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서로를 감싸고 있는 암울하기 짝이 없는 공기. 


단 한마디의 말조차 귀가 아닌 곧장 가슴으로 파고 들어오는 너의 목소리. 



" 이유… 하다못해 이유 정도는 말해줄 수 있는 거 아니야? " 



울분이 서린 너의 목소리에도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너를 위로해야 할까, 그게 아니라면 더 싸늘하게 너를 내쳐야 할까. 


우리의 미련이라는 바보 같은 감정이 재발하지 않으려면 도대체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항상 너와 함께 걷고, 사랑을 속삭였던 공원 벤치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느낀 감정에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 … 그냥, 질렸어. 끝내자. " 



정당한 이유 같은 건 말해줄 수 없었다. 


그저 내 단순한 오판인 걸 아니까. 


내가 너를 위로해 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내가 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으니까. 






문득 그런 얘기를 들었다. 


처음 보는 번호. 전화를 받자 상대는 내 여자친구의 언니라며 말을 꺼내었다. 


무슨 일로 내게 전화를 걸었냐고 물어볼 틈도 없었다. 


곧장 진지하게 내리 깔린 휴대폰 너머 상대의 목소리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으니까. 



그녀는 어릴 적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자신의 주변 사람은 아닐 줄 알았던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고.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세상이 멈추는 느낌이었다. 


온 몸이 굳어있었다.


변하지 않고, 그저 영원할 것만 같던 우리의 사랑이 결국 끝이 난다는 사실에. 


잠시의 침묵. 그리고 적막을 깨고 다시 들려오는 상대의 목소리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그 반응을 보니 역시 말하지 않았냐고. 


참 신기한 병이라고 한다. 


심박수가 빨라질 수록 수명이 줄어든다니, 도대체 그런 말도 안되는 병이 어디 있는가. 


처음엔 부정.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 그리고 후에는 슬픔과 공포. 


단지 우리의 사랑이 서로를 지탱하고, 마냥 행복한 시간으로 변할 줄 알았건만 정작 그것과 반대였다는 사실에. 


내가 그녀의 수명을 줄이고 있다는 사실에. 


이후 상대의 목소리가 내 귀로 온전히 들어오지 못했다. 


지금까지의 우리의 관계를 모두 부정하고 있었으니까. 


단지 서로를 채워 나가야 할 관계가 되려 일방적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단 소리니까. 


도대체 어찌 머릿속에서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핸드폰 너머의 목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병원에서 위험하다고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본인에게는 남은 수명을 알려주지는 않았지만, 후에 가족에게는 알려줬다고. 


그렇게 내게도 전해온 그 날짜가 가히 충격적이었다. 


단 1년. 미칠 듯이 뛰고 있던 나와, 그녀의 심장으로 인해 사라져버린 그녀의 생명. 


네 선택이 어찌 됐건 지금 자신의 동생이 행복해 하고 있으니 나는 너에게 헤어져 달라 말할 수는 없다고. 


하지만, 확실히 하라고 한다. 


앞으로 생이 얼마 남지도 않은 그녀를 평소처럼 바라볼 수 있냐고. 


곧 사라질지도 모르는 사람을, 이런 소리를 듣고도 온전히 사랑할 수 있겠냐고. 


네가 주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그녀를 죽이고 있다는 걸 알고 있냐고. 



내게 들려온 걱정인지 질책인지 모를 그 목소리에선 어느덧 슬픔이 가득 묻어있었다. 


그야 그렇겠지. 


자신의 가족이 죽어가고 있잖아. 


그리고 내 여자친구가 죽어가고 있단 소리잖아.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 때문에. 


차라리 이 얘기를 듣지 않았다면. 


그저 장난 전화로 받아들여 곧장 전화를 끊어버렸다면. 



지금 나를 옥죄여 오는 이 고통을 느끼지 않아도 괜찮았을 텐데. 




*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선택이 결코 틀리지 않았기를 빈다. 


나를 붙잡는 그녀의 손과 흐느끼는 목소리. 


전부 쳐내었다. 듣지 않았다.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너와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너에게 내 얼굴을 보여주기 싫었다.


지금 흐르고 있는 내 눈물을 너에게 보일 수 없으니까. 


내가 느끼고 있는 이 슬픔이라는 지독한 감정을 전부 드러내고 있는 표정을 너에게 보일 수 없으니까. 


