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뉴스에서 나오는 여러 정보가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느껴질 때 말이다. 특히나 그런 뉴스가 해외 소식일 때는, 마치 게임 설정을 읽는 것 마냥 신기하게만 느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만약, 그 뉴스의 주인공과 내가 엮이게 된다면 어떨까? 그것도 어디 선한 주인공이 아닌, 온갖 정치적 공세와 법적 공방에 휘말린 이슈적 존재와 말이다.


 ‘스턴톤 시티 유력 시장 후보 제니퍼 카포네, 비리 의혹 있어…’


 ‘아리안델 연합과 루시 연방 무역협정 체결… 양국 관계 개선되나?’ 


 ‘제니퍼 카포네, 폭력 단체 오르간 패밀리와의 관계 부정… 모두 근거 없는 헛소리라고 일갈’


 ‘스턴톤 시티 당국, 시내 문화 예술 활동 지원 사업 추진… 공화국 문화사업 진출 이점 있나?’


 ‘제니퍼 카포네, 언론사 데일리 썬 고소…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해 강력히 항의할 것’’


 ‘유력 시장 후보의 불출마 선언… 아리안델 연합의 정치 지형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뭐, 대충 이런 뉴스들 말이다. 사실 이것도 그나마 점잖은 것들만 모아 놓은 거고, 좀더 찌라시적인 것들까지 모아보면 정말 온갖 허무맹랑한 소리들로 가득한 사람이다.


 제니퍼 카포네, 아리안델 연합 수도 스턴톤 시티 시장 자리까지 넘보는 유력 정치인. 하지만 그 실체는 연합 내 대형 마피아 조직 오르간 패밀리의 거물급 간부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청부 살인, 뇌물 공여, 밀수, 마약 유통… 뭐 대충 온갖 것에 손을 댄 그런 인물이란 말이지.


 오, 근데 왜 그런 사람이랑 내가 엮인 걸까? 이야기가 상당히 복잡하다. 사실 지금도 이게 뭔 상황인지 모르겠다. 난 평상시처럼 알바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고, 내 애마를 막 호버바이크 보관소에 주차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지직! 하고 나서 정신을 차려보니 여기 이곳 어두컴컴한 방에 갇혀 있었다.


 염병, 좆됐네. 딱 그 생각이 드는 순간 문이 열렸다. 그리고 거기에서 들어온 게 바로 그녀, 제니퍼 카포네였다. 아직도 그때 생각하면 오금이 저려온다. 문이 딱 열리고 묵직한 튼튼해 보이는 안드로이드들이 여럿 들어오더니 그 사이에서 시가 연기를 풍겨오는 그녀를 본 적이 있는가? 뭐라 말하기 어려운 포스가 있었는데, 이건 직접 보는게 아니면 뭐라 설명할 수가 없을 것이다.


 잠시 간의 침묵, 그러니까 딱 30초 정도가 지난 후, 깊은 숨결과 함께 연기를 뿜어낸 그녀가 말하기를,


 “당신, 사정이 있어서 그러는데 당분간 내 밑에 좀 있어야 하겠어. 자세한 사정은 이따가 말해줄 테니 괜히 탈출한다고 이상한 짓 하지마. 여기 이 로봇들이 당신을 지켜보면서 이상행동을 계속 감시할 테니까. 경호 모델이라서 손속이 좀 거칠 수 있어. 어디 뼈 하나 날려 먹고 싶지 않으면 가만히 있어. 알겠어?”


 하고는, 내 대답은 듣지도 않은 채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지금 나는 여전히 갇혀 있다. 희미한 LED등 불빛이랑 침대, 테이블만 있는 이 어두침침한 공간에서 안드로이드들의 뜨거운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으니 참으로 좆 같은 상황이다.


 아 시팔, 나 도대체 뭐 때문에 잡혀 온거지. 내가 저 아가씨한테 무슨 죄를 지었다고. 애초에 나는 저어기 동방에 찌그러진 나라의 취업 못한 공돌이 새끼고 제니가 비록 지금은 쫓겨났다지만, 나랑 동갑내기면서 스턴톤 시장 자리까지 노린 존나 쩌는 인간인데…


 시이팔, 나 여태까지 잘해줬다고… 공항에서 제니 처음 만났을 때 두리번거리고 있던 거 보고 말 걸고 도와주고, 우리 나라에 휴가 온거라길래 마침 방학이어서 가이드도 해주고, 물론 돈은 제니가 다 냈다지만 어쨌든 여기저기 나도 그동안 몰랐던 온갖 관광지들 쏘다니면서 알려줄 것도 많이 알려줬단 말이야… 휴가 끝난 뒤에도 자주 연락 하고 지내긴 했는데, 내가 그동안 뭔 잘못을 했다는 거야…


