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가 내리는 용문의 어느 공동묘지.


"잘 지냈나, 스와이어."


첸은 백합다발을 들고 볼품없는 묘비 앞에 섰다.


"내가 너에게 저지른 일은, 분명 용서받지 못하는 일이라는 건 알고 있다."


차가운 비를 피할 생각도 없이 전부 맞고 있는 첸의 모습은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그래도……"


이렇게 눈물을 흘려도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첸은 더욱 구슬프게 우는 수 밖에 없었다.


"……거기, 비켜줄래?"


그때,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한 남자의 목소리에 첸은 고개를 돌렸다.


"박, 사……?"


첸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워졌다.


"설마, 박사도 스와이어의 묘에……"


"그래. 그러니까 좀 비켜줬으면 하는데."


한편으로는 실망하고, 한편으로는 안심한 첸은 조용히 옆으로 자리를 비켜주었다.


"……"


박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을 믿어줬던 동료를 죽인 장본인이 눈 앞에 있어도, 그런 작자가 죄책감에 물든 눈으로 용서를 구하고 있어도, 이 가는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딱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빗물 사이로 붉어진 눈을 씻어내고 있다는 것 뿐.


"박사, 내가 저번에는……"


"……변명을 할 거라면, 돌아가겠어."


"아, 아냐! 나는 그저 사과하고 싶어서……"


박사는 둘러대는 첸을 보고 조용히 분노가 담긴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사과라면, 네 탓에 억울하게 죽은 그녀에게 해. 이제 나는 너희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으니까."


이미 박사는 그녀들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박사, 잠깐……!!"


첸이 박사를 붙잡으려 한 순간,


"감히 누구 몸에 손을 대려 하는거야."


괴력이라 부를만한 악력의 가녀린 손이 첸의 손목을 잡았다.


"박사가 한 말, 못 들었어? 이제 그만 좀 하라고."


첸이 방향을 돌린 눈 앞에는 지마가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표정을 찡그리고 있었다.


"곰녀, 이거 놔라!!"


"배신자 주제에, 어디서 고함질이야!!"

첸이 큰소리치기가 무섭게, 지마의 포효에 가까운 목소리와 함께 그녀의 손목이 밧줄로 죄여오듯 핏기를 잃어갔다.


"아악……!"


"지마, 그만해.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있었던 건 전부 잊어버리기로 했잖아?"


그리고 지마의 뒤에서 들려오는 나지막한 목소리에, 그녀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붙잡았던 첸의 손목을 놓았다.


"……쳇, 박사 말만 아니었으면 반쯤 죽여놨을텐데."


박사는 비에 젖어버린 지마의 머리를 수건으로 다정다감하게 닦아주었다.


"슬슬 가을이잖아, 감기 걸리겠다."


"시, 신경쓰지 마!"


그리고,


그걸 비참하게 지켜보는 첸의 몰골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



또다.


다시 스와이어의 환각이 보인다.


"비참하네, 우리 감찰팀장님."


"……"


"박사가 지마 양이랑 저렇게 사이좋게 지내는 거, 솔직히 보기 좋지 않아?"


누가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했던가.


내 귀에는 죽은 자의 목소리가 똑똑히 들리는데.


"스와이어…… 너는,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뻔한 걸 묻고 있네."


눈이 있어야 할 검은 자리,


그녀의 이미지와 정반대인 피와 상처로 뒤덮인 얼굴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후회하고 절망하면서 사는 거, 그거말고 바라는 거 없어."


"죽는 것도……?"


"당연히 안 되지. 속죄한다면서 자살하는 거, 자기가 저지른 잘못으로부터 도망가는 최악의 방법이야."


빗줄기가 굵어질수록, 그녀의 환청과 환각은 더욱 선명해졌다.


"왜, 가망이 없어보여?"


그녀의 비웃음은, 빗소리도 감추지 못했다.


"네가 손목에 그은 130개의 자해흔적이, 면죄부라도 되는 줄 알았나 봐? 박사랑 나한테 남긴 흔적과 상처가, 고작 그런 사소한 걸로 나아질 것 같았어?"