네가 지금 나의 선택을 거짓이라 치부하지 않기를 바랬으니까. 


모르겠어. 하나도 모르겠다고. 


지금 서럽게 울고 있는 너를 뒤로 한 채 계속 도망치고 있는 내 선택이 맞는 거야?


지금까지 그렇게 널 사랑했는데. 너도 날 그렇게 사랑했는데. 


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해. 네가 없어질 세상에서 난 어떻게 살아야 해. 


사랑하면 사랑할 수록 서로를 볼 시간이 적어진다는 걸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해? 


도대체 이게 사랑이 맞냐고. 


서로 사랑하면 평생을 행복할 수 있는 이 감정이 왜 이토록 사람을 죽여가냐고. 


모순이잖아. 다 지랄이잖아. 누가 이런 걸 받아들일 수 있겠냐고.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무력한 자신. 그저 슬픔으로 끝을 맞이해야 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사이. 


네가 하루하루를 걱정하며, 불안에 떠는 나날을 보내며 마지막을 슬퍼할 바엔 


차라리 지금 그 불안을 끝내주겠다고. 


중간에 끝나면, 그나마 우리 사이가 더 깊어질 곳이 없다고 해도 지금 끝내버리면. 


적어도 남은 시간은 날 잊으면서, 다시 행복을 찾으라고. 


사랑이 아닌 감정을 찾으라고. 그저 가슴 뛰는 일이 아닌 사소한 행복이라도 찾으라고. 


조금 더 싸늘하게 내쳐야 했을까. 조금 시간을 들여서라도 미운 정을 박아뒀어야 할까.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에 날 싫어하지는 않을까. 아니 증오하지는 않을까. 


아, 오히려 그게 정답일까. 


날 싫어하는 만큼 그저 날 더 빨리 잊어줘. 나라는 사람을 미워해. 


천천히 뛰는 심장으로 날 평생 원망하더라도 좋아. 아니, 그저 빨리 나라는 사람을 기억 속에서 지워줘. 


제발, 제발 이 작은 희망에 내 모든 것을 걸게 해줘. 




『 … 심장을 기증 받거나, 다시 평소처럼, 아니 평소보다 더 늦게 심장이 뛰면 더 오래 살지도 모른대. 』


『 그리고… 2년 뒤면 해결책이 나올 수도 있을 거래. 그래도 뭐 어쩌겠어. 남은 수명이 1년인데.. 』 




널 사랑하는 만큼 너에게 말할 수 없는 사실도 있어.


그리고, 너도 날 사랑하는 만큼 말할 수 없는 사실이 있었겠지. 


결국, 그게 내 귀에 들려오고 말았지만. 


그래도, 난 너를 사랑하니 지금 이 아픔을 견딜게. 


네가 다시 멀쩡해지면 그제서야 무슨 짓이라도 해서 다시 용서를 구하고, 사랑한다고 다시 말해줄 테니까. 



그러니, 그러니 제발 조금만 더 버텨줘. 


다시. 반드시 너에게 갈 테니까. 그러니 제발. 















연락이 올 것 같은 방법은 전부 차단했다. 


혹시나 싶어 집에서 간단히 짐만 챙겨 자취하는 친구의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동안 널 보느라 미루었던 친구들과의 약속에 나가, 정신이 나갈 정도로 술을 마셔도, 


아무리 취해봐도 너라는 사람은 결코 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너는 날 잊었을까. 


너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너는 나를 떠올리고 있을까. 


밥은 먹었을까. 


혹시 방에만 박혀 있지 않을까. 


아. 오히려 그렇다면 다행일텐데. 적어도 아무 생각 없이 조금 더 견뎌주면 좋을텐데. 


모르겠어. 모르겠다고. 


네가 지금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그건 완벽한 이상이 아니잖아. 


홀로 외롭게 슬퍼하고 있는 모습이 미래의 너를 지킨다고 해도 지금 넌 그토록 슬퍼하는데. 


그게 아니라 다시 너에게 사과하고, 우리의 멈춰있는 사랑을 이어간다면 미래가 고통스러울 텐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좋아? 정답이라는 게 있긴 한 거야? 


너라는 사람을 잊으려면, 아니 행복하게 해주려면 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고. 







