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NTR 묘사가 있습니다 *









나는 어제 얀붕이를 죽였다.

 

 

아니, 내가 죽인 건가. 사실 잘 모르겠다.

 

 

침대에 편안하게 누워있던 얀붕이는.

 

 

우리 집에 들어오고 난 이후로 본 표정 중에서 제일 행복한 표정으로 죽어있었다.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내몬 걸까.

 

 

대체 무엇이. 나는 그저 내 사랑을 다 줬을 뿐인데.

 

 

얀붕이가 내 사랑을 온전히 다 받아줬더라면, 우리는 행복했을 텐데.

 

 

비어버린 얀붕이의 빈 껍데기라도 보존할까 했지만.

 

 

마지막으로 얀붕이의 온기를 느끼려 손을 잡았을 때는 몹시 차가웠다.

 

 

온기 하나 없는 이 손을 포르말린에 담아 보존 처리한다고 해도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얀붕이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내가 사랑한 얀붕이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얀붕이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

 

 

얀붕이가 쓰던 물건들을 정리하려고 했으나,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매일 밤 얀붕이가 쓰던 베개를 베고, 얀붕이가 쓰던 이불을 덮고 잠에 든다.

 

 

5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그냥 가만히 앉아 있던 적도 있다.

 

 

웃지도 않았고, 울지도 않았고, 화를 내지도 않았다.

 

 

얼굴에 파리가 들러붙어도 쫒아내지 않았다.

 

 

이렇게 더 사는 게 의미가 있을까?

 

 

사람이 죽으면 49일 동안 이승을 떠돌다가 저승에 간다는 말이 있다.

 

 

아직 얀붕이가 죽은 지 49일이 안 지났다. 지금 죽으면 얀붕이를 볼 수 있을까?

 

 

허나, 이건 미신일 뿐이다. 하지만 사람이 힘들 때는 이런 미신들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던가.

 

 

이 말이 사실이라면. 

 

 

그 반대로 아직 이승을 떠돌고 있다면, 다시 부활 시킬 수 있는 법도 있지 않을까?

 

 

나는 집 근처에 있던 성당에 가보았다.

 

 

죽은 사람을 다시 부활 시킬 수는 없냐 물어보니, 성당에 있던 신부는 무슨 상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많이 힘든 상황인 거 같다며, 나에게 방황하지 말라고 하고, 죽은 이를 위한 미사를 읊어 주었다.

 

 

뒷산에 있던 조그마한 절에도 가보았다.

 

 

거기에 있던 스님은. 

 

 

사람이 죽으면 곧 새로운 다음 생을 받기 때문에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49일의 중음의 기간 동안, 다음 생의 과보가 정해지니, 그동안 같이 기도나 하자고 하였다.

 

 

교회도 가보았으나. 거기에 있던 목사는 일단 헌금부터 하라고 했다. 말을 더 들어줄 필요가 없을 거 같아서 바로 나왔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용하다는 무당집에도 찾아가 봤다.

 

 

무당이 말하길.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는 건 불가능하나, 그 사람이 존재하는 또 다른 세상으로 가서 그 사람을 다시 만나는 건 가능하다고 했다. 자기가 그곳으로 보내줄 테니 20억만 달라고 했다.

 

 

역시나 말을 더 들어줄 필요가 없는 거 같아서 바로 무당집을 나왔다.

 

 

얀붕이를 다시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내일은 얀붕이와의 결혼기념일이다.

 

 

오늘따라 얀붕이가 더 보고 싶다.

 

 

얀붕이가 쓰던 침대에 누워 얀붕이가 아끼던 인형을 끌어 앉았다.

 

 

아직 사라지지 않은 얀붕이의 냄새를 맡으며, 눈에서 다시 눈물이 나오려는 찰나. 무당이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또 다른 세상이라. 평행세계를 말하는 걸까.

 

 

다들 어렸을 때 한 번쯤은 들어 봤을 거다. 평행세계 가는 법. 

 

 

여러 가지 버전이 있었던 거 같은데 그중에서 엘리베이터 버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밤 12시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부터 꼭대기 층까지 갔다가, 다시 1층으로 가서 끝이 4로 끝나는 숫자를 누르고, 다시 꼭대기 층으로 가서 마지막으로 4층을 누르는 거 였나. 

