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모르의 아침은 남들보다 1시간 가량 빠르다. 스물다섯이라는 젊은 나이라고 믿겨지지 않을정도로 그의 머리는 심하게 벗겨져 있었다. 마을의 관습에 따라 그에게는 2등민이라는 계급이 주어져 있었다.

"여기 남자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나무를 캐오고 물을 길어야 하죠. 그리고 2등민들은 다른 1등민들보다 1시간을 일찍 나와야 해요."

타모르는 이미 순응한 듯 별것도 아닌 것처럼 말을 했다. 준비를 마친 타모르를 따라가니 우물에 몇몇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다들 머리가 벗겨진 남자들이었다.

상당히 이른 시각이다. 나는 그들이 아침은 먹었는지 궁금해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보았다. 

"아침을 먹으면 시간이 부족해서 거르고 나옵니다."

"조금이라도 더 자고 싶어요."

피곤에 찌든 그들의 목소리에는 생기라곤 없었다. 그중에는 초로에 접어든 남자도 있었다. 그의 머리는 이미 미련을 버리고 포기한 것처럼 머리카락이라곤 한 올도 없는 완전한 대머리였다. 

"아내분한테 아침을 미리 차려 달라고 하시지 그러셨어요."

머리가 벗겨진 초로의 남자는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두손을 모아 합장을 한 뒤에 조용히 말을 이어나갔다.

"저는 미혼입니다."

"아..."

할말을 잃은 채 나는 남자의 머리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그는 머리를 완전히 밀어버린 순간 가정을 이루는 꿈도 포기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착잡함에 이루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타모르는 건강하고 밝은 청년이다. 

가장 먼저 나에게 숙식을 권한 것도 타모르였다. 타모르는 할머니를 모시고 있으며 할머니도 타모르를 각별하게 여겼다.

마을 사람들 역시 그런 타모르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럴수록 2등민이라는 차별에 한해서 엄격해지는 마을 사람들의 태도를 보며 적잖은 모순을 느꼈다.

그럴때마다 나는 타모르에게 마을 밖으로 나가지 않겠느냐고 권유했다. 하지만 타모르는 평생을 살아온 고향을 떠날 생각이 없는지 조용히 머리를 가로 저을 뿐이었다.


오늘도 일을 나가는 타모르와 반갑게 인사했다. 

그들의 인사법은 독특하다. 

손을 상대의 정수리에 얹은채 머리카락을 주먹 가득 쥐고 위로 약 5cm가량 들어 올린채 서로를 마주 본다. 주먹에 쥐어진 머리카락이 풍성할수록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머리 숱이 적을수록 그것을 수치로 여긴다.  머리 숱의 양이 남자다운 카리스마로 여겨지며, 생활 속에서도 머리 숱이 차지하는 영향력이 적지 않은 곳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손에 집히는 타모르의 머리 숱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졸지에 타모르의 할머니와 둘만 남게 되었다. 평소에는 같이 일이라도 거들러 나갔겠지만 타모르의 말에 의하면 오늘은 2등민만이 일하는 날이라 외지인인 나까지 신경써줄 필요가 없다고 한사코 마다했다.

한동안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계속 조용히 계시던 할머니는 일어나더니 부엌에서 차를 내어왔다. 할머니는 만면에 웃음을 띄며 귀한 약이 들어간 차라고 강조를 했다. 

검은색으로 짙게 우려진 차에서는 왠지 모를 좋은 향기가 났다. 

'꽃향기인가?'

향기를 음미하며 차에 대해서 칭찬을 하다보니 다소 어색했던 분위기는 누그러지는 듯 했다. 말을 트기 시작한 할머니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화제는 거의 타모르에 관한 것들이었다. 

"타모르가 어릴때는 정말로 머리 숱이 풍성했단다. 온 마을의 사랑을 받았지. 암."

"그럴거 같아요."

"옛날에는 약혼녀도 있었지..."

신나게 이야기를 하던 할머니는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어느샌가 이야기가 그의 인생의 전환점에 접어든 것을 직감한 나도 덩달아 입을 다물수 밖에 없었다.

