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년 전, 에테르 왕국이 세워졌다.


왕국은 왕들의 훌륭한 능력에 따라 점차 성장해갔으며,


100년 정도 지나 에테르 왕국은 대륙의 강대국 중 하나로 성장했다.


그에 따라 정략결혼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하였고, 5대 왕이었던 텔린 1세는 이웃 베르세네트 왕조의 딸과 결혼하였다.


이런 기조는 계속해서 이어져, 후대의 왕들은 이런 정략결혼을 계속하였다.


그리고 이런 기조는 10대 왕 파네츠 2세의 딸인 레비어가 태어났을 때도 끝나지 않았다.


레비어는 긴 백금발에 벽안을 가진 공주로, 총명하기까지 해 어릴 때부터 왕자들의 이목을 끌었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공주가 인간과의 연애엔 영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여왕은 드래곤, 늑대인간과 같은 인간과 비슷한 지능을 가진 괴물들에 더 관심있었고, 오히려 인간보다 그들을 더 좋아했다.


왕실 도서관의 수많은 책들 중 늑대인간, 드래곤 관련 서적만 표지가 닳아 있을 정도였다. 


그녀는 왕조를 이어야 할 후계자였기에 결혼과 자식은 필수적이었고, 곳곳에 들어오던 정략결혼 요청 중 하나를 왕이 수락했다.


당시 레비어의 나이는 17세, 그 시대 기준으로 결혼하기 충분한 나이였다.


하지만 그 때도 공주는 그 결혼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괴물들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진 모양이었다.


에테르 왕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국왕의 셋째 아들과 맞선을 주도했고, 


공주는 반강제적으로 그 맞선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맞선을 본 후, 공주가 느끼기에 그 남자는 그냥 그저 그런 왕자였다.


하지만 자기 나라보다 강력한 나라의 왕조였고, 심지어 이웃이었기에, 외교적 관계를 위해서라도 왕조에게 있어 이 결혼은 필사적이었고,


"서기 1558년 5월 24일. 에테르 왕국의 공주 레비어, 루비돔 왕국 베르세네트 왕조의 세번째 왕자 라팔은 오늘부로 결혼을..."


그렇게 공주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첫 결혼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결혼생활은 그냥저냥이었다. 공주는 애초에 그에게 관심도 없었고,


왕자도 초반엔 열심히 구애했지만 결국 그나마 있던 사랑도 짜게 식어버리고 말았다.


결국 남자 측이 먼저 이혼 서류를 던지며 그녀의 첫 결혼생활은 그렇게 끝났다. 그 때 공주 나이는 18살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독신으로 보내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2년 뒤, 그녀는 여왕으로 즉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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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 폐하, 이제 정말 결혼할 때가 되신 거 같습니다." 국정 운영을 시작한 지 얼마 후, 신하가 말했다.            


"왜? 나 아직 20살밖에 안 됐어. 그리고 난 인간에 별 관심 없다는 건 너도 알고 있잖아."


"폐하, 다른 나라의 공주들이나 왕후들은 벌써 자식 2명은 가지고 있습니다. 여왕님도 빨리 결혼해서 왕조를 이어......"


"알겠어 알겠어. 거참 말 길게 하네."


"그럼 저희가 각 나라 왕이나 왕자들에게 결혼 요청 편지를..."


"아니, 내 남편은 내가 직접 보고 선택한다."


"네?"


"내가 이 나라의 여왕인데, 못 할 일 있나?"


"네 그럼 어떻게 하실 건가요?"


"무도회를 열자. 거기에 내 맘에 드는 남자 한 명 정도는 있겠지."


"알겠습니다. 빠른 시일 내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가봐."


"네!" 


그리고 문이 조심스럽게 닫혔다.


무도회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장소도 우아하고 화려한 곳으로 잡았고,


무도회 참석 요청 편지도 각국의 왕국한테 곳곳이 전해졌다.


그리고 무도회의 마지막에 진행될 이벤트까지 완벽히 구상되었다.


그리고 대망의 무도회 날이 왔다.


"여왕님...혹시 저 벨트는 뭐에다 쓰는 건가요...?" 여왕의 시중을 드는 하인이 말했다.


