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은 경비병을 사랑해버렸다 (56)

 

 

 

 

 

115.

 

인간과 짐승을 구분하는 기준이란 무엇인가?


지능인가? 아니다, 지능만으로는 인간과 짐승을 구분할 수 없다.

 

그렇다면 예술과 종교인가? 나는 그 또한 완전한 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과 짐승의 기준.

 

그것은, 이상이다.

 

이상향을 꿈꾸고, 구조하고, 실현하는 존재.

 

그것이 바로 인간이다.

 

“흥미 15%. 보스, 뭘 그렇게 뚫어져라 보고 있어?”


“……아무것도 아니다.”

 

코가 삐뚤어질 것만 같은 악취와,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비명 소리.

 

고개를 들면 수없이 이어져있는 선이, 숙이면 강철로 만든 바닥이 보인다.

 

몇 번을 와도 익숙해지지 않는 장소다.

 

“연구는 얼마나 진행됐지?”


“자신감 60%……보스가 원하는 수준까지는 성공했어.”


개조의 마녀, 노베트가 말했다.

 

“자자, 걱정하지 말라고. 연구비가 아깝지 않은 결과물을 만들어냈으니.”


“그건 직접 봐야 알 수 있겠지.”


“기대감 50%! 자, 이쪽으로 오라고.”


나는 노베트의 뒤를 따라 연구소의 지하로 내려갔다.

 

이곳을 구축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금액이 투자되었는가.

 

솔직히 처음엔 이 마녀를 믿지 못했지만, 지금은 노베트를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했다. 

 

내 계획의 대부분은 노베트 없이는 실현시킬 수 없었으므로.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불쾌한 여자였다.

 

자신의 몸마저 개조하여, 어깨 위로 비정상적으로 긴 팔이 달려있었고 항상

 

얼굴에 방독면을 차고 있어 인간보단 기계 같은 인상을 주었다.

 

축 늘어지고 구부러진 몸과, 변조된 목소리, 이미 검게 변해버린 흰 가운.

 

마녀보단 거지나 정신병자 같은 인상이다.

 

“설명 76%. 먼저, 의뢰했던 ‘각성자’는 프로토타입이 완성됐어.”


노베트가 레버를 당기자, 어디선가 전기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것도 없는 격리방의 철문이 열리며……잡아온 오우거 3마리가 방으로 들어왔다.

 

“크르르…….”


“키에에에엑!”


오우거, 지능은 낮지만 신체 능력만은 불곰을 능가하는 무지막지한 괴물.

 

중무장한 기사들도 진형을 갖춰 철저하게 공략해야만 쓰러트릴 수 있는, 괴물 중의 괴물.

 

“자, 지켜보라고.”


방 가운데에 있는 강철의 관이 열렸다.

 

그것은……피부가 벗겨진 인간 같았다.

 

온 몸에는 관이나 이상한 기계 장치가 달려있었고, 머리에는 전선이 얼기설기 얽힌

 

기묘한 투구가 씌워져있었다. 몸을 개조당한 탓에 그 형체가 뒤틀려있었다.

 

저것은 한 때 인간이었다. 지금은, 전혀 다른 무언가가 됐지만.

 

“13호, 오우거들을 제거하라.”


“명령, 수행.”


각성자가 삐걱거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끼에에에엑!”


오우거가 먼저 선공을 가했다- 각성자는 몸을 슬쩍 옆으로 돌려 공격을 피했다.

 

“적 발견, 제거.”


그것이 오우거의 팔꿈치를 때린 순간- 팔이 반대 방향으로 꺾였다.

 

“끄이익?!”


“키에엑!”


두 번째 오우거가 몸을 날려 덮쳤지만, 각성자가 폴짝 뛰어올라 피했다.

 

“설명 20%, 그레이시아의 능력을 토대로, 미래 예지 능력이 생겼어.”

 

“어느 정도지?”


“그 녀석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지만- 당장 날아오는 공격을 피하는 건 가능해.”


