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아침, 눈을 뜨자 눈 앞에 하나의 알림창이 보였다.


[2035년 1월 1일 이전, '개체명 : 얀순이' 사망시 지구는 멸망합니다. 이 사실은 '개체명 : 얀붕이'와 '개체명 얀순이'만이 인지하고 있습니다.]


"이게 뭔 소리야?"


얀순이는 대학교 같은 과에 재학중인 동기이다.


1학년때, MT자리에서 친해진 이후로 이리저리 같이다니긴 했지만, 내게 여자친구가 있어서 그녀의 고백을 거절했었다.


그뒤로는 그냥 인사만 하는 서먹서먹한 사이였는데, 어느날부터 얀순이는 폭주하기 시작했다.


내 여자친구를 남몰래 괴롭히거나, 우리집 주변에서 자주 모습이 포착돼, 그녀를 차단하고 이사까지 갔다.


 왜 그녀와 별로 친하지도 않는 내게 굳이 이런 알림이 오는거지?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전화벨이 울린다.


[착신 : 얀순이]


얀순이 전화도 오래간만이네.


"여보세요?"


"얀붕이니?"


"무슨일로 전화했어? 이제 우리 연락안하기로 했잖아. 내 여자친구도 너랑 전화해하면 많이 불안해해."


"..."


"오랫만에 전화줬는데 차갑게 말해서 미안하다. 그래도 너랑은 좋았던 추억만 가지고 싶어. 얼마전에 여자친구한테 협박 문자도 보냈었다며"


"..."


수화기 너머로 숨죽이며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리지만 어쩔 수 없다.


차라리 그녀도 다 털어버리면 나아질 수 있겠지. 지금은 정상이 아니야.


"미안하다. 이만 끊을게."


".. 자살하려고"


"뭐?"


"너도 봤을꺼 아니야? 우리 둘한테만 보인다는데, 우리는 이 세상이 운명으로 정해준 상대라고 세계가 말해주었는데, 너랑 이어지지 못할바에는 이딴 세상은 멸망하는게 나아!"


"잠깐, 너한테도 저게 보였다고?"


"진짜로 세상이 멸망하면 너가 다른 여자랑 히히덕거리는 것도 안볼 수 있겠지?"


"얀순아, 일단 만나서 얘기하자."


"이사간곳 주소 알려줘. 비밀번호랑."


"끄응.."


"이제부터 내말에 바로 대답안하면 죽을거야."


"너 이게 진짠지 가짠지도 모르면서...!!"


"가짜면 어때? 그럼 너가 날 보지 않는 현실에서 도망칠 수 있고, 진짜면 더 좋지. 널 홀렸던, 아직도 속이고 있는 년을 없애버릴 수 있으니깐!"


"순애는 그런애가 아니야!"


"이제 내 앞에선 여자친구 편 들지마. 마지막 기회야, 얀붕아."


"일단, 만나서 얘기하자."


"얀붕이가 집으로 불러주니깐 너무좋다."


"..."


"바로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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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앞에서 콧노래와 함께 집의 잠금장치가 눌리는 소리가 들린다.


문이 열리며 얀순이가 들어온다.


"얀붕이 취미나 성격은 안바꼈나봐? 프라모델들 아직도 있네?"


얀순이는 멋대로 초인종도 누르지 않고 들어와서는 내 집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일단 얘기 좀 하자."


"시-일-어"


"얀순아!"


"소리지르지마. 집 좀 구경하고 얘기해줄게."


당장이라도 쫓아버리고 싶었지만, 아직도 시야 한 구석에는 아침에 보았던 알람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으니깐 대충 보고 얘기 좀 하자."


이리 말하는 나를 무시한채 얀순이는 집 안 한 곳에서 가만히 서 있을 뿐이였다.


"너 어디를 그리.."


그녀를 따라 움직인 나의 시선이 향한건 전에 순애가 집에 놀러왔을때 깜빡하고간 순애의 개인 화장품 세트였다.


"나보다 먼저 그년이 왔었구나..."


"내 여자친구니깐."


"얀붕아."


"뭐."


"헤어져."


"너랑 나는 딱히 사귀는 사이도 아니거든. 일단 앉아봐."


"아니, 순애랑 헤어지라고."


나를 바라보며 말하는 그녀의 눈빛은 한없이 공허했다.


침울한 분위기를 마음껏 풍기는 그녀에게 난 거절을 했다.


"이런 불확실한걸 이유로 사귀던 여자친구와 헤어지는게 말이돼? 절대로 안해. 싫어. 됐다, 그런말할거면 그냥 돌아가 얀순아."


"흐흐흐.. 역시 얀붕이는 단단히 그녀가 건 최면에 걸려있었구나..."


얀순이는 서 있던 그 자리에서 쪼그려앉아 흐느끼기 시작했다.


여자의 울음에 죄책감이 일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얀순아, 이제 그만.."


말을 그녀에게 하는 순간, 그녀가 자신의 주머니에서 식칼을 꺼냈다.


"얀순아, 무슨 짓이야!"


그대로 자신의 목을 향해 내리치는것을 가까스로 몸을 던져 막아냈다. 


전혀 망설임이 없는 움직임.


"너, 뭐하는거야!!"


이미 목에 약간의 실선이 나, 빨간 줄이 선을 따라 흐른다.


"얀붕이, 멋져... 날 구해주는구나..."


"무슨짓이냐고!!"


하지만 대답을 듣기도 전에, 새로운 알람이 오는것을 보았다.


['개체명 : 얀순이' 육체의 상해 확인. 아시아 전역에 지진이 일어납니다.]


