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arca.live/b/yandere/7351950 1

 집안 일과 애들 산책 등 못다 한 것들을 하니 금세 주말이 지나가버리고 월요일이 되었다. 서울에선 느끼기 힘든 지방 특유의 매서운 찬바람. 그 찬바람이 내 몸을 적시자 부르르 떨리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푸석푸석한 머리와 눈곱 낀 얼굴로 화장실로 들어가 대충 씻고 직장으로 갈 준비를 한다.
옷장에 가지런히 모셔져있는 밝은 군청색 양복을 하나 꺼내 입었다. 어, 잠깐?
"흠흠. 오늘따라 옷 냄새가 좋은데."
킁킁거리며 출근복 냄새를 맡아보니 굉장히 기분 좋은 향이 났다. 혹시 또 형이 다○니 많이 사용했나?
기분 좋은 냄새에 흥얼거리며 안경 닦을 때 쓸 천, 무선 이어폰, 등을 마지막으로 챙기고 내 방 밖으로 나와 엄마가 있는 안방으로 갔다.
그곳엔 침대에 누워 곤히 자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잠귀가 밝아 조금만 소리가 나도 눈이 팍 뜨는 엄마가 내가 옆에 있는지도 모른 체 곤히 자고 있었다.
약을 먹지 않으면 무기력증 때문에 움직이지도 못하고 계속 누워 있다. 그렇다고 약의 힘을 빌리면 움직일 수는 있지만, 또 그만큼 끊어야 하는 약을 먹는 것이기에 이것도 안 좋고, 저것도 안 좋은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다.
"다녀올게요."
고생만 한 주름진 손을 어루만지며 인사를 하고 나아지게 하는 건 어렵다 해도 더 나빠지게 하지는 않게 하겠다는 다짐을 하며 문밖으로 나왔다.
구두 뒷편이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헤라를 이용해 신발을 신고 끈을 묶고 있었다. 옆에는 자기도 데려가달라고 애원하는 하얀 푸들 또돌이와 그 녀석을 낳은 깜씨가 있었다.
"가냐."
그리고 그 옆에는 막내 꼴통을 안고 있는 형이 있었다. 이제 일어났는지, 눈을 뜬 건지 감은 건지 모르는 상태로 가만히 서있었다.
"응. 아! 맞다. 냄새 엄청 좋더라. 고마워. 신경 써줘서."
"내가 아니라 네 엄마가 했어. 비싼 양복은 아니어도 구린 냄새 없이, 구김 없는 옷으로 보내야 한다고 다림질한 거야."
"왜 또 그런 것을 해가지고... 가뜩이나 어깨 아픈 사람이 왜 힘을 써. 이렇게 해봤자 세심하게 보는 사람도 없는데."
"네 엄마잖아. 내 엄마가 아니라. 어? 맨날 우리 막내~ 막내 하면서 얼마나 신경 쓰는지 원. 정 그렇게 받기 싫으면 다음부터 하지 말라고 확실하게 말해."
"허. 무슨 소리를. 형 엄마도 맞거든?"
"나 엄마 없어 인마. 두 막내만 신경 쓰는 너네 엄마만 있지."
턱으로 찌르듯 안고 있는 꼴통과 나를 향해 쑥쑥 가리킨다. 예전부터 나만 심하게 챙기던 엄마와 아버지 때문에, "응. 난 엄마랑 아빠 없어. 저놈 새끼 엄마 아빠만 있어." 하면서 장난을 치는 사람이다. 형이 어렸을 때 어떻게 자랐는지를 들으면 삐뚤어지지 않고 엄마만을 생각하는 효자로 있는 것이 참 대단하다. 나라면 절대로 불가능할. 다른 사람이 나보고 부모 생각 끔찍하게 하는 효자라고 해도 절대로 아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아무튼, 잘 갔다 와라. 무슨 일 생기면 꼭 연락하고."
"걱정 마. 무슨 일 생기면 형한테 바로 연락할 테니까."
