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모습 만큼은 완벽하다는 소리를 듣는 여자.


유은하는 어제 일어난 일을 떠올리며 소리치고 있었다.


"이럴리가 없는데, 내가 그 딴 남자가 신경쓰인다고?"


혼자 살기엔 넓은 자취방에 혼자 누워있으면서 어젯밤 일을 떠올렸다.


도움이 필요하던 순간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때 도와준 사람. 이시우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갓 20살이 되어 혼자 살게 된 유은하는 심심함을 참지 못하고 밤 중에 번화가로 나갔었다.


'그러면 안 됐는데...'


뒤늦은 후회가 찾아와도 이미 일어난 일은 돌이킬 수 없는 법.


성인이 되었다는 들뜬마음과 서울의 밤 거리는 유은하의 마음을 홀리기에 충분했다.


이리저리 마음이 가는 대로 발걸음을 옮긴 결과 종착지는 클럽.


안 쪽에서 들리는 흥겨운 음악과 즐거운 사람들의 소리에 이끌려 들어갔다.


처음 보는 어둡고 화려한 조명과 귀가 떨어져라 울리는 음악 소리에 정신이 

흔들릴 무렵, 누군가 유은하에게 다가왔다.


"저기요, 혼자 왔어요?"


그녀에게 말을 건 남자는 딱 봐도 불량한 생김새에 온 몸에는 문신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그게..."


"저희랑 같이 노실래요? 술 값은 저희가 낼게요."


이런 상황은 생전 처음 겪는 유은하로서 어찌할 줄 몰랐다.


남성의 노골적인 시선과 이런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


도움을 바라는 눈길로 주위를 쳐다봐도 아무도 여기를 신경쓰지 않았다.


"이쪽으로 오세요."


"자, 잠시만..."


남자가 우악스런 손길로 유은하의 손목을 낚아채 자기들의 무리로 끌고 갔다.


그곳엔 유은하를 데려온 남자와 비슷한 모습의 불량한 양아치들이 2명 더 있었다.


"오? 뭐냐? 데려온다더니 진짜 데려왔네?"


"크하하, 나만 믿으라 했지? 여기 앉으세요."


유은하는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앉긴 하지만 클럽에 들어올 때의 호기심과 흥분은 사라진지 오래.


당장이라도 여기를 벗어나고 싶었다.


테이블에는 이미 술이 한 가득 있었다.


"자, 일단 마시면서 얘기 할까요?"


"어, 저 술은 처음 마셔보는데..."


"그래요? 잘 됐네. 이 참에 배워보는 것도 나쁘지 않죠."


마지못해 남자가 따라주는 술을 마시는 유은하.


그녀가 처음 술을 마셔본 감상은 '이런 걸 왜 마시지?' 였다.


쓰기만하고 맛이라곤 하나도 없는 술을 왜 마시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게 서로 통성명도 하고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갔을 무렵, 자신에게 다가오는 은근한 손길이 느껴졌다.


화들짝 놀라서 옆을 쳐다보니 자기를 대려온 남자, 윤성현이 자신의 손을 쓰다듬고 있었다.


"은하는 손도 참 곱네. 얼굴도 예쁜데 몸매도 좋고 남자친구는 있어?"


윤성현이 벌개진 얼굴로 노골적인 시선을 보내왔다.


'불쾌해.'


당장이라도 손을 뿌리치고 도망치고 싶은데 문득 겁이 났다.


만약 이 사람들이 놔 주지 않으면 자신은 어떻게 되는 걸까?


이번에도 곤란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봐도 자신을 신경쓰는 사람은 없었다.


당연히 여기 테이블엔 윤성현을 막아줄 만한 사람이 없어보였다.


술먹고 뻗은 양아치 한 명과 처음 왔을 때부터 가만히 자신을 노려보던 사람만 있을 뿐이다.


"쓰읍, 엉덩이도 꽤 탄탄해보이는데 우리 조용한 곳으로 갈까?"


"그, 그만 해주세요..."


"뭐? 작아서 안들리는데 일단 여기서 나가자."


이번에도 거친 손길로 유은한의 손목을 잡아 끌고 나가려던 순간, 지금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성현아, 적당히 하자. 너무 취했네. 유은하 씨? 그쪽도 취한 것 같으니까 얼른 집으로 돌아가세요."


"뭐? 갑자기 뭔 쌉소리야? 너 인마 그러면 안되는 거야. 상도덕이 없어. 상도덕이."


"하아, 애초에 따라오는게 아니었는데."


한숨을 쉬면서 자리를 일어나는 남자, 이시우가 윤성현의 손목을 강하게 붙잡았다.


"옛날 버릇 아직도 못 버렸구나. 그만하자."


"아악! 씨발, 이거 놔! 뭐, 이제와서 깨끗한 척이라도 하는 거냐? 미친새끼. 너가 그런다고 하정이가..."


