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exPage

#1 Lazing on a Monday Afternoon (...Revisited)

#2 2018년의 2월에는 네 번의 화요일이 있었다고 하더라

#3 점심식사에는 120분 정도가 적당하다

#4 Have A Nice Day

#5 진실은 공상을 찢는가

새로운 시작 (완결)


#1 Lazing on a Monday Afternoon (...Revisited)

 

  감고 있는 눈에 빛의 감각이 파고든다. 알 수 없는 흐림 속에서 의식을 꺼내어 낸다. 나의 생명을 확인하듯 한 번의 깊은 들숨과 날숨은 코 주변에 증기의 감각을 만든다. 그리고 나는 밝고 따뜻한 햇볕에 이끌려 잠에서 깨어난다. 이제 서서히 눈을 뜬다. 바깥으로 보이는 건 시리도록 쾌청한 하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주택가 도심 풍경이다. 나른함을 느끼게 될 때쯤에 딱 알맞은 타이밍으로 바람이 불어와 얼굴을 간지럽힌다. 어쩐지 바람이 생각보다 ‘간지러운’ 것이 아니라 ‘까칠한’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시린 눈을 감고 양손을 외투 주머니에서 꺼낸다. 아무래도 시리도록 파란 건 하늘뿐이 아니라 지나갈 사람들의 입술도 인 것 같다. 약하게 부르르 떨리는 전신을 추스르면서 외투의 방한성에 감탄하면서 침대에서 일어나는데-


  어? 외투? 왜? 왜 왜투? 아니, 외 외투? 외? 왜투? 왜? 아니다. 외투가 맞다. 내가 방금 깨달은 두 개의 사실은 나의 언어가 붕괴를 일으킬 뻔하게 만들었지만, 다행히 이성을 되찾은 것 같다. 침착해서 칭찬해. 뭐, 사실 ‘일어나보니까 외투를 입고 있었다’라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좀 추우면 외투 정도는 입고 잘 수도 있는 거 아니겠어? 지금 꽤 춥다고, 여기. 하지만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내가 깨달은 두 번째 사실은, 내가 일어난 자리가 안타깝게도 침대가 아니었다는 거다. 굳이 침대에서 자란 법도 없잖아? 라고 물으셔도, 그 정도로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의 비일상으로는 나의 침착함을 깨부술 수는 없다는 말이지. 그래서 뭐가 문제였냐 하면, 내가 지금 있는 이 장소가 상당히 기묘하다는 점이었다. 


  여기서, 갑자기 들어온 다량의 신규 정보를 모두 처리하지 못하고 얼어붙은 사고회로를 가진 내가 여분의 사고회로를 열심히 돌려서 몇 가지 단서를 제시해 보도록 하지! 우선, 여기가 주택가 지역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것도 아주 평범한 풍경이다. 몇 채의 주택이 보이고 공원도 보이고, 그래서 이상한 점은 하나도 없다. 없었으면 좋았겠건만, 없었다면 나는 지금쯤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에서 일어났겠지. 하나 더, 내가 지금 궁둥이를 붙이고 있는 곳은 진회색 프레임에 덧댄 갈색 구조물. 마찬가지로 등도 같은 재질의 구조물에 기대고 있다. 그리고 창밖에 보이는 건- 어라? 창? 창?? 창문이 없어???


