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용병 길드가 있는 마을에 도착했다. 시간은 오후 4시 정도 되었다. 곧 있으면 저녁을 먹어야 할 텐데, 내가 오늘 번 돈을 따져보니까 100피코(코인)였다. 100피코가 이 행성에서 얼마나 되는 가치가 있는지는 저녁 식사를 하면서 알게 될 참이다. 하지만 쇠고기 맛이 나는 늑대 고기늘 놔두고 온 것이 못내 아쉬웠다. 돈을 절약해야 우주선 수리비를 다 모을 날이 앞당겨질 테니까 말이다. 


"스파링, 이제 어디에 가볼까요? 괜찮으시다면 돈이라도 절약할 겸 용병 길드에 있는 휴게실을 이용하는 것은 어떠세요. 아무래도 커피는 공짜일 테고 다른 것의 가격도 훨씬 저렴할 테니까요." 

"그렇게 합시다. 나도 이곳 상점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보아 하니 원래부터 용병이 직업이 아니고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용병이 되신 듯 하니까."

"아 제가 말씀을 안 드렸군요. 저는 행성 사이를 오가며 관광도 하면서 가끔씩은 장사도 하는 장사꾼이지요. 헌데 다른 행성으로 가다가 우주공간에서 우주선의 중요부품이 고장이 나는 바람에 이 행성에 불시착하고 말았어요. 우주선 수리비를 벌기 위해서 용병이 되었죠." 

"쥐꼬리 같은 용병 보상금으로는 한참 시간이 걸릴 텐데. 참 안 됐소."

"이곳도 살 만한 곳이던데요. 이곳 생활을 즐기면 되겠죠. 저는 당초 유유자적하면서 행성간 여행을 즐기는 편이라 딱히 바쁠 것도 없거든요." 


스파링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사이 용병길드 주차장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에 올라 1층에 있는 용병 휴게소에 들어가니 넓직한 방은 한 가운데 놓인 탁자를 빙 두른 소파의 무리가 여섯 놓여있고 그 너머에는 간단한 식품이나 장비 따위를 판매하는 편의점이 있었다. 편의점 직원으로는 엘프 1명이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엘프종은 삐따칸다리 별의 행성인 나쿠나마타타에서 발원한 지성체이다. 자연 친화적이고 평화적인 엘프는 인간와 접촉한 후에도 계속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 지성체의 생김새가 인류의 미적 감각에 조금 더 부합했는지는 몰라도 고대 지구의 환타지 소설에서 자주 언급된 "엘프"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고대 소설에 조예가 있는 사람은 이 지성체의 가장 큰 특징은 당나귀처럼 뾰족한 귀라고 한다. 대체적으로 날씬하고 균형잡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으며 인류와 비슷한 위치에 눈코입귀가 놓여 있다. 크고 뾰족한 귀만 없었다면 누가 보더라도 그저 인류가 아닐까 하는 착각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인류는 엘프의 생김새가 자신을 닮아 있고 대체로 아름다우며 호전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해서 오크보다는 더 좋은 대우를 해주었다. 인류의 사회적 지위와 비교하자면 거의 동등한 입장이라 할 수 있고, 간혹 아름다움의 정도가 지나친 엘프 여성의 경우에는 매스컴이나 소설미디어 등에서 평범한 인류 여성보다 우대를 받거나 마치 여신처럼 섬겨지기까지 한다. 


엘프종의 남성은 문명으로 오염되지 않은 여러 행성에서 수렵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으나, 엘프 여성은 다양한 행성에 흩어져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 엘프의 수명은 대략 2천살이라고 알려졌는데, 짧은 인류가 그 수명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에는 엘프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휴게소의 탁자에는 많게는 10명, 적게는 3명씩 다양한 종족이 자리를 차지하고 빙 둘러 앉아 있었다.  우리는 그 중 가장 적은 인원이 차지한 탁자에 가서 선점자의 맞은 편에 섰다. 대충 보아 도깨비족 2명과 인류 1명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도깨비족은 인류와 모든 면에서 같지만 머리에 조그만 뿔이 돋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혹자의 말로는 고대 지구에서 멸종한 네안데르탈인의 생김새를 닮았다고 하는데 내 눈으로 볼 때에는 인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인류가 우주 시대에 접어들면서 그 유전자 풀이 더욱 넓어졌기 때문에 도깨비의 생김새는 인류라는 유전자 풀에 그대로 포함될 수 있을 정도로 인류와 전혀 구분되지 않는다. 몇몇 인류 여성은 우직한 도깨비족 남성과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기도 한다. 도깨비의 유전자가 우성인지는 모르겠지만 인류와 도깨비의 후손은 항상 머리에 뿔이 있는 도깨비가 된다. 


