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 여섯번. 하고도 스무번. 그리고 열 두번은 더 지난것 같군. "


 중후한 외형과는 다른 미묘하게 높은 톤의 목소리.  안개의 너머. 문의 직선으로 난 길고 긴 성탑 끝쯔음에 회색의 갑주를 두른 

기사는 그렇게 말했다. 


" 저 두터운 문을 열고 나의 앞에서 이렇게 서 있는 자네의  모습 말일세."


 칼날을 앞으로. 방패는 왼손 밑으로.  준비 태세를 갖춘 회색의 기사는  검은 죄수에게 말했다. 


"......."


죄수는 그저 숨을 쉬는 소리만 낼 뿐 한마디도 전하지 않으며 천천히 회색의 기사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오랜 싸움이었네. 처음에  열 여섯은 내가 무난히 압승했고, 이후 스무번은 접전끝에 자네가 이겼지."


기사의 목소리에 담긴 감정은 마치 오랜 세월 정을  나눈 벗을 대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열 두번동안은 한번도 내 칼이 자네의 몸을 스치지 못했어. 처음의 그 무모하리만큼 공격 일변도였던 그 어리숙한 

모습은 어디로 간 것인지.....그렇게 성장 해 나간 것인가?"


"......."


 검은 죄수의 걸음 걸이는 점점 빨라졌다. 한 발 자국씩 걷던 모습이 조금씩 빠르게 걷는 모습으로 변했다. 


".....스무번 쯤 느꼈네. 어짜피 나는 자네의 앞길에 잠깐 머무는 사람. 베어 온 병사들보다 조금 더 길 뿐 그들과 하나 다름 없는 

짧은 역할.....그것에 절망하고 좌절하고 도망쳐보려 애 쓰기도 했지만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조금, 다르게 생각하기로 

했네."


"....."


 검은 죄수의 걸음은 이제는 뜀걸음에 가까워졌다. 꽤나 멀리 보였던 회색 기사와의 거리도 어느세 모습이 한 눈에 들어 올 정도로

가까워졌다.  


"짧은 순간을,  그냥 즐겨 보기로. 아무것도 아닌 이 짧은 역할을 운명으로 받아드리기로. "


"그렇기에 이번이 이전과 같이 열 세번째가 될 지, 스물 한번이 될 지, 아니면 운이 좋아 열 일곱번이 될 지 모르겠네만 나는 그전과 깉이 자네에게 이 길을 거져  내어줄수는 없네.  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것이고. "


"......"


  걸음은 이제 전력 질주라 볼 수 있는 속도로 빠르게 쇄도하는 검은 죄수. 칼끝에는 문을 돌파하려던 그 모습처럼 검은색 암영이 

묻어나있었다.


 거기에 질 수 없다는 듯 회색 기사의 칼 끝 또한 주변에 자욱하던 안개처럼 희뿌옇게 변했다.  갑옷도, 또 모습도 걸어온 길 속에 

자욱하던 그 안개속에 녹아 내리듯 천천히 사라져나갔다. 마지막으로 상체의 모습이 사라지기 직전, 회색의 기사는 힘을주어 말 했다. 


"부유하는 폐성의 영주, 그리고 안개의 기사로서 사할람의 죄인을.....처단한다....!"


말과 함께 완전히 안개로 변모한 회색 기사.


"......."


 간발의 차이로 죄수의 검은 칼이 닿지 않았다.  회색 안개로 녹아내린듯한 기사 때문인지 눈 앞에는 무엇 하나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기사가 사라진 자리에는 숨막힐듯한 적막만이 남았다.  죄수는 칼을 들고 어디서 들어 올 줄 모르는 기사의 칼을 예비하며 

앞을 향해 천천히 나아갔다. 사라진듯 별 다른 문제 없이 한참을 앞으로 나아가던 죄수. 그의 등뒤로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회색 기사의 모습이 희미하게 드러나며 큰 칼이 죄수의 등을 향해 날아왔다. 


"......"


 죄수는 그럴 줄 알았다는듯, 등 뒤에서 날아오는 칼날을 앞으로 구르며 피했다. 죄수는 깊게 베어 오는 칼을 피한 후, 빠르게 쥐고 있던 칼을 세워 아래서 위로 베어 올렸다. 


 베어 올라가는 칼날은 그 끝이 닿기 전에 그곳에 있던 회색 기사의 모습이 사라짐으로서 허공을 갈랐다. 허공을 가름과 동시에,

다시금 회색 기사의 모습이 희미하게 드러나며 이번엔 죄수의 옆구리를 향해  짧은 찌르기가 들어왔다.


 죄수는 올려붙인 칼을 밑으로 휘두르며 옆구리를 향해 들어오는 칼을 쳐내려했다. 허나 짧게 들어온 찌르기의 모션은 쳐내기 위해 내려오는 칼의 궤적에 발맞춰 그 공격방식을 선회했다. 


