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버려진 아이인가?"


비가 내리는 날, 하늘이 내 눈처럼 시꺼만 날, 누군가가 길바닥에 버려진 나를 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이미 살 기력조차 가지지 못한 채, 입을 움직일 생각도 못 한채, 나는 눈동자만 돌려서 누군가, 후에 내가 얀붕 주인님이라고 부를 남자를 보았고, 남자는 무표정으로, 누군가가 씌워주는 우산의 아래서, 나를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난 걸까, 남자는 흥미를 잃었다는 듯이 뒤를 돌았고, 나는 또 버려지는 건가 생각을 했다.


"우리네 고아원에 넣어놔라. 앞마당이 더러워서 쓰겠나."


차갑게 말해진 그 말이, 얀붕 주인님의 자애의 말이라고 아는 것은,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내 부모는 쓰레기였다.

자식이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 패고, 따라도 자신의 기분이 좋지 않으면 패고, 결국엔 나를 창관에 팔아먹으려다가, 내가 발악을 하니까 그냥 길거리에 버려버렸다.

그 것이, 내 일생을 바치게 될 주인님과 만나게 되는 계기가 되다니, 지금와서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지만, 역시 감사할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얀순, 할 일은 다 했습니까?"

"네, 원장 선생님."

"그렇습니까, 그럼 준비하고 면접을 보러 가도록 하세요. 기왕이면 이대로 졸업해서 다신 돌아오지 마세요."

"...격려 감사합니다."


내가 얀붕님에 의해서 맡겨진 고아원은, 얀붕님이 운영하시는 곳 중 하나로, 얀붕님의 영지에 필요한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기관이기도 하다.

졸업은 얀붕님에 의해서 쓸모가 인정받아서, 어디론가 배속되는 것을 의미하고, 원장 선생님은 말투는 좀 그렇지만 내가 가기로 한 길인 얀붕님의 저택의 메이드가 되는 것을 응원해주신 것이다.

그렇게 나는 고아원을 떠나 면접 장소인 얀붕님의 저택으로 향했고, 고령의 집사가, 젊은 집사를 데리고 다니면서 나를 면접 장소로 안내했다.


"왔는가."


그 곳에선 얀붕님은 소파에 편안하게 앉은 채로 있으셨고, 나는 즉시 그 동안 예절 수업으로 배웠던 메이드의 인사를 행했다.


"...뭐, 1차는 합격이라고 해야겠군. 얀순, 너에게 묻겠다. 너는 왜 내 저택의 메이드가 되고 싶어하는거지?"

"...저는,"


예전 기억들이 떠오르고, 물거품처럼 사라져간다. 그래도, 단 하나 사라지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얀붕님이 나를 줍기로 했던 결정, 가끔씩 고아원에 얀붕님이 오셔서 모두를 차가운 말로 격려해주셨던 것, 사소한 일이었지만 얀붕님에게서 칭찬을 들었던 것, 모든 따뜻한 기억에는 얀붕님이 계셨다.


"저는, 얀붕님에게 주워지고 나서, 행복했습니다.  그래서, 얀붕님에게 무언가라도 보답하고 싶어서, 얀붕님을 섬길 수 있는 메이드가 되고 싶었습니다."

"나에게로의 보답이라곤 해도, 여러가지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네 경우에는 '뒷쪽'의 적성이 높았을텐데?"

"그건... 메이드로써라면 얀붕님을 겉에서 호위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러니 뒷쪽보다는, 메이드가 되고 싶었습니다."

"...뭐, 좋다. 얀진."

"부르셨습니까, 주인님."


메이드 한 분이 내 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 메이드는 나를 위아래로 훑더니, 다시 방 밖으로 나갔다.


"얀붕님...?"

"좀 있으면 얀진이 다시 오겠지. 그 녀석에게 메이드복을 받고 내일부터 일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그 메이드복은 어느정도 개조해도 상관없다."

"아,알겠습니다!"


이렇게 나는 고아원을 졸업하고, 얀붕님 저택의 메이드가 되었다.




그 다음날부터는 계속해서 바빴다. 교육으로 얀붕님이 꽤 높은 직위의 분이시라는 것은 알지만, 높으신 분은 그만큼 한가할 거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얀붕님의 개인 시간이라고 할 만한 것은 매우 적었다.

주로 수많은 서류의 검토와 승인, 그런 서류들이 없으면, 영지 내에 있는 고아원과 교육시설들을 시찰하면서 유능한 인재가 있는지 확인하시기도 하고, 그조차 다하셨으면 영내 기사단의 연습에 끼어들어서 단련을 하셨다.

그런 와중에도 시계를 보시다가, 나에게 말씀하신다.


"얀순, 이걸로 8시간 가까이 일했을터니, 숙사로 돌아가도 좋다."

"아뇨... 주인님을 두고 떠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에도 시간이 들고, 대체하기도 곤란한 물품이다. 피로가 너무 쌓이기 전에 쉬는 게 좋을 터."

"주인님과 계속 있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부디 제 시중을 받아주시지 않겠습니까?"

"...일개 메이드 주제에 부탁이 과하군."


그렇게 말하면서도 얀붕님은 포기하셨다는 듯이 내가 있는 것에 대해 뭐라하진 않으시고, 단지 피로에 좋다면서 단 것을 가끔씩 주시기 시작하셨다.