" 미친 새끼. 오랜만에 만났다고 평소에 안마시던 술을 왜 그리 쳐 마셔. " 


" 미안하다. 너가 데려와 줬어? " 


" 그래 임마, 끌고 오느라 힘들었다. 근데 뭔 잘 때 그리 우냐? 난 너 뭐 깨있는 줄 알았다. " 


" …… . " 



꿈 속에서 마저 너를 잊지 못했구나. 


사랑했던, 아니 사랑하는 사람을 잊는 게 이토록 힘들구나. 


몇 번이고 비수가 꽂힌 듯이 아파오는 이 심장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기다리는 것 말고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없을까. 


지금 당장 널 만나고 싶은데. 너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네 얼굴이 이토록 보고 싶은데. 


난, 나는. 









친구는 알바하러 나갔고, 집에 홀로 남아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람이라도 좀 쐬려 현관문을 열고 나가니 제각각의 사람들이 비추었다. 


계속 주위를 둘러 보자니, 어느덧 나는 멈춰 서있었다. 


눈시울이 뜨거워져 있었다. 



이토록 괴로울 줄 알았다면 사랑을 시작하지 말걸. 


이렇게 아파할 줄 알았다면 사랑을 주고받지 말걸. 


이렇게 생각날 줄 알았다면 사랑을 추억하지 말걸. 


그럼에도 알고 있잖아. 


어떻게 사랑이 끝나겠어. 이토록 사랑하는데. 


내가 이별을 고했어도 아직 내 마음이 너와 이별을 허락한 게 아니라는 걸. 


너 없는 하루가 이토록 지옥과도 같을 줄 몰랐다. 


몇 번이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과, 내 살갗을 찔러 대는 바람. 


그 수많은 사람들과 바람이 지나가도 내 곁에는 없는 그녀. 


나는, 울고 있었다. 



그렇게 정처 없이 떠도니, 어느덧 나는 매번 그녀와 추억을 쌓았던 공원으로 와 있었다. 


사람이 이렇구나. 무의식적으로 욕구를 충족하려 하는구나. 


지금은 없는 사람을 찾아서 그 상대와의 추억을 끄집어 내려고 애쓰는 구나. 


눈물이 흘러 내려간 자리는 어느덧 말라 건조했다. 


항상 너와 앉았던 벤치. 


이젠 네가 없다. 


금방 이라도 내게 사랑한다고 말해줄 그녀가 없다. 


그렇구나. 


내 인생에 너라는 사람이 이젠 나보다 중요한 위치에 자리 잡았구나. 


결심했다. 차선책이 아니더라도 좋다. 


그녀를 만날 수 있다면 난 뭐든 좋으니까. 


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전화를 걸었다. 


그녀가 아닌, 그녀의 언니에게. 


연결음이 얼마 지나지도 않아 들려오는 목소리. 


하지만 저번보다는 톤이 높았다.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그녀의 상황은 좋아졌다는 소리일 테니. 



" … 미안해. 그때 너에게 괜한 걸 알려줬을 지도 모르겠네. " 


" 아뇨, 차라리 들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상태는 어때요? " 


" 방에서 나오지를 않아. 문에 귀를 대보면 하루 종일 울고 있어. 저렇게 울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 


" … 있잖아요. 심장을 기증하겠다는 사람이 생겨서요. " 


" 뭐? 누가? 아직 병원에서 온 연락도 없는데? " 


" 그러게요. 어쨌든 나머지 다 확인하고 제가 다시 연락 드릴게요. " 



고맙다며, 눈물을 흘리는 상대의 목소리를 끝으로 나는 전화를 끊었다. 


등을 기대었다. 내 선택이 옳은 걸까? 


난 아마 아프겠지.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널 잃는 건 싫어서. 혹시나 하는 희망에 걸어보려고. 


있잖아. 


나는 네가 있어서 행복했어. 



그러니, 내 남은 생은 너에게 줄게. 


부디, 날 잊고 새 행복을 찾아줘. 








──────
















눈을 뜨니, 산소 호흡기를 달고 있더라. 


온 몸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이름도 모를 것들. 


눈을 뜨니 곧장 내 가족들이 해맑게 웃어. 


이식 수술에 성공했대. 그렇구나. 난 더 살 수 있는 거구나. 