"닥쳐! 너가 말하지 않아도 옛날일은 나도 많이 반성하고 있으니까. 그 입 다물어."


살벌한 눈빛으로 경고하자 윤성현은 포기한 듯이 손을 들었다.


"...쯧, 됐다. 내 눈 앞에서 둘 다 꺼져."


그렇게 단 둘이서 클럽을 나오게 되었다.


술에 취한 기운때문 일까, 아니면 지금껏 보지 못한 세계를 경험한 탓일까.


유은하는 머릿속이 빙글빙글 도는 느낌이다.


둘이서 꽤나 걸었음에도 취기에서 못벗어 났는지, 몸을 휘청거렸다.


"...조심 좀 하세요. 여자가 그렇게 조심성이 없어서. 쯧."


뭐랄까, 자신을 굉장히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쳐다보는 이시우에 약간의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저, 이런거 처음거든요! 술도 처음이고 클럽도 처음이고...그리고, 그리고...!"


"하아, 저기 목소리 좀 낮춰요. 사람들 다 쳐다보겠네."


시간이 늦었다지만 서울의 거리는 아직도 환하다.


술에 취해서 헛소리하는 사람이 드문건 아니지만 유은하처럼 예쁜여자가 이런짓을 하면은 확실히 눈에 띈다.


"그쪽도 그, 윤성현 인가 뭔가하는 사람하고 똑같은 부류 잖아요! 이제 절 어디로 끌고 갈 속셈이죠!?"


"아니, 제발 목소리 좀..."


이시우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을 보자 유은하의 화가 조금 풀렸다.


말을 그렇게 했지만 이시우라는 사람이 자신을 구해줬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어딘가 불량해 보이는 눈매에 팔뚝에 문신이 있긴 하지만 윤성현 같은 양아치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일단 택시 잡아줄테니까, 집으로 가세요."


이시우는 일초라도 빨리 이 여자와 헤어지고 싶었다.


겉모습은 뭐든 똑부러지게 잘 하게 생겨먹어서는 행동은 어딘가 맹한 구석이 있다.


이 이상 이런 여자와 엮이는 건 사양이다.


"저희집, 여기서 얼마 안걸리니까 택시 탈 필요 없어요."


"아, 그래요? 잘 됐네. 저는 집으로 갈게요."


그렇게 말하고 발걸음을 돌리려던 순간 유은하가 뒤에서 옷깃을 붙잡았다.


"집까지 바래다 주세요."


붉어진 얼굴과 부끄러운 듯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는 유은하.


이런 모습을 보면 어떤 남자라도 넘어갈법 하지만 이시우는 달랐다.


"싫어요. 제가 왜 그쪽 집까지 데려다 줘야 하는데요?"


삐딱한 표정으로 유은하를 쳐다보자 그녀는 전혀 예상못했는지 당황한 기색이다.


"어, 그게 클럽에서 같이 나왔으니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거 아닌가요?"


"네?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술도 적당히 깬 것 같으니까 혼자서 돌아가세요."


"그래도 이런 밤중에 여자 혼자 돌려보내는 건 위험하잖아요."


"대한민국 서울 한복판인데 무슨, 헛소리 말고 돌아가세요."


유은하 인생에서 자기가 이렇게 부탁하는데 거절당해본적은 처음이었다.


그녀의 머릿속에선 온갖 생각이 떠돌아 다녔다.


'만약, 지금 이렇게 헤어지면 다신 못보겠지?' 라거나, '집에 같이 가고 싶은데.' 처럼 이시우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찼다.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요! 어떤 양아치가 갑자기 절 끌고 갈 수도 있고."


"하아, 그럴 땐 큰 소리로 주변에 도움을 구하세요. 아무튼 저는 갑니다."


미련도 없이 발걸음을 휙 돌리는 이시우에 유은하의 감정이 상했다.


처음엔 이시우에 대한 감사함과 고마움을 어떻게 전할지 몰라서 허둥댔다면 지금은 다르다.


'이 새끼 고자인가? 나 같이 예쁜여자가 집에 대려다 달라고 하는데.'


계속되는 철벽에 이시우에 대한 애정과 증오과 뒤섞였다.


그래서 떼를 쓰기로 했다.


어차피 여기는 술취한 사람이 난동을 피우는 게 드물지 않은 곳.


거기에 이시우가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은 유은하의 마음을 크게 울렸었다.


이번에는 작정하고 우는 척 연기하면서 소리를 지르자 즉각적인 반응이 왔다.


"아, 제발, 좀! 도대체 왜 그러는 거에요? 아니, 주위 사람들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거기, 휴대폰 내려놓으세요!"


이거다, 자기를 구해줄 때는 살벌한 눈빛으로 뭐든 잡아먹을 기세였던 사람이 자신의 행동 하나에 어쩔 줄 몰라한다.