노베트가 설명하길, 각성자는 1초 뒤의 미래를 볼 수 있다는 듯 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전투력의 차이는 크다.

 

“꾸이이익!”


3번째 오우거가 관을 집어던졌고, 각성자가 몸을 숙여 피했다.

 

동시에 오우거에게 달려들어 머리에 달라붙은 다음- 

 

“제거, 제거, 제거-”


“끼익!? 끄이익! 끼이이이익!?”


손으로 붙잡고, 안면을 쥐어뜯어냈다.

 

마치 아이가 종이책을 잡아 찢듯이- 살점을 마구잡이로 뜯어낸다.

 

그러다가 양손을 모아 내리찍고, 깨물고, 짓밟았다.

 

“각성자에겐 폭력의 제한이 없어, 잔혹함 90%지.”


“설명해라.”


“인간은 본질적으로, 모순적으로, 폭력적인 성향과 온화한 성향 모두를 타고 태어났지.”


노베트가 자신의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쑤시며 말했다.

 

“폭력을 사랑하면서도 폭력을 미워해. 모순 80%다.”


“거기서 폭력을 피하는 성향을 지웠다는 거로군.”
 
“정답! 그 결과, 적에겐 절대 자비를 베풀지 않는 전투 기계가 완성됐지.”


눈을 돌려 다시 각성자 쪽을 보니, 오우거 두 마리가 벌써 죽어버렸다.

 

마지막 한 마리는 현실을 깨닫고 달아나려 했으나- 각성자가 오우거를 붙잡았다.

 

“히기이이익! 으힉, 끄이이이익!”


“제거, 제거, 제거, 제거-”


항복 의사를 표하는 오우거의 무릎을 걷어차 넘어트리고, 목을 쥐어뜯었다.

 

이제 겨우 3분 정도 지났건만 격리장 안은 피를 채워넣은 수영장처럼 변했다.

 

“쓸 만하지? 자랑 66%.”


“양산은 가능한가?”


“음……일단은. 하지만 성능에는 개체마다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 거야.”


“어째서냐.”


“왜냐하면 주 재료인 인간이 저마다 천차만별이니까! 게다가, 300명 정도 갈아 넣어야

1명 정도 각성자로 만들 수 있을까, 말까라고. 자질을 타고 태어난 인간은 드물어.”

 

각성자로 만들기 위해선, 초월자가 될 수 있는 자질이 필요하다.

 

그런 자질은 희귀하며 또 있더라도 그레이시아나 왕국 3검처럼 강한 초월자가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것은 그리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다.

 

“결행 전까지 얼마나 만들 수 있겠나?”

 

“아직 몰라. 일단 양산한 것들은 따로 옮겨놓았고……대충 30체 정도 돼.”


“100체는 필요하다. 분발해라.”


“시간과 예산이 충분하면 가능하지, 농담 35%.”


다음은……그걸 확인하면 되나.

 

각성자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없으면 우리의 승률은 크게 떨어질 터였다.

 

“그건 언제 완성되는 거지?”


“육체 재건은 성공했지만, 영혼 쪽은 원래 내 분야가 아니라……곤란함 55%.”


“흠.”


어쨌거나 노베트는 해낼 것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나를 실망시킨 적은 없었으니.

 

“그나저나 정말 해버리는 거야, 보스?”


“……한다.”


“으히히, 그럼 보스가 왕이 되는 거야? 이거, 나도 콩고물 좀 얻어먹겠-”


“아니, 나는 왕이 되지 않는다.”


내 대답에 노베트의 웃음소리가 뚝 끊겼다.

 

“전에 설명했을 터다, 마녀.”


“그레이시아를 왕으로 세우는 계획, 포기한 줄 알았는데.”


“……너는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몸을 돌려, 감금실 쪽을 내려 보았다.

 

거기엔 한 때 나의 영지에 살던 인간들이 갇혀있었다.

