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이상하다.


정확하게 뭐가 어떻게 이상하다 콕 찝어서 설명할 수는 없지만 평소와 다른것만은 확실하다.

.... 확실한가? 잘 모르겠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남편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어쩌면 저게 저 사람의 본 모습은 아닐까? 지금까지 나는 한아름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잘 모르겠다.


푸른빛의 달빛이 천장을 비춘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체 가만히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잠시 그렇게 얼마간 있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 잠을 자고 있는 남편을 바라보았다.

몸을 반대로 돌려서 벽을 바라보면서 잠을 자고 있는 남편의 모습이 보인다. 턱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쓴체 잠을 자고 있는 남편은 깊은 잠을 자고 있는지, 내가 바스락거리며 몸을 움직여도

일어나지 않았다. 원래 조금만 움직여도 금방 잠에서 깨어나고는 했는데, 역시 오늘은 평소와는 다르다.

....평소라고 해봐야 이제 만난지 1년도 지나지 않았고 그 중 대부분의 시간을 전부 다 바깥에서 보냈으니까... 


으으.....


남편이 잠시 몸을 뒤척거린다. 대체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이것저것 고생이 많은 것 같다.

남편은 몸을 돌려서 이쪽을 바라보았다. 두 눈을 감은체 입으로 뭔가 웅얼거리며 뭔가 말하는 것 같은데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


사실... 처음에 남편을 만났을 때는 지금과 달리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그냥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20대 남자. 키가 좀 작고 둥글둥글하게 생긴게 나름 호감상이다.


그래서 결혼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진짜 뭐 그런걸로 배우자를 선택할 수 있냐?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 와서는 잘 선택한 것 같다. 뭐 그것 말고도 이제 막 20살이 되었기 때문에 다른 남자들과는 달리 세태에 찌들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부모가 그렇게 잘나가는 집안이 아니라 '아내'인 나에게 뭐라 함부로 말을 못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었다.

또, 배우자가 있으면 세액공제를 더 받을 수 있다는 것과 보험료가 더 할인된다는 점, 그리고 집에서나 회사에서 뭐 그렇게 결혼한 사람에게는 그렇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마지막 이유로 결혼을 한게 가장 컸다.


원래 사람들은 의외로 평범한 인생을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 법이니까.

결혼 못한 노처녀, 취업 못한 학생, 그리고 전과가 있는 전과자나 어음.. 뭐 많지 않은가? 원래 인간 관계를 살다보면 그런 골치아픈 부류의 인간들과 엮이는 일이 많은 법이고, 대걔의 평범한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의 뒷수습을 하다 자기 인생을 포기하고는 하니까, 또 그 과정에서 일반적인 인생을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관심을 가질 여유가 있을리 없었다.


적당히 평범한 척 살면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대로 즐기는 그런 인생을 살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평범한 사람 흉내를 내기위한 장신구로서 내 옆에 있는 남편은 너무나도 훌룡한 도구다.

도구? 도구라하면 내가 원하는대로 마음껏 이용하고 버릴 수 있어야하는데 지금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이것 역시 잘 모르겠다.

오늘..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어제 카페에서 만났을때의 남편은 지금까지 보아왔던 모습과는 조금 달랐으니까.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내가 만나왔던 사람들과는 다른 이질감이 느껴졌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노란콩들 사이에 있는 검은콩같다고 해야하나.

꼭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 같다는 생각이 머리 속에 강하게 들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평소와는 다른 남편의 다른 모습을 보게 된것이다.


-집에가자.


보통때같으면 내가 그렇게 말을 하면 군말없이 따를게 분명했다. 아니... 내가 퇴근하는 시간에 집밖을 나돌아다니는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내가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서 언제나 밥을 하고, 청소와 뭐 그런 가정주부가 할만한 이런저런 잡다한 일들을 하고 있어야 할 시간에 남편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불이 꺼져있는 집에 아무 말 없이 앉아있다 나왔는데 


-???아니 혼자서 갈 수 있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오히려 내 손을 뿌리치려고 하는게 아닌가? 물론.. 운동도 하지 않는 남자가 여자를 물리적인 힘으로 이길 수 있을리가 없었다.

힘으로 남편을 질질 끌고가 차에 집어넣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이번에는 아무 이유없이 울지 않는가?