  응? 뭐냐고? 그게,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먼저 밝혀두자면 오늘은 2월. 마지막으로 달력을 본 게 2일이던가? 이월이일인지이일이월인지. 그러니까 오늘도 2월이라는 거다. 감각으로는 현재 바깥 기온은 영하 10도 정도나 될 것 같다. 결론: 이런 날에 바깥에서 한가하게 주무시는 분들은 그대로 숨지시기 딱 좋은 날이다, 이거지. 그리고, 여기, 그 정신 나간 짓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퀴즈. 아침에 일어났더니 주택가 벤치에서 자고 있었던 당신! 그런 당신은 누구일까요? 오늘이 봄이나 가을이었다면 뭐 잿빛 사우스 코리아의 도심에서 자기 혼자 1970년대 서유럽 분위기를 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고, 아니면 외투를 기본 장착 아이템으로 상정해서 스트리트 레지던트(유감) 정도로 생각해 볼 수가 있겠다. 혹은 여름이라면, 열대야를 피해서 자진 야외취침을 한 일반인 A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지난여름은 그렇게까지는 덥지 않았다는 말이지. 혹시 이러다가 지구가 분출하지 못한 열적 욕망이 한꺼번에 터져 나와서 올해는 한 3일 연속으로 기온 39도를 찍는다거나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참고: 모범답안은 [머리를 자른다.] 입니다. 예? 자를 머리가 없으시다고요? 아니, 그보다, 머리가 없는 사람이 있어요? 설마? 머...머리...가...?) 그런데 오늘은 겨울이다. 이런! 혹시 나는 자살시도라도 실패한 몸이란 말인가? 이럴 줄 았았으면 여름에 성실하게 매일같이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는 거였는데....... 그러니까, 지금이 영하 10도라는 느낌은, 내가 자는 동안에는 한 영하 20도쯤 되는 때가 있었을 수도 있었을 수도 있었다는 거다 - 뭔 소리래. 즉, 여기서 자고 일어나는 날에는, 벤치가 아니라 관속에서 일어나게 될 거라는 말씀! 물론 여기는 관이 아니라 벤치다. 


  여기까지 생각하게 된 나는 곧 두 가지의 가장 적절한 가능성을 상상하게 된다. 먼저 첫 번째는 '관이 없는 경우'이다. 간단히 말해서 내가 뭐 유령이라도 된 것은 아닌가 하는 발칙한 상상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상상은 재미로나 하겠지만, 지금의 나는 보통 사람이 예상하기 다소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 길거리에서 잠을 청했다가는 얼어 죽기 딱 좋은 정도의 뺨을 베는 체감온도를 온몸으로 느끼는 사람 치고 자신의 생존 여부에 그 어떤 의심도 하지 않을 사람은 없겠지, 아마. 따라서 이런 허무맹랑한 가정이라도 멋대로 무시할 수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라고는 말했지만, 뭐야 이거, 웃기기만 한데? 얼토당토않은 '그 상상'을 검증해보기 위해 나는 큰 용기를 내어 땅바닥에 첫 발자국을 남겨보는데, 땅바닥의 내딛는 감촉도, 약간 사용감이 있어 보이는 운동화의 평범한 쿠션감도 그저 평범하게 느껴질 뿐이다. 안타깝군.... 아니 뭐가? 나는 물론 비록 유령이 되어본 적은 없지만, 다양한 매체를 통한 경험을 토대로 생각하면 모름지기 유령이란 물건이든 벽이든 통과해서 다니고 그러고, 또 공중에서 둥둥 떠다니고 그랬으니까. 뭐 일단 유령은 아니라는 건가. 그나저나, 둥둥 떠다니는 유령은 어떻게 해서 추진력을 얻는 것일까? 되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그다음 두 번째는, 바로 나의 신체 개조 가능성이다. 무슨 말이냐고?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영하의 추위를 자면서 견뎌내는 일은 있기 힘들다. 그 왜, 뉴스에 보면 겨울에는 노수... 아니, 그 '스트리트 레지던트' 들이 동사하고 그러지 않았던가. 나에게 노숙 경험이 전혀 없다는 희망적인 가정하에 일반적으로 겨울에 야외취침을 하고 멀쩡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따라서, 답은 비상식적인 영역에 있는 것이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나의 신체 개조이다. 돌이켜 보면, 지금 상황은 나에게는 상당히 당황스러운 것이다. 어느 날 눈 뜨고 일어났더니 야외의 벤치였더라, 는 무슨 영화냐고. 나는 다른 사람의 원한을 산 기억도 없는데 말이지. 그러니까, 사실 나는 모종의 이유로 모종의 기관에 의해서 선택받은 사람이었던 것이고, 모종의 과정을 거쳐 모종의 능력을 얻은 채 여기에 모종의 이유로 떨구어져 있는 것이다 - 라고도 생각해 볼 수도 있는 것 아니겠어?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 이상의 비일상을 견디기 힘들어진 나는 눈 바로 앞의 구조물 - 지하철역 입구로 발걸음을 옮긴다. 지하철, 하면 보통의 사람들은 무엇을 떠올릴까? 아마도 출퇴근 시간의 지옥철이 아닐까 싶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나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내가 지금 서 있는 이곳, 지하 플랫폼에는 묘한 적막감이 흐르고 있다. 열차가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않는 애매한 시간대인 것 같다. 정지한 공기의 상쾌함을 마음껏 만끽하면서 나는 주변을 둘러본다. 계속해서 나를 괴롭히는 혹시나 하는 생각은 계속해서 나를 의심하게 하고, 지나가는 사람을 아무나 붙잡고 "혹시...... 제가...... 보이, 시나요?"라는 대사를 하고 싶은 충동은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대단히 안타까운 사실에 의해 좌절된다. 뭐? 저기 지나가는 건 사람이 아니면 뭐냐고? 음, 그건 아마도 환각일 거다, 환각. 나한테는 보이지를 않으니까 말이지. 저얼대로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그런 멍청한 소릴 하는 게 부끄러워서 그러는 게 아니니까. 나의 이상한 망상에 사로잡힌 것은 절대 아니지만, 그래도 호오옥시나 하는 마음에 나의 모습을 확인해 보려고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러자 나의 소시민적 근성과 꼭 어울리는 소재인 투명 아크릴 패널이 눈에 들어온다. 그 대사, 다시 한번 말해보라고? 음, 방금 내가 나의 부정적인 일면을 순순히 인정한 것 같이 들렸다면 그건 분명 기분 탓인 거니까 가볍게 무시하면 되는 거 아니겠니. 