사실 도깨비의 뿔은 크지 않기 때문에 머리카락이 적당히 길기만 한다면 뿔이 외부로 잘 드러나지 않으므로 평범한 사람은 인간과 도깨비를 구분하지 못한다. 또 도깨비의 뿔을 자른다고 해도 생명에 지장이 없고 단지 평범한 인간의 2배 정도에 해당하는 힘이 인간의 평균치로 약해질 뿐이다. 


탁자의 맞은 편에 앉은 두 명이 비록 머리카락을 길게 기르고 있지만 예리한 내 눈을 속일 수 없었다. 나는 눈뿐만 아니라 직감으로도 이들이 도깨비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두 도깨비는 용병 일을 하는 데는 강인한 힘이 필요하기 때문에 뿔을 자르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사무실에 근무하는 도깨비는 거의 모두가 뿔을 제거했다고 하니까 말이다. 


"저, 혹시 실례지만 이 자리에 앉아도 되겠습니까?"

우락부락한 얼굴을 자랑하는 도깨비가 답한다.

"앉으세요. 아마 최근에 용병이 되셨나 보군요. 목소리가 용병답지 않게 공손하네요. 이제 용병의 세계에 들어오셨으면 조금 괄괄해져도 될 겁니다. 하하." 

역시 도깨비의 목소리는 우렁찼고 힘이 넘쳤다. 스파링과 나는 자리에 앉았다.


나는 도깨비와 함께 얘기를 나누던 인류 남성에게 가장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제가 오늘 늑대를 잡았는데, 늑대 부산물 중에서 돈이 될 만한 것이 있나요?"

"아, 늑대를 잡으셨다고요? 혹시 등급이 어떻게 되시나요?"

"D등급입니다."

"아 저는 E등급인데, 아직 늑대를 잡아본 적은 없어요. 하지만 늑대 고기가 식용으로 쓰이고 정육점에 팔면 쇠고기보다 조금 더 값을 받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이 때 불쑥 괄괄한 목소리의 도깨비가 끼어들었다. 

"나는 늑대를 셀 수 없이 잡아봤어요. 늑대는 고기도 돈이 나가지만 그 시체를 모두 운반하려면 큰 차가 필요할 거요. 여기 늑대는 황소보다 몸집이 더 나가니까요. 차가 없다면 우선 늑대 눈알을 뽑아오세요. 제가 잘 아는 부산물 처리점에서는 눈알 하나당 10피코를 주니까요."

"늑대가 황소보다 더 큰데, 그 가격이 쇠고기보다 조금 더 비싸다면 늑대 고기를 파는 것이 가장 이문이 많이 남지 않을까요? 혹시 1마리에 얼마쯤 하나요?"

"보통 정육점에서는 200피코를 줄 겁니다." 


나는 놀랐다. 늑대를 5마리 사냥하는 용병 업무를 마쳤을 때 보상이 겨우 50피코에 지나지 않지만 늑대 5마리 고기를 모두 정육점에 판매한다면 1000피코, 즉 1나노(코인)을 벌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건 완전히 떼부자가 될 수 있는 길이 이곳에 널려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급히 도깨비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저한테 트럭을 임대할 수 있는 곳을 알려주실 수 있나요? 알려주신다면 제가 소주를 몇 병 사드리죠."

"소주? 오랜만에 취해 볼까? 좋소. 내 잘 알려드릴 테니 저기 편의점에서 소주를 사오시오."


