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충이라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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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의 어느날, 학교의 옥상에서 내가 좋아하던 여자아이에게 고백을 했다.


물론, "어... 미안, 우리 그냥 친구로 지내자..." 라는 형식적인 거절 멘트를 들었다.


사실 이렇게 될 거라고 어렴풋이 생각은 하고 있었다. 


이화연, 그녀는 2학년의 백설공주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다닐 정도로 예쁘게 생긴데다가 천성이 착한건지 


친구나 선생님들을 잘 도와준다. 그래서 그런지 이화연은 얼음 장미라는 별명을 가진 학생회장과 맞먹을 정도로 인기인이다.


반면에 나는 그냥 평범하다. 외모도 평범, 운동도 잘 하지 못하고, 모의고사 성적은 수학만 1등급을 맞을 수준이고, 나머진 전부 3~5등급을 왔다갔다하는


그저 그런 일반인 중 한 명이다. 


이런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마음을 품게 된건 역시 운동회 때 인원이 없어서 강제로 뽑힌 준비위원을 같이하고 나서부터 겠지.


사실 나 혼자서 준비위원을 하기로 하였으나, 역시 혼자서는 힘들거라고 도와주겠다고 나선게 화연이였다.


정말 고마웠다. 그래서인지 원래 예뻤던 얼굴이 더 예뻐 보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그건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그녀는 나를 찼고, 나는 차였으니까. 


다들 한 번 쯤은 겪는 실연이니까, 조금 늦게 겪은 거라고 생각하면서 가방을 챙기러 교실로 내려갔다.


... 교실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여자애들끼리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이화연 이런 불여시같은 년, 또 고백하게 만들고 갖다버린거야?"


"왜 찐따새끼들 갖고 놀다가 버리는게 가장 재밌는거잖아?"


어? 방금 화연이가 뭐라고 했지?


"내가 알려준거지만 넌 진짜 미친년이다. 벌써 몇 명째야?"


"아까 그 찐따까지 올해에만 7명?"


...이게 그녀의 본성이었나보다. 착한 척으로 사람을 홀려놓고... 그 후 그 사람에게 절망을 안겨주는걸 즐거워하는...


"야 그래도 아까 그 찐따는 좀 괜찮지 않았어?"


"그럼 니가 가질래?"


"그래도 찐따는 좀 아니지~"


"지도 그럴거면서 뭐야?"


"아 몰라~ 빨리 쥬시나 가자~ 목말라~~"


"4월에 무슨 쥬시야~ 추워~"


아... 대화가 끝나고 나오려나보다... 지금 마주치면... 앗,


"어... 얀붕아, 안녕"


"아... 안녕."


"...들었어?"


"어? 뭐를...?"


"아님 됐어, 잘 가~"


"어.... 응."


휴... 어떻게든 넘긴 것 같다... 오늘은 조금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좋아했던 여자아이한테 차이고, 그 여자아이의 본성까지 알게 되니, 너무 심란했다.


'도서관에 들러서 책이나 빌려볼까...' 싶어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 때,


"거기 잠깐, 멈춰." 하는 청아한 목소리, 그러면서도 기품있는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움찔, 하면서 멈춰섰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을 해봤다. 우리 학교에서 이렇게 목소리가 예쁜 사람은... 


"오늘은 야자 없는 날이라서 다들 일찍 집에 갔을텐데, 너는 여기서 혼자 뭐하는거야?"


역시, 학생회장이자 3학년 장인영 선배였다.


"어머, 얀붕이잖아? 거기서 뭐하는거야?"


사실 인영 선배, 아니 인영이 누나는 내 소꿉친구로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냈다.


"어, 잠깐 도서관에 들렀다가 가려고."


"나도 도서관 가야하는데, 같이 가자~ 집에도 같이 가면 되겠다!"


"아..그건 부끄럽다니까..."


"그러지말구~ 오랜만이니까~ 응?"


예쁜 외모를 가졌으면서도 다른 사람에게는 냉정하게 철벽을 쳐서 얼음 장미라는 별명까지 있는 인영이 누나지만,


왠지 나한테만은 한껏 풀어진 모습을 보이면서 다가온다.


"알겠어, 누나네 부모님, 아직도 출장?"


"응... 그러니까 오늘도 얀붕이가 해준 밥을 얻어먹어야겠는걸~"


"누나도 참, 남고생이 해준 밥이 뭐가 좋다고..."


"..남고생이 아니라 얀붕이라서 좋은것 뿐인데.."


"어? 뭔가 말했어?"


"으응, 아니야~ 자 빨리 책 빌려서 돌아가자~"


그렇게 집에 가는 중에 에프마트에 들러서 식재료를 사서 누나네 집에 가게 되었다.


뭔가 어두컴컴했다. 전에 왔을 때는 이런 느낌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누나, 뭔가 어두운데 불켜... 게흑!"


파직- 하고 무언가 내 목덜미에 닿았고, 그대로 기절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꿈이라도 꾼걸까, 라고 생각했지만 손목과 발목에 닿는 이상한 감각 때문에 눈을 떴다.


철컹철컹거리는 차가운 금속의 감촉, 손발이 수갑같은 것으로 묶여져 있었다.


"어라...? 이런게 왜 나한테...? 나는 분명 누나 집에 밥을..."


"어라, 얀붕아 일어났어? 역시 건강한 남자아이네~ 조금 더 누워있을 줄 알았는데~"


"누, 누나...? 이거 누나가 한거야...? 이거 빨리 풀어줘, 나 내일 학교가야된단 말야."


"... 학교? 그딴거 안가도 괜찮잖아. 싫어 안 풀어줄거야."


"누나... 억지부리지 말고..."


꿈틀, 하고 누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억지? 억지는 그딴 년이 있는 학교에 가려고하는 니가 부리는거 아니야?"