"응?" 여기 웃옷이랑 바지 고정하려고." 


"원피스 입으실 것 아니었어요?"


"원피스 불편한데. 안 입으면 안 돼?"


"그래도 한 왕국의 여왕이신데, 품위를 위해서라도 무조건 입으셔야합니다."


"그래 알겠어. 알겠어. 이 옷 위에 입을 게."


내가 흰 드레스를 들며 말했다.


"저러면 안에 뭐 입은 지 다 보일 텐데요..." 하인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알겠어 이거 입으면 되잖아." 난 진한 파랑 색 원피스를 꺼내 들었다.


약간의 소동이 끝난 후, 난 파란 원피스를 입고 무도회장으로 향했다.


큰 문을 열자, 큰 무도회장이 한 눈에 보였다.


양 옆에는 무도회장으로 향할 수 있는 계단이 있었다. 여기가 무도회장보다 약간 높은 층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도회장의 남쪽 벽의 큰 창문 역시 잘 보였다.


창문은 금색 덮개로 덥혀 있었다. 


저 창문이 열리면, 오늘의 마지막 이벤트인 "슈퍼 문 감상"이 진행될 것이었다.


저 창문에서 달이 가장 잘 보이니 말이다.


감상이 끝나자마자, 각 나라의 왕, 여왕, 왕자, 공주들이 속속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그 컸던 무도회장을 가득히 채웠다.


곧 무도회장의 어느 한 켠에 있던 음악가들이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고, 나 역시 무도회장 위 단상에서 무도회장으로 내려갔다.


"안녕하세요?"


난 나를 부르는 것 같은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


"에르네다 공국 후작 베르텐 후작이라고 합니다. 같이 춤이라도 추실래요?"


나는 그의 얼굴을 쓱 훑어본 후 말했다.


"그러죠 뭐."


그러자 그가 나의 손을 잡고 여러 댄스 테크닉들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명화에나 나올 법한 그런 기술들 말이다.


예를 들면 두 손으로 여자의 몸을 들어올린다는 지 말이다.


트럼펫이 빠바밤하는 소리를 끝으로, 그 춤도 끝이 났고, 각자 다른 파트너를 찾아 떠났다.


"안녕하세요 이테리노 왕국 왕자 헤븐입니다."


"안녕하세요 비스타 왕국 왕자 멜라톤입니다."


"안녕하세요 게르만 공국 대공 데르트입니다"


...등등 많은 왕들과 왕자들을 만났지만 딱히 나의 마음에 드는 인물은 없었다. 


'역시 난 인간이라고는 안 맞는 건가...'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을 정도였다. 


트럼펫과 첼로, 바이올린 등 여러 악기들이 어우러진 음악 속에서도 시간은 흘러갔고, 어느새 마지막 이벤트를 진행할 시간이 되었다. 


나는 처음 때처럼 단상 위에 올라갔다.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이 보름달이 뜨는 날인 거 알고 계시나요?"


곳곳에서 "네!"라는 함성 소리가 울렸다.


"여기가 저희 궁궐에서 제일 달이 잘 보이는 곳입니다. 저 창문이 열리면 평소보다 큰 달이 보일 겁니다."


나는 시중들에게 손짓하며 조용히 말했다.


"저 창문 덮개를 떼어내면 돼. 창문을 열어."


"넵!" 시중들이 조용히 대답한 후 신속하게 창문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 보름달이 보일 겁니다! 다같이 감상하시죠!"


그리고 나도 같이 창문 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창문을 봐 만월(滿月)을 보려고 하는 중, 나는 인기척이 느껴져 무도회장의 관중들을 보았다.


창문은 서서히 열리고 있었고, 그는 성급하게 관중들 사이에서 빠져나와 외딴 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정장 사이로 숨기고 있는 팔의 그건...털?


'늑대인간이구나.' 나는 바로 직감했다.


예상치 못한 변수였다. 동시에 예상치 못한 좋은 선택지였다.


어릴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난 늑대인간과 같은 괴물들에 관심있어 했고,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가 어느 쪽으로 사라지는 지 확인한 후, 나는 마저 특별 이벤트를 진행했다.