유은하의 얼굴에 광기와도 같은 은은한 미소가 피어올르고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하아, 제가 졌습니다. 일단 옷에서 손 좀 놓고 얘기합시다. 네?"


이시우의 얼굴에 지친 기색이 감돌았다. 그는 더 이상 이 여자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졌다.


"놓으면 뒤도 안돌아보고 갈 거잖아요."


"...원하는 게 뭐에요? 대체 뭐 때문에..."


"헤헤,집 데려다 주세요."



#


끝끝내 여자를 집까지 데려다 주고 핸드폰 번호까지 교환했다.


홀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의 얼굴에는 후회의 감정이 떠올랐다.


'이럴 거면 윤성현을 만나는 게 아니었는데.'


괜히 그 새끼 때문에 오늘 곤란한 상황만 여러번 겪었다.


초면인 여자가 어찌 그리도 술 버릇이 고약한지, 이런 여자는 처음봤다.


갑자기 큰 소리로 민망한 소리를 하지 않나, 울면서 자신을 쓰레기로 몰지를 않나.


덕분에 주위에서 쓸데없는 오해를 일으켜서 푸는데 한참 걸렸다.


'겉모습이 이런 것도 한 몫했지만.'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정말 안어울리는 조합이긴 했다.


남자라고는 전혀 모를 것 같은 아가씨 옆에 있는 시커먼 남자.


그 남자가 사나운 눈매에 팔뚝에 문신까지 있다면 안 좋게 보일법도 했다.


그렇다 해도 전적으로 나쁜건 그 여자, 유은하다.


곤란해 보이길래 기껏 구해줬더니, 곤란한 말만 한다.


"에휴...이게 다 업보인가."


과거 철없던 시절 아무생각 없이 살았던 것에 대한 벌일 수도 있다.


아무리 선행을 해봤자 감사하다는 말을 들은 적은 몇 번 없었다.


그래서 처음 바뀌고자 생각을 고쳐먹었을 당시에는 마음이 꺽일 뻔 했다.


"애초에 고마움을 바라고 선행을 하면 안되지만."


이시우는 쓰게 웃으며 오늘 있었던 일을 훌훌 털어버렸다.


애초에 윤성현을 만난것도 과거 일을 청산하려고 만났었다.


"내일 아침일찍 노가다 나가려면 피곤하겠네."


할 줄 아는 거라곤 몸쓰는 것 밖에 없는 이시우로서 나름대로 노가다가 최고의 직업이었다.


이런 그가 봤을 때, 유은하는 아마 자신과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 확실하다.


어딘가 맹해보이는 행동과는 달리 겉모습은 부잣집 아가씨 같았으니까.


원래라면 접점이 없는 세계에 사는 두 사람이다.


"나중에 가끔 기억나겠네."


전화번호 교환을 했지만 절대 먼저 연락할 생각은 없었다.


-부스럭.


"어? 뭐지?"


혼자 생각에 잠겨서 집에 도착 할 때 쯤, 뒤에서 수상한 소리가 났다.


누군가가 달려가는 소리.


"쓰읍, 누가 미행이라도 한건가?"


의심스런 눈빛으로 소리가 났던 곳을 한참동안 바라보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 내가 어디사는 지는 누구도 모를텐데.


이미 부모와의 인연은 끊어진지 오래고 같이 어울리던 무리들과도 연을 끊었다.


"빨리 잠이나 자자."



#


"아니, 왜 연락을 안 받는 거야?"


유은하는 아무리 연락을 해봐도 안 받는 이시우 때문에 미칠 지경이었다.


한 번은 못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두 번, 세 번, 마침내 횟수가 10번을 넘겼을 땐, 일부러 연락을 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유은하에게 있어서 이시우란 존재는 모든 게 처음인 사람이었다.


자신을 구해주고 신경쓰이게 만들고 듬직해 보이는 남자가 어쩔 때는 귀여운 모습도 하고.


이 모든게 그녀의 첫 경험이었다.


'감히 내 첫 경험을 가져가 놓고 이렇게 버린다고?'


혹시 몰라 그 날 헤어지고 나서 이시우의 집을 알아낸게 다행이었다.


아니었으면 다시 만나기 힘들 뻔 했다.


"직접 찾아가자."


-타닥타닥


찾아가기 전, 그에게 작은 문자를 하나 남겼다.


'좋아해.'


#


그 날 밤.


고된 노동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한 이시우.


"음? 불이 왜 켜져 있지?"


혹시나 자신이 불을 안끄고 나갔나 생각했지만 그럴리 없었다.


황급히 집 문을 열어서 들어갔다.


"어? 이제 왔어? 많이 늦었네?"


"어라? 너, 유은하? 어째서?"


