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드업이 한도끝도 없이 길어져서 미안한데 어쩔 수가 없다;;

계기를 다 안만들어 놓으면 전개가 안돼.

참고 보는 얀붕이들 어서오고.


프롤로그 : https://arca.live/b/yandere/8161916?target=all&keyword=%ED%9A%8C%EA%B7%80&p=1 

1편: https://arca.live/b/yandere/8221543?p=5 

분기-후배 1편: https://arca.live/b/yandere/8239033?p=1

분기-후배 2편: https://arca.live/b/yandere/8241102?mode=best&p=10 

분기-후배 3편: https://arca.live/b/breaking/8356453 

분기-선배 1편: https://arca.live/b/yandere/8233455?p=3

분기-선배 2편: https://arca.live/b/yandere/8253154?mode=best&p=9 

분기-공시생 1편: https://arca.live/b/yandere/8297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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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진아?"


"네 선배?"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순진한 얼굴로 내 옆자리에 앉아 빙글빙글 웃으며 나를 쳐다보는 얀진이를 보며 나는 그녀에게 들리지 않게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수업. 내가 추천해준 수업이 아닌 것 같은데?"


"그게 말이죠, 저두 선배가 추천해주신 과목 신청하려고 그랬죠. 근데 하필 마지막 수업을 신청하려는 데 수강신청 사이트가 딱! 튕기는 바람에… "


마치 내가 물어봐 주기를 기다렸다는 듯 조잘조잘 얘기하는 얀진이.

몰랐다면 믿었을 정도로 그럴 듯한 거짓말이다.


"…그래서 이 과목을 신청했다고?"


"네"


"1학년 1학기에 빅데이터 수업을 말이지?"


"네!"


"빅데이터가 뭔진 알고?"


"SN…S?"


"…"


"비…비트코인!"


"아직 수강 정정기간이지? 당장 다른 수업으로 바꾸자."


"아 선배에~ 이 수업 바꾸면 시간표 죄다 갈아엎어야된단 말이에요. 그냥 이 수업 들으면 안돼요? 선배가 모르는 거 알려주시면 되잖아요 네?"


나는 넉살 좋게 달라붙어오는 후배를 떼어냈다. 신입생이 2학년 필수 과목을 듣는다는 것만 해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하물며 그 대상이 눈에 띄는 외모를 가진 1학년 후배. 전 강의실의 이목이 나와 후배에게 집중된 것을 느끼며 나는 곤란함을 느꼈다.


'올해 조용히 공부만 하긴 글렀군.'


비록 저번 생과 이번 생 통틀어 단 한 번 밖에 연애를 못해본 나지만 눈치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분명 얀진이는 내게 호감을 표하고 있다. 내가 그녀를 거절하던 받아들이던 간에 과 내부에서 내 이름이 한동안 오르내릴 것이다.


'거기다가...'


 나는 뒤를 돌아보다 아내와 눈이 마주쳤다. 아내는 지금 사귀고 있는 3학년 선배와 함께 강의실 맨 뒷자리에 앉아있었다. 아내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내는 나와 얀진이가 사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수업이 끝나고 강의실을 나가느라 분주한 동기들 사이를 지나 나는 아내를 불러세웠다.


"이얀순, 잠깐 나 좀 봐."


"내가 왜?"


"잠깐이면 돼."


내가 조금은 초조해하며 말하자 아내의 남자친구인 선배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내 여자친구한테 볼일 있냐? 너 우리과 후배지? 너 이름 뭐야?"


"...오빠."


나를 몰아세우듯 말하는 선배를 아내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린다.


"금방 따라갈께요."


"얀순아 이런 애 얘기를 뭐하러 들..."


"오빠."


"...너 나중에 보자."


아내가 다시 한번 말하자 선배는 나를 위협하는 말을 남긴 뒤 자리를 떴다.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나는 아내에게 설명했다. 나와 얀진이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고, 네가 오해하는 거라고.


"그래서?"


내 설명을 다 들은 아내의 대답은 시리도록 차가웠다.


"그게 나랑 뭔 상관인데? 네가 누구랑 사귀던 말던 나랑 상관없다고 이제."


아내는 내가 생전 본적이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를 내려다보는 듯한 우월감이 느껴지는 미소를 보며 비로소 나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전에 도서관 앞에서 아내가 보인 미소의 의미, 방금 전 얀진이와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까지. 아내는 나를 보며 안도감을 느끼고 있던 것이었다.

나도 과거를 버렸다고, 자기만 나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겠지.


"아니, 나는 안사귈 꺼야."


잠시 생각을 정리한 나는 말을 이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했을 지 몰라도 나는 우리 애들, 우리의 결혼생활이 굉장히 소중했어. 적어도 나는 몇 개월만에 그 모든 걸 없었던 일로 하고 새로운 사람을 사귀지는 않을 꺼야. 나쁜 건 너야. 가정을 버린 건 너라고. 나를 똑같은 수준으로 생각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불쾌하거든."


아내는 키우던 개에게 물리기라도 한 듯한 표정이었다. 연애할 때부터 결혼할 때까지 그녀에게는 언성조차 높인 적 없는 내가 자신을 정면으로 비난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는 것 같았다.

아내는 나를 보며 무슨 말을 하려는 듯 몇 번이나 입을 잠시 벌렸다 닫기를 반복했다. 나는 그녀가 말할 기회를 주고 싶지 않았다. 더이상... 한때 내가 사랑했던 여자가 추해지는 것을 보기 싫었다.


"뭐 같은 과라 서로 안보기는 힘들겠지만... 다시는 아는 척하지 말자 우리."


그렇게 이별을 통보한 나는 멍하니 있는 아내, 아니 얀순이를 버려두고 강의실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