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겐 힘이 있었다. 생을, 삶을, 인생을 선택할 수 있는 힘. 그 힘이 내게 있었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나는 30대 초반의 남성으로, 경기도의 어느 원룸에서 살고 있다. 다만, 남들과 다른 점은 게으른 히키코모리 백수라는 거다. 원룸에는 먹다 남은 배달음식들이 널브러져 있고, 읽다만 만화책은 바닥에 던져져 있으며, 이불도 개어져 있지 않다.


    "[DanteClub]: 제시요."

    "[제덴팩토리]: 8000만 제덴으로 되나요?"

    "[DanteClub]: 니미라면 그 가격에 팜?"

    "[제덴팩토리]: 니미?"

    "[DanteClub]: 님이요."

    "얼빵 돋고 앉아있네 진짜……"

    나는 게임이 켜져 있는 모니터 앞에서 담배를 물며 중얼거렸다.

    이것이 불과 얼마 전까지의 내 모습이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담배를 두 갑씩 피우고, 책상 앞에 놓인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끈다. 이 좁은 방 안에서 뿌리박고 살아가는 나를 사람들은 은둔자, 니트족, 히키코모리, 백수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부른다. 하지만 뭐, 엄밀하고 또 냉정하게 말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성공'을 할 수는 없는 법이고, 나처럼 능력도 없고 외모도 뚱뚱하고 못생긴 사람이 '그것'을 해낼 확률은 한없이 낮은 법이다.

    타의로, 또 자의로, 난 조금씩 이 환경에 적응해 갔고, 마침내 이 작은 세계에 대한 애착 어린 고착을 이뤄낸 지도 벌써 9년째이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보고 불쌍하고, 불행한 놈이라고 욕들한다. 하지만, 과연 내가 불행할까? 딱히 불행해야 할 이유가 있나? 나는 이 방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기본적인 의식주는 배달음식과 택배로 해결하면 되고, 게임에서 번 골드를 '아이템베이'에 올려 돈을 벌 수 있으며, 인터넷에 넘쳐나는 음란물을 마음껏 감상하며 성욕까지도 해소할 수 있다.

    실제 사회에서는 사회 밑바닥 취급을 받을지라도, 이 방 안에서 나는 타인의 평가를 받을 일도 없고, 또 게임 안에서는 상위 1%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사회에 나가 인간관계를 하고, 열심히 노동을 하며 살 필요가 있을까? 여기에 더해,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으신 부모님의 유산을 포함하면, 적어도 이 방 안에서 나는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았고, 세상 무엇도 아쉽지 않았다. 어차피,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이란 것은 그들만의 리그에서 그들이 만들어낸 불공정한 잣대에 불과하니까.

    그렇게 내 작지만 위대한 세상을 누리고 있던 그 어느 날, 점심으로 치즈를 추가한 킹사이즈 피자를 먹었던 그날, 피우던 담배가 다 떨어져 떡진 머리로 담배를 사러 나가던 그날, 평온하고 나른했던 오후의 어느 한순간, 그날 이후 내 삶은 극적으로 변했다. 현관문을 열고 나간 그 자리에, 또 방이 있었다.


    나는 황당한 이 상황에 어리둥절해 하며 방을 둘러보았다. 아날로그시계는 멈추어 있었고, 컴퓨터 게임은 접속이 종료되어 있었으며, 디지털시계는 00:00이란 숫자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날 그렇게 내 삶은 극적으로 바뀌었고, 이 극이 희극인지 비극인지 그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지만, 내 의지나 의사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정적은 끝도 없이 시작되었다.




    2

    '방 밖에 또 방이 있다!'

    너무나도 큰 충격에, 한참 동안이나 얼이 빠져 있었다. 내가 미쳐버린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수백 번 문을 여닫았고, 수천 번 창문을 여닫았다.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이 닫힌 공간을 벗어 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몇 날 며칠을 공포감에 휩싸여 절규했다. 끔찍한 폐쇄감에 못 이겨 발작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시간이 멈춘 이곳에서 나의 시간만은 흐르고 있었고, 모든 것을 치유하는 건 결국 시간이었다.