신발을 톡톡 아래로 차 신발 끈이 잘 묶였는지 확인하였다. 하도 오래 신다 보니 끈도 많이 헤지고 낡아서 새로 사야 할 것 같다.
"나 말고, 엄마한테 바로 하라고. 난 안 해도 되고 나중이어도 되니까. 알겠냐?"
"알았어. 그렇게 할게."
엄마와 아버지의 맞벌이로 내게 신경을 써주지 못할 때 형이 엄마를 대신해서 여러 가지들을 챙겨주었다. 사실상 낳는 것만 하지 않았을 뿐, 또 다른 부모님이나 마찬가지인 사람이라 가능하면 시키는 그 무엇이든 토 달지 않고 따르려고 노력했다. 자기 자신도 모자라게 받은 사랑을 그저 조금 더 어린 동생에게 아낌없이 주던 사람이기에. 내가 느끼기에 나란 녀석이 최소한 인간이라면 그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우산 챙겨. 서울 쪽은 저녁에 비 올 가능성 높다고 하니까."
"어."
서랍장에 넣어 보관된 우산 하나를 집어 현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끼이익!
"야."
"왜."
"누가 밥 먹자고 하면 먹고 늦게 와도 돼. 술자리라고 해서 꼭 술을 마시지 않아도 좋으니까, 자리에 어울리는 것도 괜찮고 또 조금은 마셔도 괜찮아. 그리고 좀... 밖에 돌아다니고. 알겠냐?"
아직도 졸린지 어눌한 말을 하여 다른 사람이 듣기에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를지라도, 난 다 알아듣는다. 부모님이나 마찬가지인 사람의 말이니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한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 신경 끄세요. 돼지 아저씨."
"시끄러. 인마. 빨리 가기나 해. 누가 되었건 술 때문에 일부러 거절하지 마라. 빨리 가라."
형과 애들을 향해 손바닥을 살짝 흔들어 보여주고, 문을 닫고 나왔다.
 아파트 문밖을 나와 지하철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퇴근 할때처럼 버스를 타고 갔다간 지각을 면치 못할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신체접촉 하는 걸 굉장히 싫어하지만 어쩔 수 없지 지하철을 타고 가는 것이 가장 빠르고, 늦지 않는 방법이니까.

 덜컹덜컹. 덜컹덜컹
언제나 그렇지만 사람이 꽉 차 만원이 된 지하철은 너무나 답답했다. 손잡이가 있는 쪽으로 가기엔 너무 자리가 비좁고 이미 선객이 있는지라 갈 수도 없고 쓸 수도 없어서 지하철 양쪽 문 중 비교적 덜 열리는 곳으로 자리를 잡았다.
또, 요즘 세상은 많이 뒤숭숭하기 때문에 일부러 양 팔을 머리 위까지 올리고 힘을 주며 버틴다. 최대한 다른 사람 비위 상하지 않게 절대 닿지 않을 곳을 찾고, 발에 힘을 강하게 줘서 정차해도 다른 사람 몸에 부딪히지 않게 집중한다.
끼이익!
무슨 일인지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몸의 균형을 많이 잃었다.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이기도 하고. 문제는.
"꺅!"
문 근처에 있던 여학생이 큰 흔들림으로 내 쪽으로 오고 있었다. 피할 자리도 없고, 또 넘어지려는 사람을 내버려 두자니 그건 너무 신경 쓰여서 못할 것 같아 팔을 붙잡고 넘어지지 않게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앞차와의 간격 조정을 위해 잠시 멈추었습니다. 승객 여러분께 양해 바랍니다.'
"안 다쳤나요?"
"네."
넘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당겼지만 힘 조절을 잘 못하여 내 가슴팍에 안기게 만들었다. 아, X때따. 개망했다. 이거 신고 들어가는 거 아닐까 하는 걱정뿐이었다.
그것과 동시에 다른 마음속에선 팔과 얼굴을 묻는 여학생에게 차마 "야, 사람 많아 가지고 부대끼는 것 때문에 짜증난대 좀 떨어져라."라고는 할 수 없었기에, 최대한 부드러운 어투로 말했다.
