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링은 환자용 침대에서, 나는 보호자용 간이침대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병원의 아침식사는 간단했다. 토스트와 계란, 베이컨과 과일, 우유, 치즈 등을 조금씩 먹었다. 일반적인 호텔의 간편식과 비슷했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퇴원수속을 밟아 병원을 나온 후 바로 사냥을 개시할 작정이었다. 나는 하루쯤은 더 쉬자고 하였지만 스파링은 오크 특유의 고집스러움으로 막무가내 오늘도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용병의 딱한 처지에서는 하루라도 쉬지 못하고 일해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스파링은 단말기를 꺼내들더니 타클라호 숲에 주차되어 있는 오토바이가 자동항법으로 병원 주차장 앞까지 이동하도록 지시했다.


대충 식사를 마치고 한가롭게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알지 못하는 곳에서 나한테 연락이 왔다.

"혹시 한누리님이신가요? 저는 경찰 조사부에서 일하고 있는 사모아라고 합니다."

걸걸한 인류 남성의 목소리이다. 목소리 톤만으로도 벌써 형사의 전형성을 느낄 수 있다.

"제가 한누리 맞습니다. 혹시 무슨 일로?"

"어제 스파링님과 한누리님이 늑대 사냥을 나가셨는데, 늑대 6마리가 떼를 지어 협동으로 공격해왔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인가요?"

"사실입니다. 저도 늑대가 무리 지어 덤비길래 상당히 당황했어요." 

"그 늑대들은 먼저 마을의 농장을 습격해서 소를 5마리 물어갔고 나머지 소는 모두 죽이는 사건을 일으켰을 겁니다. 한누리님께서도 농장을 습격한 늑대의 발자국을 쫓아갔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렇습니다. 동일한 늑대들이었죠. 하지만 인간을 공격할 때에도 마치 무리가 역할을 나눠 협력하는 것처럼 공격하리라고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죠." 

"경찰에서는 최근 이상행동을 보이고 있는 늑대들에 관해서 조사하고 있습니다. 장기적인 치안상황에 위협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보거든요. 혹시 늑대를 사냥한 장소를 기억하시죠? 제가 동행을 해서 늑대의 시체를 조사해도 되겠습니까?" 

"6마리의 늑대 때문에 제 친구가 손을 다쳤기 때문에 그 늑대의 시체는 사냥터에 그대로 놔두고 급히 병원으로 왔습니다. 아마 늑대 시체는 쓰러진 채 그대로 있겠지요. 그곳이 어딘지는 제 단말기에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친구분은 오늘 퇴원하시죠? 늑대 시체 조사에 동행을 허락하신다면 병원에서부터 저와 함께 숲으로 가시는 것이 좋겠네요. 제가 병원으로 즉시 가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마침 저희도 바로 퇴원을 할 참이었으니까요."


우리가 퇴원수속을 마치고 병원 주자창에 발을 딛자 저만치에서는 사모아 형사가 벌써 당도해 기다리고 있었다. 형사는 신분증을 바로 눈 앞에 제시하며 말한다.

"안녕하세요. 제가 사모아 형사입니다. 함께 숲으로 가실까요?"

"형사님, 제 친구 스파링입니다. 왼손을 늑대에게 물렸지요."

"손목이 잘렸다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아주 말끔하게 치료되었군요. 참 다행입니다."


그렇게 해서 사모아 형사를 비롯한 우리 일행은 타클라호 숲속으로 들어갔다. 흐릿한 빛이 들어오는 공터에는 분명 늑대 6마리의 시체가 나뉭굴고 있을 것이다. 단말기 화면의 반짝이는 위치에 도착하였고 내가 기억하는 공터임에 분명했지만 늑대의 시체는 눈에 띄지 않았다. 다만 늑대의 뼈들이 띄엄띄엄 떨어져 있을 뿐이다. 

"형사님, 늑대가 동족의 시체를 먹나요?"

"제가 알기로는 식량이 크게 결핍되지 않고는 늑대가 늑대를 먹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공터에 쓰러졌던 늑대는 어떤 짐승이 먹어치웠을까요?"

