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군이 당했습니다!]

[전설의 출현!]

[적 쿼드라킬!]


"아이 싯팔."


내 입장에선 한순간이라도 현실에서 도피하려고 켰던 게임이지만 심적으로 너무 흔들렸던 탓인지 평소엔 잘 되던 플레이도 지금은 전혀 되지 않았다. 아예 애초부터 도움조차 안 되던 팀원들은 서로, 혹은 나를 탓하며 분열되었고, 난 키보드를 내려치며 게임에서 로그아웃했다.


"하아, 씨발..."


당장 게임을 해봤자 지금 내 상황을 타개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있다. 

하지만 내가 직접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딱히 없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비굴하게 매달리면서 해결해달라고 애원하는건 더더욱 하기 싫었다.


부우웅...부우웅...


게임에 몰두하느라 들리지 않았던 진동이 그제서야 들렸다. 의자를 돌리자 화면이 박살났지만 죽지 않고 알람을 울려대는 폰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 여태껏 그랬듯이 정체모를 인간들에게 오는 악성 문자로만 알았지만, 희미하게 깨진 문자들을 살펴보니 엄마에게서 온 전화같았다.


"어 엄마."

"얘가 무슨 일이 있길래 왜 전화를 안 받아?"

"아무 일 없어..."


엄마는 나에게 벌어진 일들을 까맣게 모르고 전화로 요새 밥은 잘 먹는지, 알바는 다닐 만 한지, 반찬이 다 떨어졌는지를 물으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하지만 20년 넘게 아들을 봐온 엄마의 감이 있었을까, 문득 엄마는 전화를 끊기 전에 나에게 물었다.


"얀붕아,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있니?"

"..."


마음같아선 엄마에게 다 털어놓고 펑펑 울고싶었다. 

점점 나에게 쏟아진 온갖 입에 담지 못할 욕과 비난들이 점점 한 거라곤 그저 나를 키운 것 밖에 없는 부모님을 향해간다. 그들은 차마 언급하기조차 꺼려지는 저열한 단어들을 내뱉으며 나와 내 가족을 궁지로 몰아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부모님에겐 그 손길이 뻗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야, 괜찮아."

"진짜지? 엄마 걱정 안해도 되지...?"

"응. 엄마, 사랑해. 아빠도."

        

툭.


엄마와의 짧다면 짧은 3분 가량의 통화가 끝나고나자 갈팡질팡하던 마음이 무언가 후련해졌다. 

이대로 조금만 내가 더 지체한다면 분명 나를 향한 화살들이 내 가족과 지인들에게 향할 것만 같았다. 



밖을 나오자 겨울 저녁이라 그런지 날씨가 쌀쌀했다.

복도에서도 들리는 차가운 바람 소리에 본능적으로 몸이 부르르 떨린다. 

하지만 내 마지막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는 발걸음은 오히려 누구보다 가벼웠다.


.

.

.

.

.


"하아...얀붕아...어떡하지..." 


그녀는 대형 승합차에 탑승한 채로 산만하게 바들바들 떨었다. 운전하던 매니저와 옆에 앉은 코디까지 그녀의 이례적인 행동에 무언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정도였다.


그녀에게 작가가 들려주고 보여준 상황은 그녀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심각했다. 

여지껏 인터넷에 접속 한번 하지않고 식사 약속에 들떠있었던 것이 치명적이었던터라 그녀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듯했다.

 

"얀순 언니, 무슨 일 있으세요?"

"..."


코디가 과감하게 얀순에게 질문했지만 그녀는 손톱을 깨물며 아무런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그녀는 인터넷 기사의 댓글과 온갖 커뮤니티에서 남발하는 그에 대한 욕설과 잘못된 허위사실들에 눈에 팔린 채로 크게 고심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녀 본인도 자신의 천만, 정확히는 1129만 7833명의 팔로워들이 모두 정상일 거라곤 기대조차 하지 않았었다. 이들 중 극소수는 자신의 성기를 문지르는 영상을 보내거나, 자신의 재력을 자랑하며 느닷없이 청혼을 하거나, 정말 못 배웠다는 말이 들어맞는 천박한 DM을 계속해서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얀순에게 얀붕은 그런 부류 중 하나였다. 

자신과 같은 학교를 나오고, 정말 팬이라고 말하며 가볍게 찍은 사진을 두고 '얀순이랑 동창인거 인증한다ㅋㅋ'같은 쓰잘데기 없는 글들을 각종 커뮤니티에 업로드하는 남자.

그깟 개념글이 뭐라고, 학창 시절에 얼굴 몇 번 마주쳤다고 으스대는 꼬라지가 우스워 직접 그의 인스타에 DM을 직접 보낸 것이 시작이었다. 