달은 그녀가 봤던 크기 중 가장 큰 보름달이었다. 아마 다른 이들도 이보다 큰 달은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달은 그 큰 창문을 꽉꽉 채운 채 회색 빛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자, 이 달을 잠시 감상한 이후, 오늘 무도회를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급해진 톤으로 말했다.


"그리고 시중들은 가봐도 돼. 내가 알아서 자던가 할게."


나는 이미 저 늑대인간을 직접 찾아갈 생각에 가득 차 있었다.


잠시 후, 


"네, 이번 무도회는 여기서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출구는 아까 들어오셨던 곳으로 나가시면 됩니다! 시중들이 도와줄거에요!"


라고 외친 후 나는 황급히 무도회장을 떠났다.


"후...하..."


나는 잠시 심호흡을 한 후,


"난 그를 꼭 찾아내야겠어." 라 다짐했다.


그리고 바로 원피스를 벗기로 결정했다.


더 이상 입을 이유도 없었고, 이런 복장으로 돌아다니긴 너무 불편했기 때문이다.


난 주변에 있는 탁자에 목을 얹고 원피스를 벗기 시작했다.


"끄응...끄으응..."


"어후" 


원피스는 벗기 굉장히 힘들었다.


"이딴 옷 다시는 입나 봐라 진짜."


난 벗은 옷을 패대기치며 불평했다. 


이제 난 가벼운 셔츠와 벨트, 헐렁한 바지 옷차림이 되었다. 돌아다니긴 훨씬 편한 옷차림이다.


"하아...어쨌든."


내가 다른 탁자에 있는 전등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복도는 어두컴컴해 길을 잃기 딱 좋기 때문이다. 여기서 20년을 살았는데도 말이다.


"아, 그리고."


난 바지와 셔츠 사이에 있는 벨트를 풀었다. 사실상 멋내기용이라 벨트 없어도 옷이 흘러내리진 않았다.


그리고 그걸 올가미 형태로 묶었고, 그러니 괜찮은 자기 보호 도구가 되었다.


'이정도면 그 늑대인간이 이성을 잃어 날 공격할 때 날 보호할 수 있겠지.'


모든 준비가 끝마쳐졌고, 이제 남은 건 출발 밖에 없었다.


'아까 방향이 저쪽이었지? 늑대 형태라 나가지도 못할 거고. 한 번 가보자고.'


나는 궁궐 속 늑대인간을 찾으러 한 걸음을 내딛었다.


더 편해진 옷차림으로 그녀는 궁궐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복도에서는 늑대 소리가 들리진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걸음걸이는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가끔씩 보이는 방에선 그 문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들었다.


책에서 늑대인간의 숨소리는 상당히 커 밖에서도 들릴 정도이기 때문이다.


한 7번째 문에 귀를 갖다 댔을 즈음에, 나는 드디어 늑대인간의 숨소리라 할 만큼 큰 소리를 방안에서 들었다.


"후...침착하자."


나는 다시 한번 심호흡을 해 마음을 안정시켰다.


벨트로 만든 올가미를 든 후, 난 조용히 숫자를 세기 시작하였다.


"3..."



"2..."



"1...!"


나는 문을 세차게 잡아당겼고, 그 안에 보이는 형체에게 올가미를 일단 던졌다.


혹시 이성을 잃었을 지도 모르니 말이다.


다행이도 그 올가미는 목표물에 명중한 듯했고, 나는 그걸 자기 쪽으로 끌었다.


어릴 때 궁중교육의 일환으로 사냥을 배운 게 꽤 효과가 있는 듯하였다. 


그 늑대인간도 갑자기 공격을 받아 당황했는지, 아등바등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목에 올가미가 걸렸기 때문에 벗어날 순 없었다.


"잠시만요! 저 이성 안 잃었어요! 이렇게 안 하셔도 돼요!" 결국 그 늑대가 애처로운 목소리로 소리질렀다.


"..." 나는 조용히 보이는 탁자에 등불을 놓았다.


"...진짠가?" 난 아직도 의심스러웠다.


"네, 사람 안 물어요! 늑대인간이라고 무작정 사람을 물진 않..."


"그래, 알겠어. 난 레비어다."