겨울의 막바지, 평소보다 얀붕님은 몇 배나 되는 서류를 처리하시고 계셨고, 나는 그런 얀붕님을 위하여 얀붕님이 좋아하시는 커피에 설탕을 듬뿍 넣은 것을 가지고 왔다.

그러면서 서류를 살짝 보게되었는데...


"복학...?"

"응? 아아, 단 커피 고맙군. 머리에 당분이 필요하던 참이었다."


그리고서는 설탕물... 이 아닌 커피를 마시면서 얀붕님은 학교 복학에 관한 서류를 집어들어서 내게 보여줬다.


"학교 복학 서류입니까... 어째서 이러한 것을?"

"원래 학교에 다니다 전 당주의 급환으로 내가 이자리에 앉게 된 것이니, 정식적으로 졸업을 못했으니까 말이지. 여기에 좋든 싫든 후계자를 만들려면 사교계에도 다시 나서야 될테고 일만 점점 늘어나는군."

"그렇...습니까."


이미 얀붕님과 내가 한 여름밤의 꿈은 꿀 수 있더라도 이어질 일이 없다고 마음짓긴 했어도, 다른 여성과의 아이를 낳는다는 발언엔, 심장이 옥죄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학교란 것은 딱히 의무인 것도, 뭣도 아니라고 하셨다. 다만, 학교의 어떤 분야를 연구해서 졸업을 하면 그 분야에 대해서 전문가로 인정받기에, 그 '인정'때문에 학교를 복학한다고 하신 것이었다.

주로 그런 곳은 귀족의 자제분들이 다니기에 시종을 데리고 와도 되었고, 그 걸로 인해서, 나와 처음 이 저택에 왔을 때 봤던 젊은 집사가 시종으로 뽑혔다.


"주,주,주,주인님. 저로썬 짐이 무겁습니다아아"

"얀돌, 어차피 네 녀석정도의 실수는 내가 커버할 수 있는 범위다. 정 불안하면 이 경험을 밑바탕으로 해서 얀성의 확실한 후계자가 되어라."

"주인님, 정보수집은 필요할까요?"

"그래주면 좋겠군. 하지만 네가 단독으로 움직이다가 다른 귀족놈들에게 눈이 걸쳐지면 곤란하니, 되도록 내 주변을 떠나지 말거라."


...비록 그 말이, 사랑하는 사람이여서가 아닌, 쓸만한 인재였기에 나온 소리였더라도, 나는 기뻤다.




계절이 몇 번 지나고, 주인님께 혼담이 오갔다.

...이뤄질 뻔 했으나, 상대쪽에서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서 파혼이 되었다.


"주인님, 제가 그 창년과 벌레의 목을 가져오겠습니다."

"아서라, 이미 그에 대한 보상은 그 가문에게서 받았다. 이 이상 그 곳에 신경 쓸 필요는 없지."

"하오나..."

"이 이상 얘기는 꺼내지 말아줬으면 하구나."

"...알겠습니다.


여전히 주인님의 표정은 무표정이었지만, 어쩐지 씁쓸해보이셨다.




"이제 나도 30대인가."


주인님께서 졸업 후, 맞으신 생일, 주인님은 우리가 연 생일 파티가 끝난 뒤, 밤바람을 쐬며 그렇게 중얼거리셨다.

30대면 슬슬 후계자 육성이 어느정도 되어있어야할 터이지만, 주인님께선 아직 그러한 후계자가 없으시기에 여러모로 생각이 많으신거라 생각된다.


"...얀순."

"네, 주인님."


주인님께선 시중을 들고 있는 나를 바라보셨다. 잠깐의 정적 후, 평소와 같은 무감정한 어조로 나에게 말을 하셨다.


"...내 아이를 배어보겠느냐?"

"네?"


생각지도 못한 소리가 나와서 당황했다.

머릿속으로 받아들이기 시간이 걸렸고, 그 것이 좋지 않았는지, 주인님께서는 다시 나에게서 고개를 돌려서 바깥을 보며, '됐다. 잊어라'라고만 말하셨다.


그 날밤, 나는 주인님을 찾아갔다.


"무슨 일 있더냐?"

"주인님, 제가 주인님의 아이를 배겠습니다."

"...밤바람을 쐬던 때의 일이라면 됐다. 한 순간의 기분의 미혹일 뿐이니, 네가 희생할 필욘 없다."

"희생이 아닙니다!"


자신이 그렇게 큰 소리를 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소리를 쳐버렸다.

평소 내가 소리치는 것을 보지 못했던 주인님은 드물게 놀란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뛰는 가슴에 손을 얹고, 주인님을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저는... 저는, 주인님을 사랑합니다. 주인님이 저를 길거리에서 주웠을 때부터, 주인님은 제 사는 이유였습니다. 비록 제 신분이 미천하여, 주인님의 부인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해서 단념했으나, 주인님께서 아이를 내려주신다면, 그러기만 한다면, 저는 주인님의 아이를 키우고 싶습니다. 그러니, 그러니 저를 품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정식으로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 여름밤의 꿈처럼, 끝나버린다고 하더라도, 주인님이 저에게 사랑을 품지 않으시더라도, 저는 주인님의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사랑...이라..."