 제니가 샤워할 때 화상통화 켜진 거 본 것 때문에? 그건 제니도 웃고 넘어는데? 애초에 그건 샤워실에 폰 놔두고 화상통화 온라인 시킨 것도 까먹은 제니가 문제지. 얘가 그런 거 까먹을 성격이 아닌데 왜 항상 샤워할 때 그걸 켜 놨을까…


 대학 졸업하고 알바하느라 바빠서 제니 연락을 몇 번 씹어서? 물론 그 때마다 제니 표정이 별로 좋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끝나고 나서 항상 다시 전화 걸었다고. 오히려 그때는 제니가 경제적으로 지원을 해주겠다고 하도 난리를 피워서 내가 더 곤란했지. 


 아니 진짜,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러는 거지. 대학원 가겠다고 성실하게 알바 해서 돈 모으고 있었는데… 제니도 나 뭐하는지 알고 있었을 텐데 도대체 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시팔 뭐라도 해봐야 한다. 알바자리 그거 어떻게 구한 건데, 이렇게 날려 먹을 수는 없다. 다행히 여사장님이 마음씨 좋은 분이셔서 며칠 독감 때문에 도저히 움직일 상황이 아니었다고 말씀을 드리면 어떻게, 이해해주실 거다. 설마 기절한지 수십일이 지났다거나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생각이 자꾸만 엉키고 꼬일 무렵, 한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내 폰과 백팩, 그때 알바 갔다 오면서 가지고 있던 그것들이 내가 누워 있던 침대 아래에 보관되어 있던 것이다. 


 내 보물 1호… 다행히 어디 깨지거나 그런 거 없이 멀쩡하구나. 폰 건드리는 정도로는 안드로이드들도 반응을 안 하는 것 같으니 얼른 필요한 정보를 확인해야겠다.


 어디, 날짜는… 염병 벌써 2일이나 지났네? 부재중 전화는, 사장님이 15건? 오 세상에, 좆됐다. 시발 이번 알바는 진짜 잘리기 싫은데. 그리고는 친구 놈 전화 3건, 그리고는 잡다한 광고들…


 그게 다다… 인터넷도 안되고 당연하지만 통화도 못 하는 이상, 내 폰은 시계나 게임기 이상의 역할을 할 수가 없다. 비싼 폰들이야 양자 통신이니 뭐니 해서 특수시설이 아닌 이상 다 통신이 가능하다지만, 내꺼는 구닥다리 구형 광통신 체계라서 그냥 깡통일 뿐이다.


 아, 그러고보니 배경화면이 제니 사진으로 바뀌었다. 예전에 제니랑 관광지에서 단둘이 찍었던 건데, 그때 제니가 너무 가까이 다가와서 부끄러웠을 때 사진이다. 그것 말고도 다른 사진들도 다 제니와 찍었던 사진들로 가득하다. 뭔가, 뭔가 잘못됐다…


 “얌전히 잘 있었어 당신? 어디 부러지지 않은 거 보니 괜찮은 모양이네? 아, 그거 보고 있는 중이었구나? 어때? 그때 기억 떠오르니까 당신도 기분 좋지?”


 바로 그때 문이 다시 열렸고, 아까보다 기분이 더 좋아 보이는 제니가 들어왔다. 목소리도 훨씬 부드럽고, 무엇보다 얼굴에 미소가 걸려있다. 지금 뭔가 말하면 들어주지 않을까?


 “제니? 어, 아까는 내가 막 깨서 너한테 뭐라 말을 못 했는데. 여기 지금 어디야? 나는 왜 끌고 온거고? 나 알바해야 되는데 좀 풀어줄 수 있을,”


말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그녀의 얼굴이 무섭도록 내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한 손가락을 조용히 내 입에 가져다 대더니, 쉿, 하고는 다시 떨어졌다. 그 기세에 하던 말도 다 잊어버렸다.


 “당신, 이런 좋은 날에 그런 말로 분위기 망칠거야? 아까 전에 내가 한 말 못 들었어? 당분간 내 밑에 있어야 한다고. 사정이 있어서 그런거니까 이해해줘. 알바 같은 건 잊어버리고. 그런 년 밑에서 당신이 눈치 보면서 일할 필요 없으니까.”