나는 미쳐버린 걸까.


"흐흐흐……"


땅을 판다.


"헤헤헤……"


맨손으로 땅을 판다.


유골함이 보일 때까지, 손톱에 피가 날 때까지.


"미쳐버린 척하는 거야? 아니면, 진짜 미쳐버린 거야?"


땅 밑에 잠든 흑단으로 만들어진 유골함을 연다.


그녀의 생전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새하얀 고운 가루를 떨어지는 빗물에 적시고, 흘러나오는 물을 입에 갖다댄다.


뼛가루 속에 섞인 조각들이 식도를 무자비하게 찔러도, 자신의 친구이자 동료였던 것을 몸으로 들여보낸다는 거부감이 들어도 멈추지 않는다.


유골섞인 물이 점점 몸으로 들어올수록, 몸에 있던 감각들이 조금씩 사라져간다.


"첸이라는 사람이 용서받을 수 없다면……"


여기에, 이제 첸은 없다.


"스와이어라면, 용서받을 수 있겠지……?"


그저 첸의 모습을 한, 스와이어가 있을 뿐.



***



비가 한창 내리는 에덴의 사무실.


박사의 사무실에서 직접 구운 애플파이를 입에 넣고 음미히며 점심시간을 보내던 엑시아의 무전기에서, 모스티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엑시아, 경계태세야."


"음? 왜?"


"니어가 왔어. 그것도 완전무장으로."


엑시아는 무전을 듣고, 한 손에 쥐고 있던 신문지를 구겼다.


"……알겠어. 금방 갈게."


엑시아는 어금니를 악 문 소리가 살짝 새어나갈까 걱정했지만, 얼마 못 가서 니어를 향한 분노에 의해 그 생각은 조용히 묻혀버렸다.


"……이제 좀 작작 포기하란 말야."


그렇게 그녀가 도착한 곳은 에덴의 제3수호탑.


빗방울이 맺혀있는 우비를 털어내고, 엑시아는 무전기의 전원을 틀고 말했다.


"모스티마, 상황은?"


"아직까지는 미동이야. 솔직히 완전무장은 했는데 아무런 움직임도 취하지 않아서 말야."


"박사는 어디쯤이야."


"10분 전에 용문에서 빠져나왔대."


쏟아지는 소나기 속의 하늘, 엑시아는 숨죽이고 그저 불상처럼 서 있는 니어를 살의 가득한 눈빛과 총구로 겨누었다.



***



니어든, 아미야든 간에 전부 마음에 안 들어.


다들 박사를 그렇게 잔혹하게 버려놓고, 이제와서 사과를 바라다니.


불가피한 일이라고 말하면 용서받을 줄 알았나?


"엑시아, 듣고 있어?"


웃기는 소리.


그런다고 마음의 상처가 사라질 것 같아?


"엑시아!"


"아, 어?"


"지마랑 박사가 돌아왔어. 니어를 주시해."


다른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샌가 박사가 도착했다.


여전히 푹 뒤집어쓴 옷차림 탓에 신원을 알 수 없었지만, 저렇게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걷는 걸 보니 박사가 확실하다.


"모스티마, 박사는 무사해?"


"어, 그쪽은 어때?"


"이쪽은……"


그 순간, 눈을 의심할 만한 광경이 내 눈을 스치듯이 지나갔다.


"모스티마, 빨리 박사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


니어가, 오리지늄제 수류탄을 들고 있다.


그리고 수류탄을 쥔 그녀의 손이 향하는 곳은,


박사가 도착한 정거장.


"뭐?"


"젠장, 모스티마! 시간자기장을 작동시켜!"


총을 겨눴다.


하지만, 진동기처럼 떨려오는 손은 좀처럼 진정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떡해야 좋은 거지?


"잠…… ……라고 한……"


끊겨서 들려오는 무전기 너머의 모스티마의 목소리는 더욱 불안감을 증폭시켰고,


"진짜, 해야하는 거야……?"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저 시선을 돌리는 것 말고는 없었다.


