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나



*호불호 주의







화창한 태양이 내리 쬐는 어느 아름다운 날이었다.



창문 밖으로 부터 세상의 온기가 흘러들어오며


머릿 끝을 스치는 상쾌한 바람 역시 그의 친구 처럼 따라오는 기분 좋은 날씨.


비록 특별 할 건 없지만.


그렇기에 평화롭다고 느껴지는 평온한 일상.



비가 갠 뒤에 풀잎들은 저마다의 이슬을 머금고 하늘을 올려다 보고,


기름 진 토양들은 그런 풀잎들을 떠 받드는 그릇이 되어주는 그런 화창한 날이었다.






푸른 언덕,


그 위에 그림 처럼 놓인 단조로운 저택.


절대 호화롭다곤 할 순 없지만


세월의 흔적과 그리운 정이 사뭇 깃들어 있는 나의 보금 자리.




오늘도 여러 생명이 피어나는 이 아름다운 하늘 아래에..


"아아...."




어찌 내 사람은 저물고 있었다.



"잘 잤나요.... 당신?"


바람 앞에 촛불 처럼 희미한 목소리


"하하..."


한 때 누구도 말릴 수 없었던 힘과 고귀함은 어디 가고,


시간 앞에 무너진 연약함만이 남아 있었다.





"응, 여보는?"


내뻗는 것 조차 힘겨워보이는 손을 다정히 감싸준다.


"잘 잤어? 오늘 몸 상태는 어때?"


백옥 처럼 하얗고 부드러웠던 피부는 이젠 더딘 천 처럼 나약하고 쭈글거렸다.


너무나 아름다웠던 미소도 이제는 연세가 들어 시들시들했다.



그래도...


"저야 뭐.. 똑같죠."


외형이 아무리 변했다고 한들..


"이젠 언제 눈을 감아도 이상하지 않아요."


내 마음은 처음 맹세 했던 것과 똑같았다.






"그런데... 당신은 옛날 모습 그대로네요."


시간이 멈춘 것 처럼, 처음 모습 그대로인 나와


"응, 여보는 늙었고.."


이젠 쭈구렁 할머니가 되어버린 내 평생의 동반자.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할미와 손주 같은 우리가...


사실은 부부였다.


그것도 생사를 함께 하며 여러 시련에도 동고동락했던 용사와 검사였다.



하지만...



"하핫.. 나 역시 늙지 않겠다고 약속 했것만..."


그녀에겐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미안해요... 결국 추한 모습이 되버려서...."


그녀는 나에게 먼저 저문 것에 대한 사죄를 전했지만


"그런 소리 하지마..."


나는 넘치려는 눈물을 욱여 넣으며 그녀의 손을 코 앞까지 가져다 대었다.



"오히려 내가 미안하지...."


그리우면서도 정든 향기가 코 끝에 스며든다.


"분명 불로장생 약을 찾겠다고 약속했는데.."


"함께 영원히 늙지 말자고 약속했는데...!!"


"난... 그런 약속을 어기고 말았어....."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이별에 결국 이슬 처럼 눈물이 세어나온다.


"아니에요~"


허나 아직도 미련으로 가득찬 나와는 다르게..


"애초에 존재가 확실치도 않는 환상 속의 약이 잖아요..?"


그녀는 이미 삶에 만족한듯한 한 없는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어요..."


그리곤... 허공을 봐라보며 나에게 마지막 인사를 속삭였다.


"그저 이제... 때가 된 것 뿐이지요."


실 처럼 가는 숨 소리가 점점 옅어진다.


"아아.. 알렌...."



"레이첼...?"


이젠 정말 한치 앞으로 다가온 작별에 


"레이첼....!!"


자식 잃은 어미 마냥 애타게 그 이름을 외쳐댔지만,



".. 아..."


아무리 간절히 외친다 한들, 운명은 그녀의 눈을 가려버렸고...


"알렌... 용사님...."


점점 풀리는 동공과 함께 ㅡ


"사랑해요...."


그녀는 최후의 고백과 함께 시든 꽃 처럼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


잠시간의 정적이 흘렀다.


"레이첼.....?"


다시 그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돌아오는건 외로운 침묵이었다.


분명 사랑하는 이의 모습이 아직 내 앞에 생생히 존재하것만


"레이첼...."


