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병원에서 태어난 얀붕이와 얀순이

같은 병실을 쓰던 두 어머니가 친해지면서

어릴 때부터 얀붕이와 얀순이는 같이 붙어다녓다.


일주일은 더 일찍 태어낫기 때문일까

얀순이는 얀붕이보다 모든것이 좀 더 빨랏다.

이유식도, 말을 떼는 것도, 걷는 것도, 한글을 깨우치는 것도.

으례 얀순이는 꼴랑 몆일가지고 얀붕이에게 누나 행세를 하려한다.

특히 얀붕이를 꼭 옆에 끼고 놓아주려 하지 않는다.


누나가 남동생과 같이 있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할까.

자신보다 느리고 약한 얀붕이를 위해서, '언제나 얀붕이는 나의 곁에 있어야 해'

라고 얀순이는 생각했다.


두 아이가 조금씩 커갈수록 얀붕이는 얀순이이게 경쟁심을 불태웠다.

얀붕이 어머니는 이런 상황이 나름 편했다.

'얀순이는 잘 먹던데'

'얀순이는 혼자서 잘 정리하던데'

'얀순이는~얀순이는~' 한마디면 울음도 뚝 그치고 자기 일을 척척 하는 얀붕이였으니까.


하지만 아이의 양육방식에서 '비교'는 그다지 적절한 방법이 아니다.

얀붕이의 마음속을 '경쟁심'이 조금씩 좀먹어 가고 있었다.


친구들과 술래잡기니 꼬리잡기니 놀이를 하면, 항상 얀붕이를 먼저 잡아버리는 얀순이가 있었다.

자기가 싫어하는 양파니 당근같은 음식을 굳이 자기앞에서 보란듯이 다 먹는 얀순이가 있엇다.

수학경시대회에서 90점을 넘어 좋아하는 얀붕이 앞에, 100점짜리 시험지를 흔드는 얀순이가 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자

얀붕이를 좀먹던 '경쟁심'은 점점 '나태'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무엇을 해도 얀순이에게 이길 수 없었다.

무엇을 해도 얀순이에게 잡혀버렸다.

아마 자기는 평생 얀순이를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얀붕이는 점점 더 소심하고 주눅들어가고

이와 반대로 얀순이는 활달하고 인기있는, 인간관계의 구심점이 되어갔다.


언뜻 어울리지 않는 둘의 거리는 멀어질 법 했으나,

얀순이는 기어코 얀붕이를 옆에 끼고 같이 다녔다.


얀순이에겐 얀붕이는 챙겨줘야 하는 남동생이였다.

얀붕이는 언제나 나보다 약했다.

편식도 심하고, 공부도 못하고, 힘도 딸리는

그런 얀붕이는 자신이 이끌어 주고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고? 자신이 얀붕이의 누나이기 때문이다.

누나가 남동생을 지켜주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할까.

얀붕이를 위해서, '언제나 얀붕이는 나의 곁에 있어야 해'

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소심한 얀붕이와 활달한 얀순이의 관계는

고등학교때 달라지기 시작했다.


중3때만 해도 큰 키의 얀순이보다 작던 얀붕이의 키가

얀순이를 훌쩍 뛰어 넘었다.

여자들 사이에서도 175cm라는 나름의 장신을 뽐내고 있던 얀순이엿으나

얀붕이는 그보다 5cm는 더 커보였다.

주눅들어있는 어깨와 허리만 곧게 편다면 족히 185cm은 되 보이리라.


소심해서 말 수는 적었으나, 변성기가 지난 얀붕이의 목소리는 중후하고 멋지게 다듬어져 있엇다.

활달한 얀순이에게 끌려다니느라 체력이나 체격도 좋았다.

유튜브를 한창 뜨겁게 달구었던 '잘생긴 찐따 남친'에 완벽히 부합하는 모습이였다.


문제가 있다면 

진실로 얀붕이의 행동은 찐따와 같았으며

얀순이에게 그런 얀붕이는 키만 크고 허우대만 멀쩡했지, 아직도 자신의 동생과 같았다.

얀붕이를 위해서는 '언제나 얀붕이는 나의 곁에 있어야 해'

라고 생각했다.


뭐. 그래도 허우대는 멀쩡했던 얀붕이였으니 이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처음엔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얀순이였지만,

대학교를 입학 하기 전까지 발렌타인데이때 얀붕이가 받은 초콜릿의 갯수가 2자리를 넘어가자 불쾌해지기 시작했다.


기껏 애지중지 키워나갔던 자신의 보물을

한순간에 낚아채려 하다니. 저 요망한 것들이 너무나 괘씸......


