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틀고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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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의 조명은 보통 붉은 색 계열의 빛을 띤다.

 

붉은 색은 정렬과 힘의 색이며 식욕을 돋우는 역할까지 하기에 홍등가紅燈街와 술집 같은 곳에서 주로 쓰는 색이다.

 

그것은 이곳 동네 바에서도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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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빛을 반사해 얼굴이 홍조를 띠고 있는 것 같은 두 남녀가 칵테일 두 잔을 사이에 두고 앉아있다.

 

얼굴이 굳은 여자와 뭔가 곤란한 듯 고개를 숙이며 발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남자.

 

연인 사이인 둘 사이에선 이름 모를 긴장감까지 느껴지고 있다.

 

여자한수연은 남자에게 말했다.

 

그래서 왜 부른 거야 오빠.”

 

무언가 겁에 질린 듯 말하기를 주저하며 안절부절 거리던 남자 김서준은 말했다.

 

너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 알고 있어?”

 

한수연은 조용히 남자를 바라보았다무슨 말을 하는 거냐고 묻는 눈빛으로김서준는 그 매서운 눈빛에 고개를 내리깔며 마저 이야기 했다.

 

친하게 지내던 여자 친구가 죽었어사인은 목 절단범인이 힘이 약한 건지 깨끗하게 자르지 못하고 여러 번 쳐서 죽였나봐어찌나 잔인하게 죽었는지 모자이크 된 사진만 봐도 참혹하더라.”

 

그녀는 여자 친구라는 말이 약간 불편했지만여기서 여자 친구는 여자 사람 친구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기에 계속 말해보라는 듯 가만히 듣고 있었다티가 거의 나지 않는 인상을 쓰며.

 

아직 끝 아니야 또 있어내가 말하던 그 선배 알지?”

 

선배 누구그렇게 말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

 

너한테 집적거리다가 차이고 나한테 와서 난리치던 선배 있잖아이민성 기억 안나?”

 

자신에게 집적거리다가 차이고 그녀의 남친인 서준에게 온갖 개지랄을 떨었던 이민성꽤나 강렬한 기억이여서 그가 3개월 전에 실종 되었다는 것까지 수연은 금세 기억해냈다.

 

그 선배그 선배는 실종 된 거 아니야?”

 

어제까지 실종상태였잖아그런데 오늘 여기 동네 저수지 아래에서 발견 됐데시체의 배에 구멍을 뚫어놓고 공기를 다 뺀 상태로 유기한 게 우발적인 범죄가 아니라 계획범죄 같데.”

 

이상하긴 하네.”

 

수연은 서준의 표정이 평소와 다름을 알 수 있었다소심한 그는 평소에도 무언가에 겁을 먹고 있었는데 어째서인지 오늘 그의 표정에는 공포가 서려있었다.

 

내가 한 걸로 의심하는 건가?’





수연은 블러디 메리를 한 모금 마셨다호불호가 꽤나 갈리는 칵테일이었지만수연은 블러디 메리를 좋아했다수연은 딱 한 모금만 마시고 서준에게 말했다.

 

뭐해 너도 한잔해내가 쏘는 건데 안 먹어?”

 

으… 응

 

확실히 오늘따라 태도가 이상하다평소의 그가 보호 욕구가 샘솟는 귀여운 초식동물 같았다면지금은 비장의 한 수를 숨긴 것 같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수연의 본능이 그녀에게 경고한다서준이 지금 뭔가를 숨기고 있다고.

 

그리고 이렇게 뭔가를 숨길 때 마다 서준은 발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습관이 있다.

 

그리고 지금 서준의 발은 가만히 있지 못했다.

 

술을 잘 못 먹는 서준은 수연이 시킨 롱 아일랜드 아이스티를 벌컥벌컥 마셨다겁이 났는지 아니면 아무것도 모르는 건지 독한 칵테일을 쭉 들이킨다.

 

그 결과 양이 많은 칵테일임에도 불구하고잔에는 반 밖에 남지 않았다.

 

마신 서준은 무언가 생각났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수영에게 말했다.

 

잠깐 화장실 좀…

 

허둥거리며 화장실을 향해 급하게 달려가는 서준분명 겁먹은 채로 다른 사람에게 전화라도 하겠지.

 

역시 귀여워그래도 다른 여자랑은 전화 안 했으면 좋겠는데…

 

수연은 걱정하며 가방에서 핸드폰과 비닐을 꺼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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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빨개진 서준은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급하게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바로 받는 전화 반대편에서는 걸걸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린다이서준의 부랄 친구인 이진혁이다.

 

서준아괜찮아살아있지어디야?”

 

걸걸한 목소리와는 다르게 서준의 생존여부부터 살피는 이진혁.

 

어 아직은 살아있어지금 바 화장실이야

 

그래 다행이다어때 그 애 맞는거 같아?”

 

사실 이번에 수연과 만나자 한 것도 그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일의 증거그러니깐 살인 사건의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이 지역에서 벌써 4건이나 일어난 연쇄 살인은 모두 서준 근처에서자신이 아는 사람에게 일어났다는 것에 의심을 품은 서준은 이 사실을 대학에서 범죄심리학을 전공 중인 이진혁한테 말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아챈 이진혁과 서준은 서준의 주변인들을 조사하기 시작했고.