어찌 벽에게 말을 건내는 기분 이었다.



".... 용사의 검이여.."


하지만 그런 허상도 잠시 ㅡ


"부디.. 편히 잠드시길..."


나는 수긍해야만 했다.



그야... 옛적에서부터 각오한 일이었으니까.




"윽..."


하지만 그럼에도....



"흐윽.. 흐아아아....!"


서글픈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





시작은 머나 먼 옛날이었다.



용사 일행이 마왕을 토벌한 그 날.


"용사 알렌... 너를 저주하겠다...."


마왕은 최후의 발악으로 그에게 저주를 내리고 소멸하고 말았다.



"모두가 죽는다 한들 너는 최후의 최후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악신은 추하디 추한 발악과 함께 그 뜻을 알 수 없은 유언을 내뱉었는데.


"이별의 고통과 상실에 슬픔에 미칠 수도 없으며"


"영겁의 세월을 쓸쓸히 짊어져야만 할 것이다."


언듯 축복인 것 같기도 하지만


사실은 이보다도 꺼림직한 악기도 없었다.



"알렌?!"


"용사님...!"


"용사..!"



그 사악한 주둥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가 용사를 덮쳤을 땐 모두가 직감하였지만


"..."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뒤늦은 후회만이 눈 앞에 아른 거렸을 뿐이었다.



"으으... 응? 생각보다 아무렇지도 않은데?"


허나 그런 걱정도 잠시 ㅡ


"저.. 정말로 괜찮아?!"



용사는 자욱한 검은 안개를 먼지 털듯 휘날리더니,


"분명 꺼림직한걸 느꼈는데..."


"용사.. 괜찮아...?"



"어! 보다싶이 말짱해! 무슨 이질감도 전혀 없고!"



정말 아무렇지도 않는건지 양 팔을 니은 자로 구부리며 자신의 몸을 과시했다.




"".......""


분위기로 보아하니, 거짓말은 아닌 것 같은데...


마왕은 미처 저주를 시전하지 못하고 존재가 소멸해버리고 말았던 걸까.




허나 분명 이 자리에 있던 모두가 느꼈었다.


비록 지금은 그 기운이 사라졌지만


자기가 살아오면서 느껴본 가장 악독한 기운이 용사를 덮쳤었다는걸 두 눈과 피부로 확인했었다.





"그보다도.. 다 끝났어! 마왕을 토벌했다고!"


허나 용사는 늘 한결 같은 미소로 승리의 기쁨을 자축하기 바빴고,


"설령 진짜 저주가 걸린다 한들 어때?! 마왕까지 물리친 우리 라면 분명 극복 할 수 있을 거야!"


"".........""


다른 이들은 영 찝찝한 승리에 저마다의 근신 걱정을 얼굴에 그윽하게 내놓았었지만....




"후훗, 그렇네요!"


이내 용사의 따수운 활력에 동조된 엘프 조력자를 시작으로 ㅡ



"푸훗... 뭐, 그렇지. 지금 당장은 이 순간을 만끽해도 될 것 같아."


오랜 시련으로 무뎌진 칼날을 이제 그만 쉬게 해주기 위해서 검집에 검을 집어 넣는 검사와



"으응, 용사 말이 맞아. 어떤 저주인진 모르겠지만 내가 해주 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자기 키 만한 스태프를 가볍게 휘드르며 자신만만한 얼굴로 저주를 풀어주겠다는 마법사까지.



하나 둘 씩 각자만의 성격으로 불안한 마음을 털어내 가며 가라 앉은 분위기를 환기하였다.






"그래그래~ 이제 절대 악을 물리쳤다는 우리의 영웅담을 모두에게 알리러 가자고~!"



하지만 ㅡ



"하핫!"


용사는 몰랐다.


모두의 이야기가 그 자리에서 마침표를 찍었을 때에


'고독과 저주'라는 건조함이 용사의 펜만을 마르게 했을 줄은...




다른 이들과 함께 이야기의 끝을 매듭짓지 못한 그가,


결국 운명에 휘둘려 끝 없는 줄거리를 써내려가야만 한다는걸 그 때는 알지 못했다.






◇◇◇







마왕 토벌을 기념한 축제는 엘프들의 고향, 히레이어 대산림에서 이루어졌었다.



