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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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의 밤은 빠르게 찾아왔다.

이미 해는 기울었고, 카탸는 밤이 늦었다며 자신의 집에서 묵기를 권했다.


"완전한 휴식도 여정에서는 중요한 것입니다. 반론은 받지 않겠어요."


의외로 그녀는 고집스러운 면이 있었다.

사양하는 내 앞에서 짐짓 엄한 눈으로 휴식을 종용하는 것을 보니, 익숙한 누군가가 떠오른다.

결국 카탸에게 강제로 떠밀리듯이, 그녀의 아버지의 방이었던 곳에 짐을 풀게 되었다.

그녀의 아비는 이미 노환으로 명을 다했다고 들었지만, 아직 그 온기를 그리워하듯, 방은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하게 정돈 되어있었다.


철크렁.


천천히 검을 풀고, 갑주를 벗었다.

대삼림에서의 폭우를 제외하면 처음으로 벗는 갑주였다.

하나 둘 벗어내니 그만큼 몸이 가벼워진다.

그만큼 무겁기도 한 것이었지만, 운신이 더욱 자유로워지는 데에 더 큰 의미가 있었다.

이내 완전히 벗어낸 갑주를, 손질하기 위해 그녀에게 따로 부탁했던 기름과 헝겊을 손에 들었다.

엉망이군.

진흙과 풍파에 쓸려 원래의 빛을 잃고 상처 투성이인 갑주를 보았다.

그것이 마치 지금의 나를 보는 것 같아, 조금은 오묘한 기분이 든다.


스윽, 스윽.


남아있던 흙을 털어내고, 갑주를 손질한다.

다만, 이미 손상이 심해 아무리 닦아내고 기름을 먹여도, 별반 차이는 없었다.

하지만, 손을 멈추지는 않았다.

밤은 기니까.

딱히 잠은 오지 않는다.

그리고, 기다려야 할 것이 있었다.


닉스.

그녀는 어째서 바로 나타나지 않는걸까.

손으로는 연신 갑옷을 닦아내면서도 그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언제나 그림자처럼 달라붙었던 그녀의 부재.

마음속으로 언제나 바래왔던 것이면서도, 정작 그것이 이루어지자 생각보다 편하지는 않았다.

혹시.

어쩌면.

나는 닉스를 그리워하는 걸까.

아니면, 그녀가 사라지면서 잃게 될 이 힘을 놓치는것이 두려운 걸까.

그녀의 힘.

죽음에서 벗어나며, 영웅과도 맞먹게 되는 이 강한 힘과 육체에 난 벌써부터 갈망하게 되어버린걸까.

알 수 없었다.


스윽, 스윽.


이미 닦았던 부분을 의미없이 문지른다.

그저, 멍한채 의미없이 그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다.


"귀인."


"아, 닉...."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주인을 기다리는 개처럼, 조금 바보같이 들뜨고 말았다.

.......

닉스가 아니었다.

목소리의 주인은 카탸였다.


"그만 쉬시지요. 밤이 늦었습니다."


촛불 하나 가지고는 충분하지 않아,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목소리에 걱정이 묻어난다.


"괜찮습니다. 이미 이것도 저에게는 충분히 휴식입니다."


내 말에 그녀의 한숨이 폭 하니 들려오지만, 유감스럽게도 사실이었다.

아니, 첨언하자면 휴식조차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것은 닉스의 가호와 함께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

너무나도 위대한 힘이기에, 인간으로서 필연적으로 가질 족쇄마저 산산히 부서져 버렸다.

이미, 나는 내 몸이 인간이 아님을 자각하고 있었다.


"...그러면, 마실것이라도 좀 내오지요."


카탸는 그리 말하며, 물러나더니 머지 않아 따뜻한 차 같은 것을 내왔다.

'차'

그것은 척박한 북부에서는 귀한 편이었다.

전쟁 이전.

제국과의 교류가 잦았을 때, 그것이 그 어떤것보다 귀하게 취급받았는지 아는 나로서는, 그것이 조금 놀라웠다.

그리고, 그 만큼 조금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또, 괜찮다고 말할것이지요? 귀인. 이쯤되면 제가 부끄러워지니, 그냥 받아주세요."


마치 내 안을 꿰뚫어보는 듯한 말에, 결국은 그것을 받으니, 카탸는 그제서야 웃으며 내 옆에 앉았다.

짧은 침묵.

어색한 공기가, 방을 맴돈다.

그녀또한 잠을 청할수 없었던 걸까.