  


인터넷 곳곳에 산재된 '김얀붕'이라는 단어에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그녀는 매니저가 원래 목적지였던 호텔 레스토랑 근처라고 말하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차 돌리고, 예약 취소시켜."

"네?"

"그리고 회사 법무팀에 연락해."   


단순히 친밀한 분위기를 타서 해본 장난이 설산을 구르는 눈덩이처럼 점점 그 스케일이 커져갔다. 

팬, 아니 팬을 가장한 악질 인간쓰레기들은 이제 단순히 그녀가 팔로잉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화살표를 돌려 그에게 분노를 내려꽂고 있었다.

처음 그 단초를 제공한 그녀도 엄청난 죄책감과 압박이 느끼고 있지만, 지금 그 비난들을 한 몸에 받을 얀붕이 느낄 감정은 그녀 본인도 예측할 수 없었다.  


.

.

.

.

.


(그만하시고 내려오세요!)

"...시발, 조용히 떨어지려니까..."


계획이 완벽하게 틀어졌다.

아파트 옥상 난간에 기대어 앉은 나를 올려다보며 소방관인지 경찰관인지 모를 사람들이 계속해서 사이렌으로 외치고 있었다. 

구경을 나온 주민들과 제지하기에 바쁜 경찰관들의 실랑이 소리가 옥상까지 전해질 정도로 일대가 소란스러웠다.


"하아...어떻게 알았지."

(천천히 내려오세요! 지금 구조팀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미 내가 떨어졌어야할 콘크리트 바닥은 구조용 에어매트가 설치된 상황이었고, 구조대원들이 옥상 문을 따려고 덜컹대는 소리가 내 뒤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내려가라는 본능적인 생각과 뇌리를 계속해서 스치는 조롱과 욕설이 머릿속을 헤집어놓는다.

온갖 복잡한 감정, 이루어 말할 수 없는 여러 요소들로 마음이 울적해진다. 

제일 큰 건 내가 무언가를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 며칠 사이에 받고싶지도 않았던 욕과 부정적인 관심들을 한몸에 받았었고, 지금 다 때려치울 작정에 포기하려고 나서니 포기하랍시고 가로막혔다.   

한순간에 멀쩡하던 사람이 이렇게 이상해질 수 있구나, 내심 이런 일들을 매일매일 받고 태연하게 견뎌내는 그녀가 존경스러워졌다.


'김얀순은 뭐하고 있을까?'


갑작스레 이 모든 사건의 원흉이었던 그녀의 이름이 떠올랐다.


분명 그녀가 한국에 도착한다고 한 예정시간은 저녁 무렵이었다. 어쩌면 식사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다 내팽개치고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의 이미지대로 약속 시간이 한참 넘었는데도 오지 않는 나 때문에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레스토랑을 박차고 나갔을 그녀를 예상하니 미소가 떠올랐다.


이미 자살은 물거품이 됐고, 여러모로 처음 옥상에 올라왔을 때의 절박함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당분간은 엄마의 손에 이끌려 정신과를 들락날락할지도 모르겠다.


"진정하시고! 천천히 내려오세요!"

"...ㄴ, 아."


그러나 순간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한 건지 구조대원의 손을 붙잡기 위해 몸을 돌리다 힘이 풀리면서 나는 그대로 15층 높이에서 바닥을 향해 자유낙하하고 말았다.


.

.

.

.

.


호텔에 도착한 이후에도 그녀는 안절부절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엄청난 경력을 자랑하는 변호사들로 구성된 법무팀에서 확인 절차에 들어가겠다고 했지만, 영 불안함을 지울 수 없었던 그녀는 조금씩 자신의 실수를 자책하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정말 어쩌면, 가족 외에 그녀가 마음을 탁 내놓고 친밀하게 지낼 수 있던 친구 한 명을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녀를 모르는 이들은 모델 김얀순에 대해 정말 성숙하고 경험이 많은 사람으로 알고 있지만, 인간 김얀순은 어릴 때부터 계속된 해외 일정과 잦은 전학으로 번번한 친구 한 명 없는 외톨이었다.

       

굳이 친구를 사귀려고 한다면 못할거야 없겠지만, 이미 많은 재산과 명성을 가진 그녀와 대등하게 지낼 수 있는 또래는 찾기 힘들었고, 또 그런 이들은 모두 하나같이 그녀보다는 그녀가 가진 것에 더 관심이 많았다.



때마침 그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그녀에게 매니저가 헐레벌떡 노크를 하면서 방으로 들어왔다.


"얀순 씨!"

"...?"

"그...김얀붕 씨 관련된 일인데..."