갑작스럽게 나는 밀쳐져서 벽에 부딪쳤다.

그리고 나서 내 얼굴 옆의 벽을 강하게 치면서, 얀붕 주인님은 나에게 말하였다.


"나는 그 사랑에 보답할 수가 없다."

"...압니다."

"만약 정실이 생긴다면 나는 너를 잘라내야 할 것이다."

"......압니다."

"그래도 이 순간만큼은, 신분을 잊고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해도 되겠느냐?"

"아..."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뻔했다.




...그리고 몇 년후, 얀붕 주인님은 드디어 혼례를 치루셨다.

부인은 젊고 아름다우신 분, 나와는 비교도 안될 분.

상관없다. 이게 얀붕 주인님을 위한 것이라면.


"...엄마?"

"응 왜? 내 딸?"

"괜찮아?"


사랑하는 주인님에게서 내려받은 딸이 나에게 그렇게 물어본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나는 원래부터 그런 주인님을 사랑했던 것이니까. 아직도 사랑하고 있으니까.

그 날의 일은 한 여름밤의 꿈으로, 이 아이는 기적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응, 엄마는 괜찮아. 앞으로 할 일도 있으니까 괜찮아."


주인님을 영원히 지킬 저주를, 나와 너에게 새겨야하니까 괜찮아.

그렇게 어느 공작가에서의 이야기는 끝이 났다.




2.


"...아...?"


풍경이 점차 선명해진다.

손은... 제대로 움직인다. 몸도 불편함은 없다.

내 이름은... 얀순. 주인님과 있었던 때랑 똑같은 이름이라니, 어느 의미로는 운명을 느꼈다.

나는 뒷쪽, '저주'로 나를 주인님의 혼과 엮었기에, 주인님이 태어나시면 따라서 전생을 해버리게 되는 것이었다.


"...환경이 좋지 않네요."


허나 생은 시작부터 좋지 않았다. 사람이 썩어가는 냄새, ...나의, '얀순'의 부모였던 것들이다.

기억을 뒤져보니, 어제 친구네 집에 놀러갔다가 변을 피해버렸던 얀순, 내가 돌아와서 보고 졸도했다가 덤으로 나까지 다시 깨어난 것이겠지.

뭐 상관없다. 일단 아이인 상태라 일반상식이 의심스럽지만, 전생에서 경찰을 부르면 된다는 것을 알았으니 부르면 되겠지.




"이제 어떻게 해야할까."


해가 져서 붉게 물드는 하늘 속, 나는 놀이터에서 향후의 계획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보육원에 맡겨지겠지. 하지만, 보육원이라는 것은 규칙적인 생활을 대게 강조하는 곳이다.

내가 깨어난 이상 얀붕 주인님도 어딘가에 있을 테니까 찾아다녀야할텐데...


"응? 너 누구야?"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 어린, 나와 비슷한 나이의 변성기가 오기전의 목소리. 절대로 전생의 얀붕 주인님들과 닮지 않았다.

아 그래도, 이 영혼에 새긴 저주는, 얀붕 주인님이라고 나한테 말하고 있었다.


"곧 밤이니까 집에 돌아가는게 좋지 않아? 엄마가 밤엔 무서운 괴물이 나온댔어."


아아, 정정한다. 이번 생은 시작부터 안 좋은게 아니었다.

시작부터 매우 좋았다.




얀붕 주인님의 이번 이름은 얀붕이었다. 얀붕 주인님도 같은 이름이라니 참으로 운명이 느껴진다.

얀붕 주인님은 어딘가 부잣집의 아들로 태어났나보다. 내 이야기를 듣더니 나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서 어머님께 불쌍하다고 데리고 있으면 안되냐고 하다가, 이래저래해서 가사도우미 견습 같은 식으로 안착이 되었다.

응, 청소만큼은 얀붕 주인님에게 거둬지려고 계속 노력했던거니까 아직도 현역이다.

학교도 얀붕 주인님이 있는 곳으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아직 남은 '얀순'의 잔재가 친구들과 떨어지는 것을 아쉽다고 느끼지만, 괜찮다. 내 삶의 의미는 애초부터 얀붕 주인님이니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시 세월은 흘러 얀붕 주인님과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얀붕 주인님, 오늘은 어떻게 할까요?"

"...계속 말하지만 그 주인님 때도 되지 않아?"

"학교에서는, 하지만 학교 이외에서는 얀붕님은 제 주인님이신걸요."

"정말 고집스럽네..."

"칭찬 감사합니다."

"칭찬 아니라니깐."


그렇게 말하면서 한숨을 쉬면서 얀붕 주인님은 걸어서 간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주인님께서 착각받지 않도록 조금 거리를 둬서 걸어야겠지.


"...그리고 다시 말하는 거지만, 그냥 같이 가도 되지 않아? 어차피 같은 집에서 나오는 사이인데."

"괜한 착각을 받으면 곤란하니까요."

"그,그래..."


저같은 벌레 때문에 얀붕 주인님에게 짝이 있다고 착각해서 좋은 연분을 맺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하니까요.

...전생에는 그런 일도 있어서 정말로 저에게 있어서는 행복한 상황이었지만, 얀붕 주인님께서는 저따위보다 더 좋은 사람이 있을테니까, 저는 되도록 얀붕 주인님과 엮여보이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마다, 가슴은 미어지지만요.