"20살이 되더니 갑자기 머리가 빠지더구나... 하루에 수백개씩이나..."

"해가 갈수록 머리 숱이 비는 타모르를 보며 약혼은 깨지고 타모르는 2등민으로 떨어졌지... 그래도 타모르는 웃음을 잃지 않았어. 기특한 아이란다..."   

"신께서 타모르를 버리지 않았다면 그 아이의 머리는 다시 풍성해질게야..."

"네..."

마지막 한 모금을 들이키며 대답을 했지만 목구멍으로 넘어간 차의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곳에 온지도 벌써 한달 가까이 된거 같다. 눈 앞까지 내려오는 앞머리를 매만지며 지나간 시간을 되새겨 보았다. 

그러고 보니 머리가 많이 길어진거 같다. 수염은 매일 다듬지만 여기와서 머리를 깎은 적은 없었으니 그럴만도 하겠지. 

이대로 냅두면 불편할 거 같아서 할머니한테 머리를 자를 것이 없냐고 물었더니 할머니는 자기가 깎아 주겠다고 대답했다. 생각해보니 혼자서 깎기도 어려울 뿐더러 거절할 이유도 없었기에 호의를 흔쾌히 받아 들이기로 했다.

"옛날에 이렇게 타모르의 머리도 자주 깎아주고 그랬단다."

미용실에서도 보기 드문 수동 바리캉을 꺼내 들었을 땐 혹시나 하는 걱정이 앞섰지만 생각보다 할머니는 솜씨가 좋은거 같아 안심했다.  자세히 보니 바리캉은 오래되어 보였지만 녹이 슨 곳이라곤 없었다. 물건에 대한 애착이 느껴졌다.

찰칵 찰칵 쇠붙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기분좋게 울리고 그럴때마다 서걱 서걱 소리를 내며 잘린 머리카락 뭉치가 떨어져 나간다.

"총각은 머리가 참 풍성하구먼."

머리를 깎아내면서 실없는 말을 건네는 노파의 그 모습은 영락없이 노련한 미용사처럼 보였다.

"다 깎았단다. 어떠니?"

"정말 잘 깎으시는데요."

실제로도 길이 조절이 절묘해서 어디 한군데 튀어나온 곳도 없이 보기 좋은 모양이다.

"그것 참 다행이구나."

할머니의 웃는 모습이 보기 좋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뒷정리는 제가 할테니 들어가서 쉬세요."

"아니란다. 내가 치울테니 너는 들어가 있으렴."

"그럼 같이 치워요."

잘린 머리카락을 싸고 들어간 곳은 부엌이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할머니 쪽을 보았다. 옆에서 보니 물이 담긴 냄비에 머리카락을 들이 붓고 계셨다.

"할머니, 뭐하시는 거에요?"

"싱싱한 게 생겼으니 너도 한번 맛좀 보렴."

불길한 기분이 들어서 거듭 물어보았다.

"...뭐를요?"

"뭐긴, 여기있는 귀한 약이지."

순간 머리가 어지러워져 발을 잘못 디뎠다. 두 다리가 땅에 붙어있음에도 넘어질 뻔했다. 할머니는 냄비에 집중한 채로 이쪽을 보지도 않은 채 중얼거렸다.

"암... 신께서는 타모르를 버리지 않고 말고..."


"요즘에 음식도 못먹고 핼쑥해지신 같아요."

타모르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내게 물어왔다. 하지만 차마 그 이유를 말할 수는 없었다. 그들이 믿는 것을 짓밟을 권리가 나한테 있을까. 아니 그보다 이제 신경쓰고 싶지가 않았다. 

"여기에 와서 마신 차가 몇 잔이었지..."

생각만 해도 애써 다시 입에 넣은게 올라올거 같아서 더 이상 헤아리는 걸 관두었다. 

이제는 진절머리가 나서 곧바로 마을을 떠날 준비를 했다. 

그래도 타모르한테는 신세 졌으니 나중에 찾아가서 인사는 하고 떠나기로 하자.

