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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겉도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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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겉도는 마음

- 패배한 여주인공의 눈물







* 코토네 시점입니다






"나 텐가에게 차였어"



그 말을 난 처음에 이해할 수 없었다






오늘 아침, 나는 평소와 같은 시간에 일어나

평소보다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서자, 6월의 따사로운 햇살이 나를 반겼다


계절은 이제 초여름으로 접어들기 시작했기에

분명 곧 기온도 오르고 더워질 것이다


나는 현관을 빠져나오면서

언제나처럼 혼자서 통학로를 걷기 시작했다


날씨는 맑다

일기예보대로라면, 아마 오늘은 하루를 기분좋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혼자 학교까지 걸어가는 아침 등교엔 이미 익숙해져 버렸다


고등학생이 된지는 얼마 안됐지만

몇번이나 반복해 온 아침이였으니까

그것은 일종의 루틴워크라고 해도 좋을지 모른다



하지만 조금 외로움도 느끼고 있었다

아직도 무엇인가가 빠져 버린 것 같은 초조함이 있었기 때문이였다


뭐라 표현하기는 좀 그렇지만

공기처럼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진 것에 대한 거부감이랄까


내 옆을 걷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나는 아직 받아들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중학교 때는 유키군이나 텐가양과 함께 등교한 적이 있었지만

내가 두 사람과 거리를 두게 되면서부터는 완전히 그것도 없어졌다


언제나 함께였던 우리들 셋은 뿔뿔히 흩어져 각자 행동하게 되어

아침에는 서로 짠 것도 아닌데, 각각 다른 시간에 집을 나가게 되었다


당연히 약속도 하지 않았고

얼마 전까지는 우연히 소꿉친구를 보면

아침 인사를 해야 하나마나 정도의 관계였던 것이였다



그래서 저번에 셋이서 같이 학교에 갔을 땐 솔직히 좋았고 즐거웠다


마치 옛날의 우리로 돌아간 것 같았기 때문이였다



하지만 역시 우리의 관계는 옛날과 달라서


유키 군은 지금도 텐가 밖에 보지 않는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중학교 때부터 계속 그랬어

유키 군의 눈에는 항상 텐가의 모습 밖에 보이지 않았잖아


나 같은 것은 보지도 않았지

그러니까 내 마음 따위는 분명 닿지 않을 거야


그런 건 진작에 알고 있었던 것 같아



알고 있었으니, 진작에 유키 군을 포기했으면 되는건데


그걸 위해서 유키 군의 등을 밀어준 건데


이렇게 유키 군과 텐가 양 두 사람이 나란히 걷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내 가슴이 조여지는 것이였다



역시 잘됐구나



이럴 줄 알고 있었어


서로가 서로를 매우 좋아하고

천생연분의 관계라면 맺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그동안 읽어온 많은 책에서도 그랬다

줄거리를 읽는 동안, 항상 조마조마하면서도 그러길 바랬던 기억이 났다


그 시절은 지금보다 훨씬 더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던 시절이였다



내 소원대로 두 사람은 잘 되어 해피엔딩을 맞이했다


기뻐해야 하는데도, 그 이야기 속에는 내가 설 자리가 없었다

속상하긴 하지만, 생각해보니 당연한 말이여다



수수한 나보다 텐가가 훨씬 화려하니까


인형같이 예쁘고, 항상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사랑받고 있고


모두가 마음에 그리는 이상의 히로인

그것이 쿠루스 텐가라는 여자아이였다


그러니까 연애 이야기를 쓰는 작가라면

나 같은 사람보다, 쿠루스 씨를 빛내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이 이야기 속에서 나는 단지 조연일 뿐

메인 히로인은 텐가


사실은 정말 좋아하는데, 좀처럼 솔직해지지 못했던 그녀는

주인공 유키 군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간신히 맺어질 수 있었답니다

메테다시 메테다시


그리고 두 사람은 모두에게서 축하를 받으며, 이야기의 막을 내린다



훌륭하기까지 한 그랜드 피날레, 뭐라 말할 것도 없는 최고의 피날레


그걸 본 나는 두 사람을 축하하며, 내 길을 걸어가야 한다


무대에 오르지도 못한 나는 새로운 사랑을 찾아야 해


그런 것은 진작 알고 있었을 텐데...



역시 괴로워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니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아팠다


축복해야 하는데, 빨리 시야에서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이였다


일부러 걸음을 재촉해서

두 사람이 떨어져 잇는 모습을 보았을 땐

그만 안심해 버릴 정도로, 내 마음은 무거워져 있었다



"실연이란... 좋은 게 아니였구나"



모퉁이를 돌아, 두 사람의 모습이 마침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안도하고 마음이 풀렸는지,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텐가 양과 유키 군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팠고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괴로웠다


이 아픔이 자신을 강하게 한다고는 하지만

설마 내가 그렇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실연이란 단지 아프고 괴로울 뿐인 것

역시 좋아하는 사람과 맺어지는 것이 훨씬 좋은거야


이 마음을 잊을 수 있을까


아마 그렇게 간단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십년 가까운 내 짝사랑은 그리 가벼운 것이였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는 것이니 말이다


무거운 멍에가 저주처럼 내 마음을 좀먹고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자니, 그냥 내가 고백했으면 좋았을걸...