"얀순아 들었어? 얀붕이가 또 고백받았데."

"...그렇습니까."


친구가 얀붕 주인님이 고백받은 이야기를 가져왔습니다.

수다스러운 친구라서 살짝 꺼려지긴하지만, 소문만큼은 잘 들고 와서 정보수집에는 좋은 친구. ...그래서 과연 고백해온 여자는 누구일까요.


"고백한건 3-2의 얀희 언니라고 하네."

"그렇습니까."


...그럼 이번 점심시간은 얀희라는 자에 대해서 조사해봐야겠군요.

점심시간, 저는 빠르게 식사를 처리하고, 제가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정보원들과 연락을 취했습니다.

얀희라는 사람의 가정사정, 취향, 성격 등등 여러가지. 얀붕 주인님의 신부가 될 분이 아니라, 단순한 벌레였군요.


"그럼 벌을 받아야겠죠."


그렇게 말하면서 저는 지푸라기 인형에 못을 박았습니다.




다시 장소는 바뀌어서 교실 안, 6교시가 지날 즈음에 갑자기 구급차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저주는 제대로 발동되었나보군요.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얀희는 교실 밖으로 나가서 쉬는 시간이 끝나기 전에 교실로 돌아왔습니다. 자, 과연, 얀희라는 벌레는 어떤 식으로 그 몸을 망쳤을까요? 기대가 됩니다.


"나 저주받고 있는 걸까?"

"...네?"


집에 돌아가는 길, 얀붕 주인님은 드물게 나와 같이 걷자고 밀어붙이셔서 어쩔 수 없이... 네, 상당히 기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같이 걷게 되었습니다.


"그... 얀희 누나 알아?"

"...잘 모르지만 친구가 얀붕 주인님께 고백했다고 합니다."

"그 누나가 6교시 될 즈음에 갑자기 쓰러졌다고 하더라고."

"그렇습니까?"

"응, 근데 예전에도 나한테 고백했던 애 있잖아?"

"...아아, 그런 일도 있었죠."

"나한테 흥미 진짜 없구나..."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만..."


구충해버린 벌레들은 신경쓰지 않기로 했기에.


"걔도 어딘가에 부딪쳐서 며칠간 의식불명이 되고, 그 전에도 계단에서 넘어져서 다리가 골절되고... 진짜 저주받고 있는 건 아닐까?"

"얀붕 주인님에 한해 그런 일은 없습니다."


항상 악한 것을 멀리하는 의식을 하고 있기에.


"뭐, 네가 그렇게 단언해준다면 안심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나쁜 소문이 나지 않을까 걱정이네."

"...다른 여성에게 고백받지 못할까봐 걱정이신가요?"

"...아니 난... ...아니 됐다."


그렇게 얀붕 주인님은 말을 아끼셨습니다.

...저주말고 다른 방법으로 벌레들을 제거할 방법을 생각해봐야할까요.


"아... 찾았다."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얀붕 주인님을 향한 목소리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개를 돌아보고...


"...설마 얀진이?"

"...에? 엄마?"


제일 처음 삶의 딸이었던 얀진이를 다시금 만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럼 당신도 똑같이 '얀진'인건가요?"

"응, 엄마. 엄마도 처음이랑 똑같이 '얀순'이라니, 운명을 느끼네."


제 손님이라는 것으로 저택에 주어진 제 사실에 데려온 얀진이와 오랜만의 회포를 풀었습니다.


"그나저나 엄마 덕에 이렇게 전생을 하는 거였구나. 엄마 대단하지 않아?"

"그러게요. 혹시나 제가 변심할까봐 새긴 저주였지만 생각 이상으로 잘 작동되어서 기쁩니다."

"어? 그럼 나에게도 새겼던 이유는 뭐야?"

"제 딸이니까 얀붕 주인님께 봉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잖아요?"

"언젯적 세습제야? 아니, 봉사할거지만."


그렇게 말하면서 얀진이는 편하게 웃으면서 나한테 말했다.


"그래서 엄마가 지금 얀붕 주인님의 애인?"

"......그럴, 리가, 없잖아요."

"엄마 이렇게 예쁘게 전생했는데 얀붕 주인님이 한 번도 손 안대셨어? 설마 이번 생에는 고자인건 아니지?"

"주인님에게 폭언이 심해요."

"아니, 진짜. 아니면 혹시라도 엄마가 얀붕 주인님에게 철벽치기라도 했어?"

"그런 적 없습니다. 단지, 제 주제를 알기에 되도록 얀붕 주인님의 그림자로..."

"엄마, 지금은 신분제 사회가 아니야. 엄마라도 얀붕 주인님의 부인이 될 수 있다고."

"...하지만 저는."

"네네, 주워졌던 은혜를 갚기 위해서 였죠? 그거 엄마 몸을 평생 바치는 걸로 안돼?"

"...분명 저는 딸을 이렇게 천박하게 키운 기억이 없는데요..."

"그거야 엄마 없는 곳에서 전생을 많이 해봤고 나 나름대로 얀붕 주인님과 만났었으니까. 성격도 바뀌지. 그럼 얀붕 주인님의 애인은 지금 있어?"

"...있으면 어떻게 할거죠?"

"그거야 당연하지, 제거하고 내가 그 자리 차지하게."