"아니 여왕님이 저한테 왜...?" 그 늑대가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약간 그르렁하는 소리가 섞어 들어갔다.


"내가 늑대인간한테는 관심 생긴지 오래거든." 내가 살짝 웃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그런가요? 그럼 이 목줄 좀 풀어 주세..."


난 올가미를 늑대에 닿지 않게 하늘을 향해 올린 후, 다시 가져와 어깨 부근에 둘둘 묶었다.


"안 무는 거 확실하지?" 


"그럼요 그럼요. 저도 한 때 인간이었는데."


"알겠어. 여기 너무 어두운 거 같으니까 불부터 붙이자."


난 방 곳곳마다 있는 성냥을 이용하여 등불에 불을 붙였고, 곧 방안이 환해졌다.


그제서야 나는 그 늑대인간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얼굴은 인간의 형태와 늑대의 형태가 반반씩 섞인 모습이었다.


인간일 때의 얼굴 윤곽은 유지했지만, 귀는 머리 위쪽에, 주둥이는 약간 튀어나와 있었고, 가벼운 갈색 솜털로 뒤덥혀있었다.


그 외에는 날카로운 발톱, 꼬리 이정도가 유의미한 변화라 할 수 있겠다.


내가 늑대인간에 원체 관심이 있어서 그런 지는 몰라도, 내 눈에 그는 꽤 귀엽게 보였다. 


"언제부터 저렇게 된 거야?"


"저녁에 북유럽 숲을 가로질러 다음 행선지로 향하고 있었는데, 거기에 늑대한테 물려가지고요."


"그나마 다행인 건, 같은 늑대인간한테 물린 거면 늑대가 되었을 때 이성을 잃을 확률이 존재하는데, 그냥 늑대한테 물린 거면 이성을 잃을 확률이 0%에 수렴해서..."


"뭐, 그러면 안심이네."


"아 그리고 말야, 너 이름이 뭐야? 생각해보니 한 번도 안 물어봤네."


"제 이름은 아이반입니다. 웨이드 왕국의 두번째 왕자죠."


"음...그렇구나."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괜찮으면 다음 주나 그때 즈음에 다시 우리 궁궐로 올래? 웨이드면 우리 나라 바로 북쪽이잖아."


"혹시 제가 맘에 드셨는지...?"


"응, 완전 맘에 들어. 늑대인간? 난 오히려 좋아. 성격도 좋아 보이고."


"...솔직히 완전 반해버린 거 같아."


"...네? 전 전혀 예상하지 못 했는데요?!" 그가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너 귀여운 면이 있다니까 진짜." 내가 흐뭇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근데 여기서 어떻게 나가나요?" 약간 시간이 흐른 뒤 그가 물어보았다.


"내가 문 잠그고 나갈 테니까 여기서 자. 아침 되면 변신 풀릴 테니까."


"앗, 알겠습니다."


"아님 그냥 둘이 같이 잘래?" 내가 그에게 몸을 들이대며 말했다.


"아니 아니 아직 그건 너무 나간 거 같은..."


"알아." 내가 그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시계를 보니 벌써 12시가 훌쩍 넘어 있었고, 이 때도 여왕인 내가 침실에 없으면 궁궐이 난리 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나는 대화를 끝낼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서 앞으로 쭉 가면 후문 있을 테니까 거기로 나가. 그럼 좋은 밤 보내!" 나는 갈 시간이라는 걸 알았지만 최대한 느리게 느릿느릿 방을 나갔다.


그리고 찰칵, 문을 잠구었다.


'정말 마음에 든단 말이지. 특히 늑대일 때의 모습.'


'성격도 여린 거 같고, 몸집도 적당하고...'


'적당한 신랑감을 찾은 거 같아.'


난 그런 생각을 하며 자기 침실로 되돌아갔다.


그렇게 침실에 도착하고 몇 분 채 지나지 않아 시중이 확인하려 방에 들어왔다.


"아니 여왕님, 아직도 안 주무시고 계셨어요?" 시중이 놀라서 말했다.


"응? 곧 잘 거야 걱정하지 마."


"혹시 맘에 드는 사람이 있었나요...?"


나의 대답은 "응"이었다.