  그렇게 내가 멈춘 곳 앞 벽의 투명 아크릴 패널에는, 다행스럽게도 하나의 형상이 비치게 된다. 안타깝게도 재미있는 몇 가지 상상이 논리적인 이유로 부정된 것에 대해 약간의 아쉬움을 느끼며 나는 그 패널에 보이는 모습을 들여다본다. 이 사회가 '인간이 가지는 외모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질 때 그 범위 안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무어라 형용할 수 없지만 어쨌든 부정할 수는 없는 바로 그 모습이다. 내가 왼손을 들면 아크릴 패널에 비친 어떤 손도 같이 들린다. 다행히도 오른손이다. 돌다리도 한번 두들겨보면 부서질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안심보다는 의심을 우선시하며 살아가기로 작정하면서 나는 혹시나 해서 옷의 주머니에 슬그머니 손을 넣어 휘저어 본다. 나는 저얼대로 어떤 얼토당토않은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이고 비이성적이며 그야말로 황당무계하기 그지없는 망상에 휘둘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호오옥시나 해서 소형 권총이나, 아니면 이빨로 깨물기 딱 좋아 보이는 크기와 강도의 유리 앰풀 안에 담긴 사이안화칼륨이 있을까도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아닌 모양이다. 사실은 조금 전에 내가 혼자서 아크릴 패널 앞에서 얼굴이 살짝 풀리는 것을 보고 지나가던 어떤 사람이 이상하게 쳐다보거나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적극적인 피해망상에서 비롯된, 무언가 자연스러운 연계 동작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나의 결정에서 나온 행동이었지만, 뭐 자연스러웠으면 된 거잖아?


