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보다 차가 조금 느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일지도 모른다. 동료들이 딸의 생일선물이라고 갔다주라며 차 안에 던져놓은 물건들이 한두개가 아니니까. 조금 더 무거워서, 차가 느려졌을수도.
연말에 퇴근길이였다.
눈이 내리고, 거리는 반짝이고.
이럴 때마다, 자꾸 아내 생각이 나고는 했다.
나쁜 사람 같으니라고. 먼저 가버리는게 어디있어. 아직도 잊지를 못하고 있는데. 아마 평생 잊지 못하지 않을까.
영영, 계속.
생각이 감정에 영향을 준 것인지 눈물이 조금 나올 것 같아 휴지를 찾으려 할 때에, 큰 소리도 아닌데 늘 주의를 잡아 끄는 핸드폰의 미세한 진동소리가 들려왔다. 매일같이, 회사에서 퇴근할 때인 이 시간에 나에게 전화를 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딸아이였다.
[어디쯤이야?]
"거의 다 왔어. 광화문 광장 지나는 중."
[차 많이 막히겠다.]
"금방 갈거야."
[응. 빨리 와.]
"아... 뭐. 그리고... 생일 축하해."
[킥킥, 그런거 말하는걸 뭐 그렇게 부끄러워해. 그럴때 우리 아뿌지 넘 귀여워~]
"...시끄러워. 됐어. 회사 애들이 너 생일이라고 선물 준것들 있는데, 안줄거야. 내가 다 어디 가져다 버려야지."
[에이~ 그러면 안돼요! 물론 나는 우리 아빠만 오면 다 괜찮아!]
너무 응석받이로 키운 것은 아닌지. 애교있는 것은 좋지만, 아버지로서의 위엄 같은 것도 중요한데. 가끔은 나를 아버지가 아니라 그냥 친한 친구로 여기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긴 정체구간을 지나서 청운동 쪽으로 진입하면, 상대적으로 훨씬 정체가 덜한 구간이 찾아온다. 골목과 큰길을 적당하게 굽이굽이 지나 들어가면, 나름 열심히 산 인생의 증거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서울 중심부에 위치한 우리집이 나타난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 마당을 지나 현관을 걸어갈 때, 퇴근을 하면서 느끼는 울적한 기분들을 털어내고, 나의 인생과 존재에 대한 가치를 느낌으로서 약간의 위로를 받는다는 생각을 했다. 의미가 없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으로.
양손에 바리바리 싸든 딸아이의 선물들을 들고 집에 들어가니, 교복을 입은 딸아이가 바로 뛰어 안겨왔다.
"아빠 다녀오셨어요!"
"어 그래... 일단 좀 떨어지렴. 움직일 수가 없잖아."
"아, 이거 내 선물들이야? 음~~ 다 누가 보낸건지 알 것 같네. 이거 L패드랑 Lac북은 민현이 오빠랑 시윤 누나가 같이 보내준거지?"
"응."
"헤헤... 감사하다고 전화드려야겠다. 이따 같이 케이크에 초 올리고 영상통화 걸면 되겠다."
딸은 내가 들고 있던 것들을 거실로 가져가서는 하나씩 열어보다가, 대충 몇가지를 열어보고는 탁자 위에 정리를 했다. 남은 것들은 나중에 까보겠다면서.
"일단 씻고 와요! 난 아까 씻었으니까, 아빠만 샤워하면 끝이야."
"씻었는데 왜 교복은 아직도 입고있어?"
"이건 그냥 내 마지막 미성년 생일이니까 입고있는거야. 기념 같은걸로 이따 아빠랑 사진도 찍어야지."
"...뭐, 그래."
안그래도 교복을 입고 있길래 아직 안씻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있었다. 평소에는 밖에서 들어오면 손씻기부터 샤워까지 절대 빼먹지 않는 아이였으니까.
겨울이라 땀이 나진 않았지만, 바깥에서 생활하며 몸에 생겨난 노폐물을 깔끔하게 씻어내며 상쾌함을 느끼고 밖으로 나오니, 식탁 위에 촛불을 잘 셋팅해놓고 방 불을 꺼놓은 딸아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좋은 집에서 살 수 있게, 열심히 살아오게 만든 동기를 부여해 준 아내에 대한 생각. 내가 노력한다고 했지만 결국 엄마의 부재에 대해서 느꼈을 딸에 대한 미안함. 그럼에도 이렇게 예쁘게, 착하게 자라준 딸에 대한 고마움까지.
