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아 꽃집], 


 I시의 한 버스 정류장 옆에 있는 작은 꽃집. 다른 꽃집들과는 다르게 배달을 하지 않기 때문에, 매출이 그다지 높다고는 할 수 없다. 수수한 간판과 꽃집 특유의 풀 내음, 그는 작은 한숨을 쉬고는 [프레시아 꽃집]의 문을 열었다. 


“어서 오세……. 아, 성호 씨군요.”


 20대 초반의 꽃집 아가씨가 배시시 웃으면서 그를 맞아 준다. 아침 바람에 파도처럼 휘날리는 연갈색 머리, 생긋 웃는 눈을 따라 올라가는 속눈썹, 볼 위로 살짝 핀 보조개. 

 굉장한 미인이지만, 고무 앞치마와 머리에 꽂은 큼지막한 난초 머리핀이 꽃집 아가씨임을 확신시킨다. 천천히, 내키지 않는 입술을 여는 남자. 


“네, 이번 주도 반갑습니다. 하나 씨.”


“선생님, 오늘은 무슨 일인가요?”


 선생님, 성호의 직업은 초등학교 선생님이다. 현재는 출근하기 직전. 연례의 행사라는 듯이 가방에서 한 비닐봉투를 꺼낸다. 힘을 줘 거칠게 다뤘는 지 군데군데 뜯어져 있는 꽃. 하나를 살짝 노려보면서 그는 확인한다. 오늘은 이 꽃이냐고.


 “이 꽃입니다.”


 예쁜 꽃은 아니다. 수줍게 움추린 꽃잎 사이로 검은 깨 같은 수술이 박혀 있는 흰 꽃. 꽃집에서 취급할 만한 물건이라고 보긴 힘들다. 


 “어머, 이 꽃은…?”


 “뭔 지 아시나요?”


 캐묻듯이 말하자, 곰곰이 생각하던 하나가 떠올랐다는 듯이 머리를 친다. 꽃집 아가씨가 꽃 이름이 바로 생각 안 나다니. 나는 바보구나, 자책하는 듯한 제스쳐. 남자의 얼굴에선 그늘이 아직도 떠나지 않는다. 


 “참다래꽃. 흔히 ‘키위’라고 부르는 과일나무의 꽃이에요. 이렇게 싱싱한 건 처음 보네요.”


 키위는 한국에선 제주도에서나 자라니까요, 중얼거리듯이 부연설명을 덧붙인다.


 “키위라.”


 그러고보니 박힌 검은 수술이 키위 속살에 박힌 씨앗들을 닮았다. 


 “네, 키위. 저도 무척 좋아하는 과일이에요.”


 이번 주에는 키위 꽃을 보냈나, 징그럽다. 속으로 경멸하면서 하나의 다음 말을 기다린다.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꽃말 때문이죠? 이번 주에도 저에게 찾아오시는 이유.”


 “그렇습니다.”


 사실은 다른 이유도 있지만, 성호의 혀끝이 간지러워 오지만 애써 참는다. 나긋나긋하게 말하는 하나. 눈웃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아쉽네요. 다른 이유면 더 좋았을 텐데요.”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딴 길로 세서 죄송해요. 참다래, 꽃말은 ‘깊은 사랑’. 다래 덩굴처럼 얽매는 사랑. 키위 씨처럼 톡톡 터지는 사랑. 이런 의미인가 봐요.”


 깊은 사랑이라, 지긋지긋하다. 얕은 사랑, 협상할 수 있는 사랑이 그가 원하는 사랑이다. 이런 건 바라지도 않았다. 정중하게 목 인사한 성호는 곧장 뒤로 돌아선다. 


 “오늘도 고마웠습니다.”


 “깊은 사랑의 꽃점, 맞았으면 좋겠네요, 성호 씨.”


 아마도 맞겠지. 이 꽃집 아가씨가 말하는 대로, 꽃점은 이루어지니까.


****

 

 아침 7시 40분, 남들은 지금쯤 미적거리며 출근하고 있을 무렵 교사인 그는 남들보다는 조금 일찍 나왔다. 그를 보자 마자, 한 남자 선생이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을 건다. 무안한 일이 있다는 듯한 태도.


 “저, 오 선생님?”


 “왜 그러시죠?”


 “당장 책상 치워 놓으세요.”


 이번엔 책상인가? 달려가듯이 발걸음을 옮긴다. 노곤한 발걸음, 일주일에 한 번씩은 이런 피로한 일이 있다. 정말로 사단이 났다.


 책상에 흐드러지 듯이 널려 있는 흰 키위 꽃, 그리고 포스트잇 메모 한 장. 그곳에 적혀 있는 건 딱 한 문장. 


 I Love You


 “CCTV 확인할 수 있을까요?”


 성호의 책상의 요 꼴을 알려줬던 부장 선생에게 빌 듯이 부탁해보지만, 매몰찬 대답만이 들어온다. 지금껏 교내에서 일어난 몇몇 사건으로 학교 내에서 성호의 이미지는 굉장히 안 좋다. 


 “어허, 오 선생이 이래 놓고 뭔 소리야? 또 바보 같은 짓 한 거잖아.”


 “아닙니다.”


 “그럼 교무실에 침입자가 있었다는 거야? 우리 초등학교에? 말이 된다고 생각해!”


 있었겠지, 답은 명확하다. 사근사근한 한 여자의 얼굴이 성호의 머리에서 맴돈다. 


 범인은 신하나, [프레시아 꽃집]의 간판 아가씨. 


 오직 성호만을 위해 꽃집을 운영하는 광인(狂人).


 그녀는 일주일 중 어느 날, 꽃을 성호의 집 앞에 두고 간다. 그 날은 배달한 꽃의 꽃말대로 불길한 사건이 일어난다. 하나는 그걸 ‘꽃점’이라고 부른다. 자기 실현적 예언, 무조건 맞는 점이다. 

 범인이 누구인지 성호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잡을 수 없다. 세계의 법칙이라도 된 마냥 피해간다.


 무서워, 너무 무서워. 이 주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한숨을 쉬고는 작은 쓰레받기를 든다. 절대로 다음 주엔 굴하지 않겠어, 이번 주도 다시 다짐하는 성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