할머니는... 보고 싶지가 않았다. 보면 괜히 또 속이 뒤집어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타모르의 일터에 찾아가니 분위기가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이상한 일이다. 기본적으로 2등민들의 일터는 침울하기 그지 없어서 이렇게 시끄러울 일이 없을텐데.

가서 보니 머리가 벗겨진 두 사람을 중심으로 나머지 다른 대머리들이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었다.

말하는 게 빨라서 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두 사람의 표정이 험악한게 싸우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이미 두 사람의 손에는 상대방 머리에서 뽑아온 머리카락이 삐져나와 있었다.

그럼에도 이미 그들에게 머리카락이 얼마 없었기에 결국엔 텅 빈 정수리를 할켜대는 우스운 모양새가 된다. 그리고 이윽고 머리를 잡던 두 손을 서로 맞잡은 채로 머리를 맞대며 비벼대고 있다. 

그 싸움을 보며 다른 대머리들은 소리만 지르고 있었고 타모르는 걱정스러운 듯 쳐다보고 있었으며 나는 그 미개함에 더 이상 견딜수 없이 한심한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자 한쪽이 버티지 못하고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 그 틈을 타 타모르에게 신호를 보내며 간신히 두 사람을 떼어 놓았다. 

두 사람 다 정수리의 앞부분은 빨개져 있었고 그나마 남아있는 옆머리는 생으로 뽑혀나가 피가 나오고 있었다.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가위로 옆머리를 잘라내려고 했지만 다친 남자는 손을 뿌리치며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한심한 대머리들.

한숨을 쉬며 적당히 주변에 있는 다른 대머리한테 그를 넘기고 갈길을 서둘렀다.


타모르는 울음이 터져나왔다.

할머니는 약을 먹으면 다시 머리가 자랄거라고 했지만 이미 수 해가 지나도록 그의 머리는 계속 빠져가기만 할 뿐이었다.

지푸라기 같은 희망 아니 머리카락 한 올 만큼의 희망만 있다면 내일이 있으리라. 타모르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이거 였다.

모든 험한 일과 잡일은 대머리인 2등민에게 맡겨졌고 2등민들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노출된 채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노예같은 존재일 뿐 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의 분노가 터지고 분노의 뒤에 남은건 되돌릴 수 없는 상처 뿐이었다. 

한 쪽은 두피에 상처가 심해서 아예 머리털이 나는걸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런 마을 의사의 진단은 2등민인 그에겐 사형 선고나 다름 없으리라.

선고를 함께 받은 다른 2등민들은 무기력하게 다시 일을 계속했다. 아니, 선고라고 할 것도 없이 그들은 이미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생기가 돌지 않는 퀭한 그들의 눈을 보며 타모르는 그렇게 생각했다.

'마을을 떠나자. 머리가 벗겨졌다고 이런 차별을 받는건 말도 안되는 일이야.'

문득 그의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제 그는 여기에 없는 사람이었다.

타모르는 흐르는 눈물을 훔쳐가며 그가 간 방향으로 달려나갔다. 하지만 그런 타모르를 말리는 대머리는 아무도 없었다.


타모르는 달리고 또 달렸다.

마을의 입구를 지나 정처없이 달렸다. 눈물이 계속 흘러나와 앞이 잘보이지 않았지만 개의치 않고 달리고 또 달렸다. 

해가 지고 밤하늘에 하나 둘씩 별들이 수놓이고 있었다. 그리고 지상에서 빛나는 타모르의 머리는 별이 떨어지는 것처럼 땅바닥에 풀썩 쓰러져 버렸다. 

몇시간을 달렸는지 모른다.

얼굴은 땀과 눈물이 섞인 채로 엉망이 되어있었고, 지쳐 쓰러진 타모르는 숨을 헐떡이며 움직일 생각을 안했다. 


'비가 내리나...?'

타모르의 민머리를 타고 물줄기가 나뉘어져 뺨으로 그리고 눈으로 흘러내려 간다. 그럼에도 몸이 젖는 느낌은 들지 않는게 이상했다.

타모르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눈을 떴다. 눈 앞에 마을을 떠났을 터인 그가 타모르를 내려보고 있었다.