마족들의 땅에서 뻗어나온 독기를 눌러주며 지금까지 버텨준 세계수와


용사 파티 결성 전에도 가장 많은 영향을 행사했던 것이 엘프족이었기에


마왕을 물리친 영광은 그들의 고향에서 거행하기로 결정된 것 이었다.








"우와, 여기가 엘프들의 고향인가?"


"멋진걸?! 아름다워서 시선이 계속 빼앗겨!"


"여기서 이제 일주일간 축제가 열리는 건가요?"


각지의 종족들과 수 많은 이들이 화합의 장에 모여들었고




"이 날 부로, 이 세상은 보다 평화로워졌음을 공표합니다!"


""와아아아아!!""


여왕의 연설과 함께 모두가 환호하며 기쁨을 만끽하였다.




"감사합니다 용사님!"


"만만세!"


"연합군의 평화는 오래 가리라!"


따스한 햇살은 세계수의 그늘과 곁들여져 감미로운 평온을 선사하였고




"이제 이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워 지겠어!"


"축제다! 마시고 죽어보자고~!"


"여기 음식 더 가져다 줘!"



그런 하늘 아래에 지상인들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즐거움과 감사를 나누었다.




그 날 만큼은 모두가 마음 속 걱정들을 내려놓으며


미웠던 이들이라도 이 날은 사심 없이 즐겁게 잔을 주고 받는


평화롭고 기념비적인 행사가 한 동안은 계속 되었다. 


마왕이라는 공공의 적이 사라졌으니, 


그간 마족들에게 시달렸던 것 만큼 세상은 번창하리라 믿으며


음식과 술, 신나는 음악과 춤으로 앞으로의 평화를 기원하였다.






.....






축제는 밤 까지도 이어졌지만.




"레이첼...!"


그런 시끌벅적한 밖 과는 달리


성 안은 고요함으로 가라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성 안에서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는 남자가 있었으니,



"알렌...?"


유독 별이 가득한 밤.


아름다운 절경을 감상 할 수 있는 발코니에서



"하아.. 하아... 그.. 할 말이 있어서..."


용사는 홀로 하늘을 보고 있던 여검사를 찾아갔다.



"나한테 할 말이?"



찬란한 하늘을 넋 놓고 지켜보던 여검사는 사실 용사를 발견하기 전 까진 여러 감정이 깃든 얼굴이었는데.


기쁨과 보람


또 그런 것에서 비롯되는 여러 애뜻한 감정들,


"어....."


하지만 그것과 더불어 마음 속 어딘가에서 피어나는 후련함과 공허한 느낌이 그녀의 표정을 오묘하게 만들고 있었다.



"후훗, 뭔데?"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리 숨을 헐떡일 정도로 나를 찾아다닐 만큼 중요한 말아야?"


여검사는 용사를 마주하자 미련이 가득했단 분위기를 지운체, 가벼운 미소로서 그를 똑바로 마주한다.


"응, 엘리나가 어찌나 나에게 잔을 권하던지... 상대하고 오느라 진작에나 했어야 할 말을 이제야 하게 되네."


그는 잠시 숨을 가다듬더니, 안심과 더불어 후련한 표정으로 여검사를 마주 보았고.


그리곤 ㅡ



"나.. 줄곧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마왕 토벌이라는 목적 탓에 지금까지 숨기고 있었어."



마치 동화 속의 왕자님 처럼 각지고 정도된 자세로 한 쪽 무릎을 굽히더니 ㅡ



"사랑해, 레이첼."



이내 품 속에서 다이아로 가공된 반지를 그녀에게 보여준다.


"뭐..?"


그런 용사의 행동에 여검사는 잠시 상황을 따라가지 못한듯 병 찐 얼굴이 되었지만..



"푸웃.... 하하하하 ㅡ"


이내 박장대소를 터트리며 한 없이 웃어버리기 시작한다.


"야야, 난 지금 완전 진지하거든?"


그러자 한 순간에 무너진 분위기에 용사는 그나마의 엄숙함도 버려 버리며 따지는듯한 목소리를 내었지만


"아니~ 그럼 적어도 땀이라도 닦던가.. 아니면 이런 상태로 오지 말고 천천히 찾든가...!"



