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2월 3일 12:31 GMT, 모스크바 크렘린


 모스크바 정치국은 다음날 아침에 다시 회의를 개최했다. 2중 유리 창문 밖으로 회색빛 하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이미 50센티미터나 쌓인 위로 다시 눈발이 거세져 앞을 분간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오늘밤 고리키 공원 언덕에서는 썰매타기를 할 것이다. 호수에는 눈이 치워지고 조명 아래서 차이코프스키와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에 맞추어 피겨 스케이팅이 펼쳐질 것이다. 모스크바 사람들은 그들의 생활에 엄습할 전환에 대해서는 다행히 알지 못한 채, 즐겁게 보드카를 마시며 추위를 만끽할 것이다.


 정치국 회의는 어제 오후 3시에 휴회하고, 국방위원회를 구성하는 5명만이 모였다. 그 의사 결정기관의 결론은 정치국원이나 후보위원이라고 할지라도 모두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국방장관이 시작했다.

"우리는 앞으로 3년 동안 매달 수백만 톤의 석유가 더 필요합니다. 그 석유는 있습니다. 우리 국경에서 불과 수백 킬로미터 거리의 페르시아 만에 우리들이 필요로 하는 것 이상의 석유가 말입니다. 그 지역 국가와 주변에 배치된 미국의 군사력을 모두 동원해도 우리 군을 도저히 저지할 수 없습니다."


"그게 정말 말이 되는 거요?"

서기장이 대답을 듣기 위해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만약 그들이 저지하려 하면,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그쪽 부대는 며칠 사이에 압도당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유대인 국가와 아랍 여러 나라를 방위할 필요성 때문에 핵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무시할 수 없는 위기인 것입니다. 따라서 페르시아 만을 빼앗기 전에 우선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정치적 및 군사적 세력인 NATO를 제거해야만 합니다."


"동지, 그건 미친 짓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제는 중대한 위험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국가의 안전에 어두운 그림자가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보다 큰 위험과 바꾸겠다는 말입니까?"


"그렇다면 우리들은 서유럽을 정복하기만 하면 된다는 말입니까? 서독군과 프랑스군의 재래식 부대에 대해서는 당신이 매년 경고하지 않았습니까? 당신은 매년 엘베 강 저편에 배치된 엄청난 화력이 우리들과 우리 전차 부대에 미치는 위협에 대해 얘기해 왔는데, 지금은 핵이나 화학 병기 없이 간단히 그들을 정복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프랑스와 영국도 독자적으로 핵병기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째서 미국이 NATO 방위를 위해서는 핵병기도 사용한다는 조약상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다는 겁니까?"

폭탄과도 같은 선언에 정치국원들의 반발이 쏟아졌다.


알렉세이 블라디미로비치 밀러는 이 질문에 외무장관이 답했다는 사실에 조금의 놀라움을 느꼈다.

"우리들의 목적은 당연히 제한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몇 가지 정치적 과업이 생길 것입니다. 첫째로, 미국이 안심하게 하고 우리에게 강경하게 대응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때까지 마음을 놓게 해야 합니다. 스타워즈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아프가니스탄과 전략무기를 감축을 달성하는 협상은 저들로서는 달려들지 않을 수 없는 미끼지요. 둘째로, 저들의 동맹과 신뢰를 무너뜨려 NATO를 정치와 외교의 측면에서 사실상 해체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라인강 동쪽을 제멋대로 유린하면 저들로서는 습격의 충격과 갑작스런 피해 때문에 동맹을 이탈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국과 프랑스에게는 그들과 유럽의 세력 범위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확약을 주되, 서독을 이탈시키는 것으로 우리의 목적을 이루는 데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독일 문제에서도 우리가 유리한 고지를 점하겠지요. 하는 쪽으로 결정이 나면, 그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수두룩합니다."


오늘도 의견을 제시하지 않고 앉아만 있던 KGB 의장은 오랜만에 미소를 띠었다.

"동지들도 알고 있듯이 KGB는 과거 수년간 이런 계획을 추진해 왔소. 이제 최종 단계에 들어선 거요. 그 개요를 가르쳐 주겠소."


"좋아요. 소콜로프 동지, 어느 정도의 시간 여유를 주면 동지가 말하는 NATO 정복에 착수할 수 있습니까?"