 옆구리를 찌르기 위해 들어 온 칼은 오른쪽으로 호선을 돌며 왼쪽 허벅지를 노리는 하단 베기로 바뀌였다.


"....."


 시간차에 맞춰 엇박으로 선회하는 페이크 모션. 분명 위협적인 움직임이었다. 허나 죄수는 그것또한 이미 너무도 익숙해진 것인 

모양인지 허벅지를 노리는 베기 공격에 맞춰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깊게 들어온 모션 만큼이나 긴 정비 턴 동안 죄수는 기사의 

관자놀이 쪽으로 횡베기를 날렸다.


 날아오는 칼을 피하기 위해 황급히 안개화의 묘수를 사용했지만, 엇박 공격이 파훼된 후 급작스럽게 날아오는 칼은 회색 기사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빨랐다. 성급하게 칼을 들어 막아보려 하지만 날아오는 죄수의 칼이 머금은 암영의 힘은 생각 이상으로 강렬

했다.

 

".....12번째보다도 더욱 빨라졌군.....나름대로 묘수라 생각 했건만......"


 공격을 맞고 멀리 나자빠진 회색의 기사. 주변을 뒤덮언 안개도 그와 함께 천천히 걷혀졌다.  회새의 기사는 

칼을 지팡이 삼아 자리에서 일어난다.


"......"


 죄수는 날아간 회색 기사에게 칼을 쥐어들고 달려나갔다. 한번 잡은 승기를 빠르게 굳히겠다는 모습이 역력하다.  다시한번 안개 

속으로  사라지려는 기사를 끝내기 위해칼을 세우고 앞을 향해 뛰쳐 나갔다. 다시한번 희미 해지려하는 회색 기사에게 암영을 

불어넣은 칼을 휘둘렀다.


 휘둘러진 형태로 날아가는 검은색의 기운. 하지만 이번에는 회색기사가 안개로 화하여 피하는 것에 성공했다. 사라지던 안개는 

다시 퍼져나가 다시금 죄수의 주변을 희뿌옇게 뒤덮었다. 


"......"


 죄수는 자리에서 칼을 칼집에 넣고  좌 우를 살폈다. 왼쪽은 들어 온 문쪽 방향. 오른쪽은 폐성을 나갈 바깥 방향. 좌 우를 번갈아 보던 그. 신경을 곤두세우고 어느 방향으로던 뛰쳐나가기 위해 준비했다.


 그렇게 한참을 조용히 있던 안개는 빨려들어가듯, 거센 바람 소리와 함께 문쪽의 방향으로 뭉쳐나갔다. 칼끝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온

안개들은 다시금 칼 안쪽으로 되돌아가 거센 폭풍을 만들고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막바로 승부를 볼 수밖에......"


 바람이 빨려들어가는 소리를 듣자마자 바람의 방향으로 뛰쳐나가는 죄수. 먼 거리임에도 죄수의 빠른 판단 덕택에 거리는 삽시간에

좁혀졌다. 


".....간다....!"


 그와 함께 회색의 기사는 기운을 실어 죄수에게 칼을 휘둘렀다. 


 "......"


처음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횡베기.  죄수는 옆으로 몸을 돌리며 날아오는 예기를 피했다.   기사와의 거리는 50미터.


다음은 오른쪽에서, 좌측 상단. 죄수는 허리를 굽히고 네발 짐승처럼 뛰면서 두번째 공격을 넘겼다.  기사와의 거리는 30미터. 


세번째는 상단에서 그대로 하단으로 직행하는 종베기. 네발로 뛰던 걸음을 옆으로 뒤집으면서 세번째 공격도 피해 나갔다. 


기사와의 거리는. 10미터. 


네번째는 첫번째와 두번째 그리고 세번째를 빠르게 번갈아가며. 가시화된 예기는 횡과 종 그리고 대각선 방향으로 모두 날아왔다. 


"......"


발에 힘을 주며, 날아오는 커다란 크기의 예기를 뛰어 넘으며 앞으로 도약한다.  높히.  도약하는 죄수는 


 10미터의 간격을 호선을 그리며 훌쩍 뛰어 넘어 날아오고 있었다. 허리춤에 감았던 칼을 공중에서 뽑아내는 검은 죄수. 암영을 

머금은  흑색의 칼이 시커먼 날을 드러내며 회색 기사를 베어내기 위해 넘어오고 있었다.  


".....마지막이다....!"


  칼 끝에 남은 예기를 실어 회색의 기사는 공중에서 지척을 향해 날아오고 있는 죄수를 향해 마지막 예기를 날린다. 심장을 노리는 

 점의 공격, 찌르기.


