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 방주에 간호사 얀데레 보고 싸질러보는 글 - 01 - 얀데레 채널 (arca.live)

2편 : 방주에 간호사 얀데레 보고 싸질러보는 글 - 02 - 얀데레 채널 (arca.live)



쓰읍, 후우....

하루에도 몇번이고 좋다고 찾아댔던 담배가 오늘따라 맛이 없다고 느껴지는건 기분탓이겠지.

그래, 지금 내 머릿속은 그 맛있던 담배의 맛이 뭐가 어떤지도 모를 정도로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내가 무슨 첫사랑에 허우적대는 열대여섯 살짜리 꼬맹이도 아니고 말이지, 일면식도 없는 여자가 한번 웃어줬다고 이런 기분에 빠진다는게 말이나 되는건가?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그 얼굴을 떠올리고 있으려니 어느샌가 그럴 수 있다며 납득하고 있는 내 모습에 난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진짜, 미친건가.."


이상하리만큼 머릿속에서 떠날 생각을 않는 여간호사의 얼굴에 나는 지끈대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다 타들어간 담배 대신 새 담배를 꺼내들었다.

아니, 정확히는 꺼내들려고 했지만..


"아.. 이게 돛대였네. 이젠 하다하다 담배까지.."


쯧.

언제나처럼 피우다 피우다 필터만 남은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거칠게 박아넣은 나는 신경질적으로 옥상 계단 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놈의 담배는 항상 필요하다 싶으면 방금 피운게 돛대란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니 괜스레 짜증이 끝도 없이 솟아올랐다.

평소엔 고작 담배가 다 떨어진 것 정도로 화나거나 하진 않는데 오늘따라 나도 내가 왜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

정말이지, 마치 무언가에 씌이기라도 한듯한 기분이라고 할까.


"..편의점이나 들러야겠네."


생각해보면 옥상에서 담배랑 같이 마셔야겠다 생각했던 커피도 깜빡했었다.

뭐,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점심시간이야 아직 여유로우니 커피만 따로 마시는 것도 나쁠건 없겠지.

겸사겸사 떨어진 담배도 사고..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옥상 문을 연 그 때였다.


"...."

"......."


어라, 왜 여기에..


"저.. 안녕하세요."

"...."


내 가슴팍에 겨우 닿을 것 같은 아담한 키, 코끝을 스치는 이름모를.. 하지만 상쾌한 향기, 그리고 방금 전까지 머릿속을 맴돌던 그 얼굴이 바로 내 눈앞에 있다는 사실에 순간 뇌가 멈춘듯한 기분이었다.


"..저기..."

"...."

"..혹시 어디 아프신가요?"


나를 올려다보며 조심스레 입을 여는 그 모습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나는 약간 허둥대며 문 앞에서 비켜섰다.


"아, 아아.. 잠시 딴생각을 하느라. 난데없이 문앞에 막고 서서 죄송합니다. 간호사 선생님."

"괜찮습니다. 그럼 일 수고하세요."

"옙, 선생님도 수고하세요."


쿵, 쿵, 쿵, 쿵..

미친듯이 술렁이는 가슴에 이러다간 뭔가 실례되는 일이라도 저지를 것 같다는 예감에 서둘러 자리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한가득 채워왔다.


"저, 저기.."


간단한 인사만 나누고 서둘러 옥상 계단을 향하던 내 발걸음을 잡아채는 목소리.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그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자 그곳엔 식당에서 처음 마주쳤을 때와 같이 우물쭈물대는 모습으로 내쪽을 바라보는 간호사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한테 ㅁ, 무슨 볼일이라도?"


아, 쪽팔리게 혀씹었다.

얼마나 쪽팔리냐고?

마음만 같아선 당장 조퇴하고 집구석에 틀어박혀서 방바닥을 뒹굴거리며 비명을 지르고 싶을 지경으로 쪽팔렸다.


"저.. 그러니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


내가 속으로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이어진 간호사의 말에 나는 머릿속으로 무수한 물음표를 띄웠다.

감사? 나한테? 저 간호사가? 왜?

이번엔 그렇게 생각하는게 표정에 빤히 드러나기라도 한걸까, 간호사는 아차 싶은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 며칠 전에 여기 계단에서.. 티슈를.."

"..아?"


난 그제서야 떠올릴 수 있었다.