보물?

'얀붕이는 내 남동생 같은 것이지 보물이 아니다.'

라고 생각을 바꾸며, 자신이 준 초콜렛을 제외한 나머지 초콜릿을 얀붕이에게서 뺏어갔다.

매년 그러하듯이 얀붕이에게 초콜렛은 2개면 충분하다

얀붕이 어머님이 준 것,

그리고 내가 만들어 준 것. 



그리고 얀순이와 얀붕이의 사이가 삐걱거렸다.


먼저, 얀붕이에게 '자신감'이라는 것이 생겼다.

누구든 이성에게서 받은 초콜렛이 2자리가 넘어간다면 자신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자신감이 조금 생겨나니, 굽었던 허리와 어깨가 곧게 펴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항상 자신을 돌봐주고 이끌어줬던 얀순이가 자신보다 10cm나 아래 있었다.

왠지..... 얀순이가 하는 말이 시끄러워졌다.


얀붕이가 얀순이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게 되었다.

중학교때 같았으면 자신이 하자는대로 놀러가고, 

자신이 하자는데로 공부하고, 자신이 시키는것은 곧잘 하던 얀붕이가 달라졌다.


결국 대학교도 얀순이와 다른 대학교를 진학하게된 얀붕이였다.

얀순이의 선택이 아닌, 처음으로 '자신의' 선택으로 고른 진로였다.


얀붕이는 성공적으로 대학교 데뷔를 했다.

훤칠한 키에, 다부진 체격, 중후한 목소리, 아직은 고쳐지지 않은 소심한 성격까지

대학교 2~3학년 누나들의 여심을 사로잡기엔 충분했다.


벚꽃이 져가는 5월이 되자, 얀붕이는 같은 학교 선배에게 고백을 받았다.

소심한 성격 때문일까, 얼떨결에 답변을 하지 못해 약간의 유예기간을 가지게 되었으나, 얀붕이는 고백을 거절할 생각이 없었다.


헤실거리며 돌아오는 귀가길에 얀붕이는 다른 대학으로 진학한 얀순이와 마주쳤다.

학교가 멀어지면서 근 한달은 제대로 보지 못했었다.

얀순이도 대학에 가면서 머리스타일부터 옷매무새까지 한껏 공을 들인 모습이다.


뭘 그리 헤실대며 싸돌아 다니냐고 얀붕이에게 한마디 쏘아본다.

힐 때문인지 자신의 눈 밑까지 쫒아온 얀순이에게 약간은 움찔거린 얀붕이였으나

다시 생각해 보니, 이전과는 얀순이가 다르게 보였다.


힐을 신었어도 자신보다 5cm는 작은 키.

어른스럽게 치장했지만. 앳된 얼굴과는 잘 매칭이 되지 않는 옷차림과 화장.

잘 신지 않았던 구두 때문인지 불편해 보이는 걸음


자신보다 더 애처럼 보이는 얀순이에게 괜시리 시비가 걸렸다고 생각하는 얀붕이였다.

지금까지 누나인척 으스대는 얀순이에게 한방 먹여줄 요량으로

'학교 선배에게 고백을 받았으며, 다음번에 만나면 정식으로 교제할 것' 이라고 자랑했다.


남들이 보면 '나 이만큼 컷어요'라고 자랑이라도 하는 듯한 남동생의 모습이였으나

지금 눈앞에 있는 한명의 여성에겐 좀 더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니.. 니가 뭔데 내 허락도 없이 여자를 만나?"

무언가 급박하게 쫒기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얀붕이에게 쏘아대는 얀순이


"그럼 뭐 니가 내 누나라도 되냐? 내가 왜 허락을 받아야해?"

처음으로 얀순이와 대등하게 말싸움을 하는 얀붕이.


자신의 말대답에 약간 움찔하는 얀순이를 보고, 처음으로 이겼단 생각이 들은 얀붕이였다.

하지만 이내 얀순이의 일그러지는 표정을 보고 겁을 먹는 얀붕이엿......


"야.. 갑자기 왜 울어"

매섭게 치켜 뜬, 얀붕이를 쏘아보는 얀순이의 눈에선

방울방울 눈물이 흘러 내리기 시작했다.


까맣게 칠한 마스카라가 눈물에 번져, 얀순이의 얼굴은 귀신과 같은 형상으로 변해갔다.


약간의 섬뜩한 공포와, 여자의 눈물에 마음이 약해진 얀붕이는 얀순이를 달래주려 했으나,

얀순이는 얀붕이를 뿌리치고 부리나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얀순이는 생각했다.