  옷의 주머니는 그 개수가 많지 않았다. 그리고 거기에서 나온 것들을 전부 해 봐야 이런 것들이었다; 지갑, 그리고 한 대의 휴대전화. 지갑 안에는 아크릴 패널 속의 얼굴을 한 신분증과 두 개의 출입 카드가 있다. 휴대전화는 나의 지문으로 열리고 전혀 특이한 점을 찾을 수 없는 배경화면이 나를 맞이한다. 안타깝게도 걸려온 전화는커녕 알림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이제는 내가 어디서 무슨 짓을 하다가 여기서 이렇게 일어나게 되었는가를 생각하기보다는 순전히 나의 안쓰러운 인간관계와 사회생활 전반에 대해 깊은 성찰의 시간을 보내 본다. 영화의 제목이 나온 이후에 나올 첫 장면으로 쓰기에 어느 정도 적합해 보일 정도의 급전개스러운 하루의 시작을 마주한 나에게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는 건지, 아니면 신경 쓰는 사람이 없는 건지. 이 생각을 계속하다가는 어디선가 본 슬픔이 떠오르리라 생각하면서 나는 눈앞에 있는 지도를 들여다본다. 내일의 일은 내일에, 어제의 일은 어제에 맡겨두기로 한 나는 지금까지의 일련의 과정에서 내가 일어나기 전날의 일을 전혀 개의치 않기로 한 나의 판단을 돌아보고서는 새삼 감탄한다. 그리고서는 지도 위의 주소 표시를 유심히 들여다보는데, 신분증에 적혀 있는 '그 주소'에서는 별로 멀지 않은 곳인 모양이다. 일어날 때 보았던 풍경이 어디선가 본 모습이었던 것은, 분명 와서 앉아본 적은 없는 벤치였지만 집 근처였기에 오가면서 눈에 들어온 적이 있었기 때문이겠지. 아무튼, 어디 멀리 이상한 곳에는 떨어지지 않은 모양이니 다행이다. 나의 현재 지갑의 구성물로 보았을 때, 만약에 기차나 비행기라도 타야 하는 곳에서 일어났다면 꼼짝없이 (배낭이나 깃발도 없는데) 국토대장정을 시작하거나 아니면 고향으로 돌아갈 차비를 벌기 위해서 일용직 노동을 하고 있다는, 분명 몇십 년 전의 텔레비전 방송용 사연 같은 인생을 살 뻔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나의 지갑 속에 신용카드가 한 장 들어있었음을 기억하고서는 나의 망상을 비웃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러고 보니, 집 근처의 벤치 대신 말이 통하지 않는 어느 공항의 한 가운데였어도 충분히 잘 팔릴 것 같은 소재인 것 같은데 말이야. 


  지하철역 바깥으로 나가서 어째선지 아까보다 더 추워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나는 건널목을 건너고 나서 몇 채의 일렬로 늘어선 건물 중 가장 끝에 있는 건물 앞에 도착한다. 평범하게 생긴 문을 주머니 속의 출입 카드로 열면서, 혹시 몇십 년을 냉동인간 상태로 보내다가 다시 모 지하 조직이 모종의 이유로 깨운 것은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해본다. 그 왜, 아마도 냉동인간으로 지냈으니까 추위에 조금 익숙했을 수도 있는 거잖아? ...잖아? 물론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것 같지는 않지만, 전혀, 절대로 말이야, 라고 말하면서 다시 휴대전화를 켜보니 오늘은 2018년이다. 저런. 


  내가 둘러보는 집은 특이한 점이라고는 없다. 오히려 특이한 점을 들자면 사람의 기척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까 전의 휴대전화를 생각하면서 집을 한 바퀴 휘 둘러본 나에게는 다시금 어딘가의 슬픔이 떠오른다. 환기도 잘 되어있지는 않았는지 지하철역의 플랫폼에서 느낀 것과 같은 상쾌한 적막감이 아닌, 그저 난방을 틀어놓은 조금은 답답한 공기의 흐름만이 느껴진다. 현관에 신발을 벗어두면서 나는 조금 전에 휴대전화를 확인하면서 혹시나 문을 열어둔 것은 아닌지 하고 뒤를 돌아보지만, 문은 제대로 닫혀 있었다. 아니 그보다, 뭔가 문을 그냥 활짝 열어두고 살아도 올 사람은 없는 것 같은 인간관계인 거 잖아, 나. '휴대전화'라는 말에서 갑자기 굉장한 위화감을 느낀 나는 다시금 휴대전화기를 확인해 보는데, 이런. 놀랍게도 오전이 아니라 오후다. 그렇지, 아무리 그래도 내가 새벽 오전 네 시에 일어날 리는 없지. 그러면 지하철역에 사람도 없었을 테고. 그렇다면, 나는 대체 얼마나 그 한파 속에서 자다가 온 거냐, 응? 보통 너라도 2월의 어느 겨울날 아침에 집 근처 공원에 가서 낮잠을 청하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야. 