 죄수의 칼이 막바로 닿기 직전에, 분명. 먼저 소리가 난 것은 회색 기사의 찌르기였다. 쇠를 찢는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하지만

그 직후 죄수의 칼에서도 설컹, 하며 쇠를 가르는 소리가 났다. 


"......"


 회색 기사의 등 뒤, 칼로 베어 지나간 죄수의 심장은 그가 쏘아올린 예기에 의해 커다란 구멍이 났다. 죄수의 등 뒤에서 서 있는 

기사또한 갑옷의 위쪽으로 예리하게 죄수가 베고 지나간 선이 선명히 보였다.


 시간이 멈춘듯 제 자리에 서 있는 두 사람.  승자 없는 양패구상인듯 싶었으나 잠시 후 죄수의 뻥 뚤린 구멍에서 검은 그림자가 돋아나며 승패는 확연히 갈렸다. 그와 함께 베어나간 칼 자국에서 사방으로 피가 튄 후, 자리에 무릎을 꿇고 쓰러지는 회색의 기사.


"쿨럭......큭큭.....결국.....열....세번째였군......"


 피를 토하면서도 자조적으로 웃으며 말하는 회색의 기사. 


"....."


 언제 상처가 났냐는 듯 검은색의 형태로 다시 재생된 검은 죄수.  무릎 꿇린 회색 기사의 앞으로 뒤돌아서 다가간다. 다가오는 죄수

를 바라보는 회색의 기사.  


"좋은.....승부였...."


회색의 기사는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죄수의 두 손에 들린 칼에 의해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


 숨을 헐떡거리며 바닥을 나뒹구는 목과 주인잃은 몸을 노려보는 죄수. 헐떡거리던 숨이 멈추자, 뒤를 돌아 폐성의 반대 방향으로 

걸어나갔다.  


 걸어나가는 죄수의 뒷편으로는 살아 움직이는듯한 검은 그림자가 죄수가 걸어 온 길의 색체를 먹어치우며 모든 세상을 어둠으로

물들였다. 목이 달아난 회색의 기사도 다른 것들과 다름 없이 검은 그림자와 하나가 되며 어둠속으로 삼켜졌다. 



""


"......"


 죄수의 앞으로 스산한 바람이 불어왔다. 폐성의 입구쪽으로 나아간 끝에 보이는 것은 까마득히 먼 땅의 바닥, 낭떨어지. 


바닥에는 녹음이 들어찬 울창한 숲이 보였다.  


 자그만한 점처럼 보이는 나무와 구조물들. 폐성은 한참을 먼 공중 위에 부유하고 있던 것이었다. 죄수는 낭떨어지 밑을 한참 바라보다 지나온 길의 뒷편으로 고개를 쓰윽 돌렸다.


 그가 지나 온 길은 서서히 살아 움직이는듯한 그림자의 시커먼 아가리속으로 들어간듯 모든 물체와 공간이 색체를 잃고 캄캄한 어

둠으로 화했다.  그것을 확인한 죄수는 숨을 한번 고르게 쉰 후, 까마득히 먼 바닥을 향해 앞으로, 뛰어 내렸다.


 귀를 찢는듯한 바람 소리.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세차게 불어왔다. 무게만큼이나 맹렬한 속도로 바닥을 향해 추락하는 검은 죄수.  . 떨어지는것은 결국 바닥에 닿기 마련이기에 폐성의 높이만큼, 한참을 공중에서 자유낙하하던 죄수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땅바닥에 몸을 부딫힌다.  


 충격과 함께, 죄수의 시야는 암전되었다.

 



""


 적막한 어둠 속, 고요한 수면 위로 방울진 액체가 한 방울, 떨어지며 소리낸다. 


 한방울의 물방울 소리는 곧 이어 두 방울로, 네방울로, 여덣, 열 여섯......떨어진 수의 곱절만큼 점점 배가 된다. 몇번을 그렇게 지나게

되자 이제는 샐 수 없을 만큼 많은 물방울 소리가 수면에 떨어지며 소리냈다. 


 대기를 타고 시끄럽게 떨어지는 물방울, 빗방울. 


번쩍.


 어둠을 가른 짧은 빛줄기. 그와 함께 천지가 갈라지는 듯한 굉음을 냈다.  미량의 빛 사이로 보인 수면의 짧은 모습은 검고 깊은 물

사이 사이로 무언가, 둥둥 떠다녔다. 


 번쩍.


다시 한번, 어둠을 가르며 비춘 빛. 이번에는 아까보다 조금 더 선명하게, 물 위에 떠다니는 모습이 내비췄다.  


그것은, 팔.


다리.


파해쳐진 얼굴.


쏟아져내린 내장. 


뱃거죽. 


뽑혀나간 척추.