"왜?!"

"아,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했답니다..."

"..."


그녀의 표정이 푸르게 사색이 되었다. 곧바로 몸이 제어할 틈도 없이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이윽고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그런 그녀의 반응을 예상이라도 한 듯 매니저는 이어서 말을 꺼냈다.


"그래도 경찰이 생명의 지장은 없대요. 팔에 골절상을 입긴 했어도 조금만 지나면 다 나을 거랍니다!"

"...!"


하지만 얀순이 안심할 거라고 생각했던 매니저의 예상과 달리 그녀는 더더욱이 굵은 물방울을 툭툭 떨어뜨렸다.

그가 살았든 죽었든 간에 어찌됐든 그는 그녀의 지나친 행동으로 자살을 기도했다. 그것이 그녀에겐 너무나 고통스러운 진실이었다.

매니저는 차마 괴로운 표정으로 우는 그녀를 위로하지 못했다.


.

.

.

.

.


"흐흐, 씨발 꼴 좋다. 개새끼."


그 시각, 또 한번 인터넷에 알려진 김얀붕의 전화로 걸쭉한 육두문자를 보낸 한 남자가 비열하게 웃으며 뉴스 기사를 클릭했다.

남자의 입장에선 정말 아쉽겠지만, 그는 15층 높이에서 투신하고도 단순 골절상만 입고 병원으로 실려가 치료를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자신의 이상형이자 모든 것이었던 그녀를 어떻게 해보려던 양아치가 극단적인 시도를 했다는 것에 미소를 감출 수가 없었다.       


"삼수야, 엄마가 왔는데 또 게임이나 하고 자빠졌니!?"

"아 신경 끄라고!"


밤늦게 퇴근한 엄마의 잔소리에 남자는 신경을 부리며 떡진 머리를 벅벅 긁었다. 

30이 다가오는 자신을 여태껏 돌보고 있던 엄마에게 남자는 감사함 없이 당연한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이제 이 지랄도 질리는데, 얀갤이나 들어가볼까?"


남자는 자신의 경제 여건에 걸맞지 않는 최신식 폰을 키고는 익숙하다는 듯이 김얀순 마이너 갤러리에 접속했다.

그때까진 모든게 남자에게 있어 평범한 일상이었겠지만.


"뭐...뭐야..."


109.106 : 나는 아무말도 안 했다ㅅㄱ

122.83 : 판사님 진짜 저희 집 고양이가 쓴 겁니다ㅠㅠㅠㅠㅠㅠ

갤주의매트리스 : ㅅㅂ개좆됐다 삭제해도 늦었음

15.59 : 하...아빠한테 들키고 뺨맞았다... 

예아스 : 나만 아니면 돼에에엑~~~~

254.102 : PDF따인 새끼들 참고해라ㅋ 

101.233 : 독일얀붕이 사과영상 올렸다ㄷㄷ

53.190 : ㅄ들 선넘을 때부터 알아봤짘ㅋㅋ


평소같았으면 김얀붕 떡밥으로 타올랐을 얀갤이 갑작스럽게 떡밥이 바뀌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많은 갤러들이 의미심장한 제목의 글을 싸지르며 무언가 잘못되었다는걸 보여주었다.


"...서...설마..."



15.59 : 하...아빠한테 들키고 뺨맞았다... 


지금까지 얀갤에서 효자게이 욕박은거 다 PDF 따이고 조만간 고소 접수한다고 연락왔다...


그 와중에 아빠가 씨발 그거 듣고 내 글들 보더니만 뺨 존나 쎄게 후려치더라...


개념 412    비추천 227


갤주의책상 : ㅄ누가 욕하래?ㅋㅋ

66.177 : 꺼ㅓㅓㅓㅓㅓㅓ억

ㅇㅇ :  

얀순즈베이비 :  

130.38 : ㅆㅂ 단체로 모금해서 변호사 선임해야되냐?  

->61.254 : 걍 혀깨물고 뒤져랔ㅋㅋㅋㅋ



"씨발...씨발..." 


남자는 갑작스레 닥쳐온 고소의 피바람에 흐리멍텅하던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해온 욕설의 수위로 봐서는 분명히 자신에게도 조만간 연락이


띠링.


[(제목)(주)YMC 엔터테이먼트 법무팀 함진영입니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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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어제 올리려고 했는데 떡밥돌길래 하루 미뤄서 올림 


부족하고 못난 글이지만 얀붕이들의 관심 덕분에 계속 쓸 맛이 나는 것 같다ㅎㅎ 맨 위에 저 팬아트까지 받을 줄은 상상도 못했음

다들 정성껏 읽어주고 댓글까지 남겨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