"하하하핫, 뭔가 진지한 분위기를 낼려곤 하는데 모습은 평소 천진난만하고 눈치 없는 알렌이니 뭔가 웃겨서 ㅡ"



그럼에도 여기사는 함박 웃음을 멈추지 않으며 솔직한 감성을 조금의 고민도 없이 내뱉어 버린다.


"으윽..."


완벽하게 분위기가 깨져버렸다 해도 과언이 아닌 그의 필살의 청혼이었지만...


"하하하핫! 그래도 ㅡ"


하지만...


"난, 그런 알렌이 천진난만함이 좋아."


"매사에 긍정적이고 남을 먼저 생각하는 이타심이... 계속 내가 가슴을 뛰게 해."



그런 용사의 고백이 오히려 여검사의 마음을 울렸던 걸까?



"... 뭐해.. 이런 고백을 할 배짱이라면 직접 끼워주는 배짱도 가지라고.. 바보...."


여검사는 그런 태평함에 안심한 얼굴을 띄더니 자신의 왼 손을 그에게 내밀어 주었다.


"...?! 레이첼!"


용사는 순간 밤 하늘의 달 만큼이나 눈을 휘둥그레 하게 떴지만


"하핫! 고마워...!"


이내 기쁨 마음으로 그녀의 약지에 자신의 선물을 끼워주는데 성공했다.



"오히려 내가 고맙지.."


"이대로 너와 아무 사이도 아닌 체로 이별하는 걸까 걱정했었는데."



그런 용사의 반지를 받아든 여검사는..


"하핫.."


잠시 눈을 감으며 자신의 왼 손을 입술 앞까지 가져다 대더니,



"정말로.. 고마워...."


"우읏... 그리고 나 역시 사랑해..!!"


이내 감동 서린 눈물이 눈꼬리에 맺히며 ㅡ



"앞으로 행복하게 지내자..!"


고대하던 그와의 사랑을 이루는데 성공하였다.









◇◇◇






그렇게 용사의 청혼을 받아들인 여검사와,


사모하던 여검사를 아내로서 맞이한 용사는



아름다운 삶을 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세계의 각지를 누비며 여러 것들을 배우고 새로운 문화들을 접하다가



그 곳들만의 여러 즐거움과 평온을 느끼며



그들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거쳐에 정착하게 된다.


그 이후에는 무언가 심심하면서도 행복한 결말들 밖에 없었다.


자신들의 저택을 짓고


풍요롭진 않지만 소박함의 미를 즐기며 살았다.


물론 재산도 충분하여 일하지 않고도 만족스러운 나날을 보내며


자식도 4명이나 낳았다.



그렇게 마왕을 물리친 두 영웅의 이야기는 화려하진 않지만 감미로운 결말로 끝을 맺는 줄 알았으나...





전에... 말하지 않았던가?


용사의 이야기엔 마침표가 찍히지 않았다고



그렇게 막을 내릴 줄 알았던 용사의 일상엔


어느 순간부턴가 불길함이라는 멋구름이 점점 드리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모두가 이상 없이, 모든게 끝나리라 믿었다.



허나..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어.. 뭔가...."


용사는 젊은 모습을 유지했다.



아니?


"여보.. 뭔가 이상해 ㅡ"


정확히는 나이를 전혀 먹지 않았다.


"으응.. 확실히..."


이제 피부에 주름이 지기 시작하는 아내와


어엿한 성인이 되어 독립해 버린 자식들과는 다르게


용사의 모습은 예전 그대로였다.


단순 동안이라기엔 너무나도 극명한 차이...


심지어 곁을 떠난 그의 자식들이 더 연모가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그 때...



"...?!"


용사는 떠올렸다.



'용사 알렌... 너를 저주하겠다....'


'모두가 죽는다 한들 너는 최후의 최후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이별의 고통과 상실에 슬픔에 미칠 수도 없으며'


'영겁의 세월을 쓸쓸히 짊어져야만 할 것이다.'



그 날, 악신이 남겼던 최후의 저주를 ㅡ






◇◇◇




"응... 확실히 뭔가 이상해."


상황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심각했다.



"... 역시 저주야?"



용사는 수소문 끝에 옛 동료인 마법사를 찾아갔지만..