 

 

어릴 때 유행한 이야기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어렸을 때는 이런 걸 왜 믿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니 터무니없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나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안되는 걸 알면서도 왜 이러고 있는 걸까. 하지만 이렇게라도 해서 얀붕이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좋은 거 아닌가. 안 된다고 해도 손해 볼 거는 없다.

 

 

1층을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섰다.

 

 

꼭대기 층을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꼭대기 층에 섰다.

 

 

다시 1층을 눌렀다. 1층에 선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문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14층을 눌렀다. 14층에는 광고 전단지 하나가 붙여져 있었다.

 

 

24층을 눌렀다. 24층에는 오랫동안 사용한 거처럼 보이는 실밥이 다 터진 축구공 하나가 있었다.

 

 

34층을 눌렀다. 34층에는 보조 바퀴가 달린 빨간색 자전거 하나가 있었다.

 

 

다시 꼭대기 층을 눌렀다. 꼭대기 층에는 아까는 없었던 우유 하나가 문 앞에 놓여 있었다.

 

 

그 사이에 우유 배달원이 놓고 간 건가.

 

 

마지막으로 4층을 눌렀다.

 

 

될 리가 없지만, 나도 모르게 기대가 되었다. 

 

 

4층에 선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하지만 역시나. 평범한 아파트 내부였다.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역시나 될 리가 없지.

 

 

기대를 하지 않았으면 실망감도 없었을 텐데. 

 

 

약간의 실망감을 가지고 우리 집 층수를 눌렀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다시 얀붕이가 쓰던 침대에 위에 누워 잠을 자려고 했으나.

 

 

내가 집에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비밀번호 맞지 않다는 음성 안내음이 들려왔다. 집을 헷갈린 술에 취한 사람일까.

 

 

“ 몇 번 더 실패하면 돌아가겠지 ” 라고 생각한 순간.

 

 

도어락이 해제되는 소리가 들리고, 두 사람이 집 내부로 들어왔다.

 

 

나는 곧바로 몸을 숨겼다. 뉴스에서 본 여자 혼자 사는 집만 노린다는 강도인가?

 

 

핸드폰을 들고 경찰에 신고하려는 찰나.

 

 

그 두 사람은 집 내부를 잘 안다는 듯이 바로 전등 스위치 앞으로 가더니 꺼져 있던 불을 켰다.

 

 

“ 너무 많이 마신 거 아니야 오늘? ”

 

 

익숙한 목소리다. 아니 잊을 수가 없는 목소리다.

 

 

“ 그렇지만 여보가 맛깔나는 와인을 준비한 걸 어떡해~ ”

 

 

“ 그래도 적당히 마셨어야지. 비밀번호 한 번만 더 틀렸으면 이 새벽에 경보음 울릴 뻔했잖아. ”

 

 

“ 헤헤... 집에 들어왔으면 됐지. 근데 오늘 너무 무리한 거 아니야? 아무리 결혼기념일이래도... ”

 

 

“ 오늘 같은 날에 모아둔 돈 쓰는 거지. 많이 취한 것처럼 보이는데 얼른 자지 그래? ”

 

 

“ 으음... 나 그냥 이대로 재울 거야? 나 지금 완전 무방비한 상태인데? ”

 

 

“ 어... 사실 내일 아침에 하려고 준비 해둔 게 있긴 한데. 지금 할까? ”

 

 

“ 뭔데? 지금 해봐. 나 지금 완전 멀쩡해! ”

 

 

“ 그럼 잠깐만 기다려봐. ”

 

 

얀붕이를 닮은 사람은 드레스룸으로 들어가더니 시간이 한참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 언제 나와~~ 여자를 혼자 두면 나쁜 사람이랬어! 나 그냥 잔다? ”

 

 

“ 잠깐만. 이제 다 됐어! ”

 

 

말을 끝내자마자. 드레스룸의 문이 열렸고, 셔츠와 웨이스트 코트를 입고 겉에는 드레스 코트 걸친 연미복을 입은 얀붕이가 드레스룸에서 나왔다.

 

 

목에는 단정하게 넥타이를 매고 팔에는 흰 수건이 걸쳐져 있었다.