    정신을 차린 후, 나는 버려진 담배꽁초에서 담뱃잎을 모아 종이로 말아 피워봤다. 편의점에서 파는 담배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피울만했다. 하지만 재떨이에 든 담배꽁초는 양이 너무 적었다. 하루 두 갑씩 피우던 나는 너무나도 적은 담배의 양에 아쉬움을 느꼈다. 하지만, 그 고민은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다음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모든 것이 다시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또 이러한 시스템은 굶어죽는 것도 피할 수 있게 해주었다. 먹을게 떨어지면 문을 열고 다음 방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됐으니까.

    문제는, 남은 먹을 것의 종류였다. 남은 먹을 거라고는 피자 도우 두 조각과 택배 이벤트로 딸려온 생쌀이 전부였다. 살기 위해 입속으로 밀어 넣었고, 죽지 않기 위해 씹어 삼켰다. 다채로운 배달음식들에 익숙해진 나는 이 가공되지 않은 탄수화물들이 더럽게 맛없게 느껴졌다. 이렇게 연명하느니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매일 했다.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다. 많은 시간들은 나를 조금씩 단단하게 만들었고, 단단해진 나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피우던 담배를 끊었고, 빵과 쌀의 깊은 단맛을 깨달아 갔다. 소금과 설탕과 지방으로 사정없이 혀를 자극하던 가공물들에서는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맛의 본질을 깨우쳐 갔다. 피자, 치킨, 돈가스, 족발 따위보다 훨씬 맛있었다. 서서히, 하지만 엄숙하게, 나는 삶의 본질을 깨달아 갔다. 전적으로 나의 의지는 아니었지만 육식과 담배를 끊었다. 생식을 했고, 몸을 단련했다. 

    유희거리가 없으니 스스로 유희를 만들었다. 글을 썼고, 그림을 그렸다. 주어진 모든 시간을 나에게 집중하였다. 과거의 게으르게 않아서 게임만 하고, 고칼로리 음식을 섭취하며, 지나친 흡연으로 망가진 나의 몸은 서서히 정상화되었다. 매일매일 더 나은 인간이 되어갔다. 처음 감금되었던 순간과는 다르게, 감금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한 불만도 점차 사라져 갔다. 애초에 나는 집에만 머물러있는 히키코모리였으니 예전과 거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행복한가?'

    답은 '그렇다'로 결론을 내렸다. 나는 과거의 게으른 나보다는 훨씬 행복한 상태임이 분명했다.

  

    이후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로 수많은 날들이 흘러갔다. 그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날들 중 어느 날, 쌀이 떨어져 다음 방문을 열었던 날이었다. 아무런 예고와 징조도 없이 내 눈에 비친 것은, 똑같은 방이 아닌 건물 복도였다.

   



    3

    열린 문 앞에 멍하니 선 채,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생각했고, 이내 이 모든 감금의 생활, 신이 게으른 내게 내린 벌이 끝났음을 깨달았다. 가만히 이 방 안에서 내가 이뤄냈던 것들을 떠올려 보았다. 내가 이 원룸에 처음 감금당한 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마치 불가의 면벽 수행과도 같았던 나날들이었지만, 그 대가로 내가 얻어낸 것들은 결코 작지 않았다. 여기서 일궈낸 모든 것들은 내가 사회에 나가서 적응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다시 세상으로 나가면 고통과 갈등, 그리고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을 다시 맛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이제 알고 있다. 지긋지긋한 외로움 속에서, 가장 간절히 원하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사람과의 대화였다. 나는 걸음을 내디뎌 복도를 밟았다. 건물 내부인데도 시원한 바람이 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남겨진 방안의 비어있는 재떨이가 반짝이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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