"...하?"


"아니 잠깐 엄마 화내지 말아봐, 왜 그런건데?! 엄마가 애인인 것도 아니라며?!"

"당신이, 얀붕 주인님을, 행복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나 나름대로 전생하면서 내린 결론이 결국은 얀붕 주인님과 결혼해서 신부가 되면서 봉사하는거라고, 실제로 얀붕 주인님 눈 감으실때 주변에서 매우 슬퍼할 정도로 좋은 인생 살다가셨고!"

"...그렇습니까."

"그러니까 말이야, 응? 엄마도 얀붕 주인님이랑 사귀어 버리자? 응?"

"...결국 거기로 돌아오는 건가요."

"아니, 딴 여자는 싫은데 엄마라면 같이 얀붕 주인님에게 봉사할 거니까, 괜찮지 않을까해서. 거기다 내 엄마였고."

"자연스럽게 자신도 애인이 된다는 말투..."

"응? 어차피 봉사하려면 가까이 있어야하는 거잖아? 그게 애인과 부인이라는 형태로 있는 거니까 괜찮잖아?"

"그래도..."

"그리고, 벌레를 제거할꺼면 같이 있는게 더 낫지 않아?"

"..."

"제일 처음 생에서 얀붕 주인님에게 달라붙으려는 벌레들을 기억하잖아. 그 때, 얀붕 주인님 부인이 제대로 했다면 더 나았을 거라 생각하지 않아?"

"...얀진아."

"화내도 사실이잖아. 엄마가 그렇게 제거하러 움직이지 않았으면 그 망할 부인 때문에 집안이 기울 수도 있었던거. 그러니까 우리가 부인하고 불륜상대가 되어서 얀붕 주인님을 지키면 되잖아?"

"..."


솔직하게 끌리는 마음이 없다고하면 거짓말이 되겠죠. 하지만, 하지만 저는...


"...엄마는 참 고집이 쌔구나. 그럼 엄마, 나는 어때?"

"...무엇이?"

"얀붕 주인님의 결혼 상대로."

"......하아."


연락을 취해서 얀진이의 조사결과를 내달라고 합니다. 그 동안에도 싱글벙글 웃고 있는 얀진이.

...조사결과, 적합.


"...적합하네요."

"그럼 내가, 얀붕 주인님을 유혹해도 되겠지?"

"......그러도록 하세요."

"...엄마는 고집불통."


그런 말을 남기고 얀진이는 내 방을 떠난 것이었다.




그로부터 한 달, 얀진이로부터 직접적인 움직임이 없었다 싶더니만, 저희 고등학교로 전학해왔습니다.

...저나 얀붕 주인님과 똑같은 고2라니, 정말, 운명의 장난 같군요.


"얀순아."

"얀희야 왜?"

"얀진이라는 전학생이 얀붕이한테 데이트 신청했다고 해."

"...그게 왜?"

"응? 알아두라고."


친구, 얀희가 그렇게만 말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런가요. 그 아이가 데이트를...

잘 되길 빌어야하는 것이겠죠.




"거절당했다!"

"갑자기 점심 먹는데 여기로 와서 무슨 짓입니까."

"야,얀순아, 너 얀진이랑 아는 사이였어?"

"응? 나랑 얀순언니? 옛날에 아는 사이!"

"잠깐 안 봤다고 이렇게 경박한 아이로 자랄 줄이야..."

"빠를 수록 쌓을 수 있는 추억은 많아지니까!"

"하아..."

"...그, 그래."


얀희가 뭔가 당황하는 얼굴이네요. ...무슨 일로?


"얀순 언니는 사랑받고 있구나."

"...갑자기 무슨 소린가요."


그리고 엄마가 아니라 언니라고 불리니까 뭔가 엄청 부끄러우니 그냥 평범하게 불러요.


"얀붕이, 얀순 언니가 있다고 거절했거든."

"......?"

"아니, 그렇게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어도 사실인데."

"???"

"아니 사실이라니까."

"그,그렇습니까..."

"...그러니까 얀희씨?"

"얀희라고 불러."

"얀희아, 얀순 언니 계속 저랬어?"

"아니 뭐... 그랬지."

"옆에서 보는데 답답했겠네."

"그렇긴 하지."


사람이 고민하고 있는데 옆에서 시끄럽네요 이 둘은.


"뭐, 그래서 얀순 언니 끌여들이는 작정으로 데이트 권유 성공했지만!"

"하?"

"도중에선 난 빠져주려고!"

"하아?"

"이미 약속해버렸으니까 같이 나와줘!"

"이게 진짜."

"아, 아퍼아퍼 맘스터치 그만! 맘스터치 그만!"

"뭐가 맘스터친가요 이 망할 지지배야."

"얀순 언니도 싫은거 아니잖아!"

"그건..."


당연히 싫지야 않죠. 하지만, 전...


"얀순 언니는 자신감이 없는게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 얀희아?"

"너가 내 사이다다"

"둘 다 좀 입 다물어."


그렇게 결국 타의에 의한 데이트가 계획되어버리고 만 것이었습니다.




"어울려?"

"얀붕 주인님은 뭘 입어도 어울립니다."

"또 그 대답... 그리고 그 뭐시냐, 데이트니까 그냥 이름으로 불러."