오크 스파링이 말했다.
"제 경험상으로는 이 지점에서 늑대를 먹어치울 맹수는 살지 않습니다. 뼈에 긁힌 이빨 자국을 보면 늑대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늑대가 늑대를 먹었다는 말이 될 텐데. 이 근처에 먹이 부족 사태가 발생하고 있던가?"

"그것도 아닐 겁니다. 늑대들은 최근 소를 약탈한 적이 있어요. 또 밤에는 이곳에 사냥하기에 충분한 먹이감이 출몰하거든요." 


사모아 형사는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나는 그제 저녁 준코와 나누었던 얘기가 생각났다.
"형사님, 늑대를 조정할 줄 아는 지성체가 있다면 늑대로 하여금 동족의 시체를 먹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 말씀은 늑대의 시체에 어떤 사건의 단서가 있는데, 그것을 숨기기 위해서 늑대로 하여금 시체를 먹게 했다? 이 말씀이시죠?"

"제가 늑대 눈알을 팔았는데, 최근 몇 년 전부터 눈알이 거래되기 시작했다는군요. 눈알에는 특이한 성분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저는 잘 모르지만요." 

"그것이 이 사건과 무슨 관계가 있나요?"

"늑대가 시체를 다 먹은 것으로 보아 어떤 사람의 통제를 받는 늑대에게는 특이한 물질이 몸에 남아 있을 수도 있겠지요."

"한누리, 참 대단하시군요. 그럴 듯해요. 그렇지만 탐정 소설을 너무 많이 읽으신 것 같아요. 하하."

"아니, 형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시죠?"

"저야 모르죠. 더 조사할 따름이죠. 뭔가 더 자세한 단서가 나올 겁니다. 아직 증거가 없으니 뭐라고 말할 수 없군요." 


형사는 늑대 뼈 주위를 살펴보았다. 어두침침한 빛에 불과하지만 주위를 어지럽히는 늑대 발자국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형사는 늑대 발자국의 패턴은 단말기에 인식시키고 그것을 추적하도록 했다. 늑대 발자국은 숲의 더 깊숙한 곳을 향해 나 있었다. 어제의 불상사를 기억하는 이상 숲의 더 깊숙한 부분으로 들어가는 것은 왠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형사님, 잠깐만요. 어제 저와 제 친구는 6마리 늑대의 집단적인 공격을 받았습니다. 만약 집단적인 공격의 근원이 숲 깊숙한 곳에 있다면, 숲속으로 들어갈수록 더 많은 늑대 무리의 공격대상이 되기 쉽지 않을까요? 뭔가 대비책을 세우셔야 하지 않나요?"

"늑대가 집단적으로 행동하게 된 원인이 반드시 숲속 깊숙한 곳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저는 동족을 물어 뜯어먹었다는 늑대의 행태를 관찰하고 싶을 뿐입니다. 또 저는 늑대 따위는 무섭지 않아요."

"예?"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과거 용병으로 활약하다가 형사가 되었어요. C등급 용병으로 돈은 많이 벌었지만 만족하지 못하겠더군요.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을 하고 싶었기에 사회의 안전을 보장하는 형사가 되었습니다."

"C등급이라면 늑대쯤은 손쉽게 잡으시겠군요."

"제가 아직 집단적으로 행동하는 늑대를 사냥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여러분이 계시니 괜찮겠죠. 여러분은 이미 집단적인 늑대를 사냥한 경험이 있으시구요."


사모아 형사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은 자만심으로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B등급인 우리가 늑대 6마리를 물리쳤다면 C등급에게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혹시 형사님, 용병으로 활약하실 때에는 타클라호 숲 가운데까지 가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제가 용병으로 생활하던 당시에는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곳조차 올 기회가 없었죠. 숲 근처에 자리잡은 마을은 원래 숲이었습니다. 인류를 비롯한 여러 지성체 집단이 숲에서 나무를 베어내고 짐승을 내쫓아 농장과 도시로 개발을 한 것이지요."

"광범위한 개발을 진행할 당시에는 숲의 생태계에 별 이상이 없었나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생태학자가 아니니까요. 아직까지는 지성체에게 큰 해악을 끼치는 사태가 벌어진 적은 없었어요." 