시야가 조금 흐려졌다. 방 불이 꺼져있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무엇일까.
"아빠 왜 울고그래."
"아니 그냥... 고마워서.."
"...헤헤. 맞아. 아빠는 좀 고마워 해야해. 내가 이렇게 엄마 닮아서 예쁜 얼굴이랑 좋은 몸매 가지고 자랐잖아. ...일단 생일축하 노래나 불러줘!"
아내의 젊은 시절을 똑 닮아서, 정말 예쁘게 자란 딸아이의 모습을 보며, 조금 눈물을 흘리면서 노래를 불렀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도 언젠가는 내 곁에서 떠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어찌 이리 가슴이 아플 수 있는지. 딸아이도 이제 남자친구도 사귀고, 몇년 뒤에는 결혼하겠다며 상대를 데려오겠지.
"사랑하는 은하의... 생일 축하 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케이크 쪽으로 몸을 들이대고는, 숨을 한껏 들이마쉬고 강하게 내뱉은 딸아이는 모든 초를 한번에 끄는 것에 성공했다는 것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당당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귀엽기 짝이 없는 모습이였다.
"은하도 이제 성인이구나."
"응. 나도 이제 밤에 게임도 할 수 있고, 담배나 술도 살 수 있고, 그리고 또..."
"...담배는 하지 마. 별로 안좋아."
"음... 아빠는 담배 피는 여자는 별로 안좋아하지."
케이크를 한조각씩 잘라내고, 내 접시로 한조각을 옮겨담아준 딸은 자기도 한조각 잘라서는 포크로 그것을 먹기 시작했다.
초코 케이크의 맛이 너무나 달달했다.
"아, 그럼 아빠. 나도 술 알려줘. 성인이잖아."
"왠 술?"
"그냥~ 성인이니까~ 원래 술은 어른한테 배우는 거라고 하니까~ 나는 우리 아빠 제일 사랑하니까~"
술을 마시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았다. 업무상으로 만나는 사람과의 술자리를 갖는 것을 피하거나 싫어하는 타입도 아니고. 술에 취하는 것과는 별개로 술을 꽤 좋아했기에.
딸아이와 술을 마시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조금이지만 궁금함도 있었다. 다행히 내일은 출근을 하지 않는 토요일이였다.
조금은 마셔도 괜찮겠지.
"...그래. 조금만 마시자. 주량 측정만 하는거야. 알았지?"
"에이, 그건 나도 알지."
"그런 의미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너같이 예쁜 애들은 술 마시는거 조심해야 하니까 하는 얘기야. 알았어? 남자는 전부 짐승이니까, 조심해."
"그럼 아빠도 짐승이야?"
"...그냥 빗대서 말한거야. 적당히 잘 알아들어."
냉장고를 열어 소주를 몇병 꺼냈다. 차가운 것이 마실 때 즐거울 것 같았다.
딸아이가 소주잔을 셋팅해 놓았길래, 일단 한병을 열었다.
"잔 들어봐."
"응."
"아니, 그렇게 말고. 두손으로. 어른이나... 아니면 나이 좀 많은사람한테 받을때는 두손으로 받는거야."
사소한 걱정 같은 것이였다.
나 자신의 성향도 그러했고, 딸아이의 교육을 그런 식으로 한 적은 없다지만, 만약에 술자리에서 실수 같은 것을 하면 불이익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술을 받는 것과 따르는 것, 마시는 자세에 이르기까지 몇잔을 들이키고, 어느덧 살짝 취기가 올라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딸아이는 아직도 취기가 하나도 없이 팔팔해 보이는 모습에, 역시 나이라는 것은 속일 수 없나 싶기도 했다.
"이거 막잔으로 하고... 끝내자. 아빠 잠깐 화장실 갔다올께."
"응."
의자에서 일어나서 화장실을 향하는데, 걸음걸이가 살짝 어긋난 취객 특유의 모습을 한다는 것이 나이먹은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살짝 서운했다. 그래도 아직 38살인데. 젊었을 때는 6병도 끄떡 없었건만...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고, 다시 의자에 앉았다. 딸아이가 잔을 들고 눈을 반짝이며 기다리고 있길래, 피식 웃으며 건배를 하고는 잔을 들이켰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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