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구 많고 성급한 투자자들,

급격한 등락을 반복하는 주식 시장에서

얀순이는 굴지의 20대 머니 트레이더로

이름을 날렸고, 그 외모와 몸매는 물론

사람 자체에서 뿜어나오는 기품으로

모든이의 존경 어린 시선을 한 눈에 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모든 것에 시큰둥했다.

고급 세단 뒷자석에 앉아 창문에 기댄

얀순이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기사 아저씨... 오늘은 집 말고 다른 데 가줘요."


기사가 물었다.


"다른 데면 어디요, 아가씨?"


얀순이가 잠깐 골똘히 생각하더니 이내 답했다.


"아저씨 자주 가는 레스토랑이라두요..."


그러자 기사가 껄껄 웃었다.


"제가 자주 가는 레스토랑이요? 네 아가씨"


......,


"여기가 레스토랑이예요?"


그들이 선 곳은 시내에 한 작은 호프집이었다.


"아가씨께서 제가 자주 가는 식당에 가자고 

하셔서 이곳에 온 겁니다."


평생 전속 요리사가 준비한 식사를 하고,

고급 레스토랑만 들러왔던 얀순이는 처음 들르는

호프집이 낯설었지만, 뭐 아무래도 좋았다.

그때 기사가 말을 이었다.


"이 집 사장이 젊은 총각인데, 참 훌륭한 친구예요.

아무것도 없이 맨손으로 자기 혼자 검정고시도 붙고,

성실하게 일해서 서울에 가게까지 차렸으니

아가씨께도 재미없는 뻔한 놈은 아닐 겁니다."


"그런가요?"


그때까지만 해도 얀순인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그저 모든 것에 시큰둥했을뿐.

이윽고 문이 열림을 알리는 종이 요란하게 울리며

두 사람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젊은 가게 사장이 낯익은 손님을 보고는

반갑게 인사했다.


"아니, 형님? 이 늦은 시간에 웬 일이세요?

오늘 형님 일하시는 날 아닌가?"


친근하게 둘을 반기는 사장에게 기사가 화답했다.


"어, 얀붕이! 내가 모시는 아가씨가 오늘 니 가게에서

맥주 한 잔 하시고 싶데."


기사의 말에 얀순인 살짝 당황한 눈치다.


"기..기사님, 제가 언제 맥주를 먹자고..;;"


당황한 얀순이에게 기사는 농익은 미소로 말했다.


"오늘은 제가 평소에 자주 가는 식당에서

제가 자주 먹는 걸로 드셔보고 싶다 하셨죠?"


"그..그렇지만요.."


우물쭈물하는 여자 손님을 눈치 빠른 사장이

그냥 보낼리 없었다. 그는 곧장 허리를

반으로 접어 인사를 하며


"아이고, 아가씨! 누추한 가게지만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우리 형님 좀 잘 부탁드립니다. 일단 이쪽으로"


그가 둘을 테이블로 이끌어 세팅까지 마치는 속도는

마치 번개와 같았다. 또한 감히 정재계 누구도

자신을 함부로 다루지 못했는데 웬 호프집 사장 

하나가 기름 묻은 손으로 자신의 팔을 살포시 

붙잡고는 테이블로 끌고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얀순이는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사장이 보여주는 해피 바이러스에

어느새 미소까지 보이고 있었다.

얀붕이는 싱글벙글 웃으며 500cc 맥줏잔

두 잔에 생맥주를 가득 담아 잽싸게

둘의 테이블에 가져다 놓으며 말했다.


"이건 우리 형님 좀 잘 봐달라고 드리는

서비스예요. 우리 형님 진짜 성실하시고,

좋은 양반이거든요"


말없던 얀순이가 물었다.


"두 분이 되게 친한가 봐요?"


그 물음에 붕이가 쑥스럽게 답했다.


"이 형님은 제 평생의 은인이세요.

제가 힘들 때 많이 도와주셨거든요...

아차, 치킨 금방 갖다드리겠습니다."


붕이가 치킨을 튀기러 주방에 들어가자

얀순이가 조심스레 기사에게 물었다.


"저분의 은인이시라구요?"


얀순이의 물음에 기사는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고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답했다.


"저 친구가 사실 고아예요."


"고아요?"


기사가 말을 이었다.


"제가 아가씨께서 어렸을 때부터 회장님을

모셨는데 그때부터 월급 받을 때마다

월드 비전이나 어린이 행복 지킴이 재단에

기부를 해왔죠. 저 친구는 제 후원을 받던

놈이었구요. 근데 이놈이 감사 편지를

매 번 보내더라구요? 한 번에 알았죠.

아, 이 놈은 된 놈이다. 그래서 이 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고아원에서 나와야 하니까

고등학교에 들어간 후에도 연락을 주고 받으며

필요한 생필품 같은 거 사라고 계속 도와줬죠.

아니 그랬더니 그때부터 은혜 갚겠다고 알바를

시작해서 착실하게 모아 이렇게 번듯한 자기

가게도 떡 차리지 뭡니까?"


얀순이로서는 도무지 공감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벽을 가득 채운 벽걸이 tv속에

후원 광고에서나 나올 법한 주인공이 주방에

있으니 말이었다. 때마침 그 주인공이

그릇에 치킨을 담아 테이블로 다가왔다.

자신이 하루 버는 돈의 10분의 1을 한 달 동안

벌어야 할 형편의 얀붕이었지만, 붕이는

자신처럼 무기력하지도, 삶에 시큰둥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세상 기쁜 일은 자기한테 다 일어난 냥

웃고 다녔고, 걸음엔 언제나 기운이 넘쳤다.

인위적으로 교양있어 보이려 하지도 않았고,

그저 순수한 진심으로 모든 이를 대했다.


그렇게 

회색빛 망망대해같던 얀순이의 마음에 얀붕이가

파스텔톤의 햇빛이 되어 칠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