"헉 진짜요? 다행이네요! 워낙 인간에 관심 없으시고 이종족에만 관심 있으셔서 걱정을 많이했어서..."


"근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늑대인간이나 그런 사람이면 어떡할까?" 난 은근슬쩍 던져보았다.


"여왕님. 인간은 인간과 결혼하는 게 당연한 섭리입니다."


"알아, 근데 늑대인간도 늑대"인간"이잖아."


"에이, 그거랑은 다르죠. 심지어 자식을 낳으셨을 때 그 자식한테 어떤 영향을 미칠 지도 모르는데, 늑대인간이랑 결혼한다는 건 거의 금기죠 금기."


"음...알겠어. 나가도 돼."


시중이 나가자, 내가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그래, 말이 안 되긴 해. 근데 난 그이가 좋은 걸.'


'이걸 어떡해야하나...'


난 그런 고민 속에 깊은 잠에 들었다.


.


.


.


.


"어으..."


화사한 햇살 속에서 난 일어났다.


부스스한 머리를 정리하고, 옷을 갖춰 입은 후, 난 국정을 운영하려고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엔 처리해야할 서류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에휴...이걸 언제 다 처리하냐..."


그렇게 불평불평하며 서류들을 처리하는 와중에도, 중간중간 그 늑대인간이 생각났다.


"진짜 어지간히 좋았나 보다 나도. 이렇게 생각나는 거 보면."


난 만년필을 굴리며 혼잣말을 하였다.


"잠만...생각해보니 쟤 늑대일 때 털도 못 만져봤네."


난 만년필을 굴리는 걸 멈추었다.


"어제가 보름달이니까 보름달이 다시 뜨기 위해선 30일..."


'이걸 언제 기다리냐.'


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 이런 방법이 있었지!"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나서 난 책상을 탁 쳤다.


그 생각이 나자마자, 난 예전보다 더 빠르게 서류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확실한 동기부여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 결과 원래 밤 11시가 다 되어 끝나던 서류처리는 8시에 끝낼 수 있었고, 난 일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서재로 향했다.


서재는 궁전 소재 서재였으므로 굉장히 컸다.


전체적인 모양은 돔 모양에 중간이 뻥 뚫려 있는 모양새였다.


난 서재의 모퉁이에 위치한 사다리를 타고 생물 관련 책이 있는 3층으로 올라갔다.


지금 찾고 있는 건 달빛반딧불이에 관한 책이었다.


그 반딧불이는 다른 반딧불이와 특징이 거의 똑같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은 그 불이 달빛을 낸다는 점이었다.


책을 찾으러 걷는 도중, 중간중간에 책이 닳은 걸 볼 수 있었다.


대부분 늑대인간이나, 드래곤에 관한 책들이었다.


"찾았다."


곧 난 원하던 책을 찾았고, 거기서 앉아 자세히 책을 읽어 보기 시작했다.


"서식지는 아주 맑은 1급수의 물이 있는 계곡. 잡으려면 꽤 멀리 나가야겠네."


"달빛반딧불이는 여러 사람이 그에게 다가오면 도망가버린다는 특성이 있다. 다만, 혼자 다가올 시에는 얌전히 있다."


"...꽤 흥미롭네."


책을 완독한 후, 표지를 덮고 다시 원래 자리에다가 끼워 넣었다.


"오케이, 오랜만에 승마 실력 좀 뽐낼 수 있겠네."


내가 크게 기지개를 피며 말했다.


사실 신하들에게 시킬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난 그걸 직접 잡고 싶었다.


'내일 신하들에게 말해야겠다.'


서재 문이 쾅 닫혔다.


그렇게 달빛반딧불이를 잡으러 가는 일정이 확정되었다.


시행은 6월 18일. 그 전에 아이반에게 편지를 써서 그 쪽 왕국으로 보냈다.


계속 늑대의 모습만 생각나서 아이반이라는 이름을 떠올리는 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어쨌든 그 날이 다가왔고, 행차가 시작되었다.


원래는 망 보는 군사들까지 다 데리고 왔어야 하지만, 그렇게 큰 일정이 아니기에 최소 인원만 데리고 가기로 하였다.