  다시금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함과 놀라움을 느끼면서 나는 방문을 열고 들어가 침대에 걸터앉는다. 이 집에 딱 하나 있는 침대. 그것은 무려 1인용인 것이다. 이 이상 '1인'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할수록 어째선지 더욱더 어딘가의 불쾌한 감정이 생각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나는 침대에 그대로 드러누워 본다. 지금은 당장이라도 잠자리에 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런 곳에서 그런 꼴로 일어났는데 당연히 피곤하지 않겠어? 오늘의 침착한 나, 칭찬해. 아주 칭찬해. 그러니 그 침착함의 연장선에서 따듯한 물로 샤워를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보상일 것 같다는 말이지. 그리고 아주 짜릿하고 기분 좋게 잠을 깊이 자는 거지. 방 옆의 욕실 문을 열면서 들어간 나는 우선 욕실에서마저 느껴지는 삭막함에 감탄하면서 무엇보다도 먼저 양말을 벗어본다. 일단 발가락은 모두 온전한 모양이다. 둘, 넷, 여덟, 여섯, 열. 열 개 제대로 있다. 응? 이상하다고? 뭐가?? 


  오늘 내가 신고 있었던 양말은 조금 두꺼워 보이는 겨울용이었다. 그래선지 나는 심한 동상을 입은 것 같지는 않다. 아니 그보다 이거 완전 멀쩡한데? 하마터면 잊어버릴 뻔했지만 내가 잠을 잔 시간은 새벽까지가 아니라 낮까지였으니까, 아마도 나의 신체는 영하 16도의 날씨보다는 영하 5도의 날씨에 더 적합한 모양이다. 그래서 그게 도대체 뭔 차인데. 발가락이 동상에 썩어나간 모 극지 탐험가가 수술 후에 느꼈을 묘한 상실감에 애도를 표하면서 나는 요전에 지하철역에서의 재미있는 생각을 다시 떠올려본다. 현재 상태까지 고려해 보았을 때, 아무래도 지금의 나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가능성은 바로 나의 신체 개조 프로젝트의 가동이라는 거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욕조 옆의 욕실 벽타일을 주먹으로, 평소라면 없었을 어째선지 지금은 샘솟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조금 세게 쳐본다. 그리고 나는 평소라면 없었을 어째선지 지금은 샘솟는 통각을 팔 전체에서 느낀다. 꼴사나운 비명이 입 밖으로 새어나가는 것을 막지 못하며 나는 이 집이 방음시설의 성능이 종잇장의 그것과 다를 바 없는 어딘가의 고시원이 아니라 단독주택이라는 사실을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얌전히 욕조에 들어간다. 분명 아까는 샤워하겠노라고 들어왔지만, 오늘의 정신·육체적 노동강도를 생각하면 반신욕 정도는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으로 자신과 타협하면서 욕조에 들어간다. 수전에서 쏟아져 나오는 온수는 아마도 얼어버리기 직전이었을 양 발끝에 닿으면서 저릿한 느낌을 만들어낸다. 음, 아마도 신체 개조를 위해서 외계인에게 붙들려서 전기 고문을 당한다면 이정도 강도가 딱 좋겠구나. 외계인을 고문해서 CPU를 만든다면, 과연 외계인이 고문해서 만든 인간은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저릿한 감각이 사라짐을 느낀다. 그와 동시에 전신을 타고 올라오듯이 느껴지는 온기가 나의 살아있음을 다시금 짐작하게 해준다. 머릿속이 비워지고, 그 뭐랄까 그냥 바보가 된 듯 짜릿하게 기분이 좋은걸! 이상한 의미는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길.


