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arca.live/b/yandere/22416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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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맑음


어제 한꺼번에 아팠던 것인지 오늘은 몸이 아프지 않았다.


학교에 책을 가져가려고 가방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가방을 학교에 두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교복만 입고 학교로 갔다.


교실에 들어서자 먼저 와있는 얀붕이가 보였다.


밝게 인사하는 얀붕이를 보자 얀진이와 대화하던 얀붕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티 없이 순수한 모습 너머에서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


하기 싫은데도 예의 상 말을 걸어주는 걸까?


너도 나를 장난감 다루듯 취급하지는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봐야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불안이 떨쳐지지 않아.


왜 나에게 그렇게 허물 없이 대해주는 건지 모르겠어.


소문도 들었잖아.


나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고 도망만 쳤잖아.


경멸하는 눈으로 쳐다보던지 무시하던지 하나만 해줘.


착하게 대하지 말아줘.


따뜻하던 그 미소가 나를 찌르는 것 같아.


"괜찮아?"


얀붕이가 던진 말이 가슴에 꽂혔다.


"오늘도 많이 아픈거야?"


걱정해주는 그 모습에서 흑심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뭐가 뭔지 모르겠어.


나는 괜찮다고 대답하고 책상에 엎어졌다.


얼굴을 보지 못하겠어.


안 좋은 기억이 되살아 나는 것 같아.


얀진이도 처음에는 나를 살갑게 대했었단 말이야.


너도 언젠가 그렇게 돌변하지는 않을까?


필사적으로 혼란스러운 마음을 진정 시키고 자는 척을 했다.


교실에서 즐겁게 떠드는 애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는 척 흉내 내는 내 숨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맞는 거겠지.


저번에는 내가 감을 잃었던 거야.


내가 감을 잃었던 거야.


내가.. (글씨가 번져서 읽을 수 없다.)


사실은 나도 평범하게 지내고 싶어.


그저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고 공부를 하고 잡담을 나누며 웃는 것.


내가 바라는 건 그게 전부인데 그것도 너무 큰 바람이었던 걸까?


왜 네가 생각나는 건지 모르겠어.


네 모습이 눈앞에서 아른거려.


잠을 자는 척을 하던 중 목소리가 들려왔다.


"얀순아."


얀붕이의 목소리였다.


"몸이 많이 안 좋은 것 같은데 이거라도 먹어."


얀붕이가 초코바를 건네주었다.


이젠 아무것도 모르겠어


마지막으로 달콤한 꿈을 꾼다고 생각하자.


자고 일어나면 잊혀지는 그런 꿈.


고맙다는 말을 하고 주머니에 초코바를 집어넣었다.


얀붕이는 아직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시선이 부담스러워 왜 그렇게 빤히 쳐다보는지 물어보자 얀붕이가 말했다.


"그거 먹기 전까지 계속 보고 있을 거야."


나는 주머니에서 초코바를 꺼냈다.


포장을 뜯자 달콤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어제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그런지 군침이 돌았다.


초코바를 다 먹고 나서 얀붕이가 손을 내밀었다.


"쓰레기 이리 줘."


문득 시선에 느껴져 고개를 돌려보니 교실 문 뒤에 얀진이가 서있는 것이 보였다.


이쪽을 쳐다보는 얀진이와 눈이 마주치자 나는 내가 버리겠다고 말하고 자리를 피했다.


교실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아 교실 앞 분리수거함 앞에 서서 가만히 있었다.


"얀붕아.. 얀순이한테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어... 왜?"


"너한테 괜히 나쁜 일 생길 것 같아 걱정이 들어서 그래. 얀순이 걔가 깡패 같은 사람이랑 사귀고 있다는 말도 돌고.. 괜히 어울렸다가 못 볼 꼴 당할 수도 있어."


"나쁜 애 같지는 않던데."


"걔 처음에는 애들한테 잘 대해주나 싶더니 결국 돌변하더라. 지금은 더 문제 생기면 퇴학 당하니까 그걸 알고 좀 잠잠해진 것 같은데 그것도 확실하진 않으니까."


"응... 알았어."


고개를 살짝 돌려 창문을 보자 얀진이가 내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눈을 피하고 바닥을 쳐다보았다.


학교에서 말을 거는 얀붕이를 피하기 시작했다.


얀붕이를 위한 것이라고 합리화 했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내가 상처를 받을까 두려워서 얀붕이를 피한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서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대놓고 피하는데도 말을 걸던 얀붕이가 떠올랐다.


얀붕이가 더 좋은 친구를 사귀고 즐겁게 지내면 그거면 된 거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낭비할 시간 없이.


나에게 물들어 네가 더럽혀지지 않게.


그런데 밀어내면 밀어낼수록 마음이 아파와.