가족은 전부 있는데. 사랑하는 너는 없네. 


왜, 아무리 헤어졌다고 해도 큰 수술이 끝났는데 와주지 않는 거야?


난 지금 네가 제일 보고 싶은데.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왜 내게 이별을 고했을까. 우리 좋았는데. 난 너와 남은 인생을 너와 전부 보내고 싶었는데. 


너를 이렇게 생각하기만 해도 내 심장이 이렇게 뛰는데, 어차피 네가 멀어지려고 해 모진 말을 내뱉고 갔어도, 


난 널 잊지 못하고, 계속 수명이 줄어들고 있었는데. 


그러니, 이제 그냥 나타나 줘도 괜찮잖아. 


이별이 다 거짓인 거 나도 알고 있다고. 


네가 나에게서 멀어지며 내 울음소리가 아닌, 너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고. 


바보야. 다 알고 있으니, 좀 나오라고… . 우리 사랑 다시 시작해도 괜찮으니까 제발 좀… . 





가족들이 다 웃고 있어. 그럼에도 난 웃을 수가 없네. 


눈물이 나는데, 이렇게 흐르는데 왜 나는지 이유를 정확히 모르겠네. 


가족들도 울고 있어. 알아. 기뻐서 우는 거겠지. 


하지만 난 왜 이리 슬플까? 이상하다. 분명 심장을 바꾸었는데. 


기뻐야 하는데. 널 다시 볼 수 있어서 기뻐야 하는데. 


왜 가슴 한 켠에서 이 답답함이 사라지지 않는 걸까?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모두가 나갔어. 


외롭네. 보고 싶다. 네 얼굴이. 다시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다시 사랑한다 듣고 싶은데. 


이럴거면 헤어지자 하지 말지. 나 이렇게 병도 괜찮아졌는데. 


누가 심장을 기증한 걸까. 나중에 꼭 일어나면 고맙다고 가족 분들에게 말이라도 해야겠어. 


언제 일어날 수 있을까. 심장이 그칠줄도 모르고 계속 뛰네. 


너라는 사람이 짠 하고 나타나지 않을까 하고. 


너라는 사람을 다시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기뻐서.


다시 우리가 사랑해도 괜찮은 몸이 되어서. 


문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와. 


… 무슨 소리일까? 




" … 기증자 이름이… 넌 알고 있었니 딸아? " 


"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갑자기 전화가 와서 놀라긴 했는데. " 


" … 그러니까, 원래 멀쩡한 아이였는데 일부러 사고를 당해 뇌사 판정을 받은 거야? " 


" …… 엄마. 내가 그 아이에게 너무 심한 말을 해버린 걸까요? 말하지 말았어야 했을까요? " 


" 얼마나 우리 딸아이를 사랑했으면 그랬을까. 어떻게… " 


" 엄마, 내가… 내가 그 아이를… 흑, 흐흑. " 





…… . 



거짓말이지? 



아니잖아. 다 장난치는 거잖아. 


이상하다. 만우절은 지났는데. 


아냐 그럴 리 없잖아. 갑자기 심장 기증자가 나타난 게 우연이 아니었다고? 


아냐. 아니지. 아닐 거야… 아니, 아니어야…… . 





… 왜? 왜 그랬어? 왜 그런 말을 했어? 그냥 니년이 아무 말도 안 했으면 우린 행복했을 거라고. 


씨발년이 왜 괜한 짓을 하는 거야? 그이가 나에게 이별을 고한 게 전부 니년 탓이구나? 니년이 꾸민 짓이구나? 응? 


울기는 뭘 울어? 지금 사실은 즐겁지 아주? 응? 호구 하나 잡아서 동생 살리니까 아주 좋아 죽겠지? 그렇지? 


근데 왜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 내가 그이가 사라지면 누구보다 슬퍼할 걸 알면서. 


내가 고작 피로 이어진 니새끼들 보다 그이를 더 사랑하는 걸 알면서, 뭐? 


왜 쓸대 없는 짓을 하냐고. 


지금 내 심장이 컨트롤이 안되잖아. 


왜 계속 괜찮다고 내면에서 누군가 내게 속삭이는 건데. 


아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 안에서 뛰고 있잖아. 그런데, 그런데…… . 


눈물이 멈추지가 않아. 