누나가 남동생을 지켜주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할까.

라고 하던 생각이 완벽하게 깨져버렸다.


얀붕이의 말대로, 자신은 얀붕이의 누나가 아니였으며, 얀붕이는 자신의 동생이 아니였다.

그리고 20년을 들여 자신이 반짝반짝 빛나게 닦아온 보물을 순식간에 빼앗기게 생겼다.


그래 얀붕이는 남동생이 아니였다. 얀붕이는 보물이였다.

지키고 싶던게 아니라, 빼앗기기 싫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적었지만, 근 몆 달간 안갯속 같았던 마음 속은 어느때보다 맑아졌다.

옷, 립스틱, 구두따위를 고를땐 엉망진창이던 머릿속이 빠르게 정리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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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학교에서 얀붕이는 지는 벚꽃과는 상반된 화사한 캠퍼스 라이프를 보내고 있었다.

자신에게 고백한 학교 선배와 쭈뼛쭈뼛 이야기를 나누며 달달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이 학교 선배는 절대 기다려줄 생각이 없었다.

내일이나 모레쯤 술이나 한잔 하자고 한 뒤에, '라면 먹고 갈래?' 라며 자신의 자취방으로 초대해서, 자빠뜨려 버릴 생각이였다. 

그 때가 오기 전까진, 이 간질간질한 설탕과 같은 분위기를 즐겨야 겟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일을 꿈꾸는 자는 오늘만 사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고 하던가.

달달한 분위기의 둘 앞에 돌연 얀순이가 나타낫다.


어제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얀순이였다.

하늘하늘하지만 약간 짦은 원피스, 옅고 얕은 채도의... 그래 '한 듯 안한 듯'한 화장

머리 끝에서 자연스럽게 말린 머리. 거기에 본인기 가지고있는 월등한 키와 비율을 살려주는 단화.

소위 말하는 '여친룩'의 전형적인 표본이리라


얀붕이가 벙 찐 표정으로 얀순이를 보며 


"네가 왜 여기에 있어?"


 라고 묻는다.

얀순이는 대답 하기 전에 자연스레 얀붕이에게 팔짱을 낀다. 

그리고 옆사람에게 들릴랑 말랑할 정도의 성량으로 얀붕이에게 속삭인다.


"당연히 우리 얀붕이 보러왔지"


얀순이의 생각보다 강력한 손아귀 힘에, 그리고 자신의 팔뚝에 느껴지는 이성의 부드러운 촉감에 얀붕이는 순식간에 얼어버렸다.


학교 선배는 얀순이의 의도를 단번에 파악햇다. 

이 요망한 년이 얀붕이가 저번에 말하던 오래된 여사친이리라.

자신이 고백한 이야기를 듣고는, 자신의 앞에서 당당히 '이 것은 나의 것이다' 선포하러 온 것이다.


순순히 져줄 생각이 없던 학교 선배는 얀순이에게

'넌 누구냐, 나랑 얀붕이 관계를 모르느냐, 우린 아직 사귀고 있지 않지만 곧 그리 될것이다. 너가 뭔데 우리 사이에 끼어드느냐'

라며 얀붕이의 팔에 착 달라붙어있는 얀순이의 손을 풀어 헤친다.


하지만 얀순이는 저런 더러운 여자가 하는 질문들에 대답해 줄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보물을 간단히 내어줄 생각 또한 없었다.


얀순이는 풀어진 자신의 팔을 이번엔 얀붕이의 머리에 감싸 당긴다. 

얀붕이의 키가 5cm 작아졋다. 앞으로 5cm.

까치발을 약간 들어 남은 5cm를 채운다.

이윽고 둘의 입술이, 그리고 혀가 맞닿는다.


얀붕이의 손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허공을 휘젓는다.


학교 선배는 자존심이 구겨진 것 때문인지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를 박차고 벗어낫다.

얀붕이가 자신의 앞에서 얀순이를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않는 것이, 자신의 고백에 대한 얀붕이의 대답이리라.

어린애 하나 꼬셔서 몸보신 좀 해볼까 햇더니... 제대로 똥 밟았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얀순이가 긴 숨을 몰아쉬며 만족한 듯 떨어진다.

현재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완전히 얼어버린 자신의 보물 앞에

얀순이는 항상 생각만 하던 것을 직접 말해주었다.

"언제나 넌 나의 곁에 있어야 해"

얀붕이의 대답따윈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유유히 얀붕이를 끌고 사라지는 얀순이였다.


얀붕이는 어린 시절, 자신이 했던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아마 자기는 평생 얀순이를 이길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