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을 들어주는 은여우 님께서

 

 

 

 

 

아, 죽고 싶다. 

 

나는 샤프심을 손가락으로 부러트리며 중얼거렸다.

 

봄이 왔다. 꽃이 피고 날씨가 따뜻해졌다. 그렇지만, 뭐가 달라졌지?

 

인생은 무의미하고 나는 늘 지루하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대체 사람은 왜 살고, 고통 받고, 발악해야 하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며 기차 바깥을 보았다. 산과 나무, 다 똑같다. 볼 필요도 없었다.

 

“불러놓고 쓸데없는 짓이나 안 시켰으면 좋겠는데.”

 

어제, 어머니로부터 연락이 왔다. 절연하고 5년만의 일이었다.

 

솔직히 무시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그럴 수 없었다. 

 

무언가가 날 끌어당기고 있다.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느껴졌다.

 

기차가 멈추며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나도 그 뒤를 따라 기차에서 내렸다.

 

“오랜만이구나.”


“…….”


5년 만에 본 것이지만 어머니는 달라진 곳이 전혀 없었다.

 

“따라 오거라. 중히 해야 할 일이 있어.”


“5년 동안 뭐하고 지냈는지 묻지도 않는군요.”


“물어볼 필요도 없지.”


나는 어머니의 자동차에 올라탔다. 운전은 어머니가 직접 했다.

 

“여기도 여전하네요. 산, 나무, 끝.”


“무언가를 억누르기 좋은 곳이지.”


“뭐요?”


“아무것도 아니다.”


왠지 어머니가 평소랑 조금 달라보였다. 긴장했나? 하지만 날 보는데 긴장할 이유가 있을까?

 

“설마 무당일 물려받으라는 거면-”


“넌 못 한다. 그 무엇도 존중하지도 믿지도 않으니까.”


잘 아는군. 나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30분 뒤, 자동차가 멈췄다. 주변을 둘러보니 산의 중턱쯤 올라온 것 같았다.

 

“여기서부턴 걸어야 한다. 너, 날붙이나 위험한 물건은 없지?”


“없어.”


“좋아. 너는 입도 뻥끗 하지 마라. 여기서 보고 들은 건 전부 비밀이야.”


“만약 말하-”


“그땐 널 죽일 거다.”


어머니가 아들한테 할 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저 눈빛. 애정이라곤 조금도 없는 저 눈은 진실만을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뒤를 따라 산을 올라갔다. 대낮인데도 이상할 정도로 음침하고 어두운 산이었다.

 

“옛날에, 한 임진왜란 즈음일 게다. 그 때 우리 조상님들은 어떤 업을 맡게 되셨다.”


“뭐?”


“무당일은 연막, 그러니까 가짜 신분에 불과해. 나는 한 번도 무당이었던 적이 없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무당이 아니라고? 그럼 그 사당이며 굿은? 그 모든 게 가짜였던 말이야?


“그럼…….”


“우린 어떤 것을 묶어놓고 그것을 지키는 일을 대대로 이어받았다.”


우린 어느 절벽 앞에 도착했다. 어머니가 절벽 옆의 바위를 꾹 누르자, 돌 끌리는 소리와

 

함께 절벽의 바위가 움직이며 통로가 드러났다. 비밀통로라니, 이게 대체……?

 

“솔직히 너한테 맡기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달리 선택지가 없더구나.”

 

“지금 무슨 귀신이나 요괴 이야기라도 하는 거야? 그런 게 실존할 리 없잖아.”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


어머니가 앞장서서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냥 도망칠까, 고민하다가 따라가기로 했다.

 

“그것은 여태껏 존재한 적 없는 괴물이었다.”


스마트폰을 켰지만 어째서인가 불빛이 희미했다. 마치 동굴이 빛을 모두 흡수하는 것 같았다.

 

“홀로 산을 만들고, 천지를 뒤흔들고, 세상의 법칙마저 왜곡시키는 게 가능했어.”


어머니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 뒤를 쫓아가니- 완전한 어둠이 나타났다.

 

“어, 어디 있어? 아무것도 안 보여!”


“기다려. 눈이 어둠에 적응하면 보일 게야.”


그 말대로, 한 1분 정도 기다리니 점차 주위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춥고 심장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한 장소였다.

 

“이걸 붙잡기 위해 어마어마하게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지. 그리고 우리 조상님들은

 

이것이 다시 세상 바깥으로 튀어나가지 못하도록 지키는 일을 맡아왔다.”

 

나는 보았다.

 

여우, 어둠 속에서도 반짝거릴 정도로 하얀 털을 가진 여우였다.

 

그러나 분명 사람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여자애? 몸집이 작았다. 그리고 쇠사슬과

 

부적에 구속되어 바닥에 엎드려 누운 상태였다. 여우였지만 여우가 아니었다.

 

이 무시무시한 중압감은 결코 여우라는 생물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은여우라고 불렀다.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여우는 절대 아니지.”


“대체 뭐야……?”

 

숨을 쉴 수 없었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손발이 부들부들 떨렸다.

 

내가 지금 꿈을 꾸는 건가? 아니, 이건 현실이다. 나는 정신을 붙잡으려고 눈을 질끈 감았다.