아니 뭐, 어디 잡지에서 남자는 가끔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리다던지, 원래 여자보다 남자가 눈물이 많다던지 뭐 그런 글을 읽어본 기억이 나긴 하지만,

이런식으로 갑자기 엘리베이터에서 눈물을 흘릴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것 외에도 목욕을 하고 난 뒤에 냉장고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데 목욕을 끝낸 후 남편을 만나자 


-히에에에에에에에에엑!!!!


비명을 지르면서 부끄러운 듯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린뒤 고개를 팍 숙이는 남편이 있었다.

지금까지 팬티만 입고 물을 마시거나 해도 별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던 남편이 오늘은 천상소년처럼 소리를 지른다.


이것 역시 이해할 수 없는 반응. 하지만 싫지는 않다.


그리고 그 기분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가슴 깊은 곳에서 뭔가 몽글몽글 올라오는 기분이다.

뭘까...?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이 느낌을 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손을 들어서 남편의 볼을 손으로 쿡쿡 찔러보았다. 볼에 젖살이 올라와 말랑한것이 느낌이 좋다.

계속 손가락으로 볼을 만지자, 미간을 찡그리며 몸을 뒤척거리기 시작하는 남편의 모습에 나는 재빠르게 볼을 만지던 손을 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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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방가?방가!를 본적이 있는가? 

거기 영화보면 한국인이 일자리가 없어서 외노자들이 있는 공장에 주인공 친구의 소개를 받고 

외노자 신분으로 일을 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인명경시를 하는 헬조센의 근로 환경 답게 사람같지도 않은 것들이 무슨 소모품처럼 사람을 굴리니까, 주인공이 여기서는 도저히 버틸수가 없다. 

그렇게 말하며 일을 그만두려고 할 때, 주인공 친구가 주인공의 머리를 재떨이로 때리면서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야, 이 새끼야 너 어디 가서 300만원 벌 수 있어? 그냥 시발 뒤져따 생각하고 돈이나 벌어 새끼야." 


뭐... 그런 뉘양스의 일침을 듣고 주인공은 아 나같은 사람이 어디서 300만원이라는 거액을 벌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이를 꽉 깨물고 육체노동을 계속해서 하다가 결국에는 노조의 길로 접어드는 대충 뭐 그런 영화다.

나는 그 영화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냐면, 진짜 돈 벌어먹고 살기 힘들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 솔직하게 말하면 내가 우리 본가에서 뛰쳐나온거는 뭐 세상경험도 있지만 좁아터진 집구석이 마음에 들지 않은것도 있었다.


아니 4명이서 사는데 화장실이 1개가 말이나 되는가? 거듭 말하지만 우리 형은 화장실에서 대체 뭘 하는건지는 모르겠는데 화장실 안에 들어가면

최소 4~50분은 잡아먹는 사람이라서 아침에 매우 곤란한 상황이 많이 펼쳐지고는 했다.

사람이 4명인데 변기가 하나 있는건 매우 심각한 문제다.

그렇게 생각해서 무작정 뛰쳐나왔다.


물론 어.. 음 기본적으로 보증금은 내가 나중에 갚는다는 조건하에 일단 돈을 빌리기는 했는데, 아- 이게 또 이렇게 이세계에 들어가면 채무 관계가 또 어떻게 흘러갈지 잘 모르겠다.

우리 아빠 돈가지고 뭐라 뭐라 하는거 장난 아닌데, 그래서 뭐 어떻게 하라는건지.. 내가 뭐 이세계 오고 싶어서 왔냐?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이곳으로 왔는데 내가 뭘 해야하는데?


어쨋건간에 내가 바깥에 나가서 부모 도움 없이 한번 살아보니까 힘들더라. 뭐 혼자서 밥도 해야되고 세탁도 해야되고 청소도 해야되고 뭐 그런거는 그냥 내가 어떻게든 알아서 하겠는데

문제는 돈이었다. 돈이 있으며 쌀도 사고 라면도 사고 가스도 내고 수도도 내고 전기세도 내고 뭐 이것저것 내다보면 그걸 내기 위해서 일을 하면 일 하느라 내 개인 시간이 없어지는게 커다란 문제였다.

이게 그러니까 사람이 일만 하고 사는것도 아니고 일을 하면서 내 개인적인 자기 계발에도 힘을 쏟아붓고, 내 취미 생활도 즐기고, 어 뭐 개인적으로 사람들 좀 만나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그래야하는데

혼자 살면서 이것저것 처리하다 보면 골치가 아팠다. 솔직히 톡까놓고 말해서 돈을 벌고 이것저것 집도 청소하고 밥 좀 하다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가는 그런 인생을 살던 중 유치원에 애들을 보내는 주부들을 몇번 본적 있었다.