"그건..."

"데이트니까 말이지, 알겠지? 명령이야. 좀 들어."

"하아... 알겠습니다."

"그럼 같이 갈까?"

"...역시 나가는 것도 따로 하는 것이..."

"쫑알쫑알 대지 말고 가자!"

"앗..."


결국 손목이 끌려서 같이 나가버리게 되었습니다.


"응? 벌써 왔네?"

"아하하... 10분이나 늦었는데 무슨..."

"아니, 얀순 언니 설득한다고 한 30분 정도 늦지 않을까 생각했거든."

"...진짜 어릴 적에 만난 적있니?"

"글~쌔~요~? 그건 그렇고 얀순 언니 아직 데이트 초반부인데 그렇게 부끄러워해도 되겠어요?" 

"누,누가..."

"이거봐요 얀붕 오빠. 얀순 언니는 그냥 강압적으로 밀어야한다니까요. 부끄러운거 버리고."

"그,그래야하나..."

"어떻게 얀붕 주인님은 전생 때마다 성격이 이런지 몰라."

"뭐라고?"

"팍팍 밀어붙이라고요. 그냥 껴안아버려요! 가라! 얀붕오빠!"

"얀붕얀붕!"

"뭐,뭐하는 거에요?!"


얀붕 주인님에게 껴안겨서 발버둥을 칠 수가... 아니 칠 마음도 안나지만... 얀진아, 얀붕 주인님에게 너무 무례한거 아니니...?


"아하하하... 장난식으로 해봤는데... 어...음... 많이 부끄럽네."

"그,그런가요..."

"그럼 일단 그 뭐시냐. 아쿠아리움, 갈까? 얀진이가 티켓 가지고 온거."

"그러죠 ...어라 얀진이는?"

"...어디로 갔지?"


띠링

울리는 핸드폰 소리. 열어보니 메세지가 와있었다.


[좋은 데이트를! 아, 난 벌레 제거하러 빠질테니까 즐기면 돼!]


...벌레 제거는 원래 내 일인데.


"저희끼리만... 놀라고 하네요?"

"그, 그래... 그럼 갈까?"




얀붕 주인님과의 데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다. ...아.


"잠시 저 혼자 딴 데 들렸다가도 될까요?"

"응? 왜?"

"그... 조금 비밀스러운 일이라..."

"...응 알겠어."

"감사합니다 주인님."

"...주인님이 아니라 다른 걸로 불러줬으면 하는데."

"그건 저... 송구스러워서..."


그렇게 얀붕 주인님과 헤어져서 골목 안으로, 그 곳엔 얀진이가 있었다.


"응? 그대로 집에 들어가지 왜?"

"...그렇게 손에 피 묻힌 상태로 내버려둘 수는 없잖아요."

"에이, 엄마. 나도 경험 많아서 이런 거 잘 지워."

"그리고, 저한테 질투하고 있잖아요?"

"...응, 솔직히 그러네."


역시.


"살기를 낸 것도?"

"응... 뭐... 나름 얀붕 주인님과 부부 관계였던 기간이 기니까 말이지. 저 자리엔 내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이 들고 그러더라고."

"...그러면..."

"엄마는 처음에 안 그랬어? 얀붕 주인님과 해서 날 낳았던 거잖아?"

"...어떻게?"

"엄마가 죽고나서 얀붕 주인님이 잘 챙겨줬을때, 힌트를 얻었거든. 그거 관계로 물어봤지."

"...그래. 그럼 알면서도 그랬던거네?"

"결혼? 뭐 다른 몸인데 유전병 같은 것도 없고 상관없지 않잖아? 친 아빠만 아니었다면 제일 처음 생에도 애인 자리 노리는 거였는데."

"너는 진짜..."

"아 그러니까 맘스터치 그만! 엄마가 등짝 때리는거 아프단 말이야!"

"하아... 그럼 매를 버는 행위를 그만하세요."

"그래도 오늘 즐겁지 않았어?"

"그건..."

"엄마, 엄마 꼴을 봐선 엄마 전생에서도 얀붕 주인님이 엄마를 원했어도 제대로 반응 안해줬을 거 같은데, 오히려 그게 더 불충한거 아닐까? 엄마가 어울리고 말고는 얀붕 주인님이 정해야할 거 아닌가?"

"...그건..."

"그러니까 화이팅! 그리고 애인 자리에 나 좀! ...아퍼아퍼! 그니까 맘스터치 반대!"




"...돌아왔습니다."

"왔어?"


오자마자 맞이해주는 얀붕 주인님, 종자된 몸으로써 불경하지만, 이럴 때는 매우 행복하게 느껴집니다.


"얀붕 주인님,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얀붕."

"얀붕 주인님."

"얀붕."

"....얀붕님."

"님은 결국 안 빼는 구나."

"주제넘는 것을 생각하면 안 되니까요."

"넘어도 된다면?"

"..."


옛날, 아니 전생에서도 들었던 질문을 다시금 얀붕 주인님께서 하셨다.


"그래도 안됩니다. 구분을 확실히 하지 않으면..."


분명 그렇게 되면, 저는... 


"나는 넘고 싶어."


점점 얀붕 주인님이 다가온다.


"계기는 기억 안나, 하지만, 언젠가부턴지 너를 눈으로 계속 쫓고 있었어. 그러니까, 나랑 사귀어주지 않을래?"


