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심신미약자는 본 소설을 읽는데 주의하여주시기 바랍니다.



화력을 높인 불에 팬을 달군다. 거기에 두툼하게 썰어낸 고기를 올리면 치이익 하는 먹음직스러운 소리와 함께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달짝지근한 냄새가 코끝을 간질인다. 저도모르게 침을 꿀꺽 삼켜버리고 만다. 

얼마 안가 윗면에 빠알간 육즙이 맺히면 굵은 소금을 흩뿌리고, 그라인더를 돌리며 후추를 뿌려 밑간을 한다. 그리고 뒤집는다. 아랫면이 아주 잘 익었다. 후추를 한번 더 뿌리고 너무 익어버리기 전에 스테이크를 꺼내어 접시에 담는다. 

레스토랑이라면 소스를 뿌리거나 파슬리를 얹거나 아스파라거스를 곁들이거나 하겠지만, 지금 대접하는 이 분께는 그럴 필요가 없다. 그저 고기 본연의 향과 육질을 돋우는것으로 충분하다.

포크와 나이프를 챙겨 접시와 함께 소반에 담는다. 주방에서 빠져나와 사랑방으로 향한다. 사방으로 스테이크 냄새가 퍼져나간다. 

문지방 앞에서 잠시 기다려 인기척을 낸 후 허락을 구한다.


"'조리'가 다 되었습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거라"


무릎을 꿇고 옆에 소반을 잠시 내려두고 미닫이문을 열자,

천지가 진동하며 거대한 화산이 분출하고, 새빨간 화산탄이 포물선을 그리며 하늘을 날아 구름을 꿰뚫는다. 꼭대기에 앉아있던 만년설은 이미 꾸덕한 용암에 녹아 사라졌고, 날름거리는 불꽃이 숲을 갉아먹으며 잿더미만 남겨둔다.

압도적인 풍경을 그리는 병풍 앞에는, 가녀린 여인이 팔짱을 낀 채 방석을 깔고 앉아있다. 그러나, 그는 산을 타고 내려오는 용암에 희생당하는 역할이 아니다. 머리 위로 솟아오르는 화산탄은 그의 분노를 보여주는것 같고, 흘러내리는 용암은 그의 수족인듯 좌우로 갈라지며 주위를 에워싸고, 커져가는 산불은 금방이라도 그림을 넘어  방을 불태울듯 하며, 마치 매캐한 연기가 그림을 뚫고 내 코를 틀어막는듯 그의 위광 앞에서는 숨조차 쉬기 힘들다.


그러니 잠시 숨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뜨고, 깊게 한숨을 쉬어 긴장을 푼다.


"후우. 그러니까 이 짓을 할때마다 꼭 그러셔야겠습니까?"


일부러 분위기에 안어울리는 맥빠지는 말투로 툭 던져준다.


"킬킬, 아무렴, 이것도 아주 중요한 절차다. 저기 마당에 엎드린 녀석들한테 자기가 무엇을 마주하고 있는지 확실히 느끼게 해줘야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하지만, 백번 듣는것보다 한번 보여주는것이 낫다. 신이란 그런 것이다. 백날 설교해야 인간들은 듣는 척이나 하면 다행이다. 그러니 일부러 자신의 위광을 드러낸다. 기적을 행사한다. 그렇게 자신이 우월한 존재이며 너희들보다 위에 있다고 과시한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흰소리는 집어넣고, 맥빠지는 소리나 한번 뱉어주고 소반을 대령한다.

거의 동시에 바깥에서 우렁찬 외침이 들려온다.


"세월을 거듭하며 불화산의 분노를 억눌러주시는 신이시여! 올해도 가장 신선한 제물을 준비하였사옵니다! 부디 이를 음복하시옵고 축복하시어 언제나와 같이 저희 마을에 평화를 내려주소서!"


"""내려주소서!"""


"킬킬킬킬, 매년 하는 짓이지만 참 질리지도 않는구나. 고작해야 일개 잡신에 불과한 한 몸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저 꼴들이 참으로 우습구나. 암, 평화를 내려 줘야지. 이 제물을 축복하고, 저 화산을 잠재워 줘야지. 일찍이 세상의 모든 곤을 발 아래에 두던 권세는 모조리 흩어지고, 저 산 하나나 겨우 터 삼을 지경으로 영락해버렸지만, 여기 너희들이 이리도 나를 신앙해주니 꼴에 신이라면 응당 기도에 응답해줘야겠지!"


눈앞에 용암의 화신은 포크로 거칠게 스테이크를 찍어 통째로 입으로 가져간다. 겉보기에는 여인의 모습이면서도 입을 다 다물지도 않고 고기를 우적우적 씹어 삼킨다.