 

범인이 힘이 약해 시체를 여러 번 쳐 죽인다는 것으로범인이 여자임을 추론한 다음 조사를 거듭한 결과.

 

마침내 범인이 수연인 것 같다는 결론까지 다가왔다.

 

하지만 심증은 있지만결정적인 증거는 없었다.

 

그 결정적인 증거를 찾기 위해 이진혁와 서준은 작전을 하나 짰다.

 

서준이 수연과 술을 마시며 시간을 끌 동안 이진혁은 수연의 집을 조사하기로.’

 

맞는 거 같다지나치게 침착하고당황하는 것도 없고놀라는 것도 없고그냥 다 알고 있는 것 마냥 별 반응이 없다.”

 

그래 이쪽도 지금 네 여친 집 앞이다금방 전화 주마꼭 받아라.”

 

그래 잘 찾아봐라.”

 

거의 다 진행 됐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 서준은 생각했다.

 

착하던 수연이 왜 그런 걸까.

 

어째서 그런 짓을 한걸까.

 

서준은 그 사실을 곧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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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좀 늦었지.”

 

핸드폰을 바라보던 수연은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치. 528초가 많이 늦은 거긴 하지시원하게 눴니?”

 

어 배가 살살 아프더라고.”

 

아 그러시구나.”

 

수연은 뚱한 표정을 짓다가 뭔가 생각난 듯 웃으며 말했다.

 

“2차는 내 집 가서 할래?”

 

서준은 그 말에서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당황했지만당황하지 않은 척 말했다.

 

아냐이거 맛있네여기서 더 먹자.”

 

그래잘 골랐지.”

 

어 맛있어 역시 수연이가 내 입맛을 잘 알아.”

 

수연은 웃으며 생각했다.

 

걸렸다.’

 

그녀의 외통수에 서준은 걸려버렸다.

 

자신도 모른 채 거미줄에 걸린 나비의 신세가 되었다.

 

맛있으면남은 거마저 마셔 더 시키게.”

 

서준은 그 말에 남은 반을 벌컥벌컥 마셨다금세 큰 유리잔은 투명한 바닥을 비췄다.

 

모든 게 전부 그녀의 계획대로다.

 

수연은 술을 다 마시고 얼굴부터 목까지 빨개진 서준에게 말했다.

 

잘했어서준아.

 

어…?”

 

몸에 이상함을 느낀 서준은 당황했다.

 

내향적인 네가 하나뿐인 부랄 친구에게 다가가서 말건 것도멍청하지만 꽤나 쓸모 있는 계획을 짠 것도 좋았어특히 결론까지 도달한 건 아주 좋았어맨날 내가 공부 가르치던 서준이가 이렇게 똑똑해지다니 말이야.”

 

그게 무슨 소리야…?

 

진작 간파 당한 계략정신이 멍해진 서준은 그녀를 쳐다만 보고 있었다.

 

다만 조금 아쉽네.”

 

뭐가.”

 

아직도 모르겠어좋아 하나하나씩 집어가며 알려줄게.”

 

수연은 검지를 폈다.

 

첫째우리 집 번호는 내 생일인 1211이 아니라 네 생일인 0728이라는 점.

 

?”

 

우우웅!

 

서준의 주머니에서 전화가 울린다아마 이진혁이 집 비밀번호가 틀리다는 사실을 알고 전화 한 걸 것이다서준은 그 전화를 받지 못했다.

 

둘째비밀을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

 

그 말을 들은 서준이 다리를 책상이 흔들릴 정도로 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누구와 어떤 것을 먹고 있는지 조심하지 않았다는 점.

 

수연은 텅 빈 잔을 들어 서준에게 잔의 바닥을 보여주었다.

 

바닥에는 하얀색의 가루가 물기를 머금은 채로 침전 되어 있었다.

 

이 바의 붉은 등 문에 보지 못한 모양이다.

 

그리고 그걸 본 서준은 자신의 몸이 이상한 이유를 알았다하지만 너무 늦었다.

 

이게 뭔지 궁금해?”

 

서준은 감기려는 눈을 억지로 뜨려고 하며몰려오는 잠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손을 꼬집었다.

 

플루니트라제팜이란 건데 술이랑 먹으면 효과가 더 좋다그래도 안심해 안전하게 적정량을 보고 넣었으니깐.”

 

플루니트라제팜.

니트로-벤조디아제핀 계열의 강력한 최면 수면제로데이트 강간 약물로도 쓰이는 약이다.

 

그리고 남자라고 안전할 거라면서다른 사람이 주는 술을 아무 생각 없이 막 먹으면 안되지나니깐 다행이지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으면 넌 장기 다 뜯겼을 걸?”

 

서준은 감기는 눈으로 수연을 바라봤다수연은 그런 서준의 등에 손을 올리고 속삭였다.

 

괜찮아잠깐 잠드는 거 뿐이야잘자좋은 꿈… 아니지 내 꿈 꿔사랑해 서준아

 

서준은 결국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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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혁은 서준이 전화를 받지 않자 이상함에 곧장 뛰어갔다혹시 가는 길에 전화가 올까 벨소리의 소리를 크게 했으나 전화는 오지 않았다.

 

육상부이기도 했던 진혁은 열심히 뛰었다정말 열심히

 

하지만 늦었다.

 

그 두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두 술잔이 있었다.

 

붉은 빛을 반사해 붉게 빛나는 술잔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