 

“살려줘…….”
 
“엄마, 엄마아아…….”


“꺼내줘! 제발, 아무나 도와줘! 아아악!”


이것은 분명, 악행이다.

 

신도 성녀도 용서치 못할 대죄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나는 이미 맹세했다.

 

내가, 너의 꿈을, 너의 이상향을 세우겠노라고.

 

“노베트여, 너는- 인간과 짐승의 구분을 알고 있나?”


“몰라, 관심 없음 93%.”


“인간과 짐승을 구분하는 기준이란……바로 이상이다.”


이것은 나의 꿈이 아니다.

 

죽어버린 너의 꿈.

 

오래 전에 끝나버린 우리들의 꿈이다.

 

“나는 이 나라를, 이상향으로 만들 것이다.”


“…….”


“이상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세계이다.”


그녀는 그런 세상을 꿈꿨다.

 

그리고 나는 그런 세상이 올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인간은.

 

우리들에게, 이상향은 허락되지 않는다.

 

우리 자신의 죄악이 그것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다.

 

“굶주림도, 이별도, 고통도, 죽음마저 없는 세계. 완전한 세상……그래, 천국을…….”


“큭큭 …… 미쳤네…….”


“그렇다. 나는 천국을 이 땅에 세우고자 그 긴 세월을 인내해왔다.”


지금 쓰는 이 육체는, 본래 나의 것이 아니다.

 

나는 수없이 많은 인간의 육체를 빼앗아가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오직 단 하나뿐인, 너의 꿈을 위하여.

 

“천국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신뿐이다.”


그래서 나는 그레이시아를 ‘신’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 무엇에도 슬퍼하지 않고.

 

그 어떤 것에도 상처받지 아니하며.

 

그 얼마나 드높은 벽이라도 뛰어넘을 수 있는, 진정한 초월자를.

 

하지만 그 아이는 실패했다.

 

어리석게도 ‘인간’을 동경하고 만 것이다.

 

“사자도, 너도, 나도, 그레이시아마저, 모든 인간은, 천국을 위하여 존재한다.”


“광기 99%잖아, 보스.”


“미쳤다고? 이해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애초에 이해를 바라고 시작한 일이 아니다.”


나를 이해할 수 있었던 사람은 이미 오래 전에 죽었다.

 

그 이름은 하나의 전설이 되었고, 언젠가는 신화가 되어 거짓된 이야기로 기억되리라.

 

“이상을 위하여, 너는 무엇을 포기할 수 있지?”
 
“…….”
 
“나는 전부 포기했다. 내 인생, 인간성……타인의 목숨마저……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다.”


오로지 하나만을 위하여.

 

천국을, 이상향을 이 땅 위에 세우기 위해서.

 

너를 위해서.

 

“결전이 끝난 뒤에, 이 땅에는 천국이 자리 잡을 것이다.”


“마녀들은? 그것들, 마왕을 부활시킨다고-”


“그들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을 계획하고 있었다.”


나는 마왕의 끝을 알고 있다.

 

마왕은, 절대로 부활시킬 수 없다.

 

그것은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왕국을 제압하면 곧장 마녀들을 제압한다. 그것들의 쓸모는 거기까지다.”


“뭐, 그쪽도 우리를 토사구팽 할 생각이겠지. 확신 59%.”


“조각은 전부 모였다. 마지막 조각은, 지금부터 가지러 가야겠지.”

 

그 아이는 신이 될 운명을 타고 태어났다.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던, 그런 건 조금도 중요치 않다.

 

인간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것이며.

 

우리들은 그저 거기에 따라 흘러갈 뿐이다.

 

“탕아가, 집에 돌아올 때가 됐다.”


그레이시아 얀데르손.

 

나는.

 

너를, 신으로 만들겠다.

 

 

 

 

 

116.

 

……바람이 차가웠다.

 

새벽녘의 하늘은 아직 어두컴컴했고, 달리는 마차의 발걸음 소리만이 들렸다.

