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此で、入学式を終ります。』
"이것으로, 입학식을 마치겠습니다."

짝짝짝- 하고, 그 말이 끝나자 2층의 내빈석에서 박수 소리가 들려 왔어.

「何だっけ。入学式の内容が全然思い出せない。。。」
'뭐였지. 입학식의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아...'

얀붕이는 분명 체감상으로는 몇십 분밖에 지나지 않은 듯한 감각을 느꼈지만, 은색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을 때는 벌써 한 시간 이십 분 정도가 지나 있었어.

게다가 누가 쳐다보는 듯한 느낌과 이상하게 불편한 감정에 연설이나 입학식의 내용에 집중도 제대로 되지 않아 기억도 나지 않았고.

『皆様は、皇国の未来を宣揚し、導いていく貴重な人材であることで、その能力を思う存分発揮してください。』
"여러분은 황국의 미래를 선양하고 이끌어 나갈 귀중한 인재들이니, 그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여 주십시오."

연설 중에 유일하게 기억나는 것은 그 말 한 마디 뿐이었어. 교장이었는지, 다른 누구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사람이 말한 연설 중 일부분이었지.

얀붕이는 딱히 그 말에 감흥을 느끼지 못했어.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감흥을 떠나 어떠한 느낌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집중을 하지 못했다고 해야 하겠지.

집을 나와 학교로 향할 때부터 마음 속에 있던 그 불편하고도 무거운 감정이 사이온지에 의해 수면 위로 떠오른 데다가, 2층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내려다 보는 감각마저 들어 입학식에 집중을 할 수 있을 만한 조건이 아니었으니까.

「確か、案内通りなら入学式が終わった後は直ぐ家に帰って、翌日から登校するって言ってたよね。」
'분명, 안내대로라면 입학식이 끝난 후에는 바로 집에 돌아간 후에 바로 다음날부터 등교한다고 했었지.'

얀붕이는 이제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감정만이 온 몸에 휩싸여 있었어. 이 무겁고 불편한 감정도, 누군가가 쳐다보는 듯한 시선도 집으로 돌아간다면 전부 없어질 것 같다고ㅡ 추측해 보았으니까.

가쿠란을 입은 입학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저마다 돌아가는 것을 보고, 얀붕이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어.

『あ。柳くん、お宅にお帰りですか?』
"아. 야나기 군, 집으로 돌아가시는 건가요?"

자리를 일어나 걸음을 옮기려던 얀붕이를 멈춰 세운 것은 사이온지였어. 입학식의 시작 전과 다름없이 친절한 말투였지.

『はい。今日は少し休憩を取りたいからです。』
"네. 오늘은 조금 휴식을 취하고 싶어서 말이죠."

얀붕이는 이제 얼어붙는 감각을 느끼지 않고 말했어. 이미 한 번의 대화로 조선인인 걸 들키지 않았다는 확실한 증명에 얀붕이는 사이온지와 대화할 때 최소한 얼어붙는 듯한 공포는 느끼지 않게 되었지. 물론 일본어는 여전히 완벽하게 구사하고 있었어.

『そうなんですね。もし、失礼で無ければ一緒に帰宅しても良いですか?』
"그렇군요.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ㅡ 함께 귀가를 해도 괜찮을까요?"

얀붕이는 사이온지의 말을 듣자 조금 당황했어. 갑자기 처음 만난 자신과 같이 귀가를 한다니, 상당한 의문이 들었지. 하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얀붕이는 차분함을 유지하며 대답했어.

『駄目な事は有りませんが、然して私と一緒に帰宅されるんですか?』
"안 될 것은 없지만, 어째서 저와 함께 귀가를 하시려는 건가요?"

『私は此の辺は初めて来て見たので道が良く分から無いんです。 其れに。。。』
"저는 이 근방은 처음 와 보기에 길을 잘 알지 못하거든요. 게다가..."

사이온지가 하는 말을 천천히 들으며 얀붕이는 어느 정도 납득했어. 길을 잘 몰라서 같이 가 달라 한다면 최소한 역까지는 안내해 줄 수 있었지. 확실히 이 분쿄는 길이 복잡해서 얀붕이도 처음엔 자주 헷갈렸으니까.

『私達は同じ学友なので、談笑していると、お互いについてより深く知る事がで出来ますから。』
"저희들은 같은 학우니까, 담소라도 나누다 보면 서로에 대해서 더 많이 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사이온지의 그 말과 미소를 보고, 얀붕이는 진심으로 어쩔 줄 몰라 했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분에 넘치는 감사함과 오만 가지 생각이 겹치기 시작했어.

