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기기관이 뜨거운 열기를 식히는 소리, 쇠파이프가 연기를 뿜어내는 소리 등이 귓가를 때려오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창밖에서는 사람들의 야유와 거친 외침이 들려온다. 요즈음, 노동자들이 대규모 인사조정으로 직장에서 잘리는 바람에, 대규모 노조를 구성해서 폭력 시위를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이 나라의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기업- 회사명은 잘 모르겠다. 워낙 집 밖에 나가질 않아서, 그러나 이 방 안에도 그 기업 제품이 몇 있을 것이다. -이 절대로 지치지 않는 사람들을 노동자로 고용했다 한다. 피부는 강철같고, 코에선 뜨거운 김이 나오며, 물 대신 기름을 마신다는... 마치 설명만 들어선 어딘가의 신화에서나 나올법한 괴물인 것 같다.


여튼간에, 마구잡이로 거리에 내몰린 노동자들이 모여서 시위를 하기 시작했는데, 이게 처음엔 평화롭다가- 믿기진 않겠지만, 실제로 그 기업의 (아직 잘리지 않은 유능한)상사나 후임과 집회가 끝나고 뒷풀이 회식에 초대받은 적도 있었다. -퇴직금을 다 쓸 때까지도 일자리를 얻지 못하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들이 더더욱 격하게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햐, 살벌하네... 저런 무기를 일개 노동자가 어떻게 구한거야?'


아니나 다를까, 시위자들 중 몇몇은 유혈사태까지 감안한 듯, 리볼버 권총 정도는 호신용의 무장인데다가, 무쇠 배트에 딱 보기만 해도 살벌한 전선을 감아놓고, 체인에-


'허, 슈퍼 아머까지? 시민 거주 구역에서 테러라도 할 기센데?'


-사용자가 기체에 탑승하여 비약적인 육체적 능력치 향상이 가능한, 모 군수시설의 신제품까지.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는 얘기만 들어봤지, 실제론 처음보는 광경이라 자동적으로 입이 벌어졌다. 물론-


'설마 여기서 싸우려고? 아니겠지? 짐 싸서 도망가야 하나..'


-나 자신의 안위 때문이다. 저 사람들이 기업을 이기는 기염을 토하든, 거대 자본 앞에 무릎을 꿇든, 내 알 바가 아니다. 원래였음 활짝 열려있을 앞, 뒷, 옆집의 창문도 굳게 닫혀있는 것을 보니, 다들 비슷한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럼 앞문으로는 못 나갈 것 같으니, 뒷문으로 나가야 되나?'


요 며칠 사이, 옆집에 사는 친구- 여자이지만 3살 때 부터 함께였기에 거울로만 볼 수 있는 내 얼굴보다 더 익숙한 전혀 이성으로 느껴지지 않는 -가 제발 밖에 나가 바깥 공기도 쐬 보고, 일자리도 구해보라 닦달이라 오늘 나가겠다고 얼떨결에 약속했지만,


'아니지, 이런 상황이면 나가선 안 돼. 한 패로 오해받으면 어쩌려고? 아쉽지만, 오늘은 쭉 집에만 있어야겠어.'


한 가정의 생존이 달린 문제라도, 나에겐 그저 문 밖으로 나가지 않기 위한 귀차니즘의 희생물이 될 뿐이다. 뭐, 세상사 다 그런거 아니겠어. 일단 저 사람들 때문에 다 못잔 잠이나 자볼까, 하며 침대에 누워 다시 잠을 청했다. 시간은 소중하니, 1초가 아깝지 않게 모조리 잠에 투자해야지.


*  *  *


얼마나 지났을까, 난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시간을 확인하고자 창 밖을 보니, 해는 이미 달에게 쫓겨 성벽 너머로 넘어가고 있었다. 우리집에 찾아올 사람은 뻔하니, 옷을 챙겨입지도 않고 등이나 긁으며 문을 열었다.


"아 씹, 내 눈!"


역시나, 일전에 말했던 그 친구다.


"니가 사람 취급을 받으려면 적어도 문명의 시초인 옷 정도는 입어라, 좀!"


"너한테 사람 취급 못 받을 바엔 차라리 죽지."


"어, 제발 좀 그래라. 됐고, 너 오늘은 세상 마중 좀 했지?"


"아니, 전혀?"


내가 대답을 하자 그녀의 얼굴에 금이 갔다. 아차, 얘는 약속 어기는 걸 싫어했지.


"너 이 씨- "


"나갔으면 죽을 뻔 했는걸? 너 길거리에 사람들 무장한 거 못 봤어?"


가까스로 험한 말 나올 뻔 한 걸 막았다.


"안그래도 그거 때문에 걱정되서 와 봤더니만, 아쉽게도 사지 잘 붙어있나 보네."


‘그러고 보니, 시위는 어떻게 됐으려나?’


흘깃, 사람들이 무장한 채 서 있던 거리를 보자 군데군데 총흔과 그을음이 눈에 띈다. 유혈이 낭자한 흔적 또한 보인다. 이런 살풍경에 어제까지만 해도 평화롭던 거리가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다. 문 앞에 그녀를 세워둔 채로, 방에 들어가서 옷을 입으려 몸을 틀었다.


“긴급 상황 전달을 위해 부득이하게 채널을 바꾼 점, 죄송스러우며, 양해바랍니다. 현장에 나와있는 클레어 리포터입니다.”


라디오에선 아침의 소요를 전달하는 방송이 흘러나온다.


“금일 오전 9시 경, 불법 무기로 무장한 단체가 스팀오일(듣고나서 생각난 건데, 그 거대 기업의 기업명은 스팀오일이였다.)의 강력규탄을 요구하며 시민 거주 구역에서 폭력 시위를 강행하였습니다.

스팀오일 측에선 시위 해산 요구를 하였으나 불응하자, 개발 중인 신제품을 투입시켜 강제로 해산하게 하였고, 그 과정 중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습니다.

조사당국에선 이 일을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잃게된 것을 주요 원인으로 보고 조사에 착수하였습니다. 시민 여러분은 당분간 외출 활동 시 치안에 주의하길 바라며-”


말을 들어보니, 결국은 거대 자본의 힘이 우세했나보다. 그건 그렇고, 신제품이라니? 방송에서 나온 신제품이 무엇인지 생각하던 와중 긴급 특보가 끝나며 광고가 나온다.


“-노동 혁신! 기술 혁신! 스팀오일 사의 놀라운 기술력! 절대 지치지 않는 사원, 절대 지치지 않는 가정부! 여러분의 손과 발이 되어줄 여러분의 친구, 여러분의 도우미! 새롭게 소개합니다! 그 이름하야... ‘휴머노이드’ 입니다!”


타이밍이 얄궂게도 곧바로 그 신제품에 대한 광고가 흘러져 나온다. 뭔가 했더니, 인간의 형상을 띈 로봇이였구만. 물론 인간의 형상이라기엔 뭔가 모자란 부분도 있는 것 같은데, 오히려 여기서 더 인간을 닮으면 불쾌한 느낌이 들 것 같다. 저걸 그 현장에 투입했다니, 신제품을 테스트 해보겠다는 의도가 다분히 보인다.


‘스팀오일 입장에선 회사를 위해 헌신하다 마지막까지 신제품 실험에 쓰여준 사람들이 참 고맙겠는걸. 결국 손바닥 위였던 거네.’


어느새 집에 들어온 카밀라(친구의 이름이다.)와 이에 대해 얘기하며 오늘밤도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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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부분을 깔끔히 마무리 못 한게 맘에 안 들긴 한데 그냥 올림. 피드백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