 서기장이 물었다. 밀러는 서기장을 보았다. 서방측으로부터는 전권을 장악한 '젊은' 지도자, 소련을 변화시키고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가 소련공산당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선 것은, 밀러까지 포함한 일부 사람들에게는 놀라움이었다. 일찍이 우리들처럼 서방 또한 그에게 희망을 걸고 있다고 밀러는 생각했다. 하지만 모스크바에 오자 그것은 급속히 변했다. 꿈은 깨어졌다.


 하지만 그는 정력적으로 일하고 있다. 이 테이블에 있는 누구도 그것은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개혁은 불가능했다. 그에게도 자기 의지대로 이 방을 지배할 만한 힘이 부족했다. 그리고 일주일 전에 시작된 일련의 사태는 이제 그와 당과 정치국에 최대의 모험으로 다가올 참이었다. 레닌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군은 4개월 안에 완전히 전투준비를 갖출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4개월이라고? 앞으로 4개월 후에 연료가, 전쟁을 치르기에 충분한 연료가 있단 말입니까?"

모스크바 당서기 빅토르 그리신은 늙었지만 어리석지는 않았다.


"가벼운 연료인 휘발유, 디젤유 등의 비축은 지금 현재 풍부합니다."

밀러는 뱃속이 불타는 듯한 기분이 되면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말해 연료 소비가 가장 적을 때를 이용하여 비축해 두고 있었습니다. 저의 부서에서는 전략적 예비연료를 증대시킬 계획의 일환으로 군부대에 의한 연료 소비를 조사했습니다. 이제까지 무시하고 있던 조사입니다. 다른 소비를 절약하고 어느 정도 산업이 희생을 치른다면 전쟁용 비축을 60일분으로, 제대로 된다면 70일분으로 증대시키고, 더욱이 훈련을 강화하기 위한 비축도 가능할 것입니다. 단기적인 경제적 희생은 약간이면 됩니다. 그러나 한여름에는 상황이 급속히 바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국방부에서 적절한 계획을 세워 사용해 보겠소. 우리 쪽의 전문가가 추정한 바에 따르면 전쟁 기간은 2주간이며, 어쩌면 좀더 빨리 달성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NATO군의 능력도 상당하리라고 예상합니다. 그러니 추정 일수를 2배로 늘여도 30일이면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충분히 여유가 있다는 뜻입니다. NATO는 강력한 동맹이 아닙니다. 장관들은 자국의 방위에 공헌하려고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국민은 분열되고, 허약합니다. 그들은 병기를 규격화할 수 없고, 그 때문에 보급이 완전히 혼란 상태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도 강력한 구성국은 5천 킬로미터의 대양에 의해 유럽으로부터 격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소비에트 연방은 서독 국경에서 열차로 불과 하룻밤의 거리밖에 되지 않습니다."


 아무도 국방장관에게 반대하는 발언을 하지 않았다. 몇몇 정치국 연장자들이 몇 분 동안 두서없이 떠들며 이상적인 사회주의의 조국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일을 비난한 레닌의 말을 인용했지만 그래도 반응을 끌어낼 수는 없었다. 국가에 대한 위협은 엄연히 존재한다. 실제로는 당과 정치국에 대한 위협이지만. 이 이상 심각한 사태는 있을 수 없었다. 남은 수단은 전쟁뿐이었다.


 10분 후, 정치국은 표결을 했다. 밀러와 8명의 후보자는 관객에 불과했다. 11대 2로 전쟁으로 결정되었다. 일은 진행되기 시작했다.


 마르크스 레닌주의라고 하는 '과학'은 사회주의의 정복을 역사적 필연이라고 부른다. 영광의 미래. 어떤 미래를 말하는가? 우리들의 혁명은 어떻게 된 것인가? 당은 어떻게 된 것인가? 레닌의 참된 의도가 이런 것이었을까?



1985년 2월 5일 15:56 GMT, 모스크바 노보모스콥스키


"그들은 나에게 물어보지 않았어."

참모총장 아흐로메예프 원수가 말했다. 


"나의 평가를 원하지 않았지. 어젯밤에 내가 불려갔을 때는 이미 정치적 결정이 이루어지고 난 다음이었어. 나의 독자적인 판단을 소콜로프 원수가 마지막으로 요구한 것은 언제였던가?"


"그래서 자넨 뭐라고 했나?"

지상군 총사령관 이바노프스키 원수가 물었다. 최초의 반응은 차갑고 야유하는 듯한 미소였다.


"붉은 군대는 4개월의 준비기간이 있다면 한 달 안에 그 임무를 완수할 수 있다고 했지."


"4개월이라......."


이바노프스키는 창 밖을 응시한 다음 몸을 돌렸다.

"그럴 시간이 없을 텐데."