"그래요? 그럼 다행이네요."
다칠 일 조차 없던 학생이지만, 예의상 이렇게 말한다. 실은 그 정도까지 신경 써주지 않아도 되고, 그냥 무시하거나 그러려니 해도 되지만, 너무 심할 정도로 예의를 챙기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만약 반대편의 사람의 나였다면 어떤 기분일까? 하는 것에 대해 예의를 중시하다 보니... 이런 인간이 되었다.
근데, 얘는 시간이 지나도 가만히 있는 것이 수상하여 오만가지 생각을 다하고 있었다. 아 설마, 진짜 고소각 잡는건가 이거.
"죄송합니다."
그러다가 휙 몸을 빼 원래 있던 문 쪽으로 다가가 고개를 푹 숙이고 머리를 기대버린다. 하긴, 내가 저 학생이라면 나 같은 아저씨한테 안겨지면 기분 좀 안 좋지.
그건 그렇고, 성추행 같은 거로 신고는 안 들어가서 천만다행이다. 요즘 세상 무서운데 참 다행이야.
  

 회사에 도착하여 처리할 것들 좀 처리하고 원청에서 들어온 견적서를 확인하면서 이리저리 치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후우."
편의점 주먹밥 2개랑 에너지 음료로 대충 끼니를 때우고, 옥상에 올라와 사원들을 위해 비치된 의자에 앉아 잠시 쉬고 있었다.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 곳이기에 매캐한 연기는 많이 괴롭지만, 여기 말고 쉴만한 곳이 따로 없기 때문에 최대한 숨을 참으면서 머물고 있었다.
"우리 붕이야."
"네. 과장님."
한 손에는 종이컵, 다른 한 손에는 담배를 쥐시고 뻑뻑 피우면서 성큼성큼 내게로 다가오시는 과장님이 보였다. 흰머리는 있으시지만 머리는 안 까지신. 배불뚝이 아저씨같이 생기신 나의 과장님.
"이쁜아. 너를 어떻게 하면 좋으냐~?"
"예?"
오시자마자 하시는 말씀이 뭔가 꺼림칙하다. 아, 이거 아무래도 싫은 소리를 들어야 할 때인 것 같았다.
"난 너를 보면 너~무 안타까워서 맘이 너~무나 아파요. 어? 어떻게 해야 해?"
잔뜩 찡그린 얼굴로 고개를 돌려 후우~하고 담배연기를 뱉으시는 과장님을 보면 이 상황을 최대한 모면하기 위해 머리를 최대한 굴렸다. 잠깐만, 내가 오늘 원청 업무랑 샘플 몇 개 찾아드린 거에 대해서는 실수한 것이 없었던 거로 아는데. 아닌가. 놓친 것이 있었나? 하고 밥 먹기 전의 상황들을 차근차근 생각해보았다.
"어, 어떤 것 때문에 그러세요? 말씀해 주시면 지금 바로 고치겠습니다."
무엇 때문 이신것 인지는 잘 모르지만 일단 이렇게 말씀드리면서 시간을 벌어야 했다. 도저히 생각이 안 나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고요. 이쁜아. 내가 너라는 인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알려주랴? 매번 들어서 지겨울 테지만 말이야."
"어, 떤 거요?"
그러자 종이컵에 담뱃불을 지져 끄시며 나를 내려다보며 입을 여셨다.
"그래. 우리 붕이. 가방끈이 조금 짧아서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어벙 해지긴 해도 사전 같은 거나 매뉴얼 보고 뭔지 찾아내고 하는 거 좋고. 내가 '그거' 달라고 해도 '그거'가 뭔지 딱딱 맞춰서 편하게 해줘서 좋고."
"네. 감사합니다."
손가락에 스냅을 주시며 소리를 내신 다음, 과장님은 칭찬으로 말씀을 시작하셨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이 편하게 업무를 볼까 하면서 여러 가지 편의를 봐주는 '그 눈치'가 제일 마음에 들거든?"