며칠전에 자기 상사로 보이는(정확히 말하자면 말소리를 들었을 뿐이지만) 사람한테 갈굼당하고 계단에 주저앉아서 울고있던 간호사한테 티슈를 줬던 일을..


당시엔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기엔 뒷맛이 찝찝해서 적당히 주머니에 있던 티슈를 건네줬을 뿐인 일이었는데 말이지.

실제로 별거 아니라 생각하고 난 거의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잖나.


"사실 최근에 여기저기서 치이고 있던 중이라.. 별것 아닌 일이라면 별것 아닌 일이긴 한데 저한텐 그게 되게 감사하더라고요. 그래서 꼭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서.."

"어..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아니, 이게 아니지.


"아니, 감사합니다가 아니라.. 말씀하신 것처럼 별것 아닌 일인데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실것 까지야."


"그래도.."


우물쭈물하다못해 이젠 얼굴이 새빨개지며 몸까지 배배 꼬이려는 것 처럼 보이는 간호사의 모습에 문득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 웃음소리가 컸던건지 살짝 놀라며 내 얼굴을 올려다보는 간호사의 모습에 난 어느샌가 가슴이 진정된 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여기서 더 고맙다고 하셔도 말이죠. 오히려 음.. 좀 과하다고 할까, 인사 받는것도 곤란해지는 기분이라. 진짜 별것 아닌 일이었잖습니까."

"...."

"그러니까 이정도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선생님. 오히려 별것 아닌 일로 고맙다고 해주시니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하네요."

"...."

"뭐, 이래저래 고생하고 계신 것 같은데 제가 도와드릴 입장은 못되고.. 힘내시란 말씀밖에 못드리겠네요."

"...."


새빨간 얼굴로 대답없이 고개만 끄덕이는 간호사의 모습에 꽤나 내성적인 사람인가.. 하는 쓸데없는 감상이 떠올랐지만 이내 구석으로 치워버리고,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마무리지으려 마저 입을 열었다.


"아무튼 오늘 하루도 고생하시고..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선생님."

"네, 네! 선생님도 좋은 하루 되세요!"


그렇게 서로 웃으며 나눈 인사를 끝으로 난 미련없이 발걸음을 돌려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쩐지 뒷목이 따가운것 같은데 기분탓이려나.

그런 잡생각도 잠시, 어느새 도착한 방진복 탈의실에서 난 저절로 다리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며 벽에 기댄 채 천천히 바닥에 주저앉았다.


"와.. 씨... 갑자기 훅 들어오는건 반칙이지.."


잘난듯이, 태연한 척 하며 이런저런 말을 내뱉었던 것 같긴 한데 머리가 새하얗게 비어버린 탓에 솔직히 내가 무슨 말을 한건지, 혹시나 그 선생님 앞에서 말도 안되는 개소리를 늘어놓은건 아닌지 갑작스레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니, 뭔가 이상한 소리를 지껄인 것 같진 않은데..

중간에 혀도 씹었던 것 같은데..


'으아아아아아!!'


끊이질 않는 걱정과 소리없는 아우성도 잠시.

후...

어쩐지 오늘따라 한숨 쉬는 일이 많다고 생각하던 찰나, 언제 시간이 그렇게 흐른건지 시끄럽게 알람이 울리는 핸드폰을 꺼내보니 1시 25분이라며 미친듯이 울려대는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얀붕씨~! 지금 탈의실에 있지!? 있는김에 방진복 좀 빨리 갈아입고 이것 좀 도와줘요~"


하..

그리고 탈의실 밖에서 들려오는 과장님 특유의 하이톤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한숨을 내뱉은 나는 알람이 꺼진 핸드폰을 대충 캐비닛에 던져넣고 서둘러 방진복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그래, 일단 다 잊고 일이나 똑바로 하자.

..과연 똑바로 일을 할 수 있을까 의심스럽긴 하지만 말이지..


~~~~~~


으ㅓ어어어ㅓ어... 이번엔 3천글자 무사히 넘겼다! 만세!

소프트 얀부터 시작하는 하드 얀까지의 여정.. 빌드업 잘 되고 있는거겠ㅈ..ㅣ...?


4편 : 방주에 간호사 얀데레 보고 싸질러 보는 글 - 04 - 얀데레 채널 (arca.l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