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이 이익ㅡ

 


멋대로 회전하는 세상 속에 오직 이명만이 들려온다. 서늘하면서 추적한 끈적임들 속에 파묻힌 나는, 잠시 후 그제서야 웅덩이 속에 처박혀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쿨럭..”

 

푹하면서 몸 안에 들어온 차가운 날붙이의 감각. 

 

아스팔트와도 같은 뜨거운 액체가 그 위를 덮는 것이 느껴진다.

 

아직도 귓가에 때려 박히는 아지랑이들이 가시지 않았지만 비루해져 버린 내 육신을 가르며 찌르는 소리만큼은 뚜렷하게 들려왔다.

 

마지막으로 저항을 한다면 발길질과 같은 사소한 몸부림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이유도 없다는 생각과 동시에 전신에 도는 탄력감이 나의 그런 투쟁심을 잠재워나갔다.

 

생사를 함께했던 찬란한 갑주는 이미 걸레짝과 다름없이 파괴되어 형상을 알아보기 힘들었다.

 

차가운 비를 한껏 머금은 녀석의 한기만이 나의 위안이었다.

 

누운채로 하늘을 쳐다보니 저 멀리서 실처럼 가느다란 연기들이 보인다.

 

정확히 제국의 수도 방향

 

“큭흐...흐..”

 

“뭐야.. 왜 웃는 거지...?”

 

철내음이 나는 비릿한 웃음이었다. 

 

나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녀석은 적잖게 당황한 모습이지만 웃음 속에 포함된 통쾌함을 느낀 것인지 

녀석의 얼굴에 꺼림직함이라는 감정이 떠올랐다.

 

웃음을 위해 필요한 한 번의 날숨마다 나의 전신은 비명을 질렀다.

 

폐, 눈, 기도뿐만이 아니라 그 어떤 곳도 성한 데가 없었다.


죽어가는 반송장이 뭐가 좋다고 웃는지 마음에 안 드는지 녀석의 표정 놈의 표정을 보고 나니

더욱 강력한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크게 웃고 싶어졌다.

 

지금의 상황 속에 내가 웃는 이유를 네 녀석은 평생을 가도 모르겠지

 

더 이상의 미련은 없다.

 

이 녀석의 발을 묶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내가 원하는 결과는 얻었다.

 

이제 부패한 현 제국은 몰락할 것이고 새로운 여제를 기점으로 또 다른 역사를 써 내려갈 것이다.

 

다들 믿을만한 녀석들이니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

 

ㅡ스윽.. 턱..

 

무의식적으로 손을 주머니로 향하여 담배를 꺼내고자 했지만 역시나일까.. 

일말의 힘도 없는 내 몸은 약간의 들석임이 한계였다.

 

야박한 세상아, 셀프로 향좀 꽂게 해준다치고 한 번만 좀 도와주지...

 

담배를 숨어서 피게하는 장본인도 없는 마당에 마지막에 몰래 한 모금 정도는 괜찮지 않겠는가

 

“클극...흐흑...”

 

사실은 이제 폐 곳곳에 피가 차올라 더 이상 숨조차 쉬어지지 않아 피우지도 못할테지만.. 그렇다 해도..

내 죽음을 함께해줄 진한 담배 한모금이 너무나도 고팠다.

 

폐포 곳곳에 차오른 혈액 때문에 어쩌면 익사로 죽을 수도 있을 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슬슬 눈조차 맛이 갔는지 세상이 온통 붉은 핏빛으로 물들여져 있었다.

 

갑작스럽지만 하늘빛이 참 우리 기사님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욱.. 기분 나쁜 새끼야.. 뭘..  그리 만족한다는 표정이냐..!!”

 

스륵 푹 푹!!

 

나의 마지막 사색을 깨우는 소리가 들렸다.

 

듣기만 해도 지방이 낀 구역질 나는 목소리, 한심하면서도 분노가 담겨있는 소리였다.

 

‘이제 미련 없어요’ 같은 모습을 보이는 내가 싫었던 것인지 녀석은 나에게 오직 고통을 주겠다는 일념 하나로 몸을 난도질했다.

 

하긴 원래부터 이 새끼한테 자비는 바라지도 않았다.

 

몇 분 정도? 


그런 잠시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나의 죽음과 고통을 바라는 녀석의 추악한 욕망에서 나온 노력을 신이 들어준 것인지

 

내 더럽게 질긴 목숨도 슬슬 정말로 꺼지기 직전인 듯 손끝, 발끝부터 몸이 굳으며

감각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젠 시야에 오로지 붉은빛들만이 점멸했다.

 

아까 수도의 연기도 그렇고 이 시간이면 기사님도 황녀와 함께 황위를 찬탈하는 데에 성공했겠지


슬슬 끝낼 시간이다.

 

 

《 회차를 종료하시겠습니까? - ‘ Y/N ’ 》

 

 

수도의 남은 병력들로는 절대로 기사님 일행을 막을 수는 없을 거다.

 

막을 만한 악역들은 이미 곧 내가 갈 곳에 있으니까.

 

 

《 ‘티리아 해피엔딩 가보자’ - 회차를 종료합니다 》

 

《 TOTAL [1027] 회차 》

 

 

이제 다시 반복은 없을 것이다.

 

 

《 목표 달성! - ’붉은 기사의 행복’ 99/99 》

 


그녀는 이제 행복하겠지

 

어찌보면 질긴 악연이지만 정말로 보람찼다.

 


《 최초 달성! 당신의 놀라운 업적에 찬사를 보냅니다 》


 

잘 살아라 기사ㄴㅡ

 

“&45#14&53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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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RR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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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RR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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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표 달성 실패 》

 

《 목표 - ’붉은 기사의 행복’ 99/100 》

 

《 회차를 재진행합니다 》

 

《 리스폰 지점 - [붉은 기사의 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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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고 – 상태이상(속박) 》

 

《 경고 – 상태이상(약물/쇠락) 》

 

《 경고 – 상태이상(약물/무기력) 》

 

《 경고 – 상태이상(수면) 》

 

《 경고 – 상태이상(ㅇ....

 

《 경고 – 상ㅌ....

 

《 경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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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레이어의 무운을 빕니다 》

 

 

죽기 직전 들렸던 무언가 터지는 커다란 굉음은..

 

붉은 기사님을 위해 왔던 내 1027회차라는 여정의 끝을 알림과 동시에

 

그 붉은 기사님에 의해 시작될 지옥을 알리는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