"네."
'그 눈치'라고 말씀하신 것이 굉장히 마음에 걸리지만, 무엇 때문에 나를 부르신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예의상 실수한 것이 있었는데 내가 인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인 걸까.
"여기까지 왔으면 내가 무슨 말 할지 잘 알지?"
"......"
모르는 것에 대해선 함부로 말하지 않고 모른다고 말하는 편이기에, 이번엔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었다.
"근데, 왜 일머리랑 타인과 관련된 눈치는 그렇게 좋으면서, 왜 꼭 너 자신과 관련된 눈치는 하나도 없는 거냐?"
무슨 말씀이시지. 눈치? 눈치 없게 예의 없는 행동 한 적 있었나? 잘 모르겠으니 약간 힌트를 받는 게 좋겠다.
"아, 제가 눈치가 좀 모자라죠? 평상시에 유머감각도 좀 떨어지고 또, 저번에 실수한 것도 있..."
나를 낮추고, 다음엔 더 나아지겠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상황을 자주 모면한 적이 있었다. 보통 이러면 내 기분이 조금 상하는 것으로 상황이 종료되는 편이니까.
"아니, 그런 게 아니라고 인마. 혼내는 게 아니라 안타깝다고 인간아... 또 진지하게 받아들이네. 이 새끼 진짜."
혼은 내가 나고 있는데 울상은 과장님께서 짓고 계셨다. 말씀하시는 과장님의 얼굴을 보니 신경 써주시는 것에 비해 잘 못하는 것이 너무 죄송스럽다. 근데, 이렇게 말씀하시면 대답할 것이 아무것도 없어지는데...
"너. 연애 언제 할 꺼야. 아까워 죽겠어 진짜 너... 그 일머리 눈치 가지고 있으면서 말야. 어? 특히, 그 얼굴 가지고 사람 하나 없는거냐. 아깝지도 않냐?"
"그, 실은... 아! 사람들이 제가 맘에 안 들어서 그런지 딱히 그런 이야기가 잘 안 나오더라고요. 하하... 그래서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내가 생각하는 것이, 내가 여자일 때 남자인 나를 보게 될 경우를 생각하면 말 많고, 자기 비하적인 표현을 자주 쓰는 나는 매력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연애 대상으론 별로라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런 재미없는 인간이니까.
"그게 아니야. 이 화상아! 특히 넌 '못'이 아니라 '안'이잖아. 말 똑바로 해. 인마."
"..."
갑자기 화를 내시는 과장님에게 놀라 꿀꺽 침을 삼키고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어으! 어으! 어으으으! 내가 저 얼굴이면 우리 마누라가 매일 화장하고 집에서 반길 텐데."
"..."
얼굴 말씀이신가. 그렇게 잘난 편도 아닌데. 왜 그러시지.
"아니, 일이나 다른 사람한테는 그렇게나 배려하고 자기가 피해본 것이 있어서 힘이 들어도 괜찮다고~ 괜찮다고~ 하는 녀석이 말이야. 왜 이렇게 여, 자 만 관련되면 그렇게 선을 긋고 벽을 치고 다녀."
선? 벽? 그런 거 친 적 없는데요. 제가 그런 걸 왜 쳐요.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제가 아쉬운 사람인걸요.
"저, 선 긋고 다닌 적. 어, 없는, 데요? 벽도 안 쳤어요. 얼마나 틈이 많은데요."
"없다고?"
"예."
"없-다고?"
"예."
그 뒤엔, 아무런 말씀 없이 내 눈만
"아아아악! 미스 리!! 나 좀 도와줘! 얘 좀 어떻게 해 봐아아악!"
"왜요."
난간 쪽에서 담배를 피우시면서 슬쩍 보시는 이 주임님이 보이셨다.
"이 답답 화상 좀 사람 눈치 좀 심어주게 도와줘."
"전 포기했는데요."
"아, 왜~ 우리 꼬마 사람 만들어서 회사에 오래 짱박히게 하고 싶단 말이야."