처음의 생과 같이, 저를 벽으로 밀어붙이시고, 그렇게 얀붕 주인님은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받고 싶다. 이대로 키스하고 싶다. 그 뒤 서로가 녹을 때까지 같이 지내고 싶다.

그런 욕망이 점점 떠오릅니다. 안 될 욕망들도 떠오릅니다.

안돼, 이미 두 번이야. 한 여름날의 꿈 같은 것은 두 번이면 족해, 안 그러면, 안 그러면 더 이상 자제할 수가 없어져.


"너는 날 좋아하지 않니?"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나와 평생을 지내는 것은 싫니?"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나와 결혼을 전제로 사귀어 줄 수 있어?"

"그건..."


받아들이고 싶다.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만 더 이상은 참을 수 없게 된다. 그러면 분명, 나는,


"싫으면, 밀쳐."


얼굴이,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피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나서부터는 나에게 자제라는 것은 녹아내려,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이번 삶은 얀붕 주인님의 베필로서, 살다가 죽었다.




3. 


가끔씩 나는 꿈을 꾼다.


어떤 꿈에서는 공작이라고 불렸다. 왠 고아가 있어서 고아원에 들여다보내라고 했었다.

그 고아가 자라서 나의 곁으로 왔다. 희귀하게도 저주와 암살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부모님이 죽어서 조금이라도 손패가 필요했던 나는 그 고아의 소망대로 메이드로 고용하였다.


"당신은 그 메이드 밖에 안 보잖아요?"


그 꿈의 마지막에선, 항상 이런 말을 누군가에게서 듣는다.

누군가였더라, 아, 맞다. 약혼자라는 사람이었다.

지독하게 일그러진, 눈물을 머금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에, 나는 반박하지 못하고, 그 고아를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 것이었다.



어떤 꿈에서는 상인이었다. 어떤 마법사 소녀를 전속 용병으로 고용해서 같이 다녔다.

그렇다곤 해도, 어째선지 나에게 해를 입히려는 사람들이 계속하여 돌연사 하는 일이 벌어져서 실질적으로 용병으로써 기능하지 않았지만... 상당히 즐거운 동반자였으며, 마치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듯, 나에게 여러가지를 해주어서 해고하기가 힘들었다.

아니, 핑계였다. 그저 그 마법사에게 나는 사랑을 했던 것이었다.

그런 사랑의 고백에 마법사 소녀는 곤란하다는 듯이 웃으면서 거절했다.

하지만 그 소녀는 나에게서 그렇게 떨어지려고 하지 않은 채로, 내가 가정을 꾸렸을 때, 메이드로써 일하게 된 것이었다.



어떤 꿈에서는 병약한 소년이었다. 병실과 병원 부지 밖에 세상을 모르는 소년, 그런 와중 한 소녀와 만나게 되었고, 그 소녀는 곧잘 나에게 놀러와서 바깥 세상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윽고 청년과 처녀가 되어서까지 그녀는 나를 찾아왔고, 나에게 있어서 그녀는 모든 것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고백했고, 그녀는 곤란해하다가, 무언가를 결심한 표정을 짓고 나의 고백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나서는 어떤지 그녀의 참는 듯한 얼굴과 괴로워하는 얼굴밖에 기억나지 않았다.




어떤 꿈에서는,

어떤 꿈에서는,

어떤 꿈에서는...




"...아..."


꿈들은 끝나고 눈을 열었을 때는 천장, 그리고 특이하게도 천장에 있는 창문이 아침햇살을 들여보내며 나를 반기었다.

평소와 같이 팔을 들려하고, 평소와 같이 손목에 채워진 수갑의 소리로 움직임을 멈춘다.

그리고 항상 그렇듯, 그런 행동을 하자마자 나를 이렇게 만든 여자가 나타나서 나에게로 다가왔다.


"기침하셨습니까 얀붕 주인님."

"..."

"오늘은 질 좋은 고기가 들어와서 스테이크를 준비했습니다. 지금 준비하겠으니..."

"오늘도, 나가는 건 안돼?"


나의 말에 여자는 살포시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됩니다."

"나보고 주인이라고 하면서?"

"주인님의 행복과 안전을 위해서입니다."

"행복과 안전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한 손은 수갑이 차져있고 수갑은 침대에 이어져있었다.

발에도 정체모를 철로된 무언가를 달아놓아, 수갑을 어떻게 했다고 해도, 도망갈 수 없으리라.


"네, 바깥 세상에는 벌레가 너무 많으니까요."

"...얀순아."


내가 여자의 이름을 부르자, 여자는 잠깐 멈칫했다. 하지만, 이내 무슨 일이냐는 듯이 나를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이렇게 사는 것을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오늘은 얀진이도 놀러올 것입니다."

"이렇게 자유가 속박된 것은 싫어."

"둘이서 봉사를 드리겠으니,"

"나를 밖으로 내보내줘."

"오늘은 필시 즐거운 날이 될 것입니다."


나의 말을 무시하면서 얀순이는 말을 이었다.

나의 의사와는 상관이 없다는 듯이, 그렇게 말을 이었다.




"얀붕 주인님! 잘 지냈어?"