 

“존재하는 것만으로 사람의 정신을 뒤흔들고 형언할 수 없는 공포를 안기는 존재…….”


“나, 난 나갈 거야! 내가 저런 걸 어떻게 감당해!?”


차가웠다. 목에 닿은 것, 처음엔 뭔지 알 수 없었지만 그건 칼이었다.

 

“못 하겠다면 여기서 죽어라.”


“뭐……?”


“미안하지만 너나 나한테 선택권 따윈 없다. 내 뒤를 이어 저걸 붙잡아놓지 않으면

 

세상이 엉망이 될 게야. 역병, 지진, 해일……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의 재앙이 닥치겠지.”

 

“그러니까 내가 그런 걸 어떻게 하냐고!? 당신이 그러고도 엄마야!?”


“엄마이기 이전에, 아니 사람이기 이전에 업을 맡은 이로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다.”


진심이다. 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안 하겠다고 대답했다간 바로 죽일 셈이다.

 

“자, 하겠느냐?”


“……왜 하필 나인데…….”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면 나도 다른 사람을 찾아봤을 게야.”


“씨발, 씨발! 맨날 이런 식이었어. 좋든 싫든 당신인 맨날 이딴 식으로 나한테 강요했다고!”


그래서 도망쳤다. 이런 생활도 싫었고 엄마도 싫었다. 여기에 추억 따윈 남아있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아!? 얼마나 비참하고 고독하게, 고통스럽게 살았는지!”


“알 게 뭐냐. 우리한테 개인의 행복 따윈 어찌되어도 좋은 문제다.”


“미쳤어……미쳤다고! 대체 왜 이딴 말도 안 되는 일을 내가 왜 해야 하는데!!”


그 때였다.

 

쇠사슬 소리가 들렸다. 그 후, 그것이 일어섰다. 비틀거리며, 기이한 신음을 흘리며.

 

“너야? 드디어 온 거야? 이제 날 안아줄 거야?”


“불경한 것. 조용히 해라!”


“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쉬잇.”


그 순간, 어머니의 목 뒤로 검은 손이 나타나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으읍!?”

 

움직일 수 있는 건가!? 지, 지금이라도 도망쳐야-


“나, 기다렸어. 너 맞지? 거기 있잖아, 응. 너한테 말하고 있어. 멈춰.”

 

발이 굳었다. 마치 접착제로 붙여놓은 것처럼 발바닥이 떨어지질 않았다.

 

“말도 안 돼, 봉인된 상태에서도 이런- 읍! 으흐흡!”

 

“곡아, 우리 귀여운 곡아. 이거 답답해. 풀어줄래?”


“……그럴 순 없어.”

 

그리고 내 이름은 곡이 아니다. 이 녀석은 누군지 몰라도 나랑 다른 사람을 착각하고 있다.

 

“날 놓아줘. 다신 안 돌아올게, 다신 안 오겠다고 약속-”


“세상이 싫지?”


그것이 말했다. 붉은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반짝거렸다.

 

“나 알아. 넌 싫어해. 사람도 싫고 세상도 싫고 너 자신도 싫고 다 없어져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해. 맞지? 이루어줄게. 네가 뭘 원하든 내가 해줄 수 있어.”


“듣지 마! 저걸 풀어줬다간 돌이킬 수 없게 돼!”


어머니가 겨우 소리쳤다. 풀어주면 안 된다. 나의 이성이 속삭였다.

 

“한 마디만 하면 돼. ‘널 풀어줄게’라고.”

 

“……약속…….”


이게 과연 먹힐지 안 먹힐지 모르겠지만, 나는 말했다.

 

“내 말에 따르겠다고 약속하면…….”

 

“응, 약속할게. 나는 너의 것. 너는 나의 것. 그러니 거짓말도 속임수도 없어.”


“안 돼! 그만, 넌 지금 감당 못 할 짓을 저지- 읍! 푸흡!”


왠지 모르겠지만 나는 저것이 솔직하게 말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차피 난 끝났다. 

 

세상이고 사회고 다 싫었다. 나 자신도 싫고, 솔직히 다 귀찮고 짜증만 난다.

 

그러니.

 

이젠 다 끝내도 되지 않을까?


“알겠어. 널 풀어줄게.”


쇠사슬이 풀렸다. 기다렸다는 듯 쇠사슬이 부스러져 가루가 되었다.

 

“드디어.”


그것이 천천히 내 쪽으로 걸어왔다. 작은 몸이었다. 소녀의 몸처럼 보이면서도 어른의

 

몸처럼 보이기도 했다. 얼굴은 한 번도 본 적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마치 미(美)라는 개념을 형상화한 것처럼, 비현실적으로 예쁜 얼굴이었다.

 

“안 돼, 안 돼! 신이시여, 이럴 순 없어!”


“너, 우리 곡이한테 나쁜 짓 했지? 그렇지? 그럼 벌 받아야겠네?”


검은 손들이 바닥에 솟아나, 어머니를 붙잡고 어둠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비명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잠잠해졌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달았을 땐 이미 모든 게 끝난 뒤였다.