밀어낼수록 더 또렷이 생각나고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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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비


새벽부터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에 눈을 떴다.


우산을 쓰고 학교로 걸어가던 중 얀붕이가 보였다.


교문 앞에 서서 하늘을 보던 얀붕이가 내 쪽을 바라보았다.


"와.. 진짜 엄청 일찍 오는구나."


나는 건성으로 대답하고 교실로 들어갔다.


얀붕이도 나를 따라 교실로 들어왔다.


"괜찮다면 연락처 좀 알려줄래?"


얀붕이의 말을 무시했다.


"싫으면 말고.."


얀붕이는 끈질기게 말을 걸어왔다.


하교를 하려고 준비하던 순간 까지도..


얀붕이가 말을 걸 때마다 얀진이의 시선도 같이 느껴졌고 나는 견디기 힘들었다.


말 걸지 말라고 얀붕이에게 말해버렸다.


얀진이는 그 모습을 보며 박장대소 하고 있었다.


말이 없어진 얀붕이 쪽을 살펴보자 표정이 어두워진 것이 보였다.


죄책감이 느껴졌다.


나는 교실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나는 항상 이랬다.


도망만 칠 뿐인 겁쟁이.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만 주는 쓸모없는 인간.


그러던 중 뒤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자 머뭇거리는 얀붕이가 보였다.


"왜 갑자기 피하는 거야?"


"알 거 없잖아."


마음이 아프다.


"그냥 내가 피하고 싶어서 피하는거야. 별다른 이유는 없어."


아니야.


"귀찮게 말걸지 말고 장난질 할 거면 다른 애들이나 알아봐."


이걸 원한게 아니야.


"소문 들었잖아? 나 같은 애랑 어울려서 좋을 것도 없어."


미안해.


"그거 다 헛소문이잖아."


"남들 괴롭힌 적도 없고 정학 당한 적도 없잖아."


"뭘 믿고 그런 말을 하는데?"


"처음 그 소문을 듣고 나서 담임 선생님한테 좀 물어봤거든."


왜 그렇게까지..


"얀순이 너 그런 애 아니잖아."


"선생님도 걱정 되시는 듯한 말투로 말씀하시더라."


"나는 내가 본 거 아니면 안 믿어."


너는 왜 항상 그렇게...


"..."


반박을 하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뺨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 빗방울과 같이 바닥에 떨어졌다.


고통 없는 눈물이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흘러내리는 감정을 전부 토해내고 싶었다.


참고 싶지 않았다.


어린 아이와도 같이 순수한 울음.


중심이 무너지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우산이 떨어지면서 떨어지던 빗방울이 몸에 닿았다.


하지만 넘어지지 않았다.


빗방울이 몸에 닿는 느낌도 사라졌다.


얀붕이가 내 몸을 끌어안아서 지탱해주고 있었다.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나를 꼭 안아주고 있었다.


내 모습을 본 얀붕이는 아무 말 없이 내 등을 토닥여 주었다.


어린 아이를 달래는 것처럼 등을 토닥이는 것이 전부였지만.


그것 만으로도 충분했다.


정화가 되는 느낌이었다.


숨기는 것 없이 순수하고.


그런 모습이 어리숙한 꼬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런 얀붕이가 지금 나에게는 성자와도 같았다.


그 특유의 맑은 기운이 나를 보듬어주는 것 같아.


조금만 더..


나는 얀붕이를 세게 끌어안았다.


날씨는 쌀쌀했지만 장작불 앞에 앉은 것처럼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한동안 얀붕이를 끌어안고 마음 속에 있던 것들을 털어놓았다.


그저 아무렇지 않은 척 평범한 사람을 연기하면서.


힘들다고 이야기 할 곳도 없이 방황하며 스스로 괴로워하던 내 모습이 녹아내렸다.


얀붕이는 응 응 하며 그런 내 말을 받아주었고.


지칠 때까지 그렇게 있었다.


머리가 어지러워서 걷는 것도 힘들어지자 얀붕이가 집 앞까지 부축해 주었다.


침대에 쓰러져 눈을 감자 낯선 향기가 느껴졌다.


교복에서 은은하게 풍기고 있는 향기를 맡으며 기억을 더듬었다.


얀붕이에게 안겨있을 때 느껴졌던 그 향기였다.


냄새를 맡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기억을 떠올리면 오히려 어딘가 답답한 느낌이 든다.


조금 열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이러면 안 되는데.. 계속 냄새를 맡고 싶어진다.


심장이 점점 더 빠르게 뛰었다.


"얀붕아.. 읏..."


터질 것만 같은 뜨거운 감정이 죄악감을 태웠다.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타오르는 이 감정에 몸을 던지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