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쉬는 시간에 공부하냐? 모범생인 척 하지마!"


가만히 앉아 있는 내 어깨를 툭 건들며 시비를 거는 옆자리 여자애.

최근 들어 괴롭힘의 강도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원채 소심한 성격을 가진 나에겐 반항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도,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지 않는가.


그래! 최근 뉴스에서 봤던 그걸 말해보면...


"..."


"뭐라고? 잘 안들리는데 다시 말해봐"


한 손으로 자신의 귀를 감싸며 내 앞으로 몸을 내미는 그녀.

내가 제대로 된 대답을 못 할 것을 알기에 비릿한 미소를 얕게 지으며 계속 나를 놀려댔다.


그래도, 지금이 아니면 내게 기회가 오질 않을 기분이 들었다.

떨리는 마음을 다잡고 큰 소리로 교실에서 그녀를 향해 외쳤다.


내 마음이 전해지기를 바라며.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온 소리를.


"멈춰!!"


나라의 녹을 받는 공무원들이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학교 폭력  방지 표어인 '멈춰.'

사회의 엘리트들인 사람들이 만든만큼, 효과가 있을 것이다.


"..."


정말로 효과가 있었는지, 시간이 조금 지나도 얀순이는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아직도 귀를 가까이 댄 모습으로 행동을 멈춘 그녀.


"서,성공이다..."


정말로 괴롭힘을 멈추고 굳어있는 그녀를 보자 웃음이 나왔다.

당한 것이 많은 만큼 풀려난 이 해방감에 알 수 없는 쾌감 또한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서둘러 얀순이가 멈춰 있는 틈을 타 교실을 빠져나가려고 몸을 일으키는 순간, 양 어깨를 무언가가 짓눌려 다시 자리에 앉을 수 밖에 없었다.


욱신거리는 통증을 뒤로한채 고개를 들자 보이는건...


"야."


이제까지 날 계속 괴롭혀온 얀순이였다.


"진짜로 멈춰주니까 실실거리며 바로 나가려하는거 실화야? 진짜 얀붕아, 너 찐따 다 됐구나."


내 볼을 잡아당기며 말을 하는 얀순이의 뒤로 반 친구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도움을 청하는 눈빛을 보내도 돌아오는 것은 외면 뿐.


"눈 돌아가지? 우리 얀붕이, 내가 그렇게 무서웠어요?"


어느새 쉬는 시간도 끝나 선생님이 들어왔음에도 멈추지 않는 그녀의 괴롭힘.

세상이 온통 어둠으로 덥힌 느낌이었다.


"야, 우냐? 빨리 안 닦아?"


그래서 였을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흘렀나보다.

내 두눈에서 떨어지는 물줄기에 얀순이도 당황했는지 언성이 높아졌고, 그제야 선생님도 눈치를 채고 내게로 오고 있었다.


교실 한복판에서 울어버린 것과 내게로 온 교실의 관심이 쏠리자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나는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고, 당황한듯한 얀순이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무단으로 조퇴를 해버렸다.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집으로 뛰어가면서 얀순이와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우리는 처음에는 그렇게 나쁜 사이는 아니였다.


막 전학온 얀순이는 주변에서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않았다.

전 학교에서 큰 문제를 일으켰다느니, 집이 인천에서 유명한 조폭이라는 소문이 그녀를 따라다녔다.


그런 그녀는 내 옆자리에 배정받았고, 당연하다는 듯이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소심한 나 역시 그녀에게서 최대한 떨어지려고 노력했고.


그리고 어느 비가 많이 내리던 날, 육교 밑에서 얀순이를 만났다.

야자를 끝내고 쏟아지는 비를 피해 우산을 최대한 넓게 피고 가던 중, 육교 밑에서 남성들에게 둘러쌓인 그녀를 보았다.


그녀의 눈은 공허했고, 나는 그녀의 눈에서 나를 볼 수 있었다.

아무대도 어울리지 못하고 홀로 주변을 차단했던 나를.


그래서였을까.

나는 우산을 앞으로 하고 접었다 피면서 우산 위에 놓인 물방울을 남자들에게 쏘았다.


펑! 하며 내질러진 물줄기들은 남자들을 당황하게 하기에는 충분했고, 마찬가지로 놀란 얀순이의 손을 잡고 냅다 뛰었다.

목적지도 없이, 쏟아지는 비를 흠뻑 맞으면서.


그때 아마 얀순이는 나를 보며 큰 소리로 웃었다고 생각한다.