 

 

“ 부르셨습니까? 아가씨? ”

 

 

“ 와! 뭐야? 아니 이런 걸 몰래 뒤에서 준비하고 있었단 말이야? ”

 

 

“ 집사로서 집안의 내부 사정은 훤히 다 꿰고 있어야 합니다. ”

 

 

“ 큼! 크흠! 그래 잘했어. 지금 내가 이 시간에 부른 이유는 말이지. 잠이 오지 않는데. 오늘 밤도 부탁할게.... ”

 

 

“ 죄송합니다만, 그 요구는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아가씨. ”

 

 

“ 왜? 어젯밤도 들어줬잖아. 오늘은 왜 안 되는데? ”

 

 

“ 당주님께서 저희 관계를 눈치 채신 거 같습니다. 아가씨도 저희 관계가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걸 잘 알지 않습니까. 저는 더 이상 당주님을 배신할 수 없습니다. ”

 

 

“ 아빠가 눈치를 챈 거 같다고? ”

 

 

“ 그런 거 같습니다. 언제까지 이런 불순한 관계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습니다. 저는 내일 아침에 이 집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지금 마지막 인사를 드리러 온 겁니다. ”

 

 

“ .... ”

 

 

“ 죄송합니다. 아가씨.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저보다 좋은 사람을 만나시.. ”

 

 

에잇! 

 

 

“ 아가씨 왜 이러십니까! 이러시면 안 됩니다! ”

 

 

“ 너도 나 사랑하잖아. 나도 너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는데 왜 이어질 수가 없는 건데? ”

 

 

“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 ”

 

 

“ 야이 나쁜 놈아. 책임을 져야지 도망이나 가려고 해? 그동안 나 가지고 논 거야? 나 갖고 논 거냐고! ”

 

 

“ 저도 당주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

 

 

“ 아빠 때문에 그래? 그래 내가 집사의 아기를 가진다면, 기정사실을 만들어버린다면, 아무리 아빠라도 너를 내칠 수는 없을 거야. ”

 

 

“ 저어... 잠깐만 얀순아. 지금 너무 과몰입 한 거 같은데? ”

 

 

“ 시끄러워! 아기씨나 내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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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말라... 물 좀 갖다줘... ”

 

 

“ 휴우... 얼마나 한 거지? ”

 

 

“ 네 번 까지만 세고 그다음은 세질 않아서 잘 모르겠네... ”

 

 

“ 얀붕이 너 기특한데? 이런 이벤트를 할 생각을 다 하고? ”

 

 

“ 원래 계획은 아침에 이 복장으로 아침 식사를 만들어 줄 생각이었는데. 나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네. ”

 

 

“ 그래? 그럼 다행이네. 너 아침에 출근 못 할 뻔했잖아. 내가 그런 모습을 보고 어떻게 가만히 아침밥이나 먹을 수 있겠어. ”

 

 

“ 그것도 그러네. 차라리 지금 이렇게 된 게 나은 건가. ”

 

 

“ 그렇지. 무단결근은 안된다고? 있지 얀붕아. 이거 다음에 또 해주면 안돼? ”

 

 

“ 그건 다음에 생각해보고. 이렇게 반응이 좋을 줄은 몰랐네. 근데 있지 얀순아. 할 말이 있는데. ”

 

 

“ 뭔데? ”

 

 

“ 나랑 결혼해줘서 고마워. 정말 사랑해. ”

 

 

“ 에이 난 또 뭐라고. 너가 나를 사랑해주는데, 나도 너를 사랑하는 게 당연하잖아? 우리는 이어질 수밖에 없는 사이야. ”

 

 

“ 솔직히 이제와서 말하는 건데. 너가 내 프러포즈를 거부하면 어떻게 하나 굉장히 고민했던 거 알아? 플랜B, C, D, F 까지 만들어 놨었다니까? ”

 

 

“ 진짜 쓸데없는 고민을 했었구나... 하암... 졸리다. 이제 그만 잘까? 너도 내일 출근해야지. ”

 

 

“ 그래 그럼 이제 침실로 가자. ”

 

 

“ 어! 뭐야! 뭐야! 이런 것도 해준다고? 평소에도 좀 해주지! ”

 

 

“ 아가씨가 편안해 하시는 게 제 임무입니다. 침실로 들어가시죠. ”

 

 

“ 네... 좋아요... ”

 

 

얀붕이는 나를 닮은 여자를 공주님 안기 자세로 그대로 들어서 거실 옆에 있던 방으로 들어갔다.