난파된 배의 잔해처럼 사람을 이루는 잔해들이 성한 놈 하나 없이  수천 수만개로 나뉘어 검은 물 위를 둥둥 떠나녔다.   

 

번쩍. 


 다시한번 번쩍인 번개.  그 수천 수만개로 나뉘어진 성한 부분 하나 없는 인간의 파편들 사이. 온전해보이는 한 남자의 맨 얼굴이

보였다. 



번쩍. 


 고요히 잠을 이루는듯한 남자의 눈 감은 얼굴. 남자의 얼굴 위로 빗방울이 세차게 떨어졌다. 폭우는 점점 더 심해져, 마치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이 세차게 수면위에 있는 남자의 얼굴을 향해 떨어졌다. 


곧이어 이어진 다섯번째 천둥번개.


 번개에 드러난 남자의 얼굴. 부릅떠진 남자의 검은 눈동자. 세차게 부는 비바람.  부릅뜬 눈으로 남자는 빗방울이 떨어져

내려오는 하늘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여섯번째, 천둥번개.


"......"


바닥에 처박힌 죄수의 투구.  그 투구 사이에서 검은 안광이 번뜩였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검은 죄수. 바닥에 처박히며 기이하게 뒤틀린 몸은 어느세 원래의 모습으로 말끔히 되돌아와 있었다.  고개를 돌리며 천천히 좌우를 살폈다. 


 나무가 앞으로 길게 뻗어 나간 숲.  시야를 빼곡히 채우는 길다란 나무들. 그 틈 사이로 새하얀 달빛이 흘러 내려왔다.


"......."


 죄수는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직후, 울창한 그 숲을 걷기 시작했다. 간격 없이 빼곡히 들어찬 숲. 어찌어찌 길을 만들어가며 한참을 걸어 나갔다. 비집고, 베어나가며 길을 만들며 앞으로 나아가던 그는 얼마 후,  저 먼 곳에서 거대한 나무로 피운 큰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음을 확인했다. 죄수는 칼을 양손으로 움켜쥐며 천천히 모닥불 방향으로 전진했다. 



 모닥불이 있는 위치에는 죄수의 몸보다 한참은 더 큰 거대한 나무가 말금히 벌목되어 있었다. 앞으로는 한참은 더 큰 길이 숲의 바깥방향으로 깔끔하게 나 있었다.  정돈된 커다란 장작더미들. 하늘을 향해 높히 타오르는 불꽃. 


"......."


 타오르는 모닥불의 불꽃은 따스했으며, 포근했지만 죄수는 양 손에 들고있는 칼을 놓치 않고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장작 더미의 옆에는 방금전에도 누군가 머물고 간 듯 손이 탄 조잡한 물건들이 널려 있었다. 허나  그 모습은 매우 기이했다. 생각 이상으로 거대했기 때문이다. 


 무언가에 대비하는듯  앞으로 길게 난 길을 주시하며 눈을 떼지 않는 검은 죄수.  죄수가 앞을 노려보고 얼마 있지 않자, 주변 바닥이 쿵, 쿵 울렸다.  


쿵, 쿵.


지진이 난듯, 땅바닥이 크게 울리며 바닥에 굴러다니던 자갈이 뜀박질하듯이 땅 위를 붕붕 날아다녔다.


"......"


양손으로 맞잡은 칼에 힘을 주며 주변을 경계하는 검은 죄수.  


쿵, 쿵.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쿵, 쿵.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점점 빠르게 들려왔다. 진동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두 손에 쥐고 있던 죄수의 칼 끝에 시커먼 암영이 맺히기 시작했다. 


쿵......쿵! 


 지척에서 난 거대한 소리. 자신의 뒷편에서 소리가 난 것을 알아챈 죄수는 암영이 잔뜩 묻은 시커먼 예기를 자신의 뒷편을 향해

쏘아던졌다. 뻬곡한 나무를 베어내며 직선으로 날아가는 예기. 



쿵! 


방금 전 까지의 소리와는 차원이 다른 거대한 굉음. 바닥을 찢어 발길듯한 기세로 대지는  요동쳤다.


"....." 


 하지만 그 거대한 굉음소리가 무색하게 주변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빠르게 바닥을 울리던 소리도 멈춘듯 잠깐동안 들리지 않았다.  고요한 적막만이 다시금 숲을 매꾸는듯 싶었다. 허나, 무언가 조금 이상했다. 


 우거진 숲 사이를 타고 들어오던 달빛이, 무언가에 가려진듯 숲의 바닥에 전혀 비춰지지 않았다.  이상함을 느낀 죄수는 천천히 달

빛이 있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 들었다. 


 고개를 쳐 들자 달빛이 있을 자리에는 높이 선 나무를 아득히 뛰어넘는, 거대한 모습의 형상이  자신의 방향으로 높이 도약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