염치 없게도 오랜 동료와의 재회는 엄중해야만 했다.


"솔직히.. 잘 모르겠어."


허나 그보다도 절망적이었던 것은


"저주이지만.. 저주가 아니야..."


이제 세계 제일의 마법사가된 그녀 조차도 젊음의 원인을 모른다는 점 이다.


추측컨데... 아마 마왕이 남기고 간 저주의 영향이라는 것 밖엔 알 수가 없었다.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알아 듣게 설명해줘.."


일말의 희망을 품고 찾아갔으나 그의 앞에 기다리고 있고 있던 것은 산산조각 나버린 기대였다.


"저주라기 보단 뭐랄까... 알렌 자체가 새로운 존재가 되버렸어."


마법사 라면 분명 무엇이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거라 예상한 것과는 달리 ㅡ


"분명 나와 같은 인족인데.. 특이하게도 노화가 극도로 느려."


"불사의 저주 같기도 한데... 정확한건 나도 모르겠어.."


"미안하지만.. 나로서는 해줄 수 있는게 없는거 같아."



자신이 지금껏 허구의 희망을 쫒고 있었다는듯 어둑한 얼굴로 용사를 마주보는 마법사만이 있었다.


"...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어?"


"응....."


결국 마법사에게서도 방법이 없다는 확답만 들은 용사는..






"미안... 아무래도 방법이 없는 것 같아."


빈 손으로 그녀의 곁에 돌아와, 허무한 낯빛으로 반려의 손을 꼭 움켜 잡으야만 했다.



"...."


용사가 이리도 침울했던 적이 있었던가.


어떤 시련과 고난이 와도, 꿋꿋이 일어섰던 그가


"그러면... 난.. 이대로 영원히 ㅡ"


이번만큼은 미래를 걱정하며 눈물을 훔치기 바빴다.


"괜찮아."


허나 용사와는 반대로...


"이 세상에 방법이 없는건 없으니까."


"너가 잘 알려 준 거잖아?"


이번엔 여검사가 그의 용기를 복돋았다.


"분명 뭐라도 있을 거야."


"뭣하면 나도 같이 안 늙어버리지 뭐."


"이 세상 어딘가엔 불로장생의 약이 있다고 하던데."


"그거라도 같이 찾아보자!"


아무리 섬뜩한 미래와 절망이 기다리고 있다 한들



"... 레이첼.."



한 때 모두의 희망이자 한 줄기 빛이 되었던 용사 처럼 밝게 웃어 보였다.



"그래... 같이 찾아보자!"


"불로장생의 약을!"


그런 아내에게서 동기부여를 얻은 그는 옛날 생각과 함께 무언가를 번뜩였고


"레이첼.. 부디 끝 까지 나와 함께 해줘..!"


"응, 기꺼이!"


다시금 샘 솟는 활력에 불멸의 비법을 찾으리라 결심했다.






◇◇◇




".... 그랬었는데."



하지만.. 이젠 알다싶이 ㅡ


"괜찮다곤 했지만.. 그래도 역시 미안하네..."


이들의 끝은... 그리 좋지 못했다.


결국 인간으로서의 운명을 다한 여검사는 영원한 잠에 빠져들었고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ㅡ


"하아...."


용사는 상실을 아픔을 쉽사리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부디 자신을 잊고 행복하게 살아달라는 여검사의 유언과는 다르게


"... 고독하구나."


그는 미련으로 가득 찬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오랜만이에요, 알렌 용사님."


그런데 그 때 ㅡ


"어....?"


생각지도 못한 존재가 용사에게 찾아왔다.


"소식은 들었습니다.. 레이첼님의 대한 건 정말 안타까워요...."


태양 처럼 찬란하고, 비단 처럼 부드럽운 금발에


"이제서야 다시 찾아뵙네요..."


사파이어 보석 처럼 초롱거리며 빛나는 푸른 눈동자,



"몸은 좀... 괜찮으신가요?"


이미 늙고 저물어버린 다른 동료들과는 다르게 ㅡ



"엘리나...?"


유일하게 자신과 같이 처음 모습 그대로인 옛 동료.



"...! 네!"


종족 특유의 귀를 귀엽게 쫑긋거리는 그녀가


용사의 말에 반응하듯 활짝 웃으며 답한다.