"뭐야 이건.."


알람이 축소되자마자 땅이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서둘러 얀순이를 잡고 식탁 밑으로 몸을 옮긴다.


"머리 숙이고 대기하고 있어!"


"얀붕이가 손 잡아줬다... 얀붕이랑 둘이서 좁은 탁자 밑에서..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걸까?"


쿠구구- 


진동이 그치고 나서야 창문 밖을 보니 지진이 일어난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알람 또한 사실이라는 것을.


"끄응..."


"이로서 내가 죽으면 세상이 멸망한다는 것은 진짜로 밝혀졌네."


"으음.."


"이제 헤어지자. 얀붕아. 너무 오랫동안 나를 떠나있었어."


"내가 순애랑 헤어지는 일은 없을거야."


"그럼 순애말고 높으신분들에게 말해줘야지"


"뭐를?"


"내가 다치기만 해도 이 사단이 나는데, 순애가 죽지 않을거면 내가 죽을거라고."


"얀순아! 너 정말 그럴거야?"


"그러니깐 순애가 멀쩡이 살아있는 꼴 보고 싶으면 내 눈 앞에서 전화해서 걔한테 심한말하고 헤어져."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아니면, 순애 내가 죽여달라고 할꺼야.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나라의 수장들이 무슨 짓을 할까?"


"크흡.. 큭.."


눈물이 난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런 여자한테 걸려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가.


얀순이가 내 핸드폰을 집어든다.


"여자친구 생일이 비번에 배경화면 전부 같이 찍은 사진, 앨범도 가득찼네. 이년 역시 짜증나. 다 지워버리고 나로 바꿔야지~"


내 핸드폰을 이리저리 만지던 그녀는 흐느끼는 날 보고 방긋 웃으며 순애에게 전화를 거는 도중인 핸드폰을 내게 주었다.


"알지? 순애가 유일하게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야. 뭐, 당장은 그리워해도 곧 다른 남자 찾지 않을까? 으흐흥~"


"흐..흐흑.."


수화기에서 순애의 상콤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언제나 나에게 위로가 됐던 그 목소리....


"크흐흐흡... 훌쩍 .. 흐읍.."


"여보세요? 얀붕이니? 어머, 지금 우는거야? 무슨일 있어?"


나를 이렇게 걱정해주고 생각해주는 그녀에게 나는 심한말을 해야한다.


내 눈 앞에서 얀순이가 징그러운 웃음을 지은채 내 뺨을 두손으로 감싼다.


"... 우리 헤어지자."


"..."


수화기 속 침묵과 함께 얀순이의 미소가 더욱 커진다.


얀순이의 빙글빙글한 핑크빛 동공이 확대되고 홍조가 지어진다. 


입으로 소리내지 않고, '계속'이라고 내게 신호를 보낸다.


"... 다른 여자가 생겼어. 너는.. 훌쩍 질렸.."


말이 잘 안나온다. 


나에게 모든걸 해주던 그녀였기에, 얀순이의 얼굴이 점점 굳어간다.


"얀붕아, 무슨 일 있는거지? 그렇지? 내가 지금 집으로 갈까? 괜찮아. 나는 다 이해해. 얀붕이 괜찮은거지?"


".. 훌쩍 흑..흑.."


"- 마음에 진짜 진짜 안드네요"


얀순이가 끼어들었다.


"너는 누구니?"


"야, 여우년아."


"얀순이구나.."


"선배는 나랑 결혼하기로 했으니깐 이제 알짱 거리지마라. 눈 앞에 보이면 너, 죽여버릴거니깐."


"내가 그런거에 굴할거 같아?"


"아니, 순애야.. 오지마... 나는 얀순이랑 사귀기로 했어..."


"얀붕아!"


"그러니깐... 꼴도보기 싫은 너니깐. 이제 내 주변에서 사라져줬으면 해"


"... 역시 무슨 일이 있는거지?"


"없어. 그냥 얀순이가 더.. 좋아졌을뿐이야."


"난 납득할 수가 없어, 얀붕아 우리 어제 밤에도 통화.."


"순애야. 차단할게. 하나는 말하고 싶어. 그래도 너랑 함께..."


얀순이가 이어지는 말을 끊어버리고 핸드폰을 종료시킨다.


"이 방법만이 유일하게 순애가 사는 길이였어"


"..."


충격이 가시지 않는다. 


어제밤까지만해도 서로 사랑을 속삭이며 깔깔거렸는데...


"그럼~ 다음 소원은 우리 달링한테 뭘 부탁할까나~" 


빙글빙글 돌며 방방 뛰는 얀순이.


"아! 그리고 오늘부터 나도 여기 살꺼니깐 잘부탁해~"


그녀의 어그러진 미소가 너무나도 무섭다.


"앞으로는 콕! 붙어서 나를 밀착 마크해줘야해? 조금만 마음에 안들면 죽어버릴지도?"


"알겠어.."


"핸드폰, 집 비밀번호, 컴퓨터 비밀번호 이런건 전부 공유하기. 나만 바라보기. 시도때도 없이 나한테 사랑한다 해주기. 날 안아주기. 아~ 얀붕이랑 하고 싶은게 너무 많다. 다 해줄거지?"


"응..."


"좋아, 좋아! 먼저 날 안아주며 그런 여자따윈 나에 비해 최악이였다 하면서 키스해줘"


나는 결국 그녀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는걸까..


그녀의 명령대로 하나씩. 하나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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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종합 : https://arca.live/b/yandere/207587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