어쩌면 저렇게나 친절히 대해 줄까. 나 같은 거에게 이렇게 호의를 베풀어 줘도 괜찮은 걸까? 학우, 학우라니ㅡ 조선에 있을 때 중학교의 학생들도 날 동급생으로 여겨 주지 않았는데, 가장 가깝게 지내며 서로 학문을 배우는 학우라니. 어쩌면 저리도 자비로울 수 있을까.

전혀 거짓으로 보이지 않는 그 미소를 보며 얀붕이는 감사하다는 마음 말고는 들지 않았어. 조선인인 자신에게-물론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이런 분에 넘치는 호의를 베푸는 사이온지를 진심으로 학우로, 자신의 친구로 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はい。良いです。幾らでもお話ししながらご案内します。』
"네, 좋아요. 얼마든지 이야기해 드리며 안내해 드릴게요."

얀붕이는 살짝 입가에 미소를 띄워 보았어. 사이온지처럼 눈을 빛내며 보이는 밝은 미소는 차마 따라할 수 없었지만ㅡ 최소한 그의 친절에 보답하고 싶다는 마음에 약간이나마 미소를 지어 보았지.

『有難う御座います。柳くん。』
"고마워요. 야나기 군."

『どういたしまして。』
"천만에요."

사이온지의 고맙다는 말에는 정말로 거짓 없이, 얀붕이와 학우가 되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이 담겨 있었어. 얀붕이는 그 분에 넘치는 친절에 마음속으로 수없이 사례하며, 같은 가쿠란을 입은 사이온지와 함께 강당을 걸어서 빠져나왔어.



『学友。。。』
"학우..."

그리고 방금 전, 2층에서 1시간 내내 얀붕이만을 내려다보던 소녀는 강당을 빠져나가는 학생 두 명을 바라보며 조용히 중얼거렸지.

『私もそろそろ帰らないと。 家へさー。』
"나도 슬슬 돌아가야겠어. 집으로 말야ㅡ."

후우, 하고 얕은 한숨을 쉬며, 소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붉은 국화 무늬가 새겨진 기모노와 긴 흑발을 휘날리며 천천히 출구로 향했어.

매화를 그린 우키요에(浮世絵)바로 밑의 출구를 향해 소녀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강당을 빠져나오기 시작했어.

붉게 피어오른 매화와 같이, 자신도 아름다우며 얀붕이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여자가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얀붕이와 사이온지는 거리를 걸으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어. 어디 사는지와 같은 평범한 주제부터, 좋아하는 과목, 싫어하는 것, 중학교, 어떻게 입학했는지나 앞으로의 미래와 같은 조금 진지한 주제까지 대화를 하며 천천히 학우가 될 서로를 알아 갔지.


『柳くんは、然して此の高校に入学しましたか?』
"야나기 군은, 어째서 이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셨나요?"

그 질문이 나온 것은 얀붕이가 어느 중학교를 나왔는지-얀붕이는 물론 적당히 근처의 중학교 이름을 댔지만-와, 둘이 같이 다니는 의학부에 대한 대화가 끝난 직후였어.

『先生が此の学校に進学する事をお勧めしました。』
"선생님이 이 학교에 진학할 것을 추천하셨어요."

얀붕이는 꾸밈 없이 사실을 말했어. 분명 중학교 때 교사에게 제국 고등학교에 입학하라는 말을 들었던 것은 사실이었고. 물론 스스로 선택한 건 아니지만 얀붕이에게는 끔찍한 생활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으니까.

『私は自分で此の学校に進学する事に決めました。 両親も応援して下さって頑張れたんです。』
"저는 제 스스로 이 학교에 진학하기로 결정했어요. 부모님께서도 응원해 주셔서 열심히 했고요."

사이온지는 미소 지으며, 자신의 부모가 도와 준 일들을 하나씩 천천히 말했어. 얀붕이는 스스로 진학하겠다 결심하고 노력한 사이온지가 대단하다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 얀붕이에게는 부모가 응원해 준다는 것이 너무나도 부러웠어.

말도 없이, 1등을 받아 왔을 때도 미국으로 떠나며 역으로 버릇을 고치라 하던 자신의 부모와는 너무나도 대조적이었으니까. 자신이 낳은 자식을 사랑하며 아끼는 사이온지의 부모는 얀붕이에게 정말로 뛰어난 사람들이었어.