  온수와 함께하는 기분 좋은 시간을 뒤로하고서 다시 방으로 돌아와 옷장에서 적당한 잠옷으로 입을 만한 것을 꺼내 입은 나는 어째선지 화장대가 아니라 책장 가운데에 놓여있는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면서 침대에 누운 채로 오늘 하루 있었던 일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그래, 생각이다. 

 

  먼저, 나는 생각한다.

나는 오늘 야외의 어떤 벤치에서 일어났다. 내가 날씨가 매우 추운 겨울날에 잘도 밖에서 잠을 자고 있었음을 알아차린 나는 내가 살아는 있는지가 궁금해졌고, 그래서 벽에 나의 모습을 비추어 보기도 했고, 그러면서 조금은 실없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내가 선 앞의 벽에는 나의 모습이 보였다. 나의 옷 속에 들어있는 나의 지갑에는 나의 신분증이 들어 있었고, 나의 옷에는 나의 집 열쇠가 들어있었다. 나는 나의 집에 돌아와 피곤함을 느끼고 지금은 잠을 자려 한다. 그리고 나는 이제 나의 휴대전화에 다시금 나의 얼굴을 비추어 본다.


그리고 나는 생각해 본다. 내 생각에서 가장 크게 모자란, 가장 중요한 부분에 대해. 지금까지 내 생각으로는 나는 아무 이상할 바 없는 일상의 하루를 보낸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뭐, 야외 취침에 관한 부분은 넘어가자고.). 그러나 그런 하루를 보내기 위해서 나는 내가 일어난 다음부터 지금껏 아마도 한 개인이 발휘할 수 있는 최대한의 평정심을 끌어모아야 했다. 왜? 내가 어딘가에서 진탕 술이라도 퍼마시다가 왔다거나, 아니면 어딘가에서 몸을 혹사하다가 쓰러져서 자의 혹은 타의로 그 벤치에서 깨어났다는 해석으로는 오늘 나에게 요구된 실로 인간의 한계에 도전할 정도의 평정을 설명할 수가 없다. 이것은 기억 상실과는 또 다른 무언가다. 그야 지금은 저녁이니 아침 드라마를 방송할 시간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나에게 평정이 필요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왜 가장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 자체를 외면해 왔는가, 아니 왜 그래야만 했는가? 내가 찾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이유는 바로 생존이다. 생존. 오늘 하루 나는 비록 발가락은 동사하지 않았지만, 어딘가의 크레바스를 건너는 등정가만큼이나 위험한, 마치 살얼음판과도 같은 하루를 걸어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지금부터 판단한다.

 

  나는 다시금 생각해본다. 이번에는 마음을 다잡고, 각오를 다진다. 외면해온 모든 부분에 대해서 생각한다.
나는 오늘 야외의 어떤 벤치에서 일어났다. 내가 날씨가 매우 추운 겨울날에 잘도 밖에서 잠을 자고 있었음을 알아차린 나는 내가 살아는 있는지가 궁금해졌고, 그래서 벽에 나의 모습을 비추어 보기도 했고, 그러면서 조금은 실없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내가 선 앞의 벽에는 어떤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내가 입고 있던 옷 속에 들어있는 어떤 이의 지갑에는 어떤 이의 신분증이 들어 있었고, 그 옷에는 근방의 어떤 집 열쇠가 들어있었다. 나는 그 집에 돌아와 피곤함을 느끼고 지금은 잠을 자려 한다. 그리고 나는 이제 그 휴대전화에 다시금 나의 얼굴을 비추어 본다. 그 휴대전화의 꺼진 액정 화면에는, 어떤 이의 얼굴이 들어차 있다.