"전쟁은 6월 11일에 시작된다는군."

아흐로메예프가 대답했다.


"시간을 맞춰야 하는 거야, 제냐. 그리고 나에게 선택할 여지 같은 것은 없었어. '죄송하지만 서기장님, 소련군은 그런 임무를 수행할 수 없습니다.'라고 내가 말할 수가 있겠어? 나는 해임당하고 좀더 고분고분한 친구가 후임자로 앉겠지. 자네는..."


"멍청한 소리!"

이바노프스키는 노기를 담아서 말했다.


"어떤가. 자네가 이 방의 주인이 되어 그에게 계획을 전하게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아흐로메예프가 물었다.


이바노프스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두 사람은 1945년의 베를린을 향한 마지막 진격 때 같은 연대에서 다연장로켓 부대를 지휘한 이후의 친구이며 동지였다.


"어떤 작전을 하는 건가?"

이바노프스키가 물었다.


"'레인 나바드네니예'야."

아흐로메예프가 짧게 대답했다.


레인 나바드네니예, 즉 '라인강의 범람' 작전이란 서유럽 제국을 전차와 기계화부대로 공격하는 계획이다. 소련군의 표준 교리에 따라서 성공의 전제조건인 작전기동군을 통한 전략적 기습과 지상군의 전과 확대를, 그리고 재래식 병기만의 사용을 요구하는 작전이었다.


"적어도 핵무기 사용은 생각하지 않는 것 같군."

이바노프스키가 말했다.


다른 명칭을 지닌 계획은 도끼 이론이라고 불리는 핵무기 사용을 포함하는 것이 많았는데 그것은 직업군인이 생각하고 싶지 않은 내용이었다. 


"4개월이라고?"

이바노프스키는 다시 물었다.

"해야 할 일은 많지. 그래, KGB의 마술이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 거야?"


"그건 괜찮은 계획이야. 서방측을 1주일, 2주일이라면 더 좋겠지만 속여 주기만 하면 되는 거야. 물론 NATO가 얼마나 빠른 시간 안에 실전 상태에 도달하느냐에 달렸지. 그들의 동원을 7일 지연시킬 수 있다면 이쪽의 승리는 틀림없어."


 KGB 작전의 목적은 NATO 국가들을 분열시키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과, 전반적으로 서방 쪽의 의지를 좌절시키기 위한 정치적, 심리적 작전을 하는 데 있었다. 전쟁에 대비하여 NATO의 정치적, 군사적 구조를 혼란시키겠다는 그 계획은 그들이 가장 자랑하는 마술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제대로 될까? 두 소련군 최고 지휘관은 냉소 섞인 시선을 나누었다.


"그러면 그 말대로 4개월 동안 집중적인 전투훈련을 강행하지. 연료도 충분하고. 내 재량으로 해도 되겠는가?"


"어떤 범위 안에선."


"사병을 하사관의 명령에 신속히 응하게 만드는 것도 물론이지만, 문서업무에 익숙한 장교를 전투 지휘관으로 바꾸는 일은 손쉬운 일이 아닐 거야."


 이바노프스키는 중요한 문제를 피했지만 참모총장은 상대방의 마음을 분명히 알아챘다. 소련군은 전통적으로 장교를 중요하게 여기는 군대였다.


"자네 뜻대로 하게, 제냐.“

이바노프스키는 고개만 약간 끄덕였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떤 인간들을 사용할 것인지, 그는 알고 있었다.


"실제로 대조국전쟁 당시나 지금이나 연료 사정은 마찬가지이며...... 병기는 더 좋아졌지. 중요한 요소는 역시 병사들이야. 우리들이 추이코프 원수와 베를린으로 쳐들어갔을 때 병사들은 씩씩한 역전의 용사였지만......."


"그런 거라면 우리들이 분쇄한 무장친위대도 마찬가지였어."

아흐로메예프는 옛일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서쪽에도 같은 군대가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돼. 전보다 완강하지, 특히 낫과 망치 대신 낫과 컴퍼스를 들고 설치는 자들을 봐. 독일놈들은... 기습을 받아 분산되면 그들은 어느 정도 싸울까? 제대로 될 거야. 성공시켜야만 해."


"월요일에 모든 군구의 야전군 사령관들을 소집하지. 내가 직접 말하겠네."


"행운을."


"행운을 빌며."



[극지의 폭풍]

1부

1화 도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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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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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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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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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사냥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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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1화 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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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급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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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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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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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나이트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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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붉은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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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라인의 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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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사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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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사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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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1화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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