세찬 빗소리에 가려 들리지 않았지만, 그녀의 얼굴은 미소로 가득 찼었으니까.

나를 괴롭히는 비릿한 미소가 아닌 순수한 기쁨의 미소로.


"이야~ 오랜만에 한참 웃었네. 그 꼰대들 당황한 꼬라지하고는. 내가 설마 너같은 초등학생의 도움을 받을 줄이야. 참, 살다가도 모를일이야?"


한참을 뛰고 나서 도착한 어느 낡은 상가의 창고 안에서 그녀는 내게 처음으로 말을 했다.


나이를 착각한건 분했지만.


"... 초등학생 아니거든? 너랑 같은 반. 옆자리. 동갑!"


"...허어..?"


아무리 내가 외견으로 오해를 많이 산다 해도, 같은 반의 여자애한테까지 이런 소리를 들어야한다니!


"그래서, 자칭 같은 반 동갑씨가 날 구해준 이유는?"


약간의 오해가 풀린 뒤, 얀순이는 내게 질문을 던졌다.

딱히 생각한 적 없던 질문을.


"... 충동?"


역시나 이 대답은 의외였던걸까, 얀순이는 그녀의 붉은빛이 감도는 동공을 확장시켰고, 이내 다시 한번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이번엔 내가 들리도록.


"크흐흡! 그래그래. 이런 인연도 있는거지. 고마웠어."


후련하다는듯 내 어깨를 툭툭 쳐주고는 뒤도는 얀순이에게 나는 지금 생각하면 가장 큰 후회인 말을 그녀에게 하였다.


"학교."


"응? 뭐라고? 작아서 잘 안들려."


"학교 나오라고!"


"어?"


"치,친구가 없어서 안나오는거면 내가 친구가 돼줄게!"


멍청하게도.


그녀가 학교에 안나오는 이유를 단순히 나처럼 낯가림이 심하다고 생각해서는.

그녀를 처음 봤을 때 눈동자를 보며 느꼈던 감정 하나로 판단해서 나는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친구?"


"그,그래..."


"어째 목소리가 작아지는거 같은데?"


"내가 생각해도 부끄러워서..."


"크큭... 진짜, 너 때문에 몇 번을 웃는거냐. 그래, 좋아! 친구! 좋은 어감이네. 친구하자, 우리."


학교에서 처음 사귄 친구.

항상 남다른 외형으로 쉽게 다가가지 못했던 나에게 있어 엄청나게 큰 의미였다.


"응! 나는 너의, 너는 나의 첫번째 친구야!"


그래서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큰 미소와 함께 그녀의 두 손을 잡고 외쳤다.


차디찬 비를 많이 맞아서일까, 계속 달려 숨이 찼던 걸까.

유난히 빨갛던 그녀의 불과 흔들리는 그녀의 눈동자가 보였다.


"너는 신경 안써..?"


"응? 뭐를?"


그녀는 내 손을 푸르고 나를 약간 밀쳐낸 후, 내게 작게 읆조렸다.


"그... 소문이라던가.. 내가 뭐 어떻다라는거나..."


"모르잖아."


"응?"


"과거야 어쨋든 나한테 심한짓을 할 것도 아니잖아? 아니면, 소문이 진짜라는거야?"


"무,물론 전부 아니지만..."


멍청하게도.

이 말을 믿은 내가 바보지.

소문은 진짜로 전부 거짓이였지만, 전자는 지금 절실히 어기는 중이다.


"그리고 우린 친구잖아. 친구는 서로의 아픔을 감싸주는거야. 힘들때도, 아플때도 가장 옆에 있어주면서 의지가 되는 존재!"


한번도 친구를 사귄 적이 없기에 나올 수 있던 환상같은 말.

하면 안되는 상대에게 지껄인 바보같은 말.


"그렇지... 항상..."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으.. 젖어버린거 엄마한테 뭐라고 변명하지.. 그럼 얀순아! 내일 학교에서 보자!"


"내,내일.."


그녀에게 손을 흔들며 그날 우리의 첫 만남은 끝이났고, 약속대로 그 다음날부터 얀순이는 등교를 시작했다.

동류인줄 알고 그녀에게 접근한 다른 양아치들을 단숨에 전원 제압한 채로.


"얀붕아!"


그리고 나는...


교실 뒤로 내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드는 그녀를 피해 달아났다.

그녀의 다른 손에는 평소에 나를 괴롭혔던 다른 일진의 머리가 잡혀있었기에.


그날 이후, 나는 학교에 군림하게 된 얀순이의 전속 따까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