소주는 대부분의 행성에서 즐기는 알코올 음료다. 나는 별로 알코올 음료를 즐기지 않지만 용병처럼 거친 일에 종사하는 사람의 마음을 가장 너그럽게 만드는 것이 바로 소주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나는 편의점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편의점의 엘프 판매원은 태블릿 위에 펼쳐진 홀로그램 동영상을 시청하고 있었다. 나도 비슷한 태블릿을 오토바이에 놓고 왔는데, 거의 무한정한 저장 용량을 자랑하기 때문에 수많은 동영상과 온 은하계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텍스트 문서를 꺼내볼 수 있다. 나는 독서와 동영상 보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아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인공지능 게임을 하면서 보내지만 말이다. 내 우주선에는 가상 현실을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는 캡슐 장치가 놓여 있는데, 그것을 우주선 밖으로 가지고 나올 수 없어 참 안타까웠다. 내가 태블릿을 가지고 나온 것은 앞으로 1년쯤 살아가게 될 삼마 행성의 이모저모에 관한 모든 정보를 시간 날 때마다 검색할까 하는 셈법에 따른 것이었다.


"여보세요. 아가씨."

항상 여성을 부를 때에는 과연 어떻게 부르는 것이 좋은지 고민이 된다. 흔히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여성을 "누나"라고 부른다. 지구 행성의 어느 조그만 나라에서 관용적으로 쓰이던 단어가 넓게 퍼진 결과라고 하는데.. 나는 영 누나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점원님이나 주인장 등등 어떠한 명칭을 갖다붙이더라도 어색한 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여성을 점잖게 부르는 "부인"이라는 말도 이상하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여성이 결혼했을 가능성보다는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높다. 또 어떤 여성도 설사 결혼을 했더라도 부인이라고 불리는 것보다는 아가씨라고 불리는 것을 더 좋아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안전하게 아가씨라고 부르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소주 5병 있나요? 가격은 얼마죠?" 


엘프 여성은 앉은 자세 그대로 태블릿의 홀로그램 동영상에서 눈을 놀려 나를 바라보았다. 순간 나는 엘프 여성의 아름다움에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빠져버릴 것 같은 깊은 눈동자. 얼굴의 다른 아름다움에 눈길을 줄 수 없을 정도로 이 여성의 눈동자가 주는 매력은 압도적이었다. 내가 얼어붙은 표정을 짓자 엘프 여성은 생긋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소주 5병이라고요? 15피코입니다. 1병당 3피코이거든요." 

"아 그런가요? 소주 5병 주세요."


엘프 여성은 의자에서 일어나 뒤로 돌아 몇 걸음을 걸어 냉장고로 나아갔다. 그녀는 몸에 착 달라붙는 옷을 입지 않았지만 나는 무수한 여성 겉보기 경험을 통해 그녀의 몸 윤곽을 짐작할 수 있었다. 허리가 잘록하고 그 아래의 엉덩이는 통통하게 적당한 부피로서 운동능력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으면서도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흩뿌리고 있다. 엉덩이는 다소 위쪽으로 들려 더욱 육감적으로 보였다. 나는 여성의 겉보기에 쉽게 매료되는 성격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 여성의 자태에는 첫눈에 정복되지 않을 수 없었다. 입을 헤 벌리며 그녀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 나의 집중된 시선에 불편함을 느꼈다면 과거 지구에서 통용되었다는 "성희롱"으로 고소되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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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많이 쓰는 것은 힘드는군요. 인터넷 글에서 웹소설 작가는 하루에 열심히 쓰면 공백을 포함해서 3만자까지 쓸 수 있고, 어떤 사람을 5만자도 가능하다고 하더군요. 저도 한번 도전을 하려구요. 어제의 경우에는 열심히 하려고 했지만 1만5천자 정도 썼어요. 오늘은 글씨를 쓰는 속도가 문제가 아니라 바로 글 쓸 내용을 생각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더군요. 미리 구상을 한 것이 없어서요. 그래도 꾸준히 글 쓰기를 연습한다면 언젠가는 하루에 3만자를 쓰는 실력도 얻을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