아니면, 미처 못다한 얘기를 나누고 싶었던 걸까.

쥐고 있는 찻잔의 따뜻한 온기를 느끼는 사이.

점점히, 가리고 있었던 구름이 지나가고, 환한 달빛이 창문을 비추기 시작한다.

그날따라 유독이나 밝은 달이었다.


그 덕분에, 나는 어둠에 가려졌던, 카탸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


"...귀인."


갑옷을 입고 있을 때와는 다른, 한층 더 성숙하고 아름다운 여인이 눈 앞에 있었다.

밤의 장막에 가려젔을, 부끄러운 듯한 표정과 더불어 꼭 다문 입술은 여리하기 그지 없다.

수줍은 소녀.

초원에서의 강인하고, 당차던 모습과는 달리, 지금의 그녀는 한떨기 꽃과 다름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어째서?

어째서 그녀가 이러고 있는 것일까.

그것이 당혹스러워서 나는 입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귀인께, 무례한 모습을 보여드려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부끄러움에 떨리는 입술을 찬찬히 열었다.


"...저는 부던히도 노력했습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악착같이 검을 휘두르며, 그 무거운 대표의 자리에 앉아, 끝없이 희생을 강요받았습니다."


"그럼에도, 그것이 올곧은 길이기에, 쉬이 의심하지 않으며, 아무리 넘어져도 언제나 서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믿음도 끝없는 절망에는 결국에 무너지더군요."


"아무리 노력해도, 최선에 최선을 다해도, 전부 다 지킬수는 없었습니다. 마수가 쳐들어올때마다 언제나 젊은 피를 땅에 뿌렸고, 자식을 잃은 부모, 남편을 잃은 아낙들은 울며 저주를 퍼부었지요. 그 앞에서 저는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지쳐버렸습니다."


"저도 귀인과 같은 처지였습니다."


"하지만 귀인께서는...절 인정해주셨습니다."


"제 노력을, 제 긍지를...귀인께서는 보지 않았음에도, 그것을 헤아려 주셨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지 모릅니다."


"귀인...저는 당신께 구원받았습니다."


카탸의 손이 내 손을 포갰다.

그 손은, 그녀의 노력을 증명하듯, 거칠고 굳은살이 박혀있었지만 그만큼 아름다웠다.


"이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이 마음이, 귀인을 볼때마다 세차게 뛰는 이 가슴이 진정되지가 않습니다."


"...귀인, 혹여...혹여, 귀인의 마음속에 다른이를 품지 않으셨다면...감히 여쭙겠습니다."


"저를...이, 이기적인 저를 받아들여주실 수 있나요?"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했다.

지금 무슨 말을 들은걸까.

그저 멍하니, 그녀의 눈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녀의 고백은 그만큼 충격적인 것이다.

같다.

그녀는 나와 같았다.

모든 것을 잃어가며 좌절하는 나처럼, 그녀또한 깎여가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녀를 보며 구원과 희망을 얻었듯이.

그녀또한 나를 보며 구원을 얻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가 부서질듯이 꽉 물었다.

차마, 그녀의 얼굴조차 볼 수가 없어서 눈을 감았다.

마음과는 다른 말을 꺼내야 하는 것이 가슴을 후벼팔 만큼 아파왔다.

하지만.

꺼내야 한다.



"...미안합니다."


"........."


그녀는 침묵했다.

하지만, 멈출수는 없었다.

확실하게 전해야 했다.

나는, 지금 그럴 수가 없기 때문에.

그녀에게 숨겨왔던, 내 뒤에 붙은 그 '신'이.

그녀를 어떤 끔찍한 파멸로 이끌지 너무나도 잘 알기에.

거절해야만 했다.















"...헤에에~ 그래도 다행이야."


순간이었다.

차가운 비수처럼, 서늘한 말이 귓가에 울린다.

이건.

이 목소리는.

익숙하지만, 평소보다 더욱 섬칫한 감각에 눈을 떴다.

카탸는.

카탸는...


"다른 여자랑 정분이라도 나면 어쩌나~ 했는데, 그래도 얀붕은 다르구나아~?"


카탸의 입에서, 전혀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괴기스럽게 입을 비틀면서, 그 눈은 당장이라도 튀어나올듯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카탸가 아니었다.


"닉스..."


"그래도, 좀 너무한걸? 난 이렇게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바람맞힌것도 모자라, 다른 여자랑 시시덕 거리고 있네? 내가 얀붕에게 너무 잘 대해준걸까? 아니면, 얀붕은 내가 누군지 까먹은걸까? 내가 누구인 줄 알고... 이..."[미물 따위가!]