4시간이 지나자, 서식지로 알려진 숲에 도착하였고, 난 말에서 내려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갔다.


주황 노을이 진 저녁의 숲은 정말 몽환스럽고 신비했다.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 짹짹 거리는 새 소리 모두 자연의 신비로움을 보여주는 듯했다.


어느 정도 깊게 들어오자, 난 나 혼자 다니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곧 서식지가 다가왔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나 따라오기만 해. 너무 가까이 오진 말고."


"넵!" 경호대원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작은 나무들이 우거진 곳을 지나, 큰 연못이 보였다. 그리고 그 곳엔...


"여깄네." 


달빛반딧불이가 있었다.


정말 저번 보름달이 비추던 빛과 똑같은 빛을 내고 있었다. 회색 빛이 약한 섞인 노란색. 


난 조심히 그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갔고, 


"확" 하고 가지고 있던 통을 그들이 모인 곳에 갔다 대었다.


그러자, 열댓 마리 정도가 그 안에 들어갔고, 난 투껑을 덮었다. 


계획은 대성공이었다.


계획을 성공적으로 끝낸 후, 난 경호대원들에게 계획 성공을 자축했고, 곧 집으로 돌아갔다.


궁전으로 돌아가는 내내 뿌듯했다. 이제 내가 하고 픈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궁전으로 복귀하고 나서 보니 답장이 와있었다. 6월 21일에 만나자는 것이었다. 


"6월 21일이면 처음 만난지 딱 1주일 되는 날이네."


"기대된다." 내가 편지를 보자마자 처음 느낀 감정이었다. 그 기대에는 여러가지 감정들이 숨겨져 있었다.


그 후 6월 21일이 올 때까지 난 서류 따위를 처리하거나 관료들과 회의를 하거나 시간을 보냈고, 시간은 멈추지 않고 달려가 어느새 그 날이 오게 되었다.


나른한 토요일 저녁, 난 창문으로 성문에 누가 들어오는 지를 보고 있었다.


'정문에서 내가 마중하겠다고 했으니 걔가 들어왔다고 하면 그 때쯤 여기서 나가면 되겠지.' 이렇게 생각하며 멍하니 창문 밖을 쳐다보았다.


누군가 들어오면 바로바로 보고하겠다고 시중의 약속도 받은 참이었다. 실제로 몇 시간동안 7번이나 보고를 받았다.


그이가 너무 안 와 짜증이 날 듯할 때, 시중에게서 그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받았다.


난 성급히 계단을 내려가 웅장하고 화려한 궁전의 정문에 그를 기다렸다.


한 5분 후, 그가 도착했다.


그는 갈색 머리에 까만 눈을 가지고 있는 왕자였다.


굉장히 평범한 외모였지만, 뭐든지 본질이 중요한 게 아니겠는가.

"잘 지냈어?" 그가 먼저 인사하였다. 인간 모습으로 인사받는 건 처음이었다.


"응." 내가 살며시 웃으며 대답했다.


"오늘 뭐해?"


"뭐...여러가지를 할 거야."


"그럼 궁전 구경 좀 해봐도 돼?" 


"왜? 이정도 궁전은 너희 나라에도 있지 않아?"


"아니, 우리 나라는 이거보다 훨씬 작아. 근데 여긴 엄청 으리으리하네." 그가 눈이 초롱초롱한 채로 궁궐 내부를 둘러보았다.


"그...그래? 알겠어. 내가 구경시켜줄게." 난 약간 머쓱했다.


그렇게 그이와 나의 궁전 관광이 시작되었고, 난 궁전 복도 말고도 무도회가 치러졌던 무도회장, 내 사무실, 화장실 등등을 전부 보여주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나갔고, 어느새 우린 라운지에 다시 와있었다.


"이제 어디 갈 꺼야?" 그가 물었다.


"한 번 이 방으로 와봐."


"응? 알겠어."


우린 계단을 올라갔고, 복도를 쭉 걸었다.


걷다 보니 큰 방이 보였다.


난 과감하게 그 문을 열었다.


남녀 둘이 들어갈 정도로 큰 침대와 탁자와 의자, 끝내주는 뷰, 간단한 요식거리. 필요한 건 전부 갖춰져 있는 방이었다. 심지어 굉장히 깨끗했다. 