숲은 대체적으로 평지였지만 얼마쯤 걸으니 언덕이 나왔다. 경사도는 대략 15% 정도였다. 언덕을 20분 정도 걸으니 제법 높게 올라온 듯했다. 고도를 재어보니 300미터가 조금 넘었다. 야산쯤 되는 언덕 꼭대기에는 비교적 나무가 적어 주위의 경치를 멀리까지 조망할 수 있었다. 

우리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니 우창한 숲 끝에는 아담한 마을이 시작되어 점점 건물이 높아지더니 저 멀리에는 비교적 높은 고층빌딩이 세워져 있는 도시가 나타났다. 저 소도시에는 용병 사무소, 정육공장, 부산물 처리점, 병원 등등이 있을 것이다. 숲 언저리의 마을에는 도깨비 형제 준코와 마코가 채소를 가꾸고 돼지를 기르며 이웃 농장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겠지? 

언덕 꼭대기로 불어오는 바람은 가슴을 시원하게 하였다. 경사도가 그래도 제법 있는 언덕빼기를 오르느라 땀이 흐르기도 했다. 더구나 늑대의 발자국을 쫓느라 긴장을 한 탓인지 숨도 더 가빴다. 아무래도 앞으로 진행할 내리막길은 한결 쉬워질 것이다.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살펴보니 광활한 대지가 온통 아람드리 나무로 뒤덮여 있다. 눈에 보이는 한도에서는 나무밖에 보이지 않는다. 높은 곳에서는 전체적인 지형을 조망할 수 있는데, 앞으로 1킬로미터쯤 나아가면 20-30미터 절벽으로 가라앉은 분지형의 대지가 보인다. 그 분지에는 작은 계곡이 흐르고 그로부터 몇 킬로미터를 나아가면 하얀 연기가 피어오른다. 하얀 연기? 

"형사님, 혹시 이 숲속 한가운데 지성체가 산다는 얘기는 없던가요?"

"글쎄, 늑대보다 더 강력한 다수의 종이 서식한다는 말은 들었어요. 그 종이 인류에 필적하는 지성을 지녔는지는 모르겠군요."

"그럼 저 연기는 뭐죠?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연기가 아닌가요?"

"산불이 난 것이 아니라면 인위적인 연기라고 할 수 있겠죠."

"불을 다룰 수 있는 생명체라면 지성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아무튼 어떤 존재가 살고 있는지는 저쪽에 가보면 알겠군요."

"한누리님께서는 늑대의 발자국이 저 연기가 나는 쪽으로 이어질 것으로 생각하시나요?"

"제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거든요. 자연적인 본능에 따라 살아가는 늑대가 본능에 거스르는 짓을 하려면 분명히 어떤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요."


잠시 쉬었더니 땀은 다 말랐다. 바람의 상쾌함도 땀과 함께 사라졌다. 우리 일행은 다시 늑대의 발자취를 쫓아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15분 정도를 걸으니 아까 보았던 절벽 아래의 분지형 대지에 도달하게 되었다. 절벽은 대략 20미터 높이였다. 늑대가 20미터 높이의 낭떠러지를 왕래했을까? 여기에서 나는 의문이 들었다. 분명 절벽 아래로 내려갈 수 있는 통로가 존재할 것이다. 

"늑대 발자국이 절벽으로 내려가는 생태통로로 이어져 있지 않나요?" 

"이 근처는 바위로 되어 있어 발자국을 찾기가 힘들군요. 이 절벽 아래로 내려가면 바닥이 흙으로 되어 있어 발자국을 찾기가 다시 쉬워질 겁니다. 굳이 바위에서 발자국을 찾으려 애쓰지 말고 내려가서 찾지요."


사모아 형사는 벨트에 맨 주머니에서 밧줄을 꺼냈다. 바위 사이에 자란 관목 중에서 비교적 줄기가 굵은 것을 찾아 밧줄을 비끄러맸다.

"이 밧줄의 강도라면 우리 셋이 내려가도 끄떡이 없을 겁니다."

스파링과 나는 밧줄을 잡아당겨보았다. 듬직했다. 사모아 형사가 먼저 밧줄을 두 손으로 잡아 옆구리에 끼며 절벽에 발을 디뎌 내려가 바닥에 착지하였다.  내려 오라는 고함소리와 함께 손바닥 신호를 주자 스파링이 다음 차례로 내려갔다. 나는 주위를 살피며 마지막 주자로서 절벽 아래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