 

덜컹덜컹, 이렇게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도 얀센은 곤히 자고 있었다.

 

……하여간 태평한 남자다.

 

“더 자도 돼, 그레이시아.”


“괜찮습니다.”

 

“곧 도착할 거니까 상관없긴 한데.”

 

우리 세 사람, 나와 얀센, 드로비우나 공주는 그녀의 고향으로 향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의 어머니가 사는, 해안 도시 ‘밀레넘’으로 말이다.

 

“그나저나 그……어머님에 대한 것 말입니다만.”


“사실이야. 우리 엄마는 마녀고, 나는 마녀의 딸이야. 놀랐지?”


“저희한테 알려져도 괜찮은 겁니까?”


“평소 같으면 안 됐지만…….”


지금은 평소가 아니잖아?


그녀가 덧붙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바마마랑 나, 엄마 본인을 제외하면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아마도.”
 
“어째서입니까?”


“어느 부분 말이야? 아바마마랑 엄마가 나를 낳은 거? 아니면 엄마가 마녀인 거?”


“음……설명하시기 쉬운 쪽부터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먼저, 원래 나는 왕녀가 될 수 없었어.”


그녀가 자신의 손톱을 슥 훑어보며 말했다.

 

“좀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 없어? 내 태도 말이야.”


“그건…….”


“나는 12살 전까지는 평민이었어. 아바마마에 대한 것도 전혀 모르고 있었고.”


이제야 그녀의 태도가 이해됐다.

 

품위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나, 약간 방정맞은 행태 따위는 그녀가 평민이었기 때문이었다.

 

“원래 엄마랑 조용히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바마마가 직접 찾아와서 날 데려갔어.”
 
“어째서입니까?”


“아바마마는……생각하는 게 이상하거든. 왕권 쟁탈전도 그래서 시작된 거였고.”


아, 그렇게 된 건가.

 

베오우른 전하는 힘의 논리를 사랑하는 분이셨다.

 

말버릇도 항상 ‘강한 놈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놈이 강한 거다.’였다.

 

드로비우나 공주 또한 왕가의 일원이었기에, 힘과 행운을 증명할 기회를 준 것이다.

 

거기에 본인의 의사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은 모양이지만…….

 

“엄마는,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거야. 잘 지내고 있으면 좋을 텐데.”


“어떤 분이십니까?”


“아바마마만큼 이상한 사람이야. 판단 기준이 이상하다고 해야 하나……?”


그건 또 무슨 뜻일까. 이해하기 어려웠다.

 

“너희가 마음에 들면 도와줄 테고, 아니면 무시할 거야.”


“지금 이 사태를 해결하려면-”


“엄마한테 그런 건 중요한 일이 아니야. 세상이 멸망해도 자기 기준대로 사는 사람이니까.”


……한 마디로 엄청 성가신 사람이라는 건가.

 

왜 가면 갈수록 문제가 쌓이는 것 같은지 모르겠다.

 

“정말 어려워, 부모 문제라는 거.”


“그 말만큼은 공감합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 아니, 조반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또 어디서 기분 나쁜 음모나 꾸미고 있을 테지.

 

……언젠간 그와의 악연에도 매듭을 지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언제까지나 꼭두각시로 살 수밖에 없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얀센과 함께 살아가기 위하여.

 

나는.

 

너를, 죽여야만 해.

 

“……거의 다 온 거 같네. 그레이시아.”


“그렇군요.”


해안 도시, 밀레넘.

 

여기서 우리는- 마녀이자, 한 명의 어머니인 그녀를 설득해야만 했다.

 

 

 

 

 

 

 

 

 

 

 

얼마 전부터 다시 공부하는 중인데 공부할수록 내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대충 3~4월까지는 이것도 완결내고 또 몇 달 정도 쉬면서 다시 배워야겠음

앞으로는 연재보다도 필력 상승에 주력해야겠음 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