야간훈련 때문에 조종사들에게 '다크 아이언' 또는 '바퀴벌레'라고 불렸다.


 F-117A의 특징적인 외관은 RCS(레이더반사면적)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이 때문에 비행 능력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또한 공대공 전투를 위한 무장이 전무하며 속도 또한 마하 1에도 못 미치는데다 기동력도 전투기로는 용납이 되지 않는 극악한 수준이었다. 나이트호크의 가장 큰 존재 목적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었다.


 이런 밤에 저공비행으로 착륙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전투기가 더욱 유리하기는 하지만. 더글러스 아이슬리 대령은 산소마스크 안에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손가락 끝으로 조종간을 가볍게 쓰다듬었고, 이내 콕핏에서 풀쩍 뛰어내렸다.


 미국과 소련 쌍방 모두 공중에서 펼쳐지는 전투를 관제하여 유리한 입장을 차지하기 위해 전자전용 항공기를 거느리고 있었다. 누가 재빨리 한방 먹이느냐가 전쟁의 판세를 가를 것이었다. 슬프게도 F-117은 거지같이 움직임이 나쁘다. 그것은 그 못생긴 모습 탓이었다. 그러나 아이슬리는 그런 것에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맨해튼 프로젝트 이후로 가장 무거운 기밀이었기 때문에 이 전투기를 모는 동료들의 스트레스가 점점 커져만 가고 결혼생활은 파탄으로 치달아갔다. 그러는 동안 베트남 전쟁에서 F-111로 1백 회나 함께 출격한 전우들에게는 A-7D을 몬다고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이런 전투기는 기민한 편보다 보이지 않는 편이 좋다고 그는 판단하고 있었다. 이제부터 그런 점이 증명되거나 또는 부정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극지의 폭풍]

1부

1화 도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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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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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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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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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사냥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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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1화 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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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급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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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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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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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나이트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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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붉은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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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라인의 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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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사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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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사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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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1화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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