앞치마를 입고 자신을 반기는 유은하의 모습에 머리가 따라가질 못했다.


'어떻게?'


그런 의문과 별개로 상황은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왜 내 연락 안 받았어? 내가 몇 번이나 했는 지 알아?"


"아니, 그 보다 여기는 어떻게? 너 뭐야!"


"지금 그게 중요해?"


마치 자신이 모르는 사이 여자친구라도 된 것 마냥 행동하는 유은하다.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조금씩 다가오는 게 공포영화가 따로 없다.


생존 본능에 따라서 황급히 입에서 나오는대로 지껄였다.


"그게 일 하면 휴대폰 볼 시간이 없어서! 결코! 일부러 무시한 거 아니야. 내가 바빠서 못 본거지. 응. 사실 집에 돌아오면 연락할 생각이었어."


일부러 무시한 거 맞다. 2통째 왔을 때, 그냥 번호 차단을 해버렸다.


이시우의 필사적인 변명에도 유은하의 표정을 일절 변하지 않았다.


"그럼, 문자도 봤겠네? 내가 뭐라 보냈는 지, 말해봐."


"..."


"하나, 둘..."


문자? 시발, 번호 차단 했는데 그걸 어떻게 알아?


조금씩 다가오며 압박해오는 유은하에 속박이라도 된 듯이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셋! 얼른 대답안해!?"


"...미안."


유은하에게 솔직한 내 심정을 털어놨다.


덤으로 번호를 차단한 것 까지.


그녀는 시시각각 암울하게 표정이 변해가다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흐아아앙, 이 나쁜 새끼. 난 진심...이었는데...모든 게 처음 이었는데..."


"그, 휴지 줄까?"


이시우가 휴지를 뽑아서 그녀에게 건내줬다.


"옳지, 일단 코부터 풀자."


등을 두드리며 유은하를 천천히 달랬다.


"크흥! 나, 난...너무 좋아서, 이런 적 처음 이었단 말이야. 근데 연락도 안받고, 문자를 보내도 답장도 안하고."


이시우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음, 번호 차단해서 몰랐어. 미안해."


"이, 나쁜 놈아! 진짜 너무해, 연락을 안 받을 때마다 얼마나 상처 받았는지 알아?"


"크흠, 앞으로 연락 잘 받을게. 됐지?"


"아니, 여기서 살게 해줘."


유은하의 말에 이시우의 얼굴에 물음표가 생겼다.


다 큰 처자가 위험한 소릴.


이번에도 빨리 집에 보내려고 이시우가 말을 꺼냈다.


"시간도 늦었는데 헛소리 하지말고 집에 돌아가."


"싫어. 또 연락 안받을 수도 있잖아. 그러니까 여기서 살거야."


"아니, 그렇다고 여기서 사는 건 좀..."


"공짜로 살겠다는 건 아니야, 생활비 낼게."


"그게 문제가 아니라..."


이번에도 이 여자는 자신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지금의 완고한 태도를 봐서는 아무리 뭐라 말을 해도 들을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이상하게 고집이 센 부분이 있단 말이지.'


유은하를 가만히 쳐다보니 싸움이라도 거는 줄 아는 지, 똑같이 노려보고 있다.


이번에도 항복한 건 이시우 였다.


"그래, 일단 여기서 지내라."


"어? 정말!? 너, 무르기 없기다! 분명 말했어!"


뭐가 그리도 기쁜지 방방 뛰는 유은하를 뒤로하고 화장실로 갔다.


'그래, 여기서 버틸 수 있으면 버텨봐.'


비좁은 집, 매일 같이 나오는 이상한 벌레들.


거기에 앞으로 온갖 비호감적인 수작질을 벌일 예정이다.


저런 부잣집 아가씨는 아마 일주일, 아니 하루도 못 버티고 나가떨어지겠지.


누구나 백마탄 왕자님을 동경할 순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유은하는 머지않아 깨닫게 되겠지.


지금 저렇게 좋아하는 것도 일시적 현상일 뿐, 그 환상은 얼마안가 깨지게 된다.


'과거에도 그랬으니까.'


#


"도대체 엄마는 뭐가 좋아서 아빠랑 결혼한거야?"


"응? 우리 딸, 왜 그래?"


"아니, 둘이 전혀 안 어울리잖아."


"지수야, 조용히하고 밥 먹어."


"아빠나 조용히 해."


누굴 닮았는지 아주 지멋대로인 딸이다.


그것과는 별개로 은하와 내가 결혼한 건 거의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내 집에서 동거하겠다길래 온갖 싫어할 만한 짓을 해도 나를 좋아해 주었다.


"그게...어떻게 결혼했냐면..."


많은 일이 있었지만 이렇게 결혼해서 딸도 낳고 나름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다.


이거면 충분히 내가 바라던 미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