 

 

이 평행세계의 얀붕이는 내가 교정실로 사용하던 방을 침실로 사용하나 보다.

 

 

집안이 잠잠해졌다. 그 둘이 방에 들어간 지 10분쯤이 지났을까.

 

 

숨어 있던 나는 거실로 나와서 집안을 살펴보았다.

 

 

처음 집에 들어왔을 때는 불도 안 켜고 어두워서 몰랐지만 지금 보니 집안 내부는 내가 살던 집이랑 딴판이었다.

 

 

집 내부는 영락없는 신혼집이었다. 

 

 

화장실에는 칫솔 2개가 사이좋게 걸려 있었고.

 

 

탁자 위에 있던 탁상 달력에는 날짜별로 설거지와 청소 등 가사 분담이 철저하게 나뉘어 있었고.

 

 

식기 도구며 생활용품, 의자 같은 가구들도 모두 2개씩 짝을 맞추고 있었다.

 

 

벽에는 둘이 같이 찍은 사진이 여러 장 붙여져 있었다.

 

 

결혼식 때 찍은 거처럼 보이는 큼지막한 사진도 걸려 있었다.

 

 

턱시도를 입고 있는 사진 속 얀붕이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나를 닮은 여자를 껴안으며 매우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내가 찍은 웨딩사진 속 얀붕이는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이었는데. 이런 얼굴을 하는 게 가능했구나.

 

 

얀붕이가 나를 닮은 여자한테 사랑한다고 말해줬다.

 

 

얀붕이는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얀붕이가 나를 닮은 여자를 안아주었다.

 

 

얀붕이는 나를 안아준 적이 없다. 오히려 내가 먼저 얀붕이를 안으려 하면 얀붕이는 몸을 비틀며 어떻게든 나를 피하려고만 했다.

 

 

얀붕이는 나를 닮은 여자한테 먼저 청혼한 거 같다.

 

 

내가 혼인신고서를 작성했을 때, 얀붕이도 좋아할 줄 알았으나, 얀붕이는 눈물만을 흘릴 뿐이었다.

 

 

거기다가 나를 닮은 여자한테 이런 이벤트까지 해주다니.

 

 

인정하긴 싫지만, 이쪽 세계에서의 ‘나’는 얀붕이와 이어지는데 성공했나 보다.

 

 

이게 내가 바라던 일상이었다.

 

 

이런 일상은 내가 누렸어야 했을 일상이다.

 

 

뺏어야 한다. 아니 되찾아야 한다. 나의 일상을.

 

 

다시 되돌려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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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사님 일어나세요. 회사 가야죠. ”

 

 

“ 허... 허리가 아파서 움직일 수가 없어. ”

 

 

“ 출근 안 하실 거예요? 월차도 다 쓰시지 않았나요? ”

 

 

“ 가야지... 안 갈 수가 있나. 열심히 돈 벌어서 우리 아가씨 먹여 살려야지. ”

 

 

“ 아이! 말도 참 예쁘게 하네! ”

 

 

“ 아... 만지지마. 아파... 근데 너는 괜찮아? ”

 

 

“ 오히려 팔팔한걸요! 에너지가 완충된 기분이에요! ”

 

 

“ 어째 점점 체력이 느는 거 같아... 나 몰래 무슨 운동하는 거 아니야? ”

 

 

“ 집사님과 계속 연습하다 보니까 숙달이 된 거죠. 근데 지금 늦으신 거 아니에요? 시간 좀 보세요. ”

 

 

“ 이크 늦겠다! 나간다? ”

 

 

“ 잘 다녀와요~ ”

 

 

“ 아 맞다. 잊을 뻔했네. 아가씨 드릴 게 있습니다. ”

 

 

“ 뭔데요? ”

 

 

딱!

 

 

“ 아! 이빨끼리 부딪쳤잖아요! ”

 

 

“ 안 하는 거 보단 낫잖아? 그럼 이제 하지 말까? ”

 

 

“ 맞긴 하지만... 칫. 오늘 빨리 들어와요! ”

 

 

“ 노력해볼게! ”

 

 

얀붕이는 그길로 집 밖을 나섰다. 여기 세계에서는 얀붕이가 돈을 벌어오나 보다.