"저에요, 엘리나 라그에리스!"


인간 보다도 아득히 오랜 세월을 산다는 이종족 ㅡ


혹자는 불로장생의 종이라 칭하며


혹자는 신에게 축복 받은 이들이라 칭하는



이 세상에서 몇 안되는 장수종,



"기억해 주셨군요..!"


"그나저나.. 듣던대로 하나도 늙지 않으셨네요."


과거, 용사 파티에 유일한 엘프 종족이자


그의 첫 번째 동료였던 그녀가


"너 역시.. 그렇네?"


"네, 뭐.. 엘프가 원래 그렇잖아요?"


어째서인지 80년만에 그를 찾아왔다.








◇◇◇



"많이 힘드시죠..."


"저도 잘 알아요... 그런 이별이 얼마나 고달픈지."



엘프 조력자가 용사를 찾아온 이유는 사실 간단했다.


그를 위로하고 싶어서 ㅡ



"응.. 세삼 엘프들이 대단하단 생각이 드네...."


한 때 불굴의 의지와 활기로 모두에게 희망을 전하는 옛날과는 다르게


지금은 헛간의 먼지 마냥 바스라진 정신으로 


하루하루를 버텨가는 그를 지지해주고 싶어서 라고 말했다.


아는 사람이 전부 죽어버린 마당에


"그나저나 뭐랄까... 느낌이 새롭네....."


유일하게 죽을 수 없는 그가 무너지지 않도록,


"많은 시간이 흘렀는 대도 우리 둘만은 그대로니까.."


자신이라도 버팀목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라고 했다.



"참 아이러니 하네.. 그래도... 너라도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야."


실제로 엘프 조력자의 등장으로 용사는 조금이나마 기운을 되찾았는데.



모든 것이 낯설어지고 새로워지며 혼자가 되버리는 상황에


자신이 알아 볼 수 있는 유일한 존재와 마주하는건 아무래도 반가운 일이었으니까.



"네, 그러니 앞으론 제가 곁에 있을 게요!"


"어..? 응..."


허나 어째서인지 용사는...




"좋은 아침이에요, 오늘은 좀 어떠 신가요?"


"덕분에 조금 괜찮아졌어."


처음엔 그녀를 달가워하였지만..



"식사 못하셨죠? 제가 금방 차려 드릴게요."


"... 아니, 고맙지만 괜찮아...."


"네..?"



시간이 지날 수록 ㅡ



"내일은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 혼자 있고 싶어."


"... 왜......"


엘프 조력자를 점점 밀내었다.


마치 해와 달은 상극되는 존재이기에 이어져선 안되는 것 처럼...



"엘리나, 미안하지만 안와도 돼.."


용사 스스로도 외로운걸 알면서 그녀를 멀리 하려고 했다.




"어째서죠?"



".... 이대로라면.. 레이첼을 잊을 것만 같아서."


하지만...


한 번 영원함을 맹세 했던 용사 였기에... 그가 괴롭게 전하는 이유는 참으로 타당했다.



"넌 좋은 여자야.."


"상냥하고 아름답고... 내 곁에 오래 머물 수 있는 존재니까."


"너무나 매력적이지..."


"하지만 그렇기에... 이대로는 그녀를 잊을 것만 같아.."



용사는 여검사를 잊어버리고 싶지 않으니까.


자신의 마음 속에 반려를 영영 간직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녀가 영원히 사라진 지금..


"너와.. 금단의 사랑을 해버릴 것 같으니까 ㅡ"


이대로 라면 조력자에게 마음을 뺏아겨, 그녀를 망각해 버릴 것 같았기에 ㅡ


사실상 이젠 금단도 아니면서 금단이란 단어를 입에 달고,


괴로운걸 알면서도 일부로 떨어지려 했던 것이었다.


"에....."


용사의 말을 들은 조력자는.. 잠시 눈을 크게 떴지만



".... 알겠어요."


이내 무언갈 이해했다는듯 늘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혹시 마음이 바뀌면 저를 찾아와 주세요."


그리곤 ㅡ


"그럼 이만.."


여러 의미로서의 말을 남기며... 유유히 용사 곁을 떠나고 말았다.







.....






"하아....."



그 날 저녁이었다.



"...."