『私のお父様は医者で、お母様は薬局で働いています。失礼で無ければ、柳くんのご両親様の仕事について聞いても宜しいでしょうか?』
"저희 아버지는 의사이시고, 어머니는 약국에서 일하신답니다. 실례되지 않는다면, 야나기 군의 부모님께서 어떤 일을 하시는지 물어도 괜찮을까요?"

사이온지는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아버지를 동경해 의사가 되기로 결정했다는 말과 함께, 얀붕이의 부모님에 대해 물어보았어. 상당히 조심스럽고 부드러운 말투였지.

얀붕이는 사이온지의 강한 결심을 마음속으로 칭찬하며, 그저 가장 높은 수준의 성적을 요구하는 의학부를 생각 없이 택한 자신을 조금 부끄럽다 여기기도 했지. 물론 얀붕이가 읽고 완벽히 통달한 최고 수준의 전문 서적들은 의학서가 월등히 많았기에 선택이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기도 힘들었지만.

그리고 양친의 이야기를 듣자, 어떻게 말해야 할지 얀붕이는 머릿속으로 고민했어. 얀붕이는 그 사람들을 부모로 여기지도 않았고 그들도 얀붕이를 자식으로 대우하지 않았지만 일단은 사회적으로 친자 관계를 맺은 상태이니 최대한 중립적으로 이야기하기로 했어.

『お父様は中枢院に勤務して、お母様は新聞の文芸部分に短い和歌等を投稿しています。』
"아버지는 중추원에서 근무하시고, 어머니는 신문의 문예 부분에 짧은 와카 같은 것을 투고하고 계세요."

얀붕이는 그들을 칭찬하지도 비난하지도 않고 사실만을 이야기했어. 부친의 근무처가 조선을 착취하는 수뇌부인 조선총독부 중추원이라는 것과 모친이 투고하는 것은 와카가 아니라 조선을 선동하는 불쏘시개밖에 되지 않는다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았지.

『お二人共凄い方たちですね。 一度お目にかかりたいです。』
"두 분 다 대단하신 분들이시네요. 한 번쯤 만나 뵙고 싶어요."

물론 그 사실을 모르는 사이온지는 그저 얀붕이의 양친을 대단하다고 생각할 뿐이었어. 중추원을 일본의 내각이라 생각했고, 와카를 투고한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며 미소 지었지.

『今は二人共米国に行って居るので、暫くは会う事が難しいそうです。』
"지금은 두 분 다 미국으로 가 게셔서, 당분간은 만나기 힘들 것 같아요."

얀붕이는 '당분간' 이 아니라 '영원히' 만날 수 없었으면 좋겠다고 어렴풋이 생각했어. 어쩌면 그들도 그렇게 되기를 바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그 이후로도 얀붕이와 사이온지는 여러 대화를 나누다가, 마침내 사이온지는 목적지인 역에 도착하자 얀붕이와 작별을 고했어.

『それでは、また明日に会いましょう、柳くん。お疲れ様でした。』
"그러면, 내일 보도록 해요, 야나기 군, 수고하셨어요."

사이온지는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고, 내일 만나자고 말하며 고개를 숙여 작별 인사를 했어.

『西園寺くんもお疲れ様でした。お気をつけてお帰り下さい。』
"사이온지 군도 수고하셨어요. 조심히 살펴 들어가세요. "

얀붕이도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손을 흔들어 사이온지에게 작별 인사를 했지. 이내 사이온지는 전차를 타기 위해 천천히 역 안으로 걸어 들어갔어.

그 모습을 보고 얀붕이는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불편하고도 무거운 감정이 무엇인지 마침내 깨닫게 되었어.



『貴方は。。。』
"당신은..."

얀붕이는 자신의 집의 문 앞에 서서 누군가- 바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소녀를 보았어. 저게 누구지? 어디서 만났더라- 조용히 기억을 더듬다가, 이내 그녀가 누군지 기억하게 되자 살짝 흠칫했어.

『あら。』
"어라."

얀붕이의 집 문-야나기(柳)라는 명패가 달린-앞에 선, 제국 고등학교의 강당 2층에서 얀붕이를 지켜 보고, 그 전에도 찾아와 그 구슬을 주었던-

검고 긴 머리와, 붉은 국화 무늬가 새겨진 기모노를 입은 소녀는 얀붕이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어.

『久し振りですね、柳さん。私を覚えていますか?』
"오랜만이예요, 야나기 씨. 저를 기억하시나요?"

 



이내, 얀붕이는 자신의 방 안에 둔 붉은 국화 무늬의 유리 구슬이 뇌리에 떠오르며 소녀까지 완벽히 떠올린 뒤 한 가지 사실을 알아챘어.

이제 자신은 무언가, 어디에선가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