 

 

그것보다도 출근 전 키스라니, 아침부터 이런 시트콤이나 찍고 있다니.

 

 

나를 닮은 저 여자가 정말 너무나도 부러웠다. 

 

 

나도 출근 전 키스를 받아보고 싶다.

 

 

나도 얀붕이랑 이런 상황극을 찍어보고 싶다.

 

 

나도 허리가 아플 때까지 얀붕이랑 온기를 나누고 싶다.

 

 

“ 아이고 배야... 참느라 죽는 줄 알았네. 화장실! 화장실! ”

 

 

나를 닮은 여자가 화장실로 들어갔다.

 

 

지금이다.

 

 

나는 부엌으로 가서 긴 칼 하나를 빼 들었다.

 

 

조심스럽게 발소리를 줄이며 화장실 앞으로 갔다.

 

 

모든 모습이 나를 똑같이 닮은 여자.

 

 

그렇다는 건 내가 완벽하게 대체가 가능하다는 거다.

 

 

아무도 모를 것이다. 얀붕이도 세상 사람들도.

 

 

시체를 처리하는 건 번거롭지만, 많이 해봐서 능숙하다.

 

 

나는 화장실 문고리를 잡았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문을 세게 활짝 열었다.

 

 

칼을 치켜들고 재빠르게 화장실로 내부로 들어갔다.

 

 

하지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분명히 화장실로 들어가는 걸 봤는데?

 

 

 

 

 

“ 또 귀찮은 게 붙었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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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된 거지. 나는 분명 화장실로 들어갔었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나지가 않는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눈앞에는 나무들만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내 몸은 노끈으로 묶여 있었다. 근데 이 노끈 너무 익숙하다.

 

 

내가 얀붕이를 묶었을 때 썻던 그 노끈이다.

 

 

“ 정신이 드는구나? ”

 

 

고개를 들어보니 나를 닮은 여자가 서 있었다.

 

 

“ 이야. 나도 처음에 놀랐다니까? 집안에 부르지도 않은 손님이 와있어서? ”

 

 

이 여자.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구나.

 

 

“ 경찰에 신고하려고 했는데, 나랑 비슷한 냄새가 나더라고? 설마 했는데 진짜였네. ”

 

 

“ 웁!! 우웁!!!!! ”

 

 

내 입에는 재갈이 물려 있었다. 

 

 

“ 그래도 다행이야. 나랑 얀붕이가 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못 참고 자기도 껴달라고 달려들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었는데. 3P는 곤란하다고? ”

 

 

“움!! 웁!! ”

 

 

“ 다행히 너는 그저 지켜보기만 하더라. 눈알이 빠져라 쳐다보던데, 네가 원래 살던 세계에서는 얀붕이랑 이런 짓 못 해봤나 봐? ”

 

 

“ 웁... 우웁? ”

 

 

“ 너도 다른 세계에서 온 거지? 맞지? 그렇지? ”

 

 

“ 움!!! 우웁!!!!!!! 웁!!!!!! ”

 

 

“ 나는 20억이나 들여서 겨우 여기로 왔는데. 너는 어떻게 여기로 온 거야? 설마 20억 보다 낮은 가격으로 왔다면, 나 조금 배가 아플 것 같은데. ”

 

 

“ 읍!!! 으읍!!!!!! ”

 

 

“ 아 맞다. 너 지금 말을 못 하구나. 뭐 상관없어. 어차피 들어봤자 쓸모가 있나 나는 여기 세계에서 평생 눌러앉을 건데. ”

 

 

나를 닮은 여자는 허리춤에서 긴 칼을 빼 들었다.

 

 

“ 걱정하지 마! 외롭지 않게 친구 옆에 묻어줄게! 둘이 통하는 게 많을 거야! 너가 쟤고 쟤는 너니까! 내가 쟤고 쟤가 ‘나’이기도 하지! ”

 

 

“ 둘이 원망하든 저주를 하든 상관없고. 하늘에서 나랑 얀붕이가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잘 지켜봐달라고? ”

 

 

 

 

나를 닮은 여자. 아니 또 다른 세계의 ‘나’는 긴 칼을 치켜들고 나에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