그걸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냐면은...


어 저거 개꿀 아닌가?


아니, 뭐 당연히 나야 대충 애들 유치원에 보낼때까지 키우는게 힘들긴하지만 요즘은 그런것도 다 나라에서 지원해주고 그러는데 그냥 애들 유치원에 보내놓으면 그 다음부터는 그냥 개꿀인생 아닌가?

내가 인터넷에서 보니까 전업주부들 전부 애들 유치원에 보내놓은 다음에는 남편 돈으로 스타벅스서 커피도 먹고 필라테스도 가고 참치치킨마요덮밥도 먹고 뭐 할거 다하던데?

아니, 뭐 물론 이것저것 집안일부터 시작해서 뭐 애들 뒷바라지 해줘야되고 은근히 하는게 많다는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해서 밖에 나가서 일을 하는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저번에 설문조사로 물어보니까 자기네들도 돈벌이랑 직장일이랑 둘 중에 하나 고르라면 다 집안일 고르던데?

뭐 말은 힘드니, 마니 그런 말을 하지만 자기네들도 주부가 꿀이라는걸 그 설문조사로 간접적으로 인정한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내가 주부들을 보면서 대체 무슨 생각이 들었냐면, 아. 나도 저렇게 집에서 집안일이나 하면서 꿀이나 빨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노브레인 노래중에 엄마 난 이 세상이 무서워! 그런 노래처럼 세상살이가 이렇게 힘든지 누가 알았겠는가?


예쁜 눈나가 나 좀 먹여 살려줬으면 좋겠네, 나도 취집하고 싶어


그런데 그게 실제로 일어났다. 게다가 이 세계에서는 남자가 애를 안낳는다고 하니... 이러면 더 이득인건가? 잘 모르겠다.


"...어휴 죄송해요. 제가 아침을 차려드려야 하는데.. 이거 뭐 어떻게 토스트라도 구워드려야하나.. 들고 가실건가요?"


"? 평소처럼 그냥 계속 자고 있어도 되는데"


"제가 어제 생각을 해봤는데, 이렇게 아침 일찍 일을 하는..."


"...하는?"


어 음... 호칭을 뭐라고 해야하지? 무슨 호칭을 써야할까? 당신? 예진님? 마눌님?

무슨 호칭을 써야할지 갑자기 막막한 기분이 든다. 아- 미리 생각할걸


-쿵!


문 밖에서 뭔가 크게 울리는 소리가 들린다. 예진 역시 그 소리를 들었는지 대화를 끊고 현관문을 열었다.


"아침부터 이사라"


엘리베이터 앞에 이것저것 물건들을 정리해놓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아마.. 집에 들어가기 전에 숨고르기 겸으로 바닥에 물건을 내려놓고 잠시 쉬는게 분명하다.

쿵쿵-거리는 소리는 바닥에 물건을 내려놓을때 나는 소리인게 분명하고.


"아이고, 참.. 죄송합니다 아침부터 시끄럽게 해서 이거 참 하하 뭐라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네. 이런 식으로 이웃분을 보게 되서 참 부끄럽네요...

다음에 제가 사죄의 의미로 떡 한판 맛있게 쪄가지고 가지고.."


"떡 안 먹는데"


"아, 떡 안드시구나. 떡 맛있는데. 그렇죠?"


176?177cm 키는 예진이랑 비슷하다. 일부러 태운게 분명한 구릿빛 피부와 샛노란 금색으로 염색한 머리가 인상깊다. 

조금있으면 역대 한파가 찾아온다는 일기예보가 거짓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녀는 꽃무늬가 그려진 하와이안 셔츠에 짧은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무슨 휴양지라도 온것처럼 갈색 빛깔의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고, 선글라스의 태그가 달려 대롱대롱 걸려 있었다. 

로또에 당첨된 졸부가 있다면 이런 모습을 하고 있을까? 말을 하는것도 굉장히 가벼워 보인다. 

-그렇죠?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마치 내 답변을 바라는것처럼 나를 바라보았다.


"저도 떡은 별로 안좋아하는데요?"


"아하, 두분 다 떡을 싫어하시구나, 저는 떡 좋아하는데"


그렇게 말하며 짙은 썬탠을 한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씩- 웃는게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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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녀 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