날 진짜로 사랑했다면 이런 짓을 했으면 안됐어. 


내게 모든 걸 다 떠넘기고 가면 안되잖아. 


나는 너라는 사람이 있어서 불안감도 없이 행복했는데. 


너라는 사람이 곁에 남아주고, 나에게 사랑한다고 속삭였기에 나는 늘 행복했는데. 


온갖 걱정도 없이 머릿속에 너만 가득해서 불안 따윈 하나도 없었는데. 


이제 다시 머리가 어지러워. 너라는 사람을 볼 수 없을 거라는 불안에 눈물이 그치질 않아. 



계속 화가나. 왜 우리 언니는, 아니 그 썅년은 왜 그런 소릴 네게 한 걸까? 


그냥 가만히 있지. 그 씨발 역겨운 입 좀 다물고 있지. 


아. 아아. 빨리 하루가 지났으면 좋겠어. 


빨리 이 꼴 보기도 싫은 주사들을 전부 빼버리고 네가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 


그래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왜 이리 내 심장이 움직이지 말라고 소리치는 걸까. 


너잖아. 지금 네가 나한테 그렇게 말하고 있잖아. 


괜찮다고. 전부 괜찮으니 행복 하라고. 


내 안에서 그렇게 속삭이지 말라고. 너도 이제 알 거 아니야. 


내가 이렇게 슬퍼하고, 분노하고 있는데 원인도 전부 알고 있으면서. 


그렇게 날 타이르지 말란 말이야. 나는 너라는 사람이 없으면 안된다고. 


네가 없는 인생이 행복할 수 있을 리 없잖아. 


네가 내 전부인데. 네가 있기에 나는 지금까지 계속 행복했는데. 늘 너를 사랑했는데. 


단 한 순간도 널 잊은 적이 없는데. 


왜 너는 내게 모든 걸 넘기고 떠나려 하는데. 



내 가슴속에서 날 위로하지 말아줘. 미안하다고 하지 말아줘. 


아파. 아프다고. 그러니 제발 그만해줘…… . 















가슴 한 켠 에서 느껴지는 이 감정이 지워지지 않네. 


분명 아프기도 한 것 같고, 그저 두근거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어. 



" 너는 알아? " 



… 역시 대답은 없네. 


눈 좀 떠봐. 일어나서 내게 사랑한다고 해 줘야지. 


언제까지 자고 있을 거야. 응? 


지금 너에게선 내 심장이 뛰고 있잖아. 네가 마음대로 가져갔잖아. 


그러면 너도 조금은 알 수 있지 않아?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가 널 얼마나 보고 싶어 하는지. 


내가 얼마나 네 생각만 하고 있는지. 


전부 다 느낄 수 있잖아. 


지금 슬퍼하고 있다는 것 까지. 


그러니 제발 일어나봐. 


왜, 왜 뭐라도 대답 좀 해봐. 


심장이 바뀌었어도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는 게 변하지는 않잖아. 


왜 전부 홀로 짊어지고 희생하려 하는데.


내가, 내가 기뻐할 줄 알았냐고. 


너 없는 세상에서 내가 어떻게 기뻐하겠냐고 도대체. 



제발… 눈 좀 떠봐. 



















벌써 한 달이 지났네. 


너는 아직도 눈을 뜨지 않아. 


항상 네 가슴팍에 내 얼굴을 올리고, 귀를 가져다 대보면 미칠 듯이 뛰고 있는데. 


심박수가 항상 요동치는데. 


사실 전부 장난이지? 깨어 있잖아. 


계속 이럴 거야? 나만 남겨둘 거야? 



장난치지 마. 재미 없어. 하지 말라고. 





" 사랑한다 해줘… 일어나서 다 거짓말 이라고 해 달라고. "



" 지금도 이렇게 슬픈데, 너무 힘든데 네가 진짜 떠나버리면 난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 



" 왜 내게 고통만 남겨주고 떠나려 해? 내가 널 잊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 



" 죽을 때 까지도 절대 못 잊어. 너라는 사람을 평생 내 가슴 속에서 지우지 못해. 네 심장이 내게서 뛰고 있으니까. "



" 이 순간 순간을 같이 아파하고, 슬퍼할 텐데. 앞으로도 네가 없다면 영원히 그럴 텐데. " 



" 내가 아프단 소리는 너도 아프단 말이잖아… 우리, 지금 아파하고 있잖아… . " 



" 왜 나한테 너의 짐만 넘겨주고 가냐고… 제발, 제발 눈 좀 떠봐. 바보야…… . "








────────















어두운 공간.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에 빠진 기분. 