용사는 자신의 잠자리에서 뒤척이며 여러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냥 이대로가 좋은 걸까.



물론 엘프 조력자에겐 결의 섞인 목소리로 자신 있게 포부를 밝혔지만



"......."


그의 마음 속엔 응어리가 남아있는건 여전했다.



"레이첼..."


물론 머리론 영원히 아내를 간직하자고 말하지만..


"윽......"


한편으론 이제 그만 놓아주고, 새 행복을 찾자는 욕망이 줄기 처럼 피어오른다.


자신은 불로불사인 만큼


언제까지고 이럴 순 없다는건 자기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니까.



허나 그럼에도 조력자를 쫒아내는 객기를 부리고 말았다.






"......."


용사는 다시금 생각에 잠겼다.


앞으로도 여검사의 이름만을 중얼거리며 살아야 할까.


물론 선듯 그러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길을.... 택 해야 할까.."


이미 지쳐버린 마음은... 이젠 그만 놓아주자고 속삭였다.


이젠 죽은 사람이라고... 그녀도 유언으로 자신을 잊어달라고 말했으니 괜찮지 않냐고...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설득하고 있었다.









.....





"엘리나..."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



"앗.. 용사님."


결국 그는 조력자를 찾아가고 말았다.


"잠시 신세 좀 져도 될까?"


"... 네, 얼마든지."


물론 아내를 망각하자는 선택은 아니었지만


"... 고마워."


지금은 잠시 고독함을 덜어야겠다는 생각에


"대산림.. 정말 오랜만이네, 내 첫 여정도 여기였는데."


그는 잠시 조력자에게 신세를 지기로 했다.



"알렌님.."


허나... 조력자는 어째서인지 처음과 달리 적극적이었다.



"엘리나? 지금 옷 차림이 ㅡ"


단순 그의 곁을 지키는 것 외에도


용사를 유혹하기 시작했다.




"이러면 안돼.."


당연히 용사는 자신의 다짐을 배반하는 행위라며 거절했지만



"......."


눈 뜨고 코가 베이는걸 알면서도..


"괜찮지 않나요?"


일부로 다가오는 조력자를 점점 내버려 두고 있었다.




그렇게 어느날 ㅡ



"알렌님..."


"이러면 안되는데...."



그 때 처럼.. 별 들이 하늘을 가득 채우는 밤에



"괜찮대도요..?"


딱히 특별한 의미를 두진 않았지만 같은 이불 속에 들어오는걸 허락해버린 용사와


그런 용사의 체온을 느끼며 뒤에서 상냥하게 끌어안아주는 조력자,



"분명... 레이첼이 미워 할 거야..."


안된다곤 말하지만 사실상 마음을 열어버린 용사는 끝 없이 이유를 되내었지만


"아니에요.. 분명 자신을 잊어달라고 했잖아요?"


조력자는 그의 귓가에 두루뭉술한 숨결과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속삭이며


"난.. 레이첼을 잊고 싶지 않아."


"잊지 마세요.. 이건 그저 새로운 행복을 찾는 것 뿐 이니까."


그의 다짐을 하나 둘 씩 꺾어나간다.



"다른 여자와 맺어지는건.. 그녀도 원치 않을 텐데..."


"저라면 괜찮아요, 이래뵈도 저희.. 함께 모험 할 때도 친했다고요?"


"분명 이해 할 거에요."



그렇게... 끈질긴 속삭임과 매혹 끝에 ㅡ




"엘리나... 인간은 아무래도 구제 불능 욕구 덩어리 인가봐....."


"전, 괜찮아요.. 이런 알렌님이라도 전부 받아드릴 테니까."


용사는 조력자의 말에 현혹되고야 말았다.



"....엘리나."


"하읏..♡ 알렌님 ㅡ"


















◇◇◇




사실은 알고 있었다.


알렌님은 사실 내가 아닌 레이첼을 좋아하고 있었다는걸.



그렇기에...


'용사님~ 기분 좋은 날인데.. 딱 한잔만요~!'


그 때에 알렌님의 반지를 받는건 내가 아니라,


나의 절친이자 그와 등을 맞대고 싸워주는 여검사 라는걸.


'하아.. 진짜, 어쩔 수 없네.'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네! 이것만 마셔 주시면 돼요!'