애들처럼 칭얼거리며 자기보다 한참 어린 주임님께 어리광을 부리는 과장님. 아저씨가 저러니 조금 깬다.
"몰라요. 친아들도 아닌데 왜 이렇게 신경 써주셔요. 애 좀 내버려 두셔요. 자기 알아서 하게. 전 포기했거든요."
"으이씨. 손발도 안 맞아요. 저러니 미즈~어 리는 참."
"지금 미저리라고 하려고 했다가 꺾으신 거죠?"
"아, 아니? 아, 아닌데?"
"조심하세요."
양철 쓰레기통에 다 핀 담배를 버리고 내려가는 주임님께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하고 다시 과장님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입을 여시면서 내게 말씀하신다.
"아무튼. 네가 효자인 것도 잘 알고, 집 신경 쓰는 것 잘 알아. 근데, 내가 너의 부모님이나 가족이 아니라서, 100% 정답은 아닐지는 몰라도 말이야. 내가 부모라면 자기 자식이 지금의 너처럼, 그런 식으로 자기 수발만 들고 조용히 사는 거. 너무 마음 아파.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 차라리 조금 자기네들 신경 좀 덜 써도 좋으니 너의 인생을 살면 좋겠다고 생각하실걸? 나도 애들 아빠잖아? 너를 보면 좀 그래."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저... 효자 축에 못 끼고 또, 진짜로 선 긋지도..."
"어으. 시벌! 이 화상! 어른이 하는 말에 하나하나 토 달지 마. 이 눈치 없는 새끼야."
"..."
또 한 번 버럭 화를 내시면서 위압을 주시는 과장님을 보면서 어깨를 움츠리고 말았다.
"그니까 말이야."
"예."
탁탁!
내 어깨에 손을 올리시고 힘을 꽉 쥐시는 과장님.
"잘~ 하라고요. 제발~ 응?"
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대로 팔에 힘을 주시면서 나를 흔드신다. 어. 머리 흔들린다. 너무 세게 흔드시는데.
"어이씨. 뼈밖에 없어. 살 좀 찌우고 어깨 키울 겸 운동 좀 하면 완전 슈퍼스타 되겠구먼."
그리곤 어깨에 올려져 있던 손을 놓으시면서 한숨을 푹 쉬시곤 터벅터벅 걸어가셨다.
"아. 빨간 줄 들어간 게○스콘 당긴다. 내려가서 하나 뜯어야지 원."
그리고 놓으시면서 옥상 계단을 통해 내려가셨다.
아무리 들어도 잘 모르겠다.
나는 그렇게까지, 잘나고 멋진 인간이 절대로 아닌데. 아무리 생각하고 효자랑 거리가 멀고 업무에도 모자란 게 많이 보이는데... 왜 다들 나한테 칭찬하는 거지.
절대 그런 인간 아닌데.
 겁도 많고 시커먼 인간이라 내가 나 자신이 싫을 정도인데... 


점심 이후엔 또 원청에서 전달받은 건수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다 보니 금세 퇴근시간이 되었다. 월요일은 야근하는 날이 거의 없다 보니 정시 퇴근도 가능하고 좋은 날이다.
"끄응. 하아. 퇴근이다."
회사 문밖에서 기지개를 펴면서 계단을 통해 내려가고 있었다.
그동안 무음으로 해놓은 탓에 어떤 메시지가 와있었는지 몰랐는데 스마트폰 안에는 형이 보낸 애들 사진이 여러 장 있었다. 오. 우리 못난이들 너무 못생겼어. 나이도 많은데 아직도 아기들처럼 다리도 짧고 귀엽게 생겨서 참... 이쁘다.
차악!
"꺽!"
누군가가 내 어깨를 손바닥으로 강하게 내리쳤다. 놀란 나머지 입을 벌리고 뒤를 돌아보니, 나와 같이 퇴근하러 나오신 과장님이셨다.
"으응. 우리 이쁜이. 누가 열심히 하트 보내는 지도 모르고, 핸드폰 보면서 계속 웃고 있죠. 아주. 응?"