"누나... 그딴 년이라니...? 무슨 소리야?"


"니가 고백했던 그년 말하는거야 당연히...! 이화연 그 썅년...!"


...무슨 일일까 인영이 누나는 어디서 보고 있었기라도 했던 걸까...?


"그걸 어떻게..? 분명히 둘밖에 없는걸 확인했을텐데..."


"내가 학생회실에서 혼자서 뭐하고 있을거라고 생각했어? 교내의 모든 cctv를 보고있었어.

 물론 니가 비춰지는 화면만 찾아보고 있었어. 후후... 나한테 간단한 용건 전하려고 우리 교실 앞에서 쭈뼛거리던 모습도,

 친구들이 전부 다 야자째고 도망갔을때 혼자 남아서라도 공부를 하던 모습도, 전부 사랑스러워.

 근데... 오늘 갑자기 너랑 그 년만 단 둘이 옥상으로 올라가는게 보이더라고...? 그 더러운 년이... 너를 더럽히기라도 할까봐,

 그래서 몰래 지켜보고만 있었는데, 니가 시무룩해 보이는 표정을 짓는걸 보고 너한텐 미안하지만 조금은 안심했어. "


 "...누나, 그럼 도서실 앞에서 만난것도...?"


"맞아, 타이밍봐서 너가 혼자 있을 타이밍에 나타난거야. 정말, 그런 년보다 내가 있는데..."


"잠깐... 그럼 화연이는... 컥..."


배에 격통이 느껴졌다.


"그딴 년 이름을 아직도 부르다니... 정신을 못차린 걸까? 얀붕아... 너 지금 누구껀지 모르겠니? 

 넌 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

     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 

     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 

     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 

     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 "


무서웠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주륵-


"얀붕아...? 너 지금... 내 앞에서 지린거야?"


"보... 보지마...흐윽"


"얀붕아... 아무데서나 오즘을 지리고... 안되겠어. 앞으로 내가 조교시켜줄테니까, 각오해."


"시.. 싫어..."


그러자 누나는 한숨을 쉬더니,


"얀붕아... 왜 자꾸 이렇게 내 말을 안듣는거야? 혹시 그 년 때문이야? 그 년 때문이라면 걱정할 필요없어!"


라며 내 앞에 뭔가 동그란 것을 던져주었다.


데굴데굴... 굴러오다 움직임을 멈춘 그것은... 


하얀색바탕에 검은 동그라미.. 그 주변의 빨간 실선들. 안구였다.


"으.... 으아아아아악!!!! 웩, 우웨에엑!"


미친게 분명하다. 인영이 누나는 미쳤다. 내가 알던 그 인영이 누나는 없어진 것 같았다.


"인사해 얀붕아, 니가 잠시 눈을 돌렸던 화연이야. 물론 널 슬프게 했으니까 죽여버렸지만, 안구는 남겼으니까 괜찮지?"


"...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나한테...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아직도 모르겠어 얀붕아...? 너 누나한테 했던 말들 기억해? 얀붕이 너, 어른이 되면 누나랑 결혼하기로 했잖아?

 봐봐... 이거 녹음기... 벌써 10년째 잘 보관해두고 있어. 니가 나랑 결혼하겠다고 약속했던 그 말들, 잘 남겨두고 있었어.

 그리고 이거, 니가 그 때 풀로 만들어준 풀반지... 이것도 잘 보관해뒀어. 봐봐, 예쁘지? 응? 우리 결혼반지는 이걸 본떠서

 만들거야! 어때, 얀붕아? 맘에 들지? 내가 정말 좋지? 아니 사랑스럽지? 응? 응응? 응? 말해보라고 이 시발새끼야!

 나는 이렇게, 이렇게나 너를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는데 너는...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려?

 나랑 같은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심지어 고등학교까지 같은 곳으로 와버렸으면서, 나랑 같이 등교하는게 부끄럽다면서,

 나 몰래 일찍 학교에 가는 걸 모른 척 참아주는 것도 이젠 질렸어. 이미 너네 부모님과 협상했고, 우리 부모님한테도 허락은 받았어.

 그러니까, 우린 이제 부부야... 정말 좋지? 응? 얀붕이도 좋지? 내가 하나하나 전부 다 해결해줄게... 내가 너의 아내니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누나가 이렇게 나를 좋아했는지도 몰랐다. 아니, 애초에 알고는 있었지만 


모른 척 한거다. 누나는 분명히 호감 표시를 제대로 해왔다. 다른 남자에게 보여준 적 없는 모습들을 나한테만 보여줬다.


내가 누나를 배신한거다. 일단은 누나에게 사과를 하고, 제대로 얘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응... 내가 다 잘못했어 누나."


"잠깐, 누나가 아니라 여보겠지?"


"...응 여보. 그래도 나 학교에는 다녀야하지 않을까? 나 장래에 하고 싶은 일도 있는데..."


라는 나의 말이 무색하게도 아내에게 강제로 입술을 뺴앗겼다.


"응, 츄웃, 으붑, 후아아..." 


"아직도 그런 헛소리를 하는거야? 내가 방금 말했잖아. 하나하나 전부 다 내가 해결해주겠다고. 그러니까... 학교같은건 필요없어."


...틀렸다. 나는 이 집에 들어온 순간부터 누나에게서 도망갈 수 없다. 그녀의 함정에 보기좋게 빠져든거다.


"네가 여기서 사는 것도, 하고 싶은 일도, 하기 싫은 것도, 전부 전부 내가 해결해줄게! 물론... 야한 짓도. 아, 그래도 아직...

 그 년에게 고백했던 것에 대한 처벌은 받지 않았지?"


라며 그녀는 내 바지를 벗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