  오늘 나는 어딘가에서 언젠가 깨어났다. 차가운 공기의 흐름이 나의 전신을 찌르고 이제는 오후였음을 알게 된 그 햇빛이 미약하게나마 온기를 주었다. 눈앞에는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는 황량한 거리가 있었고 등 뒤로는 몇 채의 평범한 주택 건물들과 조금 먼 거리에는 다른 건물들이 있었다. 옆에는 언덕인지 산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무가 많이 보였고 주유소가 보였다. 지하철역도 보였다. 벤치도 있었다. 자동차도 있었다. 모두 내가 아는 것들이다. 그리고 모두 내가 모르는 것들이다. 휴대전화 화면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나만이 들을 수 있는 아주 큰 목소리로 묻는다. 

 

너는 누구냐?

 

  처음부터 이 의문을 가지고 왔다면 아마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진짜로 그 자리에서 동사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는 못하겠다. 나 또한 그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눈을 뜬 순간부터 어째선지 내 정신은 맑았고 그렇기에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 어느 때보다도 적극적으로 외면해왔다. 가장 근본적인, 핵심을 관통하는 질문은 던져둔 채 주어진 환경을 멋대로 해석하고 내 편한 대로 이용해서, 결과적으로 지금 나는 여기 푹신한 침대 위에 누워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지금 마음 놓고 아무 생각 없이 좋은 꿈을 꾸고 잘 수 있을까? 나는 '그 신분증'에 찍혀있는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라고는 전혀 없다. 그 사람과 비슷한 모습을 했을지도 모르겠는 내가 소시민적 기질이 다분하다는 개인적인 감상 외에는 그 무엇도 무지의 베일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 '나'는 지금의 나일 수도 있고, 내가 '나'의 복제인간일 수도 있고, 아니면 모종의 과정을 거쳐 비슷하게 만들어진 제삼자일 수도 있다. 나는 그저 아무것도 모를 뿐이다. 아무것도 상상하고 생각하지 않으려 할 뿐이다. 그러나 이제 이 상황은 나에게 도망칠 공간을 주지 않았다. 지금부터는 온전한 나의 시간이다. 그 어떤 농담도, 불평불만도 더이상은 통하지 않는다. 오늘은 내가 진실과 마주하기 위해 주어진 최소한의 생존의 기회인 것이다. 억눌러왔던 공포감과 당혹감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면서 나는 옷장 서랍에서 잘 쓰지 않을 것 같은 담요 서너 장을 꺼낸다. 그리고 방 바깥으로 나온다. 나는 몸에 담요를 두르고, 머리에 다른 하나를 감고서 소피 밑으로 기어들어 간다. 내가 보통 수준의 체격인 것과 소파가 바닥으로부터 어느 정도 높이가 있는 제품이라는 사실에 감사하면서 적당히 자리를 잡는다. 그 좁은 틈에서 어떻게든 안정적인 자세를 잡은 나는 이제 마음을 진정시키고 잠을 자려고 한다. 이 집의 주인이 오지 않기만을 기대할 뿐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바로 지금 이 시각에 다른 물음으로 바뀌고 있었다. 

 

나는 여기에 왜 있는가?

 

  나는 나의 존재의의 자체에 의문을 품은 바로 그 순간에 나는 지금까지 들었던 오늘의 생각과는 다른,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무엇을 느낀다. 만일 다른 누군가가 같은 느낌을 받았다면 그는 이를 달리 형용할 방도가 없는 공포라고 칭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의 나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지금 나는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지금 내가 느낀 이것은, 내가 지금까지 느꼈을, 앞으로도 느끼게 될 것 중에서 가장 강렬하고 차가운 감각이었고, '누군가의 진정한 공포'였다. 나는 어떻게든 이 생각에서 벗어나야만 할 것이다. 나는 이제는 이것을 극복해내지 못하는 나에게 내일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결론적으로 나는 다음의 생각으로 회귀한 채 불안한 취침을 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오늘 어딘가에서 일어났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다만, 가지고 있던 휴대전화에 기록되어 있는, '오늘부터 일주일간의 휴가'에 많은 것들을 걸어보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너는 이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