"누가 하트를 보내요? 저한테요?"
"응. 그럼 너 말고 여기 누가 있니? 이쁜아? 아주 자동적으로 벽치고 살죠. 아주? 어? 예전부터 하트를 뿅!뿅! 하고 아주 그냥 커다랗게 보내는데 말이야. 강아지 사진 보면서 그렇게 벽을 꼼꼼히도 쳐요?"
"누가 그렇게 봐요? 저를 요?"
"그걸 내가 어떻게 말해 인간아. 눈치가 있으면 네가 찾아 이 새끼야."
퇴근 시간대에도 업무 이외의 것으로 혼나는 나와 현재 이 상황을 많이 답답해하시며 훈계하시는 과장님. 이럴 땐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냥 '네'라고 말하는 것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니까.
"지금 너 그렇게 웃는 거. 너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사람이 보면 너 연애하는 거로 보여. 아니지. 너 이 새끼. 지금껏 알면서 벽친 거지? 그렇지. 일할 때 눈치가 그~렇게나 좋은데 모를 수가 있을까?"
"그럴 리가요. 엄마랑 형이 보내준 저희 집 애들 사진 보는 거 말곤 거의 없는걸요."
"그래. 그러니까 넌 못 사귀는 게 안 사귀는 거라고. 그렇게 열심히 벽을 치시잖아요?"
"그, 그렇지도 않은데..."
"반말?"
"아, 아니요 아니요. 절대로 그런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과장님."
침을 꼴깍 삼키며 손사래를 치며 절레절레 고개와 양손을 흔들었다. 불만이 많은 배불뚝이 아저씨 마냥 주머니에 손을 넣으시고 여덟 팔자처럼 다리를 세우고 계셨다.
"야 인마. 넌 네 얼굴 보고도 다른 사람이 쉽게 접근할 것 같냐? 화상아. 얼굴이 잘난 것도 종류가 있어요. 단순하게 나누면 말이 쉽게 붙는 사람이 있고, 얼굴 보고 말 붙이기 너~무나 어려운 사람도 있지요. 그중에 넌 후자고요. 아저씨... 어떻게 자기 얼굴 값어치를 모르냐?"
"사이비는 잘만 붙는걸요. 또, 연예인들에 비해 서면 못났잖아요."
"으헝.. 얘랑 일 얘기하면 참 쉬운데, 이런 얘기 할 때면 너무 짜증 나... 우리 아들내미처럼 날 빡치게 만드는 게 삶의 이유 같아."
"죄송합니다. 과장님."
"야. 지금 네 나이 때는 말이야. 돈, 능력 그딴 거 하나도 필요 없고 지금 그 얼굴 페이스 하나만 가지고도 여자 여러 명 후리고 다녀도 될 정도야 너. 너. 너 말이야."
"하지만, 그런 문란한 연애는 하고 싶지 않은걸요."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한 사람만 사랑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여러 명이 나를 좋아한다고 해도 딱 한 명만 선택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이니까.
"아으. 예능도 다큐로 받아들이는 새끼. 나 그냥 갈래. 내일 보자. 으휴."
예전부터 좋은 조언을 해주시지만, 내가 그 부응에 보답해드리지 못하자 마음 상해하시면서 가시는 과장님.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아도 나를 그런 눈을 보는 사람은 하나도 보지 못하였다. 있을 리가 없는데. 내 성격을 알게 되면.
 잘났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긴 했어도, 나 자신이 느끼기에 잘났다고 느껴지지 않아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았다. 남들이 그렇다 해도 나 자신이 느끼기에 와닿지 않았으니까. 차라리 이 얼굴을 내가 아니라 형이 가졌더라면 더 잘 써먹었을 거라는 생각에 너무 아쉽다는 생각을 한다.

 띠링!
 그 순간,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에 메시지가 왔다는 진동과 함께 알림음이 울렸다. 

 그럴 일은 거의 없겠지만,
만약에, 술 약속이라면...
 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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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눈치 없는 인간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