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붕이가 가장 잊지 못하는 말은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인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였다.


그 문장대로, 그의 인생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아버지는 도박과 술에 중독되어 인생을 허비하다가 자살했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제정신으로 돌려 달라며 온갖 사이비를 믿으며 점점 정신이 망가진 끝에 교통사고로 죽었다.

그리고 그에겐 누나가 한 명 있었는데, 얀붕이의 누나는 아름답지만 어머니를 닮아 어리석고 의존적인 성격이었다.


점점 무너져가는 가족들을 보며 그녀 또한 망가져갔고, 사랑받지 못한 탓에 애정결핍에 시달려

온갖 남자들에게 이용만 당했다. 그리고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그 어떤

말도 남기지 않고 집을 떠나 사라져버렸다.


얀붕이는 누나를 찾지 않았다. 그러기엔 자기 인생을 감당하기도 벅찼다.

이제 막 중학생이 된 얀붕이는 온 가족을 잃었고, 친척도 없었으며 돌봐줄 사람도 없었다.

그럼에도 얀붕이는 악착 같이 버티며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최저시급을 받으며 아르바이트를 했고 고등학교엔 가지 못했지만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그리고 어떻게든 안정적인 삶을 되찾기 위해 공무원 공부를 어린 나이에 시작했다.


돌봐주는 사람 하나 없이 필사적으로 살아남아 성인이 된 얀붕이.

그리고 그런 그의 앞에, 웬 소녀가 나타나 편지를 건네주었다.


그 편지는 얀붕이의 누나가 남긴 유언장이었다.

그녀는 자기 인생이 어떤 식으로 파멸했는지, 그리고 어째서 자신의 딸을 얀붕이에게

보냈는지 구구절절하게 써놓았다. 이유는 뻔했다. 이 남자, 저 남자 갈아타다가 끝내 배신당해

아이와 함께 버려졌고 이젠 병까지 걸려 곧 죽을 거라고, 자신의 딸을 가족도 없는 고아로

만들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얀붕이는 그저 어이가 없었다.

멋대로 떠난 주제에, 이제와서 자기에게 말도 안 되는 짐을 짊어지게 하다니.


하지만 얀붕이는 그 아이를 무시할 수 없었다.

비록 누나가 멋대로 떠넘긴 아이라지만, 분명 자신과 같은 피가 흐르는 혈육이었으며

책임감 없었던 부모님처럼 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얀붕이는 그 아이를 받아주고, 더욱 힘든 삶을 이어가게 되었다.

갑자기 먹을 입이 늘어났기에 일을 더 늘려야만 했고, 아주 조금 있었던

여유 시간마저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삶이 힘들어질수록 얀붕이는 더 악착같이 돈을 벌고 공부했다. 


그렇게 1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얀붕이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이젠 나름 실무자급 공무원이 되었고,

누나의 딸인 얀순이도 어느덧 훌쩍 자라 고등학생이 되었다.


얀순이는 속 한 번 썩인 적 없는 착한 아이였다.

부모도 없이, 제대로 돌봐주지도 못한 삼촌의 손에 자랐건만 사고 한 번 치지 않고

의젓하게 살아가는 얀순이는, 이젠 얀붕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어있었다.


힘들게 일하고 돌아온 얀붕이에게 안마를 해주고, 식사도 미리 준비해주며

청소까지 완벽하게 끝내놓고, 얀붕이가 집에서만은 조금이라도 편히 쉴 수 있도록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야말로 어디 하나 흠잡을 곳 없는 아이였다.


다만 얀붕이가 조금 걱정하는 것은 얀순이의 거리감이었다.

벌써 고등학생이 되었건만 얀순이는 삼촌에게 너무 의존하고 들러붙었다.

어딜 놀러 가도 꼭 삼촌하고 같이 가야 했고, 뭘 하든 삼촌하고 같이 하려고 했으며

친구들마저 종종 얀순이의 그런 면을 보고 좀 지나친 거 아닌가 하고 걱정할 정도였다.


얀붕이는 그저 성격이 원래 그래서, 자길 힘들게 키워준 삼촌에게 고마워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얀순이의 컴퓨터를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업무용 컴퓨터가 고장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얀순이의 컴퓨터를 빌린 날이었다.

업무를 하던 도중 우연히 발견한 파일 안에, 얀붕이의 사진이 있었다.

그 정도라면 아무 문제없었을 테지만, 그 사진의 내용이 이상했다.


자는 모습, 씻는 모습, 밥 먹는 모습...그런 사진만으로 거의 100기가를 채웠고,

비슷한 종류의 동영상은 무려 300기가 넘게 있었다.

분명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여기까진 어떻게든 이해해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암호화 된 파일 안에서 발견됐다.

암호는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었는데, 바로 얀붕이의 생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안에 있었던 것은...일기였다.

일기의 내용은 차마 다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문제가 있었다.'


일기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얀붕이에 대한 것만 쓰여있었다.

얀붕이가 좋아하는 것, 얀붕이가 싫어하는 것, 얀붕이한테 관심을 보인 여자에 대한 질투 등등.

그리고...얀붕이에 대한 비정상적인 성적 호기심에 대한 것들.

강간, 수면, 약물...비현실적인 망상으로 가득 찬 일기장을 껐다.


'봤구나? 삼촌.'


그리고 뒤를 돌아봤을 땐 얀순이가 미소 지으며 서 있었다.


'남의 일기를 멋대로 훔쳐보면 안 되잖아.'


얀붕이는 그 순간 죽음을 느꼈다.

아니, 실제로 죽이진 않겠지만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로

오싹오싹하고 소름끼치는 감각이었다.


'...그냥, 아무것도 못 본 걸로 할래?'


그는 얀순이의 말에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얀순이는 싱긋 웃으며 돌아섰다.


아무 일도 없었다.


-그랬다면 참 좋았을 터였다.


얀순이는 그 날 이후, 더욱 얀붕이에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어디서 뭘 하는지 하나하나 감시하기 시작했고, 조금이라도

다른 여자와 친하게 지내는 낌새가 보이면 곧바로 조사에 들어갔다.


얀붕이는 이게 그저 한때의 치기 같은 거라고 생각했지만, 날이 갈수록

심해져가는 얀순이의 행패에 골머리를 앓았다.


한 번도 속 썩이지 않은, 사실상 딸처럼 기른 조카가 자신에게

집착하며, 심지어 자길 이성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런 얀붕이의 고뇌를 알면서도, 얀순이는 확실하게 그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골적인 유혹을 하기 시작하는데...











같은 느낌의 단편을 써볼까 하다가 다른 소재에 밀려 폐기되었음

이런 소재는 너무 흔한 거 같기도 하고 뭔가 맛이 좀 부족한듯

더 꼴리는 소재가 필요한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