하지만 그럼에도...


'아주 귀환 술 이라고요?'


질투나가 났다.


'응.. 으으..'


욕심이 생긴다.


'흠... 뭔가 이 술맛이 특이하네?'


'그런가요?'


그래서 주체 할 수 없는 욕심에 ㅡ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일단 잘 마셨어.. 난 이만 가봐야 해서.'


그에게 특별한 약을 먹인 것은 나만의 비밀이었다.


'... 잔은 고마워!'


우리 가문 대대로 내려오던 신비로운 비약


왕족에게 조차 알려주지 않는 특별한 약물을 제조하여 알렌님께 마시게 했다.


인간은 이걸... '불로장생 약'이라고 불렀던가?


사실 그렇게까지 대단한건 아니다.


엘프에겐 그저 아주 좋은 활력제에 불과하지만


다른 종족들이 마신다면 수명이 기하급수 적으로 늘게 된다고 한다.


아마 엘프들의 수명 만큼 살게 된다는데.


만약 사실이라면 알렌님은 결국은 내 차지가 되게 된다.


그 과정은 괴롭겠지만.. 그저 기다리기만 한다면


확실히 맺어 질 수 있다.


그야 종족의 한계를 견디지 못하고 주변인들이 전부 사라진다면


오로지 나만이 남게 되니까.



마왕도 사라지기 전에 이상한 말을 지껄여준 덕분에 자연스레 책임의 대상을 덧 씌울 수도 있었다.


아, 참고로 마왕의 저주는 처음부터 내가 남몰래 막아주었다.


어떤 것인지는 나도 모르지만... 아무튼 알렌님은 저주를 받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예외였던 것에서 나는 계획을 번뜩이게 되었고 ㅡ






"....엘리나."


"하읏, 알렌님.. ㅡ"


그것이 지금으로 이르게 되었다.




"내가 이런.."


"괜찮으니까, 마저 해요♡"


물론 바람직한 행동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





레이첼은 아마 모르겠지.


내가 얼마나 절망했는지.


분명 처음부터 알렌님을 이끌고 인도하는건 나였는데.


막상 선택을 받는건 다른 여자라는 배신감과


'아아... 싫어.....'


그러면서도 그의 행복을 기원하기에 해칠 수 없는 막막함 속에 ㅡ



'읏..! ..♡ 내껀데... 내꺼였는데...!'


할 수 있는거라곤 그저 둘의 사랑 소리를 엿들으며 무력감과 상상 속의 쾌락에 넘실거리다 하염 없이 허우적 대는 것 말곤 할 수 없었던게...



'아아.. 용사님..♡ 용사니임...♡♡'



얼마나 고달펐는지.



또 기억한다.



그 날... 아주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너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는걸.


그리고 넌 내가 있다는걸 인지하면서도 ㅡ


아니... 인지하고 있었기에 잠깐이지만 깔보는 웃음을 지으며,


그에게는 음란한 미소로 더욱 더 격렬히 맺어지는걸 기억한다.




"너를 원해.. 엘리나...."


"저 역시..♡"


하지만 이젠 내 차례야.


너가 사랑했던 것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알렌님과 사랑을 나눌 거야.




"으읏... 나 슬슬..."


"네네~♡ 그냥 이대로 ㅡ"





아아....


작별이다, 여검사. 


그저 검의 재능만을 쥐고 태어났을 뿐인 범부여.


물론 당장은 너의 흔적이 더 많겠지만은


엘프의 시간으론 찰나의 순간 밖에 되지 않는 너완 다르게


나는 천년만년 알렌님을 사랑하며 나의 것으로 완전히 덮어버릴 테니까.




"사랑해.. 엘리나 ㅡ"


"저도 알렌님을 사랑합니다..!"


이제 방해물 따윈 없다.



"저는 언제나 곁에 있을 테니, 걱정마세요♡"


아아... 행복해.


이제 영원히 내꺼야.












TMI) 

전성기 레이첼은 저런 모습이며

사실 저승에서 진실을 깨닫고 개거품 문 레이첼이

모데카이저 마냥 정신력으로 죽음을 극복하고 제 2의 마왕으로 재강림하는 것 까지 상상했었는데

그냥 뇌절 같고 엘리나가 메인이니 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