"여기까지 쫓아 온거야?"

타모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

"마을을... 마을을... 떠나고 싶어요..."

"그런 것치곤 짐이 너무 없지 않냐?"

나와 타모르는 나란히 앉은 채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머쓱해져서 손가락으로 별을 가리키며 헤아려 본다. 타모르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내가 사는 곳은 말이야. 별이 뜨지 않는 곳이야. 낮이고 밤이고 짜증나게 불이나 켜대고 시끄러운 소음에다가 공기는 나쁘고, 그런 곳에 살다가 여기에 오니 뭐랄까...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아서 참 좋았었지."

"그럼 당신도 여기가 싫어져서 떠나기로 한 건가요?"

"그래, 넌덜머리가 나서. 이해할 수가 없었어. 이렇게 축복받은 곳에서 자유롭게 사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머리카락에 연연 하는걸까. 그저 오랫동안 내려온 마을의 관습이어서? 그렇다면 나는 그걸 존중하고 이해하려고 했어."

"하지만 그건 썩어빠진 악습일 뿐이었고, 말도 안되는 악습에 짓밟히는 사람들과 또 그것을 맹신하는 사람들이 한심하고 불쌍해져서 견딜 수 없이 슬펐어. 하지만 외부인인 내가 할수있는건 아무것도 없었지. 결국 나는 그들을 외면한 채 도망가는것 뿐일지도 몰라."

"저도 마을이 싫었어요. 머리가 없다고 차별을 해도 억지로 웃어 넘겼고, 매일 매일 머리가 자라나도록 빌고 또 빌었어요. 하지만 이젠 알아요. 제 머리는 가망이 없다는걸..."

"도시로 가면 머리가 자라나는 방법이 있는거죠? 거기에는 대머리가 없는거죠?"

"아니, 대머리는 완치되지 않아."

타모르의 목소리는 절박해져 왔다. 하지만 구원을 바라는 타모르에게 현실을 알려줘야만 했다.

"대머리는 완치되지 않아. 빠지는 걸 늦추거나 옮길수는 있지만 예전처럼 풍성해지지 않아."

"그럴수가... 그럼 대체 왜 저한테 떠나자고 말한건가요...?"

타모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 듬었다. 맨들맨들한 촉감을 손바닥으로 느끼며 말을 이어나갔다.

"확실히 그런 말을 했었지. 하지만 지금까지의 너를 보니 이제 떠나자고는 못하겠구나."

"그게 무슨..."

"나는 외지인이지만 거기가 너의 고향이잖아. 저녁결 창문에서 불어오는 바람. 할머니가 해주시는 생선구이 냄새. 그리고 이 밤하늘의 별들."

"너는 여기에서 살야가야만 해. 나처럼 도망치지 말고 니가 살아야 할 곳은 니가 만들어. 그 이후에 도시로 올지 계속 거기 살지 정하면 되는거야."

"제가 할수 있을까요...?"

"여태까지 견뎌 왔잖아? 너는 잘할 수 있을거야."

무언가를 끄적인 종이를 타모르한테 넘겨 주었다.

"내가 사는 곳의 주소다. 넌덜머리 나는 곳이지만, 그래도 너랑 할머니는 그리울거야. 나중에 편지라도 해줘."

"그리고... 할머니한테 인사 못드려서 죄송하다고 전해드리고." 

"그 머리카락 달인 차는 좀... 그만 마셔라. 그거 먹는다고 머리카락 안나니까."

"네."

흙먼지와 눈물이 뒤섞여서 엉망진창이 된 얼굴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밝게 웃고있는 그녀석을 보자니 자신이 품고있는 고민이나 응어리 같은게 정말 사소하게 느껴져 버린다. 

타모르가 이렇게 웃는 모습을 여태까지 본 적이 있었던가.

아마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순진무구한 웃음이 이 녀석의 진짜 모습일지도 모른다. 

숨기는 것도 속에 담은 것도 없이 타모르와 나는 그저 웃어제꼈다. 

거기에는 더이상 대머리와 일반인의 구별 같은건 존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