몸이 붕 떠있는 것 같다. 


하지만 또렷이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 



" 너는 알아? " 



아무리 네게 대답을 하려 해도, 목소리가 나오질 않네. 


알고 있지 당연히. 나도 그 감정을 느끼고 있으니까. 


오로지 감정만 존재하는 인형이 된 기분이다. 


내 몸이 언제 움직일 수 있을까? 


언제 너를 다시 안을 수 있을까? 


언제 너에게 다시 사랑한다 말할 수 있을까? 



… 심장이 멈추질 않는다.


네가 있기에 이렇게 뛰는데. 아,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수명은 줄어들고 있겠구나. 


그래도 난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처음 네게 남아있던 1년이라는 짧은 시간에서, 지금은 훨씬 더 남은 시간이 길어졌을 테니까. 


그 안에 날 잊어. 그리고 행복을 찾아. 


지금껏 절제해왔던 사랑을 다시 시작해. 기억 속에서 나라는 사람을 지워. 


난 앞으로 1년 남짓한 시간 동안만 너를 그리워하며, 사랑하다 떠나면 되니까. 


너에게 남은 시간은 길잖아? 


그러니, 그러니까… 너는 






" 사랑한다 해줘… 일어나서 다 거짓말 이라고 해 달라고. "


사랑해. 


" 지금도 이렇게 슬픈데, 너무 힘든데 네가 진짜 떠나버리면 난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 거야. 


" 왜 내게 고통만 남겨주고 떠나려 해? 내가 널 잊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 


… 아마, 나도 잊지 못하겠지. 


" 죽을 때 까지도 절대 못 잊어. 너라는 사람을 평생 내 가슴 속에서 지우지 못해. 네 심장이 내게서 뛰고 있으니까. "


나도 알아. 지금 네 심장은 내게서 뛰고 있잖아. 나도 널 어떻게 잊겠어. 


" 이 순간 순간을 같이 아파하고, 슬퍼할 텐데. 앞으로도 네가 없다면 영원히 그럴 텐데. " 


" 내가 아프단 소리는 너도 아프단 말이잖아… 우리, 지금 아파하고 있잖아… . " 


…… . 





" 왜 나한테 너의 짐만 넘겨주고 가냐고… 제발, 제발 눈 좀 떠봐. 바보야…… . "





" … 울, 지마… . " 





… 미소를 지으려 해도 잘 안되네.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아. 


입술이 바싹 말라있고, 목이 쓰라릴 정도로 아프다. 


온 몸에 감각이 이상했고, 그저 눈물을 터뜨리며 날 바라보는 널 쓰다듬으려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손가락만 가딱 움직이고 말았다. 피곤하네 조금 많이. 머리가 아프다. 




" … 일어, 일어난 거야? 눈 뜬 거냐고? 야, 야… 왜, 왜…… . " 




글쎄 그렇게 놀라지 않아도 괜찮잖아. 


너무 꽉 껴안지는 말아줘. 아직 몸이 조금 아프네. 


그래도 다행이다. 다시 네게 사랑한다 말할 수 있어서. 



" 사랑해. " 



매번 했던 소리잖아. 그런데 왜 그런 표정을 지어. 


너무 슬퍼하는 거 아냐? 아닌가, 엄청 기뻐하고 있구나.


다시 네게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적어도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떠날 수 있어 정말 다행이야. 


가슴이 미치도록 아프네. 네가 지금까지 느꼈던 감각이 이거였구나. 


그래도 행복하네. 그래, 어떻게 잊겠어 사랑이란 감정을. 


이토록 행복한데. 단지 네가 내 옆에 있다는 사실 만으로 이렇게 편안한데. 



" 미안해. " 


" …… 왜 그랬어 바보야. " 


" … 널 너무 사랑해서. " 



서럽게, 이보다 더 슬플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굵게 떨어지는 그녀의 눈물. 


울지 말래두… . 