그리고 눈이 크게 떠지고, 입이 벌어진다. 눈과 입이 점차 불타오른다.


"이것으로 너희들의 살이며, 너희들의 피를 잘 받았다. 올해도 나는 너희들의 믿음으로 연명했으며, 이로써 너희 역시 산의 분노 없이 일년을 연명했다."


그렇게 외치며 크게 뜬 눈과 입은 샛노랗게 불타고 있었고, 곧이어 반투명한 영체가 눈앞의 여인으로부터 빠져나왔다. 노랗게 이글거리는 눈, 입에서 빨갛게 날름거리는 것은 혀인지 불꽃인지 구분이 가지 않고, 산맥과 같이 솟음치는 등뼈는 온통 산불에 불타고 있었다. 어느새 불타는 호랑이는 내 앞에  서 있다.


아니, 자신이 빠져나온 여인을 마주보고 있다.

그러고는 깊게 울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아이야, 언제나 그렇게 어울리지도 않는 위광을 과시하는구나. 슬프다면 울어라. 자신이 타락했다 생각하면 목놓아 울어라. 같잖은 연기로 스스로를 속이지 말고 슬픔에 울고 또 울어라. 차라리 슬픔에 몸을 내던져 스스로의 몸에 불을 붙이거라. 불에 몸을 맡기고 나와 함께 산에 오르자."


그러나 오래 봐온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서글픈 목소리였다.

그리고 오래 봐온 나는 이 다음도 짐작이 됐다.


"하하, 산? 아니, 나는 사람이야. 너같이 다죽어가면서도 죽지못해 버티는 잡신따위와는 다른, 얼마 못살고 죽어버리는 사람의 아이야. 그러니 누릴 수 있을때 이 권세를 다 누리겠어. 실컷 즐기고 신명나게 놀다가 마지막에 콱 죽어버릴꺼야. 지금 이 한 철이 내 인생 최후의 만찬이야!"


신이 빠져나간 여인은 절규한다.


"그리도 유순하고 우물쭈물하던 꼬마 울보가 어찌 이리 당차게 커버렸는고. 허나 잊지 말거라. 네가 누군지 잊지 말거라. 네가 누군지 자신이 누군지 적이 누군지를 혼동하지 말거라."


호랑이는 뒤돌아 문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 꼭 한마디를 흘려주고 나간다.

손바람을 일으켜 촛불을 끄면 마지막 불꽃이 펼쳐지듯이

"네가 먹은 이가 누구이며 너에겐 무엇에 불과한지, 사람의 업을 먹음으로써 그 업을 소화시킨다는 의미를 잊지 말거라."

그리고 꺼진 촛대에 열기는 찾을 수 없고, 남은 연기만 흩날린다.


톡...


토톡...


쏴아아...


바깥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용암은 자신의 불을 꺼뜨리고, 물의 차가움을 껴안으며 단단한 바위로 굳어간다.

그리고, 매년 신을 그 몸에 받아들이며 만찬의 의식을 집전하는 무녀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선택받아 울며불며 매달려도 강제로 신위에 앉혀져버린 아이는,

사람의 아이로 태어나 다른 사람의 아이를 음복하는 화신은,

더이상 사람의 업에 때타지 않고, 

오히려 사람의 업을 양식삼아, 

사람들의 손에 떠받들여진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싫어도 처절하게 깨닫고 말아버리는 오늘만큼은.

친우의 품에 숨어 아무도 몰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목놓아 울 뿐이다.


언제나 자신에게 최후의 만찬이라던 아이를 두고, 절친했던 친우는 오늘도 홀로 늙어간다.




신이 사는 세상은 인간과 다르다. 신에게 필요한 양식은 오직 하나, 인간의 신앙. 아무리 고기가 풍족해도 인간에게 잊혀져버린 신은 결국 굶어죽고만다. 나는 너무 오래 굶주렸다.

이 강산을 너무 오래 지배해와서일까, 하늘의 신들이 지상의 신들을 공격했다.

불타는 태양이 화산을 집어삼켜버렸다.

교차하는 섬광이 백성들을 뺏어갔다.

그리고 인간들은 신 없이 사는 방법을 터득했다.


살아남기 위해서 하는 수 없다. 남은 힘을 끌어모아 화산 하나를 거의 터뜨렸다. 공포로 신앙을 긁어모은다. 매년 바치는 인간의 고기는 알기 쉬운 신앙의 증표이자 스스로 자각하는 족쇄이다. 이를 매개로 그들이 두려움과 경배를 바치게 한다. 그것을 양식으로 삼는다. 보상으로 재앙이 일어나지 않고 오늘을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 신이 인간을 상대로 공갈이나 칠 정도로 영락해버렸구나.

그러나, 어찌한다.

이 화산마저 점차 식어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