그렇게 니어의 손에서 수류탄이 벗어난 그때,


"그만하시죠, 니어 씨."


수류탄이 마치 바다 위의 물병처럼 정처없이 둥둥 떴다.


스코프로 바라본 니어의 뒤에는, 아미야가 안젤리나를 놔 두고 생기없는 눈으로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


"아미야……"


"박사님이 세우신 에덴을 부순다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요."


"그러면, 대체 우리는 어떡해야 하는 거냐……"


아미야는 니어의 손을 붙잡고는 말없이 에덴의 반대방향으로 끌고서 거세지는 빗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자,


[쾅]


나트륨을 망치로 묵직하게 내려치는 듯한 굉음과 함께 충격파가 에덴을 향해 퍼져나갔다.


"뭐야!? 엑시아, 방금 그 폭발음은?!"


"……"


"엑시아? 엑시아!"


"상황종료. 모스티마, 박사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


당황한 모스티마의 무전을 끊고, 나는 레드에게 무전을 걸었다.


"레드, 잠깐 괜찮아?"


"응, 지금, 여유롭다."


"글래스고에게 전해줬으면 하는 말이 있어서 그런데, 부탁해도 될까?"


"알겠다."


레드의 대답이 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게가 실린 여성의 목소리가 무전기 너머로 들려왔다.


"엑시아인가?"


"응, 부탁할 일이 있어서."


빅토리아 왕국의 유명한 갱단, 글래스고.


그리고 그 갱단의 정점에 서 있는 리더이자 현 에덴의 뱅가드 오퍼레이터,


시즈.


"난 다음달까지 근신인데, 무슨 부탁이 필요하다는 거지?"


"괜찮아, 그 건에 관련해서는 내가 설득할 거니까."


"어찌되든 상관없다만, 일단 이야기라도 들어볼까."


과연 이렇게까지 해야할까?


지금 시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와중에도, 나는 계속 망설였다.


"엑시아?"


"아, 미안. 잠시 정신이 팔려서……"


"그래서, 그 부탁할 일이라는 게 뭔데?"


나는 깊게 한숨을 들이마시고,


"로도스 아일랜드를, 무너뜨릴 병력을 모아줬으면 좋겠어."


결국 내뱉고 말았다.


"뭐? 내가 잘못들은 게 아니겠지?"


"말 그대로야."


"아니, 애초에 이런 이야기를 왜 내게 말하는 거지? 에덴에 있는 오퍼레이터들 중에는 나보다도 강한 녀석들이 많을텐데?"


"반대야. 너라서 부탁하는 거야. 이 에덴에서 대규모 집단을 꾸리고 있는 건 너밖에 없잖아?"


이 일이 잘못된 방법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이 일로 박사가 내게 실망하고, 나를 내칠 것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


"하아…… 알겠다고. 솔직히 아미야 일행이 한 짓거리는 나로서도 용서가 안 되니까."


하지만 이 일을 저질러버린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보수는, 일이 성사되면 지불할게."


적어도 박사를 저렇게 만든 장본인들을,


죽는 한이 있어도 용서하고 싶지 않아.



***



유난히 맑은 로도스 아일랜드의 오후.


"안젤리나 씨, 준비됐죠?"


"응, 전부 챙기고 출발만 하면 돼."


그림자만 가득했던 아미야와 안젤리나의 얼굴은 예상외로 해맑았다.


아니,


"쓰레기 청소는 확실히 해야 하니까요."


그녀들의 손에 들린 피가 흥건하게 묻어있는 뿔이 달린 둥근 무언가와 망가진 탁구공 장난감, 말랑말랑한 마네킹 손발을 생각하면,


오히려 해맑지 않은 게 이상할지도 모른다.


"앞으로, 15명이네요."

--------------------------------------

존나 오랜만에 쓰는 거라 필력은 보장 못해서 미안하다

근데 글 마지막에 묘사되는 저것도 고어로 취급하고 표시해야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