"우와...여긴 어디야?"


"스페셜 게스트룸. 우리가 잘 곳이야."


"근데 우리 둘이서 한 침대를 쓰는 거면...설마..."


"응, 너가 생각하는 거 맞아." 내가 평온하게 대답했다.


그의 얼굴이 빨개졌다. 


"아니 너무 진도가 빠른 거 아니..."


"옷부터 벗고 와." 내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가 잠시 옷을 벗으려 탈의실로 들어갔을 때, 그 전에 배치해 놓았던 보름달 모양 전등을 내 손에 올려놓았다.


곧 그가 옷을 벗어 내 앞에 나타났고, 난 보름달 모양 등을 등 뒤로 숨겼다.


"나 나왔어."


"오우, 몸매 괜찮은데." 내가 수상쩍은 웃음을 띄며 말했다.


"근데, 등 뒤에 숨기고 있는 게 뭐야?"


"짜잔." 내가 씩 웃었다.


"달빛 나는 보름달 전등이야."


"...!"


곧 그의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귀가 사라지고 머리 위 늑대귀가 자라났고,


주둥이가 길어졌으며,


꼬리가 돋아나고,


온 몸 곳곳에 회색 털이 돋아났다.


그 와중에 그는 두 팔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었다.


이 변화는 약 30초간 짧게 진행되었다.


변신이 끝나고, 그는 팔들을 얼굴에서 젖히고 날 바라보았다.


30초 전엔 인간의 눈이었지만, 이젠 늑대의 눈으로.


"...이런 모습으로 하길 원했던 거야?"


"정답. 잘 맞췄네." 난 여전히 웃고 있었다.


"네가 인간인 이상 난 못 하겠는데."


"왜?"


"아니...이건 종 자체가 다르잖아. 자칫하다 사고 나면 어떡하려고 그래?"


"으으음...일리가 있네." 난 주먹을 얼굴 아래에 대었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하면 될까?" 내가 그에게 질문하였다.


"첫번째, 변신 풀리고 내일 하던가. 어차피 내일도 여기에 있을 테니까."


"...아님 너도 나랑 같이 늑대인간이 되던가."


"후자로 할게."


"응?" 그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너가 그렇다면 내가 늑대인간이 되면 되는 거잖아, 안 그래?" 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 그래도...넌 한 왕국의 여왕인데..."


"국정운영이랑 늑대인간이 되는 거랑 뭔 상관이 있는데? 한 달에 한 번, 밤에 밖에 변신하는 거 가지고 말야."


"너라면 한 달의 하루 정도면 포기할 수 있어." 내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전과는 약간 다른 표정이었다.


"진...진짜? 내가 이런 모습이어도?"


"전에 말 안 했어? 난 너가 인간일 때보다 늑대일 때가 더 끌려."


"어...고마워." 그의 표정은 여러가지 복잡한 감정들로 섞여 있는 듯하였다.


"늦어도 괜찮아. 하지만 인간 상태로는 못 하겠으면 난 늑대인간이 되더라도 너랑은 꼭 하고 싶다는 걸 알아줬으면 해."


"알겠어. 잠시 진정하고."


약 1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해주면 돼?" 그가 드디어 입을 뗐다.


"날 물어줘." 내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어디를? 팔?"


"그래, 팔 말야." 내가 팔을 그에게 내밀었다.


"근데 내가 널 물면 넌 늑대인간이 되었을 때 이성을 잃을 확률이 높아지는데, 괜찮겠어?"


"책에서 보았던 건데, 약하게 물리면 물릴수록 물렸을 때 이성을 잃을 확률이 적어진데."


"물론 대부분은 자신을 물은 늑대인간이 세게 물어서 변신할 때 이성을 잃은 경우가 많았지만, 이건 특별한 경우잖아?"


"어떻게 너가 늑대인간인 나보다 늑대인간에 대해 더 잘 아는 거 같냐."


"내가 책을 많이 읽어서 그래..." 내가 머쓱해하며 말했다. 약간 얼굴에 분홍빛이 들어왔다.