그런 생각이 떠오르지만, 금방 고개를 흔들고 부정했다


그런 건 무리야, 승산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걸


처음부터 거절당하는 것도 알고 있었는데

마음을 단단히 먹고 고백을 하다니... 그런 거 못해...



처음에는 그냥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했었다


중학교에 올라오고 나서는

그저 얼굴만 보기만 해도, 심장이 쿵쿵 거렸던 기억이 났다


이 마음이 사랑인 것을 그때 처음 깨달았던 것이였다



하지만, 그런 자신에게 들뜰 수는 없었다


자신의 기분을 깨닫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유키 군이 텐가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였다


유키 군의 마음을 안 뒤로부터는 곁에 있기 힘들어졌다



떨어져 있어도, 유키 군의 생각이 날 정도로

추천받은 여고를 내팽겨치면서 까지

결국엔 유키 군과 같은 고등학교를 선택해 버릴 정도로

어느새 이뤄질 수 없는 유키 군에 대한 사랑은 자라 버렸다


물리적으로 거리를 둬도, 무의미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자신에 질려 한숨을 내쉬던 기억이 났다



용기를 내지 못하는데도, 포기할 수 없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유키 군을 포기하기 위해, 그의 등을 밀어주었다


나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유키를 너무나도 좋아해서였다



내 마음보다 유키 군이 행복해지는 길을 지지할 수 있었던

내가 이상하게도 너문 기뻤던 것이였다



아, 하지만 역시 그 후 울어버렸지만...


하룻밤 울어버리면 조금은 개운해질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키 군을 좋아하는 마음이 사그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타오르기만 하고 있으니 말이다...



뭐랄까, 이렇게 돌이켜 보면 다 내가 저지른 짓이지만

손해 보는 일만 하고 있었던 거잖아?


이런 타입을 뭐라고 하던가?


어릿광대? 이건 좀 아닌가?


아참, 유키 군에게 빌렸던 라노벨의 단어를 빌리자면...



"나... 패배한 여주인공이구나"



소꿉친구로 오랜 기간 짝사랑을 해왔으나

그 뜻을 전하지 못하고, 고민하는 주인공의 등을 밀어주며

다른 여주인공과 둘이서 행복해지는 모습을 웃는 얼굴로

호라 모 젠젠하는 슬픈 여주인공...


슬프고, 비참하고, 그러나 너무 상냥했기에 용서해버리는...

결국 가장 손해를 보는 역할을 부여받은 여자아이...



주인공과 맺을 수 없다니 불쌍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지금 다시 읽고 나면 또 다른 느낌을 가질지도 모른다


유키 군에게 돌려주기 전에

교차로에서 다시 읽어야 겠다고 생각하면서, 모퉁이를 돌았다



"엣...!"



다음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유키 군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텐가의 모습이였다


유키 군은 수줍어하면서도, 얌전하게 텐가에게 머리를 맡기고 있었다


그런 유키 군을 만지고 있는 텐가짱은 왠지 매우 기쁜 것 같았다


그것은 먼발치에서 알 수 있을 만큼, 그녀의 눈동자가 매우 부드러웠다



정말 유키 군을 좋아하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눈빛이였다


어떻게 아냐고? 분명 나도 같은 눈빛을 하고 있었을테니까



보고 싶지 않았던 광경, 하지만 이대로 도망갈 순 없다


나는 아직도 접촉하고 있던 한 쌍의 커플에게 말을 걸지 않을 수 없었다



"어라? 유키 군이랑, 텐가 양? 같이 등교했었구나?"



자신의 마음을 꾹 눌러 죽이면서



"어, 코토네"


"............"


유키 군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고

텐가는 아무 말 없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순간 나는 어리둥절했지만

모처럼 단둘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는데

방해받은 것에 대한 비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걱정하지마, 둘 사이를 방해할 생각은 없으니까



내심 텐가에게 웃음을 건넸다

그녀의 모습이 조금 앳되게 느껴졌던 것이다


마치 가장 좋아하는 보물을 빼앗기고 싶지 않으니, 위협하는 것 같고

어쩐지 흐뭇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아무튼 나는 그 시선을 모르는 척하고, 아침 인사를 했다



"응, 안녕 둘 다, 오늘 아침도 날씨가 좋구나"



나는 지금 웃는 얼굴을 하고 있겠지?


아니, 웃고 있어야 만 해

유키 군에게 걱정을 끼칠 수는 없어

예전에는 감정을 금방 드러내는 바람에

유키 군을 곤란하게 만들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연기를 잘 할 수 있게 되었다


적어도 마음속을 감출 수 있는 그런 여자가 되어 버린 것이였다



나는 두 사람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도

가능하면 더 이상 이 자리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렇구나, 유키 군, 텐가 양 축하해"


"어...?"


"당장 아침부터 함께 등교하다니, 솔직히 질투 나는 걸?

방해하면 미안하니까, 나 먼저 갈께"



나는 신호가 바뀐 타이밍을 보고, 전력으로 달려나갔다


한계였다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자신이 몹시 비참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흐..흑....흑흑흑"



교차로를 건넜을 때, 내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뒤에서 걷는 두 사람이 눈치채지 못하길 바라며,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다



알고 있었는데...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그 두 사람의 모습을 보았을 때, 확실히 깨달은 것이 있었다



나는 텐가에게 졌어




지금의 나는 비참한 그리고 패배한 여주인공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