 

“하……하하하하……아하하……나, 나 이제 죽는구나. 그치?”

 

웃음이 나왔다. 너무 무서운 나머지 웃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우습고 무서웠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녀가 날 끌어안았다. 차가웠다. 마치 얼음을 껴안은 것 같았다.

 

“너무 오랫동안 기다렸어. 네가 보고 싶었어. 정말, 정말로.”


“이건 꿈이야. 그래, 악몽이야…….”


“악몽이길 바래?”


그럼 그렇게 해줄게.

 

그녀가 말했고, 나는-

 

 

 

 

 

 

 

 

 

*****

 

 

 

 

 

 

 

 

자명종 소리가 들렸다. 벌써 출근 시간이 됐나?


뭔가 안 좋은 꿈을 꾼 기분이 들었다. 굉장히 두려운……무언가를 본 것 같았다.

 

“망할 점장 새끼가 지랄하기 전에 출근해야지.”


……어라?


아침밥이 준비되어 있었다. 갓 지은 밥에 생선 구이에 된장국도 있었다.

 

이상했다. 일단 우리 집엔 생선이 없었다. 게다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반찬들도 있었다.

 

“누가 이걸……? 뭐야? 누가 이런 걸 준비한 거야?”


“일어났어?”

 

“으와아악!?”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화들짝 놀라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누, 누, 누구야!?”

 

“악몽이었으면 좋겠다고 했잖아, 다음부턴 그냥 좋은 꿈으로 해달라고 부탁하지 그래?”


그것이 있었다. 악몽에서 본 그것이었다. 그 여우, 아니 여우를 닮은 ‘무언가’였다.

 

“꿈이 아니었어.”

“아니, 꿈이었어. 그렇지만 난 현실이야. 그건 현실이면서 꿈이었어.”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꿈이면서 꿈이 아니라니?

 

“얼른 밥 먹자. 응? 그리고 놀자.”

 

“너……너는 뭐야. 넌 대체 뭐냐고!?”


“네가 원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 그게 나야.”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그것과 마주보고 식탁에 앉아있었다.

 

“네가 제일 좋아하는 걸로 준비했어. 생선에 된장국. 맛있겠지?”


“아니, 난 그다지 안 좋아하는데…….”


“그래? 그럼 뭐가 먹고 싶은데?”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았지만, 시험 삼아 한 번 말해봤다.

 

“나는 국수가 먹고 싶어.”


“그럼 그렇게 해줄게.”


밥이 국수로 변했다. 대체 언제 변했는지 모를 정도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떻게……?”

“그건 중요치 않아. 곡아, 우리 못해본 일이 너무 많아. 그치?”


“내 이름은 곡이 아니야.”


“넌 곡이야. 왜냐하면 약속했으니까.”


그게 무슨 뜻일까. 물어봐도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대답이 나올지 확신할 수 없었다.

 

“날 어쩔 셈이야?”


“뭘 어째?”

“그, 내 조상님이 널 봉인했다고…….”


“그거? 괜찮아. 어쨌든 지금이 중요한 거야. 너랑 나, 우리 둘이 같이 있는 거 말이지.”


그것이 웃었다. 나는 웃지 못했다, 도저히 웃을 기분이 아니었다.

 

“네가 원하는 무엇이든 해줄게.”

 

“뭐든지?”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전부.”


웃어야할까, 울어야할까. 도저히 감을 못 잡겠다.

 

이건 함정일지도 모른다. 여차하면 이 녀석이 내 목을 날려버릴지도-


“안 날려. 내가 우리 귀여운 곡이를 왜 다치게 하겠어?”


“생각을 읽은 거야?”


“기분 나빠? 그럼 안 읽을게. 난 네가 좋아하는 것만 할 거야.”


진짜다. 이건 꿈이 아니다. 정말로 내 앞에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걱정됐다. 이 녀석을 믿어도 되는 걸까? 애초에 뭐든지 가능하고

 

딱히 위험하지 않다면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봉인될 필요도 없었을 터였다.

 

“너는-”


“쉬잇.”


그녀가 손가락으로 내 입을 막았다.

 

“네가 알아야 할 건 하나뿐이야. 나는 너의 것이고, 너는 나의 것이라는 거. 

 

서로가 서로를 가지면 아무 문제도 없을 거야. 넌 원하는 걸 말해주기만 하면 돼.”

 

“…….”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괴물이, 나만을 위해 힘을 쓰겠다고 말했다.

 

믿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치 않다. 죽더라도 그저 그뿐이다.

 

어차피 세상엔 믿을 것도, 중요한 것도 없으니까.

 

“그럼……네 이름을 가르쳐 줄 수 있어?”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어. 그렇지만 넌 날 이렇게 불렀어.”


호은.

 

그것, 아니 그녀가 말했다.

 

“앞으로 호은이라고 불러줘.”

 

 

 

 

 

 

 

 

 

 

 

슬럼프가 왔다. 그리고 슬럼프를 해결하는 방법은 더 많은 글을 쓰는 것뿐이다.

당분간 또 노잼 소설만 잔뜩 쓰겠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된 은여우는 실존하는 설화다.

진짜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