"그럼...문다...?" 그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목소리였다.


"그래, 최대한 빨리, 최대한 약하게 물어줘."


난 눈을 꽉 감았다. 내 팔을 감싼 그의 앞발에서 덜덜거리는 떨림이 느껴졌다.



"아얏." 곧 반응이 왔다. 약간 따끔한 정도였다. 



내 팔을 보았다. 


하얀색 털이 팔을 시작으로 점점 퍼지고 있었다.


곧 관절이 비틀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그 이후부터 본격적인 변화가 시작되었다.


"끄아아..." 정신력의 한계가 뭔지 제대로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그 때부턴 몸통을 거쳐 온 곳에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뭔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는지, 그가 나에게 달려왔고, 날 안아주었다.


나도 아픈 앞발로 그를 안았다.


전보다 훨씬 더 안정감이 들었다.


귀가 돋아나고, 꼬리가 돋아나는 고통이 닥쳐올 때마다, 난 그의 몸을 더욱더 세게 잡았다.


관절이 뒤틀리는 느낌과 몸이 점점 가벼워지는 듯한 느낌이 지나고, 


"허억...허억..."


변신이 끝났을 땐 얼굴은 벌써 눈물 범벅이었다.


그가 입을 먼저 뗐다.


"야야, 괜찮아? 이성 안 잃었어? 안 잃었으면 대답 좀 해..."


"안 잃었어. 괜찮아."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먼저 대답하였다.


"그래? 다행이네. 잃었으면 벨트 가지고 올가미나 만들까 생각중이었거든." 그가 능글맞은 목소리로 말했다.


"컥" 괜히 웃음이 터졌다.


"너 거울 한 번 봐 봐."


난 거울을 한 번 보았다.


나의 모습은 영락없는 늑대였다.


흰 색에 벽안을 가진 늑대. 다른 점이면 이족보행을 정상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모습 맘에 들어?" 그가 물었고,


"생각보다 괜찮은데?" 라고 나는 대답했다.


"와 근데 나 여왕이 우는 거 처음 봤어 이번에. 되게 추하게 울던..."


"좀 닥쳐주지 않을래?" 내가 주둥이를 번쩍 들었다.


"농담이야, 농담." 그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어쨌든." 


"이젠 거부하지 않을거지?" 내가 대답을 기다리며 말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내가 유혹적인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곧 난 침대로 뛰어들었다.


"이리로 와." 내가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는 흔쾌히 내 쪽으로 왔고, 어느새 그는 내 위에 있었다.


우린 서로의 주둥이를 맞대었고, 어느새 우린 딥 키스를 하고 있었다.


그 행위를 끝내고, 우린 우리 사이의 첫 밤을 보내기 시작하였다.


.


.


.


.


"어으..."


그 날도 여전히 따스한 햇살 속에 일어났다.


제일 먼저 내 손부터 확인해보았다.


당연히 인간의 손이었다.


옆에는 그이가 인간 모습으로 누워있었다.


오늘 새벽에 격렬한 밤을 보냈었는데, 그 때 힘을 다 썼는지 아무리 흔들어도 일어나지 않았다.


난 간단히 옷을 걸치고 테라스로 향했다.


테라스에는 똑같이 따스한 햇살이 닿고 있었다.


어제와 똑같은 화창한 날씨였다. 날 자체로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다시 한 번 그이를 보았다.


그는 아직도 곤히 자고 있었다.


내 아버지가 어릴 적 했던 말이 갑자기 생각났다.


"딸아, 아무리 늑대와 괴물들이 좋다고 해서 그들과 가까이하진 말아라."


죄송해요 아버지, 어겨버렸네요.


난 한숨을 내쉬었다.


이젠 햇살이 따갑게 느껴질 정도였다. 6월의 태양은 정말 뜨거웠다.


'뭐, 사랑은 순간적이고 우연히 일어나는 거니,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뭐.'


내가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이었다.


"...결혼 준비나 슬슬 해야겠다..."


아침에 못 털어냈던 하품을 다시 털어내고 기지개를 폈다.


아마 이번 6월은 평생 못 잊어버릴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이거 야스씬은 없는데 19금으로 넣어야 함? 애매해가지고 질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