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자."


 한야의 한날인 크리스마스. 해가 진지 오래임에도 기념일을 기념하고자 하는지 연인들이 서로를 끌어안았다.


 그러한 사랑들이 넘쳐 흘러 이제 범람하기 직전인 곳에서 그는 그를 너무나도 사랑스럽다는 듯 밝게 웃으며 바라보는 그녀에게 그리 말했으니.


 그녀가 곧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핸드폰을 꺼내 들곤 그에게 보여주었다.


"얀붕아 오늘 크리스마스야. 만우절 아닌데?"


 그는 현실을 부정하기라도 하는지 씨익 웃으며 그에게 핸드폰을 건네준 그녀의 손. 그러나 역시 천재라고 불리우는 그녀가 아닐라까봐 현실을 거의 직시한 듯 덜덜 떨리는 손이, 그녀는 진즉에 모두 이해했음을 대변하여 알려주었다.


 하기야 그렇다. 그 어느 날도 아닌 크리스마스에 헤어지잔 통보를 이런 활기찬 곳에서 듣다니.


 결혼하잔 프러포즈마냥 아직 미성년자인 그들에겐 어울리지 않는 낯설고 부끄러운 말들이 아니라면, 솔직히 믿기지 않는 것이 정상적인 현실임은 맞았다.


 그러나 그는 그녀에게 다시금 번복하였다.


"우리 헤어지자"


 이것이 그녀의 마음에 영원토록 남을 상처가 되리란건. 그 역시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사무러치게 느끼고 있었다.


 어떻게 모를 수가 있을까. 초등학교 6학년부터 지금까지 자그마치 5년을 사겨온 그들이니 만큼 서로가 서로의 말에 어떠한 무언가를 끼침 받을지 예측한다는건 이제 무의식적으로도 가능한 영역인데.


 그러나 그는 말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친구들은 그가 그녀와 안 어울린다며 당장 헤어지라고들 한다. 그보다 몇배는 잘난 그녀는 언제라도 널 떠날 수 있으니.


 그녀의 친구들은 그에게 그녀와 헤어져달라고들 한다. 둘의 격이 너무 안 어울리기 때문이라더라.


 그녀를 사모하는 이들은 그에게 욕짓거리를 내뱉으며 언제라도 폭력을 휘두를것 같은 태세를 취한다. 분명 그에게 잘못이 없음을 알아도.


 그러한 경험들은 그를 찬찬히 지치게 하였고 결국 그 결말이 이러한 것이었다.


 통계로도. 문학적으로도. 사랑이 제일 뜨거워진다는 크리스마스.


 그런 날에 그는 그리 덤덤히 준비해온 차가운 이별을 내뱉은 것이다.


"애초에 너. 다른 남자 만나기 싫어서 내 고백 받아준거잖아."


 오랫 동안 속으로 곪아가기만 했던 망상들이 먼지가 푹푹 쌓인 상자에서 꺼내져 그녀에게 보여졌다.


 그에 그녀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 미소와 함께 섬뜩하디 섬뜩한 감정 없는 눈을 섞어선 고개를 갸웃거렸으니.


 그는 자신이 한말이 일부 맞았을지도 모르겠다누상념을 헛웃음에 섞어 밖으로 뱉었다.


"내 친구 그리고 네 친구, 널 좋아하는 사람들 등등.. 내가 너와 사귄다는 것에 해명을 몇십 차례 했어야만 했어.


중학생 때는 심하지 않았지만, 고등학생이 된 작년 부터는 끔찍한 내용의 편지들이 자주 내게 왔다고.


솔직히 너도 나 안 좋아하잖아. 그저 방파제 역할로 삼은거잖아..

그러니깐 우리 더 이상 이 관계 억지로 엮지 말고 이제 헤어지자. 널 위해서도 그리고 날 위해서도. 응?"


 그리고 그는 그녀를 돌아보지도 않은채 집으로 돌아갔다.


 아니 사실은 그 자리를 어떻게든 떠나고 싶었을 뿐. 딱히 목적지를 가진채 어딘가로 나아간 것은 아니었다.


 그저 도착한 곳이 그의 아늑하지만 허름한 집이었을 뿐.


 그를 제외한다면 그 누구의 손때도 닿지 않은 이곳에서 그는 평소와 달리 옷을 던져둔 채 조용히 침대 위엔 누웠다.


 지독한 슬픔을 느끼던 그는 모순되게도 눈물을 쏟아내질 못하였으니. 그러한 모습에 그는 허탈히 자조적인 말들을 아무도 없는 그만의 작은 세계에 읆조렸다.


"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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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무슨 일 있었니?"


 왜 때문인지는 몰라도 듬성듬성하게만 자리가 채워진 우리 반을 보며 선생님은 그리 나지막히 물었다.


 물론 나를 포함한 대부분도 선생과 마찬가지였으니 딱히 답할 수는 없었다.


"일단 너희들 인생이니 딱히 뭐라 할 건수는 없…"


 선생의 지루한 연설이 모두에게 조용히 울려 퍼지기 시작하였고, 수업 시간이 빨리 시작되기를 마음 속으로 빌며 난 그리 나의 시간을 생각에 파묻었다.


 그리고 그러던 중 갑자기 얀순이는 어떻게 됐을지 의구심이 생겨났지만. 그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헤어졌을 뿐더러 다른 반이기까지 하니 이젠 서로가 서로와 관계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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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언가 이상하다.


 그녀는 속으로 그리 생각하였다. 그가 자신에게 모욕적인 말을 내뱉은 뒤 헤어지자는 통보를 한 다음날인 지금, 그가 그러한 생각을 일으키게 한 원인들을 모두 처리했음에도 무언가 걸리는 감각이 그녀에게 느껴졌다.


 얀붕이가 다시 그녀에게 오도록 할 계획의 단초가 무너지기라도 한걸까?


 아니 그렇지 않으리라. 온갖 수작질과 패악질을 부리던 그녀와 그의 친구를 자칭하던 이들은 모두 처리했으니 일어날래야 일어날 수가 없겠지.


 그렇다면 왜 그녀는 이런 불안함을 겪고 있는걸까?


 물론 내심 그녀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별건 아니었다. 그저 일어나지 않는다는게 더 가까울 약소한 가능성으로 일어날 그가 그녀의 고백을 거절하는 사태.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했던 서로라면 당연히 그가 그녀의 고백을 받아줄 것이라고 생각 했다만, 어제 그러한 일이 생겨 급조한 것이니만큼 한계가 있을 것이란 불안함이 그녀에겐 남아있었다.


 그녀는 그를 만날 시간을 기분조이 기다리며 조용히 잠을 청하였다.


 제발 그녀가 그를 납치하게 된다는 최악을 가정한 상황이 일어나질 않길 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