 그러면서 한 손으로는 자상하게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은은한 담배 냄새와 커피 원두 냄새, 그녀의 살내가 섞인 퇴폐적이고 진한 냄새가 한 차례 코끝을 스쳐 지나가더니, 다시 또 한번 제니의 입이 열렸다.


 “내가 따로 손을 쓰지 않아도 될 거라고 믿어. 당신은 유능한 남자니까 내가 말하는 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고도 남을 거야. 아무 짓도 하지 말고 있어. 아, 그래 계속 여기에 있으니 당신도 불안하겠지. 지금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은 다 끝냈으니 당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가자.”


 “제니,”


 다시 또 한번, 그녀가 슬픈 듯한 표정을 짓는다. 또 한번 그녀의 퇴폐적인 손길이 내 입술을 지긋이 누르며, 말을 막아버린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뭔가 말을 하고 싶다면 나에 대한 얘기만 해줘. 나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나와 무엇을 했는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한테 무엇을 받고 싶은지 말이야. 그리고 또 하나, 그 입에서 다른 여자들 얘기는 하지 말아줘. 이정도는 잘 지킬 수 있지?”


 어… 진짜… 진짜 이게 무슨 상황이지? 무작정 제니에게 끌려가고만 있지 뭐라고 말 하나 하지 못 하고 있다. 제니가 지금 뭐라고 말하는 건 지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아 여기야. 이 빌딩이 보안에는 좋지만, 당신 같은 멋진 남자가 있기에는 여러가지로 부족한 점이 많아서 말이야. 우리 집에 당신 방을 마련해 놨으니까, 당신은 편하게 가면 돼.”


 그리 말하는 그녀의 손길에 끌려 들어 간 곳은, 빌딩 옥상에 대기하고 있던 틸트로터 수송기였다. 어느 틈에 안전벨트까지 매고는 그대로 수송기가 이륙해버려, 나는 빛나는 밤의 도시의 상공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여기는…”


 “당연히 스턴톤 시티지. 우리 집에 간다고 했잖아. 당신, 아직 잠이 덜 깼나 보네?”


 창 밖에 어지러이 비치는 네온사인과, 무수히 많은 항공택시, 호버바이크, 도시 곳곳에 보유하고 있는 홀로그램 전광판까지, 한눈에 보기에는 너무도 눈이 부신 이 도시는 익숙한 곳이었다.


 아 그래, TV든 게임이든 영화든 간에, 워낙 많은 곳의 배경이 되는 초강대국, 아리안델 연합의 심장부라 이 말이다. 자본주의의 성지, 힙스터들의 고향, 정보의 중심지


 “뭘 그리 계속 봐? 어디 재밌는 거라도 보여? 계속 그것만 보지 말고 샴페인이나 한잔해.”


 그리고, 여기 이 여자의 정치적 고향이자, 끝내 주는 범죄의 도시, 스턴톤 시티가 바로 이 도시였다.


 “자, 옛날 생각은 그냥 잊어버려 당신. 어차피 딱히 신경쓸 게 많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대학원이든 뭐든 간에 그런 건 다 내가 알아서 해줄 테니까. 당신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거야. 딱 한가지, 나와 관련된 것만 제외한 모든 걸 바꾸는 거지. 하나부터 열까지 싹 도와줄 테니까.”

 

씩 웃으며 나에게 샴페인 잔을 건네는 그녀의 손길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 한 채 그 잔을 받기만 해야했다.

 

“우리의 새로운 삶을 위하여, 건배”


 짠, 터져 나가는 샴페인의 탄산과, 거기에 산란되는 도시의 불빛을 보니, 아무래도 내 인생이 존나 꼬였다는 걸 인정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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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시발 썼다. 소대가리 앀발 프롤로그만 쓰고 튄 그 좆같은 걸 내가 드디어 써버렸다. 

얀데레물 한 편 써봤읍니다... 이 글 욕하셔도 좋습니다... 솔직히 저도 얀데레적 기질이 아주 강하지 않은 것 같아 걱정입니다... 하지만 한가지만 기억해 주십시오... 정장, 시가, 금발, 양키는 시팔 존나 껄린다는 걸요... 그리고 사이버펑크도 존나 꼴립니다...

잡소리가 길어졌습니다... 이걸 더 쓸 수 있을 지는 모르겠읍니다... 솔직히 필력 병신이라 제대로 쓴건지도 모르겠읍니다. 부디, 선량한 얀붕이들의 자애로운 판결을 받기를 바랄 따름입니다...