점심이 지나고나서 나보다 어려보이는 얀진이라는 소녀가 미소를 띄우면서 내 방으로 들어왔다.

그걸 구태여 무시하고 나는 얀순이가 '묶여만 있다면 따분하실테니까요.' 이유로 준비해놓은 갖가지 놀이기구-콘솔이든, 만화책이든 다양한 여러가지-들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어차피 내가 대답하지 않아도 나에게 멋대로 다가와서 놀 테니까.


"무시는 조금 슬퍼~"


그렇게, 얀진이도 미소를 지으면서 나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다녀왔어의 키스를 부탁해도 될까?"

"...멋대로 해."


어차피, 하지 말라고 해도 할 거잖아?


"허가 받았으니까? 후후후..."


그 말을 시작으로 놀 수가 없을 정도로 키스의 세례를 받게 된 것이었다.




"후후, 잘 먹었습니다."

"..."


방금까지만 해도 옷을 제대로 입고 있었건만, 얼굴부터 시작해, 갑자기 마킹한다는 이유로 상의가 거의 벗겨져서 가슴에 흔적이 남은 내 기분을 좀 생각했으면 한다.

뭐, 이렇게 무언으로 바라보는 것 밖에, 그녀들에게 항의할 수 밖에 없지만.


"이번에는 안 노려볼거야?"

"노려봐봤자 좋아하는 변태한테 좋을 일 해줄 필요 있어?"

"그러면서도 매도해주는 얀붕이가 좋아~"


답이 없네


"얀진아?"

"아, 엄... 언니 잠깐만 그 프라이팬 집어넣어 에헤이, 에헤이, 폭력 반... 으으으으..."


어느샌가 온 얀순이가 프라이팬으로 얀진이를 때렸다.


"주인님의 의복을 이렇게! 어지럽히지! 말라고! 했죠!"

"아프니까 그만! 아퍼아퍼아퍼!"

"이게 한! 두번도! 아니고!"

"아, 어차피 밤에는 벗으니까 괜찮ㅈ... 아니 잘못했으니까 살려주세요!"

"정신사나우니까 앞에서 가정폭력은 그만둬줄래?"


내가 말하니까 그제서야 얀순이는 얀진이에의 폭력을 멈췄다.

아니, 살짝 피나고 살벌하단말이야 저거.


"역시 얀붕이! 상냥ㅎ..."

"당장 욕실에 가서 피나 닦고 오너라 얀진아."

"...네..."


결국 얀순이의 말을 따라서 얀진이는 욕실에 간 것이었다.


"하아... 얀진이가 죄송합니다 주인님. 또 주인님의 의복을 더럽혀버렸네요."

"...알겠지만 눈 앞에서 폭력은 그만둬. 무서워."

"알곘습니다. 다음부터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체벌을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얀순이는 내 몸을 닦아주면서 옷 매무새를 정리하였다.

입에서부터 가슴, 배로 내려간 얀진이와는 다르게 배,가슴 그리고 입.

어차피 저항해봤자 의미가 없을 테니까, 그저 얀순이가 하는 키스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저녁, 아침과 점심과는 다르게 침대에서 먹는 것이 아닌, 집 안의 식당으로 이동한다.

수갑은 푼 상태로 자의로, 하지만 양손은 얀순이와 얀진이에게 잡혀진 채로, 그렇게 걸어간다.

반항해봤자 소용이 없는 건 알고 있다. 날뛰려고 해봤자 부드럽게 잡히는 게 끝일 뿐이다.


그렇게 다소 불편하게 이동하여 도착한 식당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가득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말한 적도 없었지만, 내 취향으로.

자연스럽게 침이 고이지만, 한편으로는 소름이 끼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으리라.


"아~"

"...아."


식사는 다행히도 혼자서 먹는 것이 허락되지만, 가끔씩 얀순이나 얀진이가 이렇게 먹으라는 듯이 음식을 집고 나에게 내민다.

정말, 구속된 상태가 아니었으면 이런 미인들에게 시중도 받고 좋아했겠지만, 구속된 상태로써는 불만밖에 없다.




밤, 욕실에서 씻겨진 후, 밤일을 했다.

거듭해서 생각하지만, 구속된 것만 아니었으면 참으로 좋았을 것이다.

그렇게 언제나와 같은 하루가 끝나고 나는 잠에 들었다.




늦은 밤, 천장을 통해 희미하게나마 들어오는 달빛을 광원으로, 얀순이는 자고 있는 얀붕이의 모습을 사랑스러운 듯이 내려다보았다.

아직은 얀붕이에게 불만이 남아있는 모습, 하지만 괜찮다. 얀순이는 이미 여러차례 얀붕이를 이렇게 모시면서 앞으로 3달 정도면 받아들일 거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얀붕이가 그렇게 불만이 많아보이면 얀순이로써는 다소 슬퍼질 수 밖에 없기 떄문에, 가끔은 이렇게 얀붕이의 자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맹세를 읊조리게 되는 것이었다.


"걱정마세요. 이번 생에도, 당신은 행복해하면서 잠드시게 해드릴 테니까요."


"그리고"


"계속 있을 생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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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가 1,2,3편으로 나눠서 올려야하나 하다가 통짜로 올림.

1,2편이 거진 순애고 3편만 얀데레라서 살짝 괜찮나 싶긴 했는데 몰라레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