카탸의 눈에서 무언가가 흐른다.

눈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칠흑처럼 검은 피 였다.


[전에도 말했던 것 같은데? 난 인내심이 그렇게 많지 않다고. 아니면, 이미 미쳐버리기라도 한걸까? 주제도 모른채, 감히 누구에게 거스르는거지? 얀붕. 이 모든 것은 네가 자초한 일이야.]


그녀의 온 몸에서 피가 나오고 있다.

닉스의 간섭 탓에 몸이 버티지 못하는것이 분명했다.

위대한 정신.

그것을 받아들이기에는 카탸의 몸은 연약하기 그지 없었다.


"...미안해."


[이미 늦었어. 더이상의 여정은 끝이야. 모든것이 끝나는거지. 넌 이 세계의 모든것이 끝나는것을 네 눈에 전부 새기게 될거야. 영원히 고통받으면서!]


카탸의 몸이 발작하듯 떨고 있다.

아아...

그녀의 간섭이 강해진다.

이성의 끈이 끊어지기 시작한다.

내 탓이다.

차라리, 몰랐다면.

카탸는 이렇게 죽어서는 안된다.

나는, 방에 놓여있던 검을 천천히 들었다.


[하!]


검을 들자, 닉스의 노한 음성이 터져나온다.


[정녕 그럴 것이냐! 미물!]


타오르듯, 방의 모든것이 산산히 흩어진다.

시간을 가속한것처럼 썩어 없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한 걸음을 떼기가 힘들었지만, 끝까지 그녀에게 다가간다.


[천번, 만번, 억겁의 시간동안 찢어죽이겠다! 감히! 감히! 감히!!!!!!!]


분기탱천한 닉스의 외침과 함께, 카탸의 육신또한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미안하다.

그 말은 더이상 나오지 않았다.


털썩.


무너지듯 몸을 숙인다.

나는, 그 앞에서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이것 뿐이다.

실낱같이 남은 이성이 그리 말하고 있었다.

이 마을을, 이 불쌍한 여인을 살릴수 있는 것은 오롯이 그것 뿐이었다.

검을 양 손에 놓은채.

그녀 앞에 보였다.


"...신(臣) 얀붕...그대를 섬기겠나이다."


[........]


"오롯이 그대만을 경외하고, 그대의 거처를 지키겠나이다."


"오롯이 그대를 섬기며, 그대를 모욕하는 이에게 마땅히 검을 뽑겠나이다."


"그대 앞에서, 오롯이 진실만을 말하며, 그대의 적에게 분노의 철퇴를 내리겠나이다."


"우매한 이에게, 그대의 영광을, 잊은이에게 당신의 의지가 되어 위업을 표하겠나이다."


"이것은 언약이오, 끊을수 없는 진실의 맺음이니, 섬김받는 이여. 그대의 뜻대로."


서임식.

나는 다시 한번 왕국의 명예를 짓밟는다.

그것은 마음의 모든 것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단 하나의 희망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버리겠다.

이들이 살 수만 있다면, 몇 번이고 버리겠다.

그렇기에, 이 신을.

이 괴물을.

내 안에 가두어야 했다.


[.......서임식이라.]


으르렁 거리던 바람이 멈추었다.

발작하던 카탸의 몸이 실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지고, 어둠속에서 닉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얼굴은 달빛에 비추어, 선명하고 섬뜩히 빛나고 있었다.


"네가 말한 대로 이것은 언약이야. 그리고 돌이킬 수 없지."


"넌 앞으로, 평생을, 아니 나와 함께 억겁의 시간동안 함께하게 될거야."


"내가 이 검을 받아, 네 섬김을 받는 순간, 영.원.히."


"그래도 좋아?"


그녀의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마음은 정했다.


"좋아, 수는 뻔히 보이지만. 딱 한번 넘어가줄게."


"하지만, 이제 다음은 없어. 넌 이제 내 거야."


"어느정도의 자유는 줄거야. 하지만, 누가 네 뒤에 있는지 언제나 기억해."


그녀가 검을 받아, 내 어깨에 댄다.

그 순간이, 마치 느려진것처럼 느껴진다.

일그러진 미소가.

그 안에 차오르는 검고 추악한 열락이.

그제서야 보인다.


"이게 행복이라는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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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스는 생각보다 아량이 깊음. 그리고 똑똑함.

반면, 얀붕은 운이 좋은 편임. 지 살길은 어떻게든 찾음.


댓 남겨주신 분들 감사함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