" 사랑하면 이러면 안됐잖아… 진짜 날, 진짜 사랑했 흐읍, 으면… " 



" … 이제 사과는 그만 하고 싶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거든. " 



" 뭐, 그게 무슨… . " 



내 심박수를 가르키는 모니터가 조금 이상했다. 


이상하다. 분명 네가 곁에 있어서 심장이 뛰어야 하는데. 


왜 줄어들고 있을… 까. 




" 미안해. 그래도 난 너라는 사람을 너무 사랑해. " 



" 야, 야… 그게 무슨 소리야… 이렇게 늦게 일어나 놓고서 갑자기 뭐? " 



" … 내 몫까지 살아줘. 사랑하면 부탁 정도는 들어줄 수 있잖아. " 



" 떠날 것처럼 말하지 말라고! 내가 이렇게 아파하고 있잖아, 왜, 왜 계속 가려고 하는 건데! 왜!! " 






눈꺼풀이 무겁다. 심호흡의 주기가 줄어든다. 


그녀가 계속 말을 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 잘 모르겠어. 들리지도 않고, 눈 앞이 어둡네. 


다시 잠에 빠지는 걸까? 


아니면 이제 그저 영원히 자게 되는 걸까. 


깰 수 있을까. 



너를, 다시 볼 수 있을까 나는. 




아직,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 참, 사람이란 존재는 쉽게 죽지도 않는구나. 



시야의 들어오는 흰색 가운의 남성. 


의사의 눈빛이 왠지 묘하다. 



" … 눈을 뜨셔서 다행입니다. 저희도 1년에 3번이나 심장 이식 수술을 할 줄은 몰랐는데. " 


" 뭐,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뇌사 상태가 회복된 것도 참 이례적인 일이군요. " 


" 부작용은 앞으로 검사해 봐야 알겠지만, 당분간은 안정을 취하셔야 할 겁니다. " 




…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감정이 뭘지 하나도 모르겠다. 


이 순간에도 내 심장은 정말 조용히 뛰고 있었다. 


… 조금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내 몸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의문이 너무나도 많다. 


그럼에도 그 생각을 사이에선 한 가지만 몇 번이고 떠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어디에 있는 걸까? 


몇 번이고 생사를 넘나들어도 잊혀지질 않는구나. 


이상하리 만치 차분하다. 호흡기가 없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한 켠 으론 불안감이 가득했다.


… 이 심장은 누구의 것이며, 나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난 것인가. 


혹여 내 심장이 다시 내게 돌아왔다면? 


그렇다면 지금 그녀는? 


조용히 답이 나오지 않는 의문을 거듭할 적에, 문을 열고 그녀가 들어왔다. 


굳어있던 표정이 자연스레 움직였다. 


서로를 바라보며 해맑게 미소 짓고 있었다. 


곧장 내 품에 사뿐히 안겨오는 그녀. 곧장 서로가 동시에 내뱉은 말. 



"" 사랑해. "" 



옅게 웃으며 다시금 서로를 마주 본다. 


아. 우리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구나. 


심장이 뛰었다. 


이젠 거부하지 않아도 되니까. 


마음껏, 참아왔던 그 감정을 전부 터 놓을 수 있으니까. 




" 있잖아. 난 어떻게 살아난 거야? " 


" 응? 히, 사랑의 힘인 것 같은데~ " 



그런 그녀의 말에 옅게 웃음을 터뜨려버린다. 


실제로 그렇다면, 절대 우리를 갈라둘 사람은 없겠지. 


… 뭐, 그렇다고는 해도 참, 기적이란 존재하는 법 이구나. 



" 야 웃겨? 진짜라니까? " 


" 아, 알았어. 알았어. " 




그래, 뭐가 중요하겠어. 


너와 내가 다시 사랑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 


그게 중요하겠지. 



사랑이 어떻게 변하겠어? 


서로를 좋아하고, 그 깊이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깊어졌을 때 느끼는 것이 사랑인데. 


서로가 없으면 안될 정도로 서로가 필요한 사이가 되었을 때 사랑이라고 부르는데. 


어떻게 우리가 변하겠어. 이렇게 생사를 넘나들면서 끊기지 않은 관계인데. 



우린 앞으로도 영원할 것 이라고 생각했다. 















장기 기증자 이름 칸에, 그녀의 언니 이름을 보기 전 까